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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영 Feb 13. 2022

소설을 연재합니다(8)

가난이 슬픈 건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남긴다는 것이었다.

(8)

“선생님. 실은 중현이가 가출했었어요.”

짙은 선글라스를 쓴 중현 엄마의 얼굴은 그날따라 더욱 창백해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현주의 질문에 중현 엄마는 “아.. 너무 챙피해서요. 선생님만 알고 계세요.”하며 푸석푸석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일류대학 무용과 출신인 중현 엄마는 한눈에도 귀티가 나는 외모였다. 가늘고 낭창한 몸이며 긴 다리와 작은 얼굴, 그리고 뽀얀 피부는 언제나 잘 관리되고 유지되었다.  현주는 그녀의 매끈한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푸석하고 거친 자신의 피부를 어쩔 수 없이 떠올려야 했다. 피부관리를 받는 중이라고, 중현 엄마는 가끔 현주와 통화하며 양해를 구하곤 했었다. 그럴 때면 현주는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 값비싼 관리를 받는 중현 엄마의 모습을 상상했고, 어쩌면  계급의 차이란 피부의 상태에서 확인되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우울해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 중현 엄마의 얼굴은 척박한 땅에서 간신히 버텨내는 생명처럼 위태롭고 삭막해보였다.


현주는 과외하는 학생들의 엄마와 자신의 처지를 비교할 때가 있었다. 비슷한 또래의 학생 엄마를 만날 때면 더욱 그랬다. 그들은 대부분 여유롭고 느긋한 주부였다. 집안일은 도우미에게 맡겼고 오전엔 골프 연습장엘 가거나 아줌마들과 브런치를 즐겼다. 그렇다고 저녁 식사 준비에 열심인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피자나 햄버거 따위의 인스턴트로 밥을 떼우는 날이 많았다. 학원에 갈 시간이 빠듯한 탓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입맛이 이미 인스턴트에 길들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녀들의 남편은 늦는 날이 많았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해놓은 저녁밥을 먹고 나면 그녀들은 티브이 연속극에 빠져 들거나 전화기를 들고 두어 시간씩 통화를 했다. 그리고는 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이 픽업을 위해 집을 나섰다. 현주는 강남에서 부유하게 자란 자신과 그녀들의 유년을 상상하며 비교해 보기도 했다. 무엇으로든 위로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왜 이렇게 팍팍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해결책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간절한 마음과 달리 현주의 궁색한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학교에 가는 아이와 출근하는 남편을 챙겨 밖으로 내보내면 현주는 집안을 대충 치우고 수업 준비에 바빴다. 그러나 조용한 집안에서 모처럼 부여된 그 여유 시간에 졸음은 눈치 없이 쏟아지곤 했다. 현주는 꾸벅꾸벅 졸다가 출발해야 할 시간을 놓치기 일쑤였고 급하게 도착한 첫 수업부터 마지막 수업까지,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다보면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저녁은 자주 굶었다. 밥을 챙겨 먹을 시간이 있다면 수업 시간을 최대한 일찍 잡아서 조금이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나았다. 그렇게 하면 아이와 함께 있을 시간이 더 늘어나는 셈이니까. 친정 엄마가 아이를 돌봐주고 있었지만 아이는 곁에 없는 엄마의 손길을 티비나 컴퓨터에서 대신 찾았다. 아이를 볼 때마다 현주는 죄책감을 느꼈고 아이를 방치하고 있다고 친정 엄마를 원망했다. 졸음에 칭얼대는 아이를 끌어안고 친정집을 나오면 늘 캄캄한 밤이었다. 집에 돌아와도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온 가정통신문을 읽어보고 다음 날 가져가야 할 준비물을 챙겨주다보면 아이는 어느새 작은 새우처럼 몸을 말고 잠이 들어 있었다. 현주는 그제서야 해일처럼 덮쳐오는 피곤함을 느꼈고 자신도 모르게 아이 옆에 모로 눕곤 했다. 범벅이 된 화장과 꾸덕꾸덕 말라붙은 땀과 먼지는 베개에 파묻혀 아우성치듯 피부를 간지럽혔고, 현주는 꿈속에서도 얼굴을 벅벅 긁어댔다.


