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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영 Feb 09. 2022

소설을 연재합니다(6)

아이가 일류대학에 갈 수만 있다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바치겠다는

(6)

남쪽 창가에는 여전히 햇살이 환했지만 빛의 양은 눈에 띄게 줄어든 것 같았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어느덧 시간은 오후 두 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휴, 무슨 소리예요. 희연 엄마. 희연이 정도면 훌륭하지.“

윤재 엄마는 어색한 분위기를 눈치챈 듯 다소 과장된 억양으로 말했다. 그리고는 엄마들을 둘러보며 “오늘 오랜만에 내가 시간이 많이 남아서... 괜찮으면 커피 마실래요?하고 덧붙였다.

다른 곳으로 옮기려면 주차하기도 힘들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그들은 앉아있던 룸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상희 엄마는 조금 망설이는 것 같았지만 차마 먼저 가겠다는 말을 못 하는 눈치였다. 잠시 후 직원이 커피를 가지고 왔을 때 윤재 엄마는 직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윤재 엄마 너무 많이 나왔을 거 같은데...“

상희 엄마가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아마 저 부담스러워하는 표정에는, 이젠 영락없이 남아서 커피를 마셔야 하는구나...하는 낙담도 섞여 있을 거라고 현주는 생각했다.


”희연엄마가 영어 선생님이라면서요? 윤재한테 들었어요. 영어는 어떻게 준비해야 돼요?“

후후 불며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넣고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윤재 엄마가 물었다. 상희 엄마도 눈을 반짝이며 현주의 입을 바라봤다. 아줌마들 모임에서 흔히 물어오는 질문이었으므로 현주에겐 익숙한 질문이었다. 현주는 그저 그런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들은 조금 실망한 표정이었지만, 현주로서는 영업 비밀을 쉽게 발설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사실 영어 공부에 대단한 묘법이란 게 없기도 했다. 그런 후 자연스럽게 영어 학원의 정보가 오가더니 이야기는 결국 아이들의 대학 문제로 연결됐다. 일류대학에 가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돈은 얼마나 많이 깨지는지, 누구는 어떻게 해서 그 어려운 입시 관문을 뚫었는지에 관해서, 아이가 일류대학에 갈 수만 있다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바치겠다는 간절함으로 그들의 이야기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현주는 스스로가 전문가라고 자부했지만 딸아이의 학부모에게 듣는 이야기는 흥미로운 부분이 적지 않았다.  이제껏 남의 일이었던 대학입시가 기어코 딸아이의 일이 됐구나, 현주는 문득 불안해졌다. 자신이 거부하거나 경멸했던 입시 경쟁의 틈에서 딸아이만큼은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던 터였다. 그러나 그 확고했던 믿음에 슬며시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현주는 본능적으로 감각할 수 있었다.     


윤재 엄마가 중현이 얘기를 꺼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지인의 아들이 전문대학을 나와서 아빠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걔 아빠가 강남에서 꽤 유명한 정형외과 원장이거든요. 근데 아들이 하도 공부를 안 하니까 공고를 보내더니 결국 전문대학에 갔어요. 거기서 무슨 방사선관가, 왜 있잖아요. 엑스레이 찍고 그러는...  결국 아빠 병원에 들어간 거죠. 그래도 의사 가운 입었다고 그 엄마가 좋아하더라고요. 호호”

‘강남 유명 정형외과 원장, 공고라고..?’

현주는 설마? 하는 생각을 했지만, 강남에서 자녀를 공고에 보내는 건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혹시 **정형외과 아니나요? 아들 이름이 고중현인데...”

윤재 엄마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현주엄마가 그걸 어떻게 아냐며 되물었다.

“제가 가르쳤던 학생예요. 한 육 년쯤 됐나? 그럴걸요?”

“중현이 맞아요. 어머, 그랬구나. 아.. 정말 말조심해야겠다. 여기서 중현이 과외샘을 만날 줄 누가 알았겠어요. 호호.”

재밌는 일이라는 듯 웃었지만 윤재 엄마의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버렸다. 아는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남의 뒷얘기를 한 셈이니까 당황할 법 했다. 그러나 중현이 얘기라면 어딜가든 재밌는 담화거리가 될 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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