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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영 Feb 12. 2022

소설을 연재합니다(7)

“저한테 ’절.친‘이 한 명 생겼거든요.”

(7)

 

 중현에게는 틱장애가 있었다. 간혈적으로 발작하듯 이상 행동을 했다. 그것은 어깨와 몸을 뒤틀며 끅,하는 괴음을 내는 증세였는데 공부할 때면 더욱 심해졌다. 처음에 그 소리를 들었을 때 현주는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내는지 중현에게 물어볼 뻔했다. 그러나 중현의 긴장된 얼굴과 현주를 피하는 눈빛을 본 순간, 현주는 그것이 건넬 수 없는 질문이란 걸 깨달았다. 중현의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을 모른 체하기는 쉽지 않았다. 틱증세가 발현될 때마다, 현주는 어쩔 수 없이 멈칫했고 중현은 그런 자신이 수치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이런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중현 엄마는 첫수업을 마친 후에야 중현의 장애를 설명해 주었다. 혹시라도 선입견을 갖으실까봐 그랬다고, 그녀는 현주에게 미리 언급하지 않았던 이유를 밝혔다. 현주는 아무래도 수업을 못할 것 같다고 말할 작정이었지만, 중현 엄마의 애타는 표정을 본 순간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사실 현주가 수업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넘치도록 많았다. 얼마 전 구입한 자동차는 단 돈 오십만 원만 선불로 지불한 상태였다. 삼천만 원 남짓한 자동차 값은, 삼 년간 매달 갚아야 할 빚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전세 대출로 갚아야 하는 원리금도 아이의 학원비도 그녀가 수업을 지속해야하는 이유는 넘치게  많았다. ’그래, 한 달만, 딱 한 달만 수업을 해보자.‘ 현주는 용기를 냈다. 사실. 아이의 장애를 문제 삼아 수업을 그만둔다는 것도 지나치게 냉혹한 일일 터였다.

그렇게 시작한 수업은 이 년 가까이 계속됐다. 수업을 시작할 때 중3이었던 중현의 성적은 간신히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할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고민하던 중현의 엄마가 공업고등학교에 중현을 입학시킨 것은, 역설적이게도 대입 때문이었다.

 “인문계에 들어가서 다른 애들 등수만 올려줄 필요가 있을까요?” 중현 엄마는 공고에서 내신이라도 잘 받으면 대입에 성공할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학마다 특성화고 출신의 입학 전형이 따로 있었으므로 내신 성적이 뛰어나면 일류대학에 합격할 수도 있었다. 중현 엄마는 집 근처의 공업고등학교에 입학 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처음 치른 중간고사에서 중현이는 지금껏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점수를 받아왔다. “애들이 공부를 하나도 안 하더라고요. 저보다 더 멍청해요.” 그렇게 말하며 중현이는 자랑스럽게 성적표를 내밀었다. 중현이의 평균은 80점을 웃돌았다. 이대로만 간다면 ’인 서울‘은 무난할 것 같다고, 중현의 엄마는 입이 찢어지게 웃었다. 그러나 너무 섣부른 판단이었다. 중현의 틱 증세는 성적이 올라갈수록 악화됐다. 중현 엄마에게 의사는 중현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아니나다를까. 중현이  몸은 뒤틀림이 거세졌고 끅,하는 괴상한 소리도 더욱 잦아졌다. 수업 시간을 견디기 힘든 건 현주도 마찬가지였다. 중현의 증세를 아는 체할 수 없었으므로, 아이가 발작처럼 몸을 뒤틀 때마다 현주의 등과 겨드랑이에는 식은땀이 고였다. 중현은 더 이상 현주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현주가 질문하면 엉뚱한 대답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졌다. 중현은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고 어느새 그 세상으로 스며든 듯했다. 누군가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중현이는 영원히 문을 닫아 버릴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부가 시급한 게 아니었다. 현주는 중현에게 마음껏 잡담할 기회를 주었다. 중현은 현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서서히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중현은 몸을 뒤틀거나 끄윽, 하는 괴음을 터뜨리는 횟수가 줄었다. 현주가 중현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중현이는 공고에서 만난 친구들 얘기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식한 애들이라고 은근히 깔봤는데 알고 보니 참 재밌는 애들이라고 했다. 중현이가 친하게 된 학생들은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주유소에서 먹고 자는 애도 있었고 식당에서 서빙하거나 피시방에서 일하는 애도 있었다. 돈이 생기면 동대문에 가서 옷을 사고 남는 돈으로 담배나 술을 사기도 한다고 했다. 중현이처럼 과외 공부를 하거나 학원에 가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저한테 ’절.친‘이 한 명 생겼거든요.”

중현이는 ’절.친‘이라고 또박또박 한 자씩 끊어서 발음했다. 입가에 미소를 띤 중현의 얼굴은 자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다는 듯 흥분돼 보였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중현에게 절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친구는 없었다. 아니, 친구라는 존재가 아예 없었다. 그 이유가 틱 증세 때문인지 중현의 유별난 성격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친구가 없다는 것이 중현의 자존감을 훼손시켰음은 확실했다. 게다가 중현은 운동에도 젬병이었다. 축구며 농구 따위를 즐기는 남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에 바글바글했지만 중현이는 그들 무리에 껴본 적도 없었다.

중현이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소통의 문을 걸어 잠갔던 것은 살기 위한 발악이었을 거라고, 현주는 생각했다. 무엇으로도 자신을 건드릴 수 없도록 누구도 자신을 무시할 수 없도록, 중현이는 입을 꾹 다물고 학교에 갔다가 꾹 다문 입에서 쉰내가 날 즈음에 집에 왔다. 중현이가 도피할 곳은 오로지 터널처럼 어둡고 깊은 자기만의 세계였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중현은 자폐아처럼 웅크렸다. 그런데 친구가 생긴 것이었다. 같이 밥을 먹고 함께 버스를 타고 유행하는 옷을 사기 위해 약속을 잡을 수 있는 친구말이다.

하기 싫었고 또 할 수 없었던 공부에서 중현이가 발을 빼기 시작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과외수업을 빠지는 날이 많아졌다. 그럴수록 중현 엄마의 한숨은 깊어갔다.

그날은 중현이의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틀림없이 오늘도 수업하기 싫어하는 중현을 달래느라 진이 빠질 거라고 현주는 마음을 다잡던 중이었다. 그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 중현이 엄마였다.

“선생님, 중현이가 몸이 많이 아파서 입원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지쳐 보였다.

“어머나, 어디가 아파서요? 많이 아픈가요?”

현주가 속사포처럼 질문을 던졌지만 중현 엄마는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 주일쯤 지났을까, 중현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현주에게 할 말이 있다며 동네 카페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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