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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영 Jan 26. 2022

소설 연재합니다(1)

학부모가 만나면.

(1)

 만춘이라 하기엔 아직 바람이 차가운 사 월이었다. 감기 기운이 있는지 으슬으슬 추웠지만 현주는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퉁퉁 부은 얼굴 위에 치덕치덕 크림을 바르고 평소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원피스를 입었다. 그녀의 알레르기 피부는 스타킹에 취약했다. 두어 시간쯤 지나면 스타킹 안쪽 피부가 근질대기 시작했다. 무의식중에 간지러운 곳을 벅벅 긁다보면 피부는 벌겋게 부어올랐고 스타킹에 구멍이 뚫리기도 했다. 그래서 특별히 예의를 차려야 하는 날이 아니면 그녀는 스타킹을 신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 딸 아이 학급의 학부모 모임이 있었다. 그녀의 딸은 그녀에게 학부모 모임에 열심히 참석해주길 요구했다. 고 1이 된 아이는 일 학기 학급 반장이 되었던 것이다.      


학부모 모임 장소는 강남의 일식집이었다. 점심 시간보다 좀 이른 시간이었지만 음식점의 지상 주차장은 이미 꽉 차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지하 주차장을 이용해야 했다. 지하는 기계를 작동해야 했는데 그 역시 주차를 기다리는 차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녀가 차례를 기다리는 중에도 차들은 계속 주차장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셀프 주차였으므로 기계 작동은 차주가 직접 해야 했다.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기계의 버튼을 누를 때마다 차 안에서 무료함을 버티던 사람들은 모두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부분은 중년 여성이었다. 그들은 미끈한 외제차에서 내렸고 팔 한쪽에는 예외 없이 명품 가방이 걸려있었다. 그들 중에는 오늘 모임에서 만나기로 한 익숙한 얼굴의 학부모도 있었다. 순간, 현주는 자신이 낡은 경차에 앉아있단 사실을 깨달았고 어쩔 수 없이 주눅 든 자신을 발견했다. 현주는 학부모 모임 같은 약속이 싫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쩌면 그렇게 학부모들과 유대가 없냐고, 모든 정보는 아줌마들 사이에서 나온다고, 내키지 않아도 자주 만나고 친해져야 한다고, 현주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에게 충고하곤 했다. 그러나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무엇보다 현주는 매우 바빴다. 현주의 직업은 영어 과외 선생이었다. 주로 고등학생을 담당했으므로 수업 준비가 만만치 않았다. 현주는 오전 시간 대부분을 수업 준비에 할애했다. 아줌마들과 어울릴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게다가 현주는 입시제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십여 년의 사교육 경력은 웬만한 입시 전문가의 능력을 부러워하지 않을 만큼 그녀를 프로답게 만들어 주었다. 학부모들이 모임을 하거나 블로그를 만드는 이유는, 주로 강남 유명 학원의 정보나 유능한 과외 선생에 관해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것이라면 현주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현주가 학원이나 과외 선생의 정보를 알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현주는 학원이든 과외든 학생이 주도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는 지극히 고전적인 입시관을 갖고 있었다. 사교육은 출발하는 차의 악셀을 밟아줄 수는 있어도 주차된 차를 움직이게 할 순 없었다. 더러는 강제된 사교육의 성공적인 세례를 받는 학생이 있긴 했다. 그러나 알고 보면 학생에게 이미 내재된 학습 능력이 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릴 적에 책을 많이 읽었거나 뛰어난 학습 유전자를 타고 난 경우였다. 예외는 물론, 지극히 드물었다.

현주의 아이는 공부를 잘 하지 않았지만, 어릴 적 읽은 독서량은 적지 않았고 그리 나쁜 유전자를 타고난 것 같지도 않았다. 아이가 대학을 선택하게 되는 결정권은 역시 아이에게 있었다. 따라서 그동안 학부모 모임에 현주가 열심히 참석했던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특별한 일이었다. 아니, 특별하다기보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아이는 제 미래를 준비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듯했는데 그 첫 번째 출발이 반장 선거에 출마하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딸아이가 반장이 됐으므로 그녀는 반장 엄마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고, 오늘의 모임은 그 임무 수행의 하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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