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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영 Jan 27. 2022

소설 연재합니다(2)

일방적인 건 뭐든 불편했다.

(2)

 일식집은 상가 건물의 제일 위층에 있었다. 실내 인테리어는 여느 일식집과 다르지 않았는데 규모가 제법 큰 듯 보였다. 좁은 통로는 꽤나 길게 이어졌고 중간에서 갈라진 길이 여러 번 나왔다. 통로 양쪽으로 룸이 꽤 많았는데 모두 만석인 듯 바닥에는 손님들이 벗어둔 신발로 빼곡했다. 현주네가 예약한 룸은 몇 번의 모퉁이를 꺾어 들어간 통로의 맨 끝에 있었다. ‘이건 뭐야, 완전히 미로네...’ 현주는 직원의 뒤를 따라가며 중얼거렸다. 직원의 안내가 없었다면 현주는 예약한 룸을 찾아낼 수 없었을 것이었다. 일식집을 예약한 것은 현주가 아니었다. 만약에 현주가 장소를 선택해야 했다면 흔하디 흔한 페밀리 레스토랑을 골랐을 것이다. 싸구려가 아니면서도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고 여러 메뉴를 배불리 나눠 먹을 수 있으며 후식까지 한 자리에서 해결하기에 그만한 장소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오늘 모임의 주최자는 현주가 아니었다. 일식집을 예약한 사람은 윤재 엄마였다. 처음 만났을 때 윤재 엄마는 ‘학부모 운영위원회’의 일을 맡았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학부모 운영 위원회’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기구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소위 ‘돈 있는’ 엄마들이 가입한다는 곳이었다. 그날 윤재엄마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밍크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워낙에 키가 크고 몸집도 거대해서 주변에 앉은 엄마들 사이에서 단연 우뚝했다. ‘저 여자는 겨울잠 자다가 기어 나온 북극곰 같네... 자신의 북극곰 스타일을 위해 몇 마리의 밍크가 죽었는지 생각이나 해봤을까?’ 현주는 보기에도 징그러운 그녀의 밍크코트를 애써 외면했다. 그러나 사실 현주가 입고 있는 패딩의 모자에도 토끼털이 달려 있었다. 현주가 패딩을 구매했던 이유는 오로지 그 토끼털 때문이었다. 부드럽고 풍성한 토끼털은 한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인공으로 만든 싸구려 가짜 털과는 비교가 안 됐다.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가짜는 그걸 소유한 사람의 품격마저 떨어뜨리는 법이었다. 현주가 다른 패딩보다 두 배나 넘는 가격을 지불하고 토끼털 패딩을 구입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윤재 엄마의 밍크를 비웃을 때 현주는 제 패딩의 토끼털은 의식하지 못했다. 의식했다 하더라도 밍크와 토끼의 개체수를 비교하거나 부유한 사람의 허영심을 먼저 따졌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자신은 그들 부류와 다른 사람임을 증명해내고 말았을 것이다. 진보적이고 이타적인 시각을 유지하면서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는 것은 요즘 시대의 트랜드였고, 그것은 현주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날 열 명이 넘는 학부모들의 커피값을 지불한 건 윤재 엄마였다. 그녀는 앉은 자리에서 현주 앞으로 카드를 내밀며 “오늘은 제가 살게요.”했다. 함께 있던 엄마들이 잘 먹었다며 화답하는 동안 현주는 엉거주춤 일어나 윤재 엄마의 카드로 계산을 했다. 이후에 만났던 학급 임원 엄마들 모임에서도(그날은 스파게티를 먹었다.) 윤재 엄마는 제 카드로 계산하라며 카드를 내밀었다. 매번 그럴 순 없다며 현주가 손사래를 치자 윤재 엄마는 “괜찮아요. 뭐 얼마 되지도 않는데.”하며 나긋나긋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현주는 계산대로 달려가 자신의 카드로 계산했다. ‘사실 회장 엄마가 한 번쯤은 밥을 사야 하는 게 맞지.’ 현주는 속으로 생각했지만, ‘뭐 얼마 되지도 않는’ 가격이 부담스러워 한동안 속이 쓰렸다. 나중에 그것이 법인 카드라는 걸 알게 됐지만(윤재 엄마는 대기업 계열사의 임원이었다.) 현주는 윤재 엄마가 카드를 불쑥 내밀 때마다 심장이 쿵쾅댔다. 현주는 공평한 걸 좋아했다. 나누든 아니면 가져가든 그것이 이익이든 손해든, 일방적인 건 무엇이든 불편했다. 자신이 얻어먹거나 얻어 받거나 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랬다. 그것은 아마도 ‘세상에 공짜 없다.’는 친정엄마의 교육관에 세뇌된 탓도 컸겠지만, 현주의 경험에 근거할 때도 그 말은 진리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아마 오늘 식사값도 윤재 엄마가 지불할 것이었다. 늘 그랬듯이 현주에게 카드를 불쑥 내밀고 “이걸로 계산해요. 희연 엄마.”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예약된 룸으로 들어섰을 때 현주는 쏟아지는 햇빛에 순간, 눈살을 찌뿌렸다. 룸의 남쪽 벽면이 통유리로 돼 있었다. 현주가 들어서자 앉아있던 학부모들이 그녀에게 인사를 했는데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눈이 부셨다. 반사된 햇빛은 그녀들의 장신구와 테이블 위의 도기들에 부딪혔다가 현주의 눈에서 부서졌다. 자리에 앉은 후에도 현주는 번쩍이는 사금파리 잔상에 한동안 시달려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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