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큰 스승, 쓰러지다...'김구 암살'

[암살의 역사 8] 대한독립에 헌신한 민족지도자의 죽음 전말

by 최경식
김구가 암살당한 장소인 경교장의 유리창 총탄 자국. 바깥에서 김구 서거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대성통곡을 하고 있다.

#. 아래 내용은 2024년 4월에 출간된 '암살의 역사' 서두 부분.


"김구는 붓글씨를 쓰던 중 안두희를 만났다. 안두희가 김구 앞에 나아가 '선생님, 먹을 갈아 드릴까요?'라고 묻자 김구는 고개를 들어 안두희를 쳐다봤다. 바로 그때, 안두희는 미국제 권총을 꺼내든 후 김구를 향해 4발의 총탄을 발사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사람들은 누구일까. 여러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사람들이 존경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기실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일제)라는 거악과 적당히 타협하며 안온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삶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올바른 신념과 정의에 충실한 삶을 선택했다. 당장의 개인적 이익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먼저 생각했던 것이다. 반면 적극적 친일파들은 자신들의 안위만을 위해 부정의한 삶을 선택했다.


독립운동의 최선봉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백범 김구'다. 그는 시들어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깃발을 끝까지 부여잡았다. 이를 살리고 '무장투쟁'이라는 확고한 원칙을 내세우며 일제에 맞섰다. 일제를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아닌 오로지 무장투쟁을 통해 '격퇴'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폭탄 테러, 요인 암살 등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에 일제는 김구 제거에 혈안이었다. 결과적으로 김구의 투쟁은 상당한 성과를 거둬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얻어내기도 했다. 나아가 정식 군대까지 조직해 한반도에서 일제를 몰아내려는 계획도 세웠다. 예상보다 빠른 일제의 항복으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김구의 맹활약은 해방 후에도 계속됐다. 신탁통치를 거부하는 등 진정한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했다. 특히 좌우 이념 갈등으로 남북한이 분단의 위기에 처했을 때, 김구는 '민족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일념으로 백방으로 뛰었다. 그러나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간절히 염원해 온 통일 조국이 물 건너가자 그의 어깨는 한없이 위축됐다. 이때부터 비극적인 결말도 예고됐다. 김구는 육군장교였던 '안두희'에게 암살을 당했다. 평생을 조국의 자주독립과 민족통일에 헌신했지만, 일제도 아닌 동포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김구 암살은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결정판이었다. 안두희는 사건 이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나감에 따라 그의 배후에 모종의 세력이 있음을 암시했다.


최근 김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부당한 사유로 폄훼되고 비난받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세력이 깎아내리는 근거는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오늘을 살아가는 후손들이 해야 할 일은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정신을 본받고 그들의 업적을 제대로 알리며 계승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어제의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자세이고 내일의 역사를 올바로 세워나가는 단초라고 생각한다. '겨레의 큰 스승이자 민족지도자', 백범 김구의 자주독립과 민족통일운동 그리고 암살 전말을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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