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륙 패권 둘러싼 거대한 충돌...'국공 내전'

[전쟁의 역사 8]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회전 전말

by 최경식
세기의 라이벌, 장제스(국민당)와 마오쩌둥(공산당). 두 사람은 전후 충칭에서 만나 회담을 가졌다. 평행선을 달린 회담이 결렬된 뒤 국공은 내전에 돌입했다.

#. 아래 내용은 2025년 8월에 출간된 '전쟁의 역사' 주요 부분.


"공산당원들에게 경고한다. 6월 17일 이후 화북의 러허, 차하얼 근거지, 동북의 하얼빈을 비롯한 주요 지역. 장쑤 북부, 안후이 북부, 산시 서부, 허베이의 근거지에서 완전히 물러나도록 하라." -장제스 최후통첩 中


"먼저 적과 괴뢰가 우리에게 투항하도록 하라. 투항하지 않는 자는 공격하라. 우리는 맹렬하게 해방구를 확대해야 한다. 크고 작은 도시들을 점령하고 교통로를 확보하라. 조만간 국민당이 우리를 공격해 올 것이다. 우리 당은 병력 이동을 준비하고 내전에 대비해야 한다." -마오쩌둥 명령 中


... 1945년 8월, 연합군에게 패한 일본이 무조건 항복했다. 중일 전쟁도 중국(국민당)의 승리로 끝났다. 길고 끔찍했던 전쟁의 포성이 멎자, 중국인들은 환호했고 앞으로 평화가 정착되길 희망했다. 국민당은 승전의 기쁨을 만끽할 겨를이 없었다. 일본군이 점령했던 지역들을 신속히 장악해야만 했다. 국민당이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공산당 때문이다. 마오쩌둥은 일본이 항복한 직후 팔로군에게 점령지를 확대하라고 명했다. 장제스는 공산당에게 경고했다. 군대를 독단적으로 움직이지 말고, 국민혁명군 소속인 각 전구 사령관의 명령을 따르라고 했다. 일본군에게는 "국민혁명군 이외에 그 어떠한 군대에게도 항복해선 안 된다"라고 못 박았다. 공산당은 즉각 반발하며 장제스의 조치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벌써부터 국민당과 공산당 간 신경전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국민혁명군은 부득이 미군의 수송 지원을 받기로 했다. 베이핑, 상하이, 난징 등 주요 지역으로 국민혁명군이 공중 수송됐다. 전국 각지에도 국민혁명군이 급파됐다. 이러한 작전이 효과를 거둠으로써, 국민당은 핵심 도시들을 어느 정도 장악할 수 있었다. (국민당은 주로 대도시와 철로 등을 점령했다. 공산당은 도시 외곽이나 농촌에 근거지 또는 해방구를 건설해 나갔다.)


