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두운 시간과 희망의 빛...'서부 전역'

[전쟁의 역사 5] 프랑스 참패와 영국의 항전 전말

by 최경식
image01.png 개전 6주 만에 프랑스를 굴복시킨 독일군 지휘부. 프랑스의 상징인 에펠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부 전역의 여파로 전 세계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 아래 내용은 2025년 8월에 출간된 '전쟁의 역사' 주요 부분.


"우리(프랑스)는 방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패배를 당했다.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가? 의회제도, 군대, 영국, 간첩의 탓이라고 우리 장군들은 대답한다. 결국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전투에서 돌아왔을 때, 내 주변의 장교들 사이에서 참패의 깊은 원인이 무엇이었건 간에 직접적인 원인은 '사령부의 무능'이었다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상한 패배, 1940년의 증언 中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정부 관료들에게 말했듯이, 의원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여러분들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뿐입니다. 우리의 앞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앞에는 투쟁과 고통으로 점철될 수많은 세월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책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육, 해, 공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힘을 가지고, 이제껏 인류가 저질러 온 수많은 범죄 목록 중에서도 유례가 없었던 극악무도한 폭정에 맞서 싸우는 것이라고. 그것이 우리의 정책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한 단어로 대답하겠습니다. 그것은 승리입니다." -윈스턴 처칠 의회 연설 中


... 히틀러와 독일군 지휘부는 전투 없는 전쟁 중에 프랑스 침공 작전을 고심했으나 쉽사리 해법을 찾지 못했다. 히틀러의 닦달로 독일군 지휘부에서 작전 계획이 도출되긴 했지만 영 시답잖았다. 이른바 '황색 작전'이었는데, 이는 독일군이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구축된 연합군 방어선에 정면공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여기를 돌파한 뒤 프랑스 파리로 진격할 터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 구사된 '슐리펜 계획'과 상당히 유사했다. 히틀러는 프랑스군이 이미 경험한 바 있는 작전에 당할 리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한다면, 1차 대전 때처럼 소모전의 늪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작