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최대 최악의 전쟁...'독소 전쟁'

[전쟁의 역사 6] 히틀러와 스탈린의 총력전 전말

by 최경식
1945년 4월,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군이 국회의사당 건물에 소련 국기를 내걸고 있다.

#. 아래 내용은 2025년 8월에 출간된 '전쟁의 역사' 주요 부분.


"그대들은 총력전을 원하는가? 필요하다면, 오늘날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더욱 총력적이고 급진적인 전쟁을 원하는가? 그대들은 조국의 군단이 되어 총통을 따라 우리 군대를 뒷받침하고, 강한 투지로 전투에 참여하여, 마지막에 승리가 우리의 것이 될 그날까지, 기꺼이 싸워나가겠는가? 이제 국민들이여, 감연히 일어나서 폭풍을 일으켜라." -요제프 괴벨스 총력전 연설 中


"참호 바닥에는 녹색 군복의 독일군, 회색 군복의 소련군과 사람 형상의 파편이 꽁꽁 얼어붙어 누워 있었다. 부서진 벽돌 부스러기 사이에는 소련군과 독일군의 철모들이 놓여 있었다. 누구든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상상하기란 어려웠다. 마치 미쳐 날뛰던 정신병자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은 듯, 이제 이 화석화된 지옥 속에서 모든 것이 조용했다." -스탈린그라드 회상 中


... 히틀러와 나치 수뇌부는 1940년 중순에 접어들면서부터 심상치 않은 모습을 나타냈다. 소련에 대한 적개심이 다시 점증했다. 독일군은 서유럽 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소련군은 너무도 쉽게 이권을 챙기고 있다는 불만이 작용했다. 소련군이 발칸 국가들까지 노리고 있다는 첩보는 이 같은 불만을 더욱 가중시켰다. 나아가 히틀러는 영국과 소련의 관계를 의심했다. 당시 영국은 서유럽에서 유일하게 독일에 대적하는 국가로 남았다. 독일의 평화협상 제의를 물리치고, 치열한 항공전까지 불사하며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이 같은 저항이 소련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소련이 사라지면 영국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며, 미국 역시 위협적인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봤다. 히틀러 특유의 사상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오래전부터 독일 게르만 민족이 살아갈 새로운 '생활공간'을 강조했다. 광활한 소련 영토는 이것에 적합한 것이었고, 독일군은 반드시 탈취해야만 했다. 구체적으로 아르한겔스크에서 아스트라한까지 뻗은 지역을 장악한 뒤, 게르만 민족을 이동시키고 그 땅과 원주민들을 식민 통치하는 것이었다. 우랄 산맥 너머에 있는 잔여 지역들은 소련인들로 채울 계획이었다. 이와 관련해 히틀러는 "소련을 독일의 인도로 만들겠다"라는 발언도 한 바 있다. 또한 인종주의에 심취한 히틀러는 유대인과 슬라브 민족들을 열등하게 여기고 '박멸'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했다.


조만간 '프리츠'라는 암호명으로 된 총통의 극비 명령이 하달됐다. 소련을 겨냥한 군사작전 예비 연구를 실시하라는 것이었다. 독일군 수뇌부는 히틀러에게 제한 전쟁 가능성을 알렸다. 히틀러의 결심은 시간이 갈수록 뚜렷해졌다. 얼마 안 가 독일군 장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1941년 중순 정도에 소련의 '절멸'을 목표로 한 대규모 전쟁을 예고했다. 뒤이어 소련을 전방위적으로 공격할 대군을 조직하라는 명령도 내렸다. 이에 독일은 은밀히 소련과의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기만책도 펼쳤다. 이탈리아, 일본과 1940년 9월 27일에 맺은 '삼국동맹'에 소련도 들어오라고 종용했다. 소련은 이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기실 스탈린의 의중은 다른 데에 있었다. 동유럽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더 넓힐 수 있는 조약 체결을 원했다. 히틀러는 불쾌한 반응을 보이며, 소련이 유럽이 아닌 영국령 인도로 나아가는 것을 제안했다. 당연히 소련은 이를 거부했다. 히틀러의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소련과의 거래를 청산할 최종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하달했고, 12월에 군사 지령 21호인 '바르바로사 작전'에 서명했다.


