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게 쫓겨난 철없는 부모
어린 자식이 부모를 집에서 쫓아낸 사건이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문을 잠궈버린 것이다. 어찌 살았기에 자식한테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노는데 미쳐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맞다. 놀고 싶었다. 나도 남편도 그것 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초등 대안학교는 부모 모임이 조금 유별났다. 동네 닭집 하나를 거의 먹여 살리다 시피 할 정도로 치킨과 맥주를 팔아줬다. 또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라 고민도 나이도 눈높이도 고만고만해 놀기 좋았다. 그래서 모임이 있는 날은 마치 축제처럼 설레고 신이났다. 다만. 아이들이 아직 어렸기 때문에 부부 둘 중에 하나는 집에 남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지만 이 문제에서 만큼은 우리 둘 다 물러서지 않았다.
“이번엔 내가 나갈 거라고. 지난번엔 당신이 갔잖아!”
“그럼 뭐 해? 당신이 애들 데리고 나오는 바람에 나는 놀지도 못했잖아?”
“아 몰라. 암튼 이번엔 내가 나갈 거야. 선생님 송별회도 있고 내가 가야 분위기 산다고!”
“나도 무조건 가야 돼. 같이 술 한잔 하자고 선생님이 문자까지 오셨다고!”
그랬다. 그 날은 선생님 송별회도 있었고 오랫만에 다들 얼굴을 보기로 되어있어서 우리 둘 중 그 누구도 양보할 마음이 없었다. 그러니 어째. 일단은 둘 다 모임에 나가되 너무 늦지 않게 누군가는 먼저 들어오자고 약속했다.
“얘들아, 엄마 아빠가 그음방 다녀올 거야. 대신 텔레비젼 너무 오래 보지말고… 아니다 뛰면 아랫집에서 올라오니까 그냥 텔레비젼 조용히 보고있어. 대신 집 밖엔 나가지 말고 문은 꼭 잠그고. 아무나 열어주면 안되는 거 알지?”
“네에~~ 엄마!”
젊고 철이없던 시절이라 그랬는지 어린 아이들만 남겨놓고 우리 부부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모임 장소로 내달렸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신나게 놀고있던 그 시간. 텔레비젼도 실컷보고 게임도 하고 간식도 꺼내먹고 하품도 하고 한 두번 싸움도 하다가 그렇게 잠이 들었을 것이다. 자기 전에 기특하게도 엄마와의 약속대로 문단속도 ‘철저히’ 하고 말이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만 놔두고 나온 게 왠지 마음에 걸려 번갈아 가면서 전화를 해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들이 전화를 받지 않게 되자 더 이상 노는 데 집중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남편만 맘 편히 놀라고 남겨두고 가기도 싫었다. 요리조리 피해다니며 건배를 외치는 남편을 젓가락으로 찔러가며 겨우 끌고나왔다. 또다시 앞서거니 뒷서거니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자고 있는 아이들이 행여 깰까 싶어 아주 조용히 문을 열었다.
“찰칵. 철컥.”
“어? 문이 안열려.”
“다시 열어봐. 그럴 리가 없잖아.”
“찰칵. 철컥.”
“아, 진짜 안 열린다고오! 뭐야. 얘들 지금 잠금 장치 눌러논 거 아냐?”
그랬다. 아이들은 둘만 남겨진 집에 엄마 옷을 입은 호랑이가 들어올까봐 잠금 장치를 눌러놓았다. 이 말은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 스스로 열어주기 전까지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우리는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마음이 조급했던 건 아니다. 벨을 누르거나 문을 콩콩 두드리며 애들 이름을 몇 번 부르면 열어 줄거라 믿었다. 하지만 한번 잠이들면 옆에서 박격포가 터져도 모를 만큼 아이들의 잠은 굳세었다.
“띠잉똥... 띠잉똥...” 은 어느새 “띵똥띵똥띵똥~~”으로 변했고 “콩콩.. 콩콩...”은 어느새 “쾅쾅쾅. 쾅쾅쾅!!” 으로 바뀌었지만 아이들의 견고한 잠의 아성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아, 어쩔거야! 이 시간에 어디가서 자냐고. 돈도 없는데에!”
지금은 아파트도 많이 들어오고 논이 있던 자리에 상가들이 꽉꽉 들어차 있지만 그때만해도 우리 동네는 산 아래 꼴랑 아파트 단지 하나가 다였다. 주변은 논이고 밭이고 산이었다. 자동차 열쇠라도 갖고 있었더라면 차에서라도 쭈그리고 눈을 붙였을 테지만 도대체 방법이 없었다.
“안되겠다. 거기라도 가자.”
“어디?”
“학교!”
남편은 나보고 아이들 학교에 도둑처럼 숨어들어가 잠을 자고 나오자는 제안을 했다. 우리는 또 다시 경보 선수의 걸음으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고 장판이 깔려있는 교사실에 몸을 뉘였다. 손에 잡히는대로 머리에 베고 뒤집어 쓰고 끌어다 덮은 다음 이리저리 뒤척이다 깜박 잠이 들었다. 날이 밝기 전에 우리의 흔적을 지우고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왔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날 따라 제일 먼저 출근한 A선생님은 방석을 덕지덕지 덮어쓴 우리 모습에 너무 놀라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셨고 잠결에 뭔 소리를 들은 남편은 실눈을 떴다가 교사실 문턱에서 턱이 빠질 모냥으로 서계신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고 한다. 남의 집 안방에 들어와 도둑 잠을 잔 노숙자 부부는 그곳을 정신없이 도망쳐 나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아침 잠이 없던 첫째가 일찍 일어나 잠금장치를 ‘톡’하고 풀어주었고 우리는 마침내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많은 반성을 했지만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서로 나가겠다고 싸웠고 아이들은 둘 다 다녀오라며 이젠 잠금 장치는 손도 대지 않겠다고 우리를 달래 주었다. 철없는 부모가 한번 쫓겨난 걸로는 정신을 못차렸던 거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뭐라고 그렇게 기를 쓰고 서로 나가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외로워서 그랬던 것도 같고 부모가 되어간다는 게 거저 얻어지지 않는 어려움이 많아서였던 것도 같다. 그리고 우리는. 학교 교사실에서 도둑잠을 잔 처음이자 마지막 학부모로 길이길이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