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모든 불행의 원인을 아내의 탓으로 전가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중현 엄마는 경찰서에 앉아있는 중현을 본 순간 쪽팔려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고 했다. 얼핏 본 중현의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다. 그게 단지 화가 난 표정이었는지 아니면 억울해서 울었던 탓이었는지 그녀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간절함 뿐이었다. 그녀는 오토바이 한 대 값에 해당하는 금액을 합의금으로 지불했다. “애들이 크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다 말썽부리면서 어른이 되는 거 아닙니까?”오토바이 주인은 의뭉하게 웃었다. 중현 엄마는 그가 무슨 말을 더 지껄일까봐 겁이 났다. 그는 동네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그 분식집은 동네 사랑방같은 곳이었다. 점심 시간이 되면 떡볶이같은 분식으로 대충 한 끼 떼우려는 사람들과 방과 후 간식을 찾는 학생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중현이가 하필이면 분식집의 오토바이를 훔쳤으니 소문이 날 가능성이 높았다. 중현 엄마는 중현이가 공고에 진학한 것도 감추고 지내는 터였다. 동네방네에 아들 이름이 떠돌게 된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녀는 쇳덩어리처럼 무겁게 앉아있는 아들의 팔을 있는 힘껏 잡아끌었다.
“혹시 중현이가 선생님께 제가 모르는 얘기를 했을까 싶어서요. 선생님하고 얘기하는 게 너무 좋다고 그랬거든요.”
중현 엄마는 침으로 입술을 축였다. 까칠하게 말라붙은 입술은 껍질이 벗겨져 너덜댔다. 현주는 중현과 나눴던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중현이가 홀로 있었던 시간들, 친구를 사귄 즐거움 그리고 절친을 만난 이야기까지, 중현의 답답하고 외롭던 시간들과 친구를 알게 된 흥분과 기쁨에 관해, 현주는 최대한 중현이의 입장에서 전달하려고 애썼다. 이야기를 든는 중간마다 중현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거나, 이 자식이...하며 한심해하다가 문득 모든 걸 내려놓았다는 듯 씁쓸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선생님, 조만간 다시 수업 시작할게요. 그때까지만 좀 기다려 주세요.”
중현 엄마는 현주의 이야기가 끝나자 마음을 다잡았다는 듯 말했다.
“어머니, 중현이가 친구랑 맘껏 어울리게 해주세요.”
현주는 자신도 모르게 불쑥 그런 말을 내뱉고 말았다.
“주제넘게 들리실지도 모르지만, 대학보다 중현이 행복이 중요하잖아요.”
조심스럽게 꺼낸 현주의 목소리가 현악기의 줄처럼 바르르 떨렸다. 말하기 쉽지 않은 진심을 전달할 때면 현주는 늘 그렇게 목소리가 떨리며 울컥하곤 했다. 진심을, 그것도 드러내기 어려운 진심을 말로 표현한다는 건 달리기 출발선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선수처럼 긴장되는 일이었다. 남에게 진심을 전달한다는 건, 어쩌면 진동하는 심장을 힘껏 끌어 안는 일일 거라고 현주는 생각했다.
현주의 도발적인 말에 중현 엄마는 놀란 듯 숨을 죽였다. 잠시 후 그녀는 다 식어버린 커피잔을 옆으로 밀어놓고 두 팔을 테이블 위에 올리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우리집 사정을 선생님이 모르셔서 하는 말예요.”
중현 엄마는 다시 한 번 입술에 침을 묻힌 후 긴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녀는 중현이가 여섯 살쯤 됐을 때 아이의 틱 증세를 발견했다. 또래 애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여주려고 영화관에 데려갔는데, 중현이는 단 오 분도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잦은 틱 증세가 마음에 거슬리던 참이었다. 혹시나 하고 찾아간 병원에서 중현은 ’뚜렛 증후군‘이란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의사인 중현의 아빠에게 기댔다. 그쪽 분야의 전문가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그 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다.
“당신, ’뚜렛 증후군’이 뭔지 알아? 이게 그냥 병이 아니야, 뇌에 문제가 생긴 거라고. 바이러스에 전염된 게 아니고 유전적인 장애란 말이야!” 중현 아빠는 그녀를 노려보며 윽박질렀다. 뇌에 문제가 생긴 것과 유전적인 이유의 발병이라는 게 왜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면 안 되는 원인이 되는 건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빌었다. 알았다고 다 알겠으니까 제발 도와달라고, 우리 아들이니까 당신이 도와야 한다고, 그녀는 두 손을 모아서 빌었다.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세상이 모두 그녀에게 등을 돌린 것 같았다. 암흑의 세상이란 게 바로 이런 거였구나, 그녀는 자신의 망막에 맺히는 사물이 하나같이 흐릿한 흑백으로 보이는 현실에 놀랐다. 그녀는 그대로 주저앉았고 봉사가 된 듯 두 팔을 휘저으며 남편을 찾아 앞을 더듬었다. 그러나 남편은 거기에 없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그녀는 침실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시름시름 앓았다.
들판에 세워둔 짚단이 무너지듯 그녀가 비실비실 쓰러져가는 걸 본 후에야 남편은 종합병원에 근무한다는 지인에게 중현의 병을 문의했다. 결과는 같았다. 중현아빠는 그것 보라는 듯, 실소했다. 그녀가 이를 악물고 중현의 병을 고치겠다고 마음먹은 건 그 때문이었다. 자신의 아이에게선 그런 장애가 나올 수 없다며 완강하게 아들의 병을 거부하는 남편이 그녀는 실망스럽다 못해 측은했다. 남편이 보이는 거부감은 사실 공포에서 오는 두려움이었다. 그는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고통과 불안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기 위해 그는 모든 불행의 원인을 아내의 탓으로 전가했다. 그가 ‘유전’이란 말을 들먹이면서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훑어보곤 했던 건 바로 그런 이유였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굵직한 지렁이 수십 마리가 온몸을 감싸며 치덕대는 공포와 불쾌함에 치를 떨었다.
“날마다 싸웠어요. 서로 누가 더 잔인하게 죽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처럼 싸웠죠. 중현인 다 알았던 거예요. 엄마 아빠의 싸움이 자기 때문이란 걸요. 틱 증세가 더 심해졌고 나중엔 약물 복용까지 해야 했죠.”
그녀는 의사가 지시하는 대로 중현이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모든 일을 중단했다. 학원이며 학습지를 끊었고 외국에 여행을 다니며 아이를 맘껏 즐기게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중현의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학교 성적도 서서히 올랐고 가끔 책을 읽으며 집중하는 아이를 발견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중단했던 중현의 학원과 과외 수업을 다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