그 시절 남편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업으로 얼굴도 마주치지 못할 만큼 바빴다. 남편의 명의로 받은 대출은 이미 한계에 부딪혔고, 현주의 이름으로도 추가의 신용 대출을 받은 상태였다. 남편은 끌어당길 수 있는 돈을 박박 긁어서 사업 자금으로 사용했다. 적금은 물론이고 결혼과 동시에 가입했던 보험이며 주택청약통장마저 해약했을 때 남편 사업은 밑바닥을 향해 추락 중이었다. 남편은 늘 새벽에 돌아왔다. 삑삑대는 도어락 소리에 현주가 얼핏 잠이 깨면 남편의 발자국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술기운에 비틀대다가 발이 헛돌아 쿵쿵 바닥을 찧거나 들고 있던 소지품이 떨어지는 소음을 내며 남편은 현주와 아이가 자고 있는 방을 조용히 들여다보고는 문을 닫았다. 잠시 후에 침대 위로 쓰러지는 쿵 소리가 들리고 천장이 흔들릴 듯 거대한 코골이 소리가 들리면 현주는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현주와 남편의 얼굴이 푸석하고 거칠게 변한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사정이 그러했으므로 현주가 피부과에 진료를 간다거나 시술을 받을 기회도 물론 생기지 않았다. 그 시절 현주를 힘들게 했던 건, 수천만 원짜리 외제 차도 수백만 원짜리 골프채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가 언감생심 꿈꿀 수 없었던 강남 학부모들의 미끈하고 광채나는 피부였다. 한 겹 한 겹 쌓이는 시간은 누구의 얼굴엔 광채가 되고 누구의 얼굴엔 더께로 남았다. 그건 돈으로 사들일 수 있는 외제 차나 골프채와는 달랐다. 가난이 슬픈 건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남긴다는 것이었다.


현주는 앞에 앉은 중현 엄마의 화사한 피부를 홀린 듯 바라봤다.

“선생님은 중현이가 그랬던 걸 혹시 아셨나요?”

현주는 그제서야 중현 엄마의 피부에 넋이 나가있던 자신을 알아챘다.

“네? 그러니까 중현이 친구 얘기 말씀이시죠?”

중현 엄마가 친구 어쩌고 했던 말이 기억나서 현주는 넘겨짚으며 물었다.

“네.. 혹시 오토바이 타고 다닌다는 친구 얘기 못 들으셨어요?”

“글쎄요. 그런 친구 얘기는 못 들은 것 같은데요...”

중현 엄마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찌뿌렸다.

“애 아빠가 중현이에게 심하게 했어요. 그날따라 남편이 일찍 들어왔는데 중현이가 12시가 다 돼서야 집에 온 거예요.”

중현에게선 옅은 술 냄새가 났다고, 중현 엄마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그녀는 아까부터 카페의 문이 열릴 때마다 긴장하며 문 쪽을 바라봤다. 대낮의 카페엔 그녀와 현주 단 둘뿐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중현네 근처의 카페였다. 중현 엄마는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게 될까봐 불안에 떨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날 밤, 중현 아빠가 어디서 술을 먹었냐고 캐물어도 중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중현이는 이어지는 아빠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마침 그때 중현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 중현 아빠는 핸드폰을 달라고 했지만 중현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순간 중현 아빠의 눈에서 불이 번뜩이는 것 같았다. 중현이의 휴대폰을 억지로 빼앗은 그는, 있는 힘껏 그것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그런 후에도 분이 안 풀렸다는 듯 급히 달려가 망치를 가져와서는 미친 사람처럼 휴대폰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아빠를 말리지도 않고 소리를 내지도 않고 중현이는 울긋불근 벌개지는 얼굴로 버티고 서있었다. 간신히 울음을 참는 듯도 했다. 그러나 중현 아빠가 제 분에 못 이겨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병신 새끼!”하고 내뱉었을 때 중현이는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아, 씨발!” 중현은 내장의 음식물을 울컥 쏟아내듯 욕을 내뱉곤 집을 뛰쳐나갔다. 그날 밤 중현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삼 일째 되던 날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중현이가 길거리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훔쳤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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