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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영 Feb 07. 2022

소설을 연재합니다(5)

’뭐야. 유치하게. 세상이 학벌로 살아질 만큼 단순한 건가?

(5)

”어머, 언니. S대 나온 거 자랑하는 거유? 호호호.“

윤재 엄마가 진아 엄마를 보며 장난치듯 물었다.

윤재 엄마와 진아 엄마는 서로 언니, 동생하는 사이였는데 둘의 관계를 잘 모르는 현주 입장에서 그들은 매우 각별해 보였다. 진아 엄마는 자랑은 무슨 자랑이냐며, 회비도 안 내는데 동창회에서 매년 보내주더라고 했지만 자신의 출신을 알리는 게 싫지는 않은 듯했다.

”언니, 진아 아빠도 같은 대학이라며? 진아도 S대 들어가야겠네?“

윤재 엄마는 부러워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지가 하기 나름이지. 그러잖아도 남편이 진아한테 엄마 아빠 후배돼야 된다고 자꾸 그래서 진아가 스트레스 받나봐. 얼마 전에 투덜대더라고.“

진아 엄마는 그래도 아이한테 부담 주고 싶진 않다고 말하며 미간을 찌뿌렸다.

”언니. 진아가 워낙 똑똑하니까 아빠 소원이뤄줄 거야. 게다가 엄마가 대학교순데 뭐가 걱정이겠어.“

”어머, 대학교수랑 s대 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진아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에이, 그래도 ‘학종(학생부종합전형)’ 준비할 때 도움 될 거 아니야. 언니는 뭘.. 다 아는 건데.“

윤재 엄마의 그 말은 ‘선수끼리 왜 그러냐?’는 의미처럼 들렸으므로 현주는 삐져나오는 비웃음을 간신히 참아야 했다. 진아 엄마는 손을 훼훼 저으며 그런 건 절대 없다고 얘기했지만, 현주는 윤재 엄마가 틀린 소리를 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교수라든가 변호사, 의사 같은 특권층의 모임에서 품앗이처럼 자녀의 학종 이력에 도움을 준다는 소문은 주변에 파다했다. 그런 인맥이 있으면 봉사 활동부터 단체 활동이나 연구 참여까지 그럴듯한 경험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학생의 자기소개서에 올라가 빛을 발했다. 현주는 희연이가 ‘방학이 되면 장애인 단체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얘기했던 것이 기억났다. 봉사 활동을 미리미리 신청해야 했는데 희연이는 마땅한 곳이 없어서 신청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그래서 간신히 얻어낸 자리라고 했다.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봉사 활동은 집에서 가깝고 활동량도 적고 실제로 활동했던 것보다 봉사 시간을 더 많이 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희연이가 어렵사리 얻어낸 봉사 활동은 그렇지 못했다. 안산에 있다는 장애인 단체는 집에서 한 시간 넘게 자동차로 움직여야 했고 장애아들과 세 시간 동안 함께 활동해야 하는데 모든 준비는 희연이가 다 해야 한다고도 한숨을 쉬었다. 현주는 딸 희연이의 한숨을 떠올리며 진아 엄마 수첩의 s로고를 지긋이 바라봤다. 로고의 금속성이 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누군가의 인격이 학벌로 평가받고 부모의 성취가 자식에게 이어지는 세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공고했던 것이었다.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현주는 진아 엄마에게 진아의 봉사 활동이 준비됐는지 물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런 걸 물어봤다가 진아 엄마가 모른 체하거나 얼버무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었다. 만약에 진아 엄마에게 붙어서 무언가 얻어보려는 수작으로 보인다면 그건 더욱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현주는 고개를 흔들며 입을 다물었다. 현주의 알량한 자존심이 허용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었다. ’뭐야. 유치하게. 세상이 학벌로 살아질 만큼 단순한 건가? 행복하면 되지.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야.‘ 현주는 딸아이에게 슬며시 미안했지만,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러나 마음 한켠의 찝찝한 기운은 씹다 남은 껌처럼 마음 한 구석에 달라붙어 끈적대며 남아 있었다.

다음에 모일 날짜가 정해지자 진아 엄마는 수첩을 열어 달력에 체크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입고 스카프를 두르는 윤재 엄마는 생각했던 것보다 키가 크고 늘씬했다. 그녀가 왼팔에 걸고 있는 백은 ’강남 엄마의 시장 가방‘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너무 흔한 것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가방은 시가 천만 원을 웃도는 명품이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진아 엄마의 뒤태는 창가에 스며든 햇살에 부딪혀 화사했는데, 그것이 그녀의 학벌 때문인지 명품 때문이지 어쩌면 그 모든 것 때문인지 현주는 알 수 없었다.

    


”정아 엄마가 대학 교수였어요? 몰랐네.“

상희 엄마가 정아 엄마가 나간 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간 강산데, 대학 교수는 대학 교수죠?“

윤재 엄마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방금 전까지 s대를 운운하며 학벌의 위대함에 예를 표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상희 엄마는 조금 당황한 눈치였지만, 금세 쌍꺼풀진 눈을 반달 모양으로 만들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부럽네요. 학벌도 좋고...게다가 집도 잘산다면서요. 우리 애는 너무 평범한 부모를 만나서 성적도 평범한가 봐요.“

현주의 앙칼진 목소리가 불현 듯 튀어나왔다. 그건 마치 윤재 엄마를 타박하는 것처럼 들렸다. 사실 현주는 윤재 엄마가 얄밉기도 했고 진아 엄마에게 위축된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비말처럼 터져나간 자신의 목소리에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속에 담긴 말은 날것으로 분출될 때 가장 위험해지는 법이었다. 상희 엄마가 현주의 벌린 입을 갸우뚱하며 쳐다봤고 윤재 엄마는 그것이 자신을 향한 말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동공을 키우고 있었다. 현주는 입을 다물었다. 룸에는 순간 짧은 정적이 흘렀다. 테이블 위에는 그들이 먹다 남긴 음식과 그릇들이 잔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싱싱하고 맛깔스러워 보이던 음식이 내장을 드러낸 듯 너저분해진 모습을 보며, 현주는 인간 밑바닥에 깔린 위선을 목격한 듯 불쑥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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