장제스는 공산당과의 협상 필요성도 느꼈다. 마오쩌둥에게 편지를 보내 "충칭에서 국가의 미래를 함께 논의하자"라고 제안했다. 이는 공산당과의 협력을 바라는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했다. 당초 마오쩌둥은 본인이 가지 않고 저우언라이 등을 보내려 했다. 충칭에 갔다가 자칫 변고를 당할 수도 있음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장제스는 마오쩌둥이 와야만 한다고 고집했다. 공산당 수뇌부에선 마오쩌둥의 충칭 방문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결국 "주석이 가면 여론이 우리 쪽에 설 것"이라는 주더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마오쩌둥이 직접 충칭을 방문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저우언라이, 왕뤄페이 등이 동행했다. 류샤오치는 남아서 주석 대리를 맡았다. 마오쩌둥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미국 대사인 헐리가 충칭까지 동행하도록 조치했다. 충칭에 있는 소련 군사대표단에겐 피난처를 마련해 달라고도 했다. 8월 25일, 마침내 충칭에 도착한 마오쩌둥은 초반부터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공항에서 "장제스 만세"를 외쳤다. '만세'는 황제를 떠받들 때 사용하는 용어였다. 평소 이미지와 달리 부드럽고 겸손한 태도도 유지했다. 적들의 경계를 완화하고 국민들에게 우호적인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계책이었다. 잠시나마 협상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장제스와 마오쩌둥은 연합 정부에는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민감한 세부 사항에 대해선 한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장제스는 홍군의 규모를 대폭 축소함과 동시에 국민혁명군 관할 하에 둬야 하며, 국민당 정부의 통치력이 중국 전역에 확고히 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오쩌둥은 홍군이 공산당 관할 하에 있어야 하며, 공산당도 베이핑 등 주요 지역에 대한 실질적 통치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에도 두 사람 간 협상 및 실무진들의 협상이 이어졌지만, 획기적인 합의는 도출되지 못했다. 현저한 의견 차이만 확인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장제스와 마오쩌둥은 국민들에게 무언가를 내놔야만 했다. 이에 10월 10일 '쌍십 협정'이 체결됐다. 여기에는 국공 양당이 민주, 평화, 단결, 통일을 기반으로 장기적으로 합작하며, 국민당의 훈정(일당 체제)을 조속히 종료하고 헌정(헌법 체제)을 실시할 것 등이 담겼다. 민감한 사항들은 추후에 계속 협상하기로 했다. 기실 쌍십 협정은 별다른 성과가 없을뿐더러 앞으로도 합의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방증하는 셈이었다. 마오쩌둥도 이 협정에 대해 "한 장의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라고 혹평했다. 더욱이 이 시점부터 양당의 군대는 동시다발적으로 무력 충돌을 벌이기 시작했다. 내전의 전초전이었다. (국공 내전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 한동안 무력 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를 근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세력이 있었다. 미국이다. 시종일관 미국은 중국에 민주적인 연합정부가 세워지길 희망했다. 그래야 소련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12월 전직 육군참모총장인 조지 마셜을 중국에 파견해 양당을 중재하도록 했다. 내전을 중단시키고 양당의 군대를 하나로 통합하며, 주요 당파가 참여하는 정치협상회의 개최 및 연합정부 수립이 목표였다. 국민당과 공산당은 일단 미국의 바람을 수용하는 듯했다. 둘 다 미국에 잘 보여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1946년 1월 10일, 양당은 '제1차 정전협정'에 합의하며 휴전했다. 정치협상회의도 개최해 연합정부 구성 등에 대해 논의했고, 국민혁명군과 홍군의 병력을 조정하는 협정도 체결했다. (국민혁명군 50개 사단, 홍군 10개 사단으로의 감축이 골자였다.) 해당 협정은 동북(만주)과 화북, 서북 지역 등에서 공산당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마오쩌둥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협정을 준수하려 했다. 그만큼 미국에 의한 평화를 낙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전 협정의 효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셜이 중국을 떠나자마자 국민혁명군은 예사롭지 않게 움직였다. 약 31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동원해 동북 지역에 대한 공세에 착수했다. (앞서 소련군이 만주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들은 노획한 일본군의 무기들을 공산당에게 넘겨주는 등 공모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당은 격하게 반발했다. 소련과 국민당 정부가 체결한 '중소우호조약'에 위배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이 즈음에 장제스는 공산당을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만이 능사라고 확신한 상태였다. 국공 간 무력 충돌은 4월 18일 남만주의 요충지인 쓰핑에서 벌어졌다. 국민혁명군은 공산당의 동북민주연군을 맹렬하게 공격했다. 마오쩌둥은 "그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쓰핑을 사수하라"라고 외쳤다. 그의 바람과는 달리 전황은 갈수록 국민혁명군에게 유리해졌다. 공세 병력이 크게 충원됐고, 신6군이 측면에서 동북민주연군을 포위했다. 전멸 가능성을 우려한 동북민주연군 지휘관 린뱌오는 퇴각 명령을 내렸다. 쓰핑 전투로 인해 남만주 대부분의 도시가 국민혁명군에게 넘어갔다. 동북민주연군은 하얼빈으로 쫓겨났다. 이후에도 국민혁명군은 승승장구하며 북만주의 쑹화강 남쪽까지 빠르게 진격했다. 이대로 가면 동북 지역에 있는 공산당군이 완전히 궤멸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장제스가 진격 중지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극한 위기에 몰린 공산당이 마셜에게 국민당의 정전협정 위반 사실을 알렸고, 이를 들은 마셜이 장제스에게 싸우지 말라고 윽박질렀다. 이 상황은 훗날 장제스가 '천추의 한'으로 여긴 대목이다. 만약 이때 국민혁명군이 동북 지역 전체를 접수했다면, 국공 내전은 국민당의 조기 승전으로 귀결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까스로 기사회생한 공산당은 해당 지역 농촌에 근거지를 마련하거나 추후 전투를 대비해 나갔다. 국민당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미국의 추가 개입으로 6월 5일 '제2차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다만 이것은 정전 유효 기간이 15일에 불과한 한시적 협정이었다. 조만간 내전의 서막이 본격적으로 올라갈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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