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의 역사 9] 민주화 투사의 이상한 죽음 전말
#. 아래 내용은 2024년 4월에 출간된 '암살의 역사' 서두 부분.
"등산에 참여한 이들은 약사봉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산길을 올랐다. 다들 능숙하게 등산을 했다. 약사봉 중간 지점에 이르렀을 때, 허기를 달래기 위한 점심식사를 했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발생했다. 장준하의 행방이 묘연했다. 약사봉 중간지점에 도착했는지 여부가 불투명했다.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얼마 뒤 김용환이 허겁지겁 달려와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장준하가 등산하다가 실족해 추락사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대립의 역사였다고 볼 수 있다. 전자는 강압적인 통치를 기반으로 국가의 경제 발전에 주안점을 뒀다. 후자는 강압적인 통치에 대항해 국가의 민주화에 역점을 뒀다. 어느 세력이 더 옳았다거나 훌륭했다고 말할 순 없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국가 발전을 견인했기 때문이다. 산업화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은 '박정희'였다.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은 '장준하'였다.
본편에서 살펴볼 장준하는 일제 강점기엔 독립운동가로, 박정희 정권 시절엔 민주화 투사로 활동했다. 지극히 험난한 일생의 연속이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점잖은 외모와 달리 그 누구보다 강도 높은 투쟁 발언과 행동을 이어가면서, 박정희의 가장 강력한 '정적'으로 부상했다. 반면 민주화 세력에게 있어 장준하는 듬직한 맏형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그런데 '유신체제'로 대변되는 강압적 통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장준하는 돌연 '이상한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수사기관에선 장준하와 동행했던 한 인물의 증언을 바탕으로 등산 중 '추락사'(실족사)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시신 상태 등 여러 정황들은 단순 추락사가 아닌 '암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수십 년에 걸쳐 조사가 이뤄질수록 이러한 의혹이 해소되긴커녕 오히려 증폭됐다. 의혹은 현재진행형이며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을 논란거리로 고착화됐다.
장준하 암살 의혹은 암울한 한국 현대사의 한 단면을 반영한다. 강압과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 속에서 석연치 않은 죽음이 자주 발생했고,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경제 성장이라는 화려함 뒤에 이 같은 부정적인 측면이 상존했다. 장준하의 삶과 그 시대적 환경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빛과 어둠을 균형감 있게 바라볼 수 있다. 대표적인 '민주화 투사', 장준하의 민주화 투쟁과 암살 의혹 전말을 되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