... 히틀러에게 잘 보이기 위한 스탈린의 행위는 애처로울 정도였다. 그는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고, 독단적인 판단에만 의거해 히틀러를 상대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독일군이 대대적으로 침공할 가능성은 낮으며, 쓸데없이 독일을 자극할 만한 군사 행동은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이러한 기조로 인해, 국경선 일대에서는 소극적인 대비만 이뤄졌다. 불가침 조약 체결 당시 약속한 무역 의무는 충실하게 이행했다. 소련은 1년 5개월 동안 독일에게 석유 86만 5000톤, 곡물 150만 톤, 목재 64만 8000톤을 제공했다. 독일 해군에게 유익한 해상 기지를 제공했으며, 독일 공군에게 유익한 기상 보고까지 해줬다. 독일이 매우 소극적인 자세로 무역 의무를 이행하는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전쟁이 임박한 시기에도 스탈린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때에는 소련 내외에서 독일군이 조만간 침공할 것이라는 경고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유명한 소련 간첩인 리하르트 조르게는 독일군이 1941년 6월 중순에 소련을 침공할 것이라는 구체적 정보를 제시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도 비슷한 경고를 보냈고, 소련의 정보기관인 NKVD(내무인민위원회)도 그랬다. 베를린에서 활동 중인 소련의 간첩이 직접 침공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스탈린은 이 모든 경고들을 무시하거나 반박했다. 독일과 소련의 좋은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음모에 놀아난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심지어 전쟁 발발 하루 전날, 한 독일군 병사가 국경선을 넘어 "다음 날 독일군의 침공이 있을 것이다"라고 외쳤을 때 스탈린은 그 병사를 총살하라고 명했다.


... 탱크를 앞세운 독일군의 진격 속도가 워낙 빠르고 화력 역시 막강해서, 국경선 등에 있던 소련군은 순식간에 격파됐다. 기실 소련군 병사들은 무척 용감했지만 적절한 무기나 정보, 엄호 등이 없었기 때문에 '총알받이'나 다름없었다. 수많은 병사들이 전선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공격을 받았고, 독일군의 침공 사실도 모른 채 죽어나가는 병사들도 많았다. 전선 소식은 곧바로 스탈린에게 전해졌다. 주코프가 스탈린이 머무르는 곳에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 당직 장교에게 스탈린과 빨리 연결시키라고 지시했다. 당직 장교가 스탈린이 아직 자고 있다고 답하자, 주코프는 크게 화를 내면서 "그를 당장 깨워라. 독일군이 지금 공격하고 있다니까"라고 외쳤다. 잠시 뒤 스탈린이 나타나 주코프의 보고를 들었다. 전화상으로 거친 숨소리만 내쉬며 한동안 말이 없던 그는, 일단 정치국 구성원들을 소집하라고 명했다. 일찌감치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정치국원들이 속속 회의 장소에 도착했다. 이 자리에서도 스탈린은 어이없는 고집을 드러냈다. 독일군의 공격이 히틀러가 알지 못한 채 벌어지는 제한적 도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주변에 있던 한 측근이 "전해지는 공세 강도를 감안할 때, 결코 제한적 도발일 수 없다"라고 반박했다. 스탈린은 창백하고 지친 얼굴로 누군가가 히틀러와 빨리 접촉해 보라고 독촉했다. 몰로토프가 독일 대사인 슐렌베르크를 급히 찾아갔다. 그가 어찌 된 일인지를 묻자, 우려했던 답이 나왔다. "현재 독일과 소련은 전쟁 상태에 돌입했다." 충격을 받은 몰로토프는 울먹이며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할 만한 짓을 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몰로토프가 돌아와서 전쟁 사실을 알리자, 스탈린은 꽤 오랜 시간 말을 하지 않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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