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마지막 개혁혼이 꺼지다...'공민왕 암살'

[암살의 역사 2] 좌초된 개혁, 암살과 망국 전말

by 최경식
다운로드.jpg 고려 제31대 왕 '공민왕'과 부인인 '노국대장공주'. 공민왕은 시대의 끝자락에서 고려의 개혁을 위해 몸부림쳤지만 측근들에게 암살당했다.

#. 아래 내용은 2024년 4월에 출간된 '암살의 역사' 서두 부분.


"1374년 9월 홍륜과 최만생 일파는 늦은 밤에 공민왕의 침소에 잠입, 궁녀들과 환관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이를 본 공민왕은 화들짝 놀라 도망가려 했지만 붙잡혔다. 홍륜과 최만생 일파는 마치 원수를 대하듯 공민왕을 처참하게 난도질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쳤다. 한때 눈부시게 발전했던 국가도 어느 시점 이후부터 쇠락하곤 했다. 다만 쇠락할 때 그것을 되돌려보기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이 같은 노력이 성공하면 해당 국가의 수명은 발전적으로 연장되지만, 실패하면 나락으로 가는 것이었다. 고려의 경우 후자에 해당했다. 고려 시대의 끝자락에서 등장한 '공민왕'은 마지막으로 고려의 개혁을 위해 몸부림쳤던 왕이다. 오랜 기간 지속된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 고려의 '자주성'을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신돈'이라는 인물을 중용해 정치, 사회적으로 이전과는 다른 급진적인 개혁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이에 한때나마 고려가 다시 웅비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성 세력들의 극심한 반발과 사랑하는 부인의 죽음, 대내외적인 반란 및 침입 등으로 공민왕의 개혁은 좌초되고 말았다. 의욕적으로 행했던 개혁의 최종적 실패는 공민왕 자신을 비참한 최후로도 이끌었다. 그는 국정을 내팽개치고 문란한 사생활에 빠져들었다가 측근 세력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야말로 고려의 마지막 '개혁혼'(魂)이 사그라졌고, 이후 고려는 돌이킬 수 없는 '망국'의 길로 나아가게 됐다. 공민왕의 사례를 보면서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라는 말을 상기하게 된다. 혁명은 구체제를 전복시킨 뒤 백지상태에서 새로운 체제를 거침없이 만들어 갈 수 있지만, 개혁은 기성 세력들 및 사회 구성원들과 지난한 조율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내부 대립 가능성이 크며 합의 시간도 오래 걸린다. 공민왕은 끝내 개혁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은 대표적 사례로서, 현재 대한민국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운의 개혁군주', 공민왕의 개혁정치와 좌절, 암살 전말을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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