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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식 Jul 02. 2024

명나라 멸망의 결정타...'이자성의 난'

[정변의 역사 부록] 명 말기 대규모 농민반란 전말

명나라 말기 농민 반란을 이끌었던 이자성의 동상.

#. 아래 내용은 6월에 출간된 '정변의 역사-확장판' 하이라이트 부분.


... 이제 농민 반란이 활성화되기는 어려울 것처럼 보였다. 정부군은 농민군이 생각했던 것보다 강력했고 숭정제와 명나라 황조는 아직 건재했다. 얼마 뒤 예기치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숭정제가 홍승주를 전면에 내세워 '대청 전쟁'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이틈을 타 이자성과 여타 농민군 지도자들은 하남으로 이동했다. 여기에서 황실에 대한 불만이 넘쳐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더욱이 이자성 등은 하남에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눠주고 부패한 관리들을 처벌하는 등 획기적인 모습을 보여줌에 따라 지지세를 크게 넓혀갈 수 있었다. 1639년 이자성의 농민군이 재봉기 했을 때, 그 규모는 이전보다 훨씬 컸다. 질적인 측면에서도 눈에 띄게 성장했다.


... 이 당시 숭정제는 영원성에서 청나라군을 잘 방어했던 '원숭환'을 처형하는 뼈아픈 실책을 저질렀다. 이에 명나라군의 전력은 크게 약화됐다. 이자성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했고 낙양, 개봉 등을 점령했다. 또 다른 농민군인 장헌충군도 빠르게 세력을 넓혀갔다. 명나라군은 약화된 전력, 떠나간 민심, 청나라 방어 등으로 인해 농민군에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자성은 상양을 점령한 뒤 스스로를 상양왕이라고 칭했다. 뒤이어 순나라라는 국호를 사용했다. 장헌충 역시 스스로를 대서왕이라고 칭했으며 서나라라는 국호를 사용했다. 급기야 이자성은 1644년 서안까지 점령한 뒤 '대순'을 건국했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확실한 기세를 탄 이자성군은 명나라의 수도인 북경을 향해 진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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