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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영 Mar 16. 2022

소설을 연재합니다(마지막회)

[지금 가고 있어요.]

 복도로 나오자 세 갈래로 갈라진 통로가 대답을 구하는 질문처럼 그녀에게 들이댔다. 그러고보니, 입구에서 들어올 때 복잡하게 얽혀있던 통로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현주가 화장실이 어디 있을까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쟁반을 든 직원 한 명이 현주 앞으로 지나갔다. 직원은 현주가 바라보는 방향의 복도 끝에서 좌회전을 하면 된다고 알려줬다. 현주는 직원이 알려준 곳을 향해 급히 뛰어갔다. 방광이 꽉 차서 터질 것만 같았다. 복도는 여자 두 명조차 함께 지나가지 못 할 만큼 폭이 좁았다. 혹시라도 누군가 앞길을 막는다면 현주는 당장이라도 주저앉아 줄줄 오줌을 싸지를 것처럼 급했다. 화장실의 위치는 직원이 알려준 것과 조금 달랐다. 복도 끝에서 좌회전을 했지만 화장실은 보이지 않고 화장실을 가리키는 방향 표시만 벽에 붙어 있었다. 현주는 표지판을 따라서 한 번 더 좌회전을 했다. 그러자 새로 나타난 복도의 중앙에 화장실이 있었다. 마침내 현주가 변기에 앉았을 때 어찌나 식은땀을 흘렸던지 그녀의 몸에선 시큼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러나 급했던 요의에 비하면 오줌 줄기는 힘이 약했다. 방광은 아직도 비워지지 않은 것 같은데 어쩐 일인지 오줌은 찔끔찔끔 떨어졌다. 평소에도 현주는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렸다. 학생 집에서 수업할 때면 그것도 눈치가 보였으므로, 요의가 느껴져도 최대한 참는 게 버릇이 됐다. 그러나 잘 참다가도 갑자기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하거나 학생의 질문에 답이 막힐 때면, 그녀는 아랫배가 터질 것처럼 격한 요의를 느꼈다. 좀 전의 급박했던 요의도 비슷한 이유 때문인지 몰랐다.

현주는 변기에서 일어나 옷을 추스렸지만 방광은 여전히 묵직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온 현주는 정면의 벽에 걸린 커다란 전신 거울을 발견했다. 화장실로 들어갈 땐 못 봤던 거울이었다. 복도는 화장실 문 앞에서 양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좌회전해서 들어왔으니 반대로 우회전해서 나가야 했다. 그러나 정면의 거울을 본 순간, 무슨 일인지 현주는 방향 감각을 상실했다. 현주는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나 왼쪽으로 돌아간 복도는 몇 발자국도 가지 않아서 짧게 끝났다. 현주는 몸을 돌려 이번엔 반대 방향으로 걸었지만 복도는 또다시 갈라졌다. 현주는 한 번 더 왼쪽을 선택했다. 아까보다는 복도의 길이가 조금 더 길었지만 걷다 보니 복도는 또 여지없이 벽에 막혀 버렸다. 도무지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어서 현주는 환장할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화장실을 찾아보는 게 낫겠다고 현주는 생각을 바꿨다. 화장실 앞에 서본다면 방향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화장실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혹시나 표지판이 보일까 벽을 올려다 보았지만 그조차 눈에 띄질 않았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과 오른쪽 복도를 우왕좌왕 오갔지만 현주가 찾는 것은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미로에 갇힌 것 같았다. 여긴가? 싶어서 방향을 바꿀 때마다 막다른 길목만 마주칠 따름이었다. 현주는 누군가 지나가지 않을까 두리번거리며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나 어떤 인기척도 없었다. 이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그녀는 제자리에 쭈그린 채 앉아 버렸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현주는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잃고 미아가 돼버린 기분이었고, 그러자 그만 울고 싶은 심정이 돼버렸다.

‘상희 엄마는 집에 도착했을까? 남편에게 추궁당해서 혹시 곤란해지진 않았을까? 윤재 엄마는 아직도 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감추고 싶은 아들 얘기를 괜히 해버렸다고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현주는 자신도 모르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 보고 있었다. 집에서 서둘러 나왔던 순간부터 엄마들과 식사하며 나눴던 시간까지, 그들과 오갔던 내용들이 자석에 엉겨 붙는 쇳가루처럼 그녀의 머릿속으로 우악스럽게 들러붙기 시작했다. 진아 엄마가 테이블에 올려놓던 s대 수첩과 아닌 척 내리깔던 그녀의 오만한 눈빛, 우아하고 지적이던 상희 엄마의 포즈와 남편의 전화를 받으며 석고처럼 굳어지던 그녀의 표정, 그리고 식사값으로 내밀던 윤재 엄마의 신용카드와 그녀가 비밀스럽게 속삭이던 아들의 장애. 그 모든 것들이 현주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더니, 문득 똘똘 말린 휴지 뭉치처럼 하나로 모여들어 제법 묵중한 무게로 현주의 머리를 짓눌렀다. 현주는 쭈그린 다리 위로 고개를 숙여 팔로 머리를 감쌌다. 현주가 손을 풀면 육중한 무게의 머리가 중력을 못 이기고 뚝 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얼마쯤 그러고 있었을까.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쓰윽, 그녀의 등허리를 파고들었다. 현주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복도 끝에 있는 작은 창문의 틈이 열려 있는 듯했다. 바람이 차가웠다. 현주는 창문을 닫아야겠다 싶었다. 저릿저릿하면서 휘청이는 다리에 힘을 주며 현주는 간신히 일어섰다. 그 때 띵동,하며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희연 엄마, 어디 있어요?]

윤재 엄마의 문자였다. 아직도 윤재 엄마는 그곳에서 현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현주는 답문을 적었다.

[지금 가고 있어요.]

현주는 열린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몇 발자국 앞으로 걷다보니,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현주는 그 길이 제가 들어왔던 길이었음을 직감했다. 그 뒤로도 두 번의 갈림길에서 현주는 제가 지나쳤던 통로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자 커다란 거울이, 그런 다음엔 화장실 표식이 거짓말처럼 현주의 눈에 들어왔다. 이제부터는 처음에 들어왔던 길을 되짚어 나가면 될 것이었다. 현주는 화장실 앞에 서서 심호흡을 크게 했다. 때로 삶이란 건 고장난 방향타처럼 제멋대로 흔들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래, 다시 시작하면 돼.' 현주는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모두가 미로에 갇혀 헤맬 뿐이었다. 들어온 길이 있으니 그 길이 곧 출구였다. 어쩌면 너무도 뻔한 해결책을 앞에 두고 우리는 모두 헤매고 있는 거라고 현주는 생각했다. 들어온 길을 찾을 수만 있다면 빠져 나갈 수도 있는 거였다. 현주는 다리에 힘을 주고 발을 옮겼다. 그렇다. 이번엔 좌측이 아니라 우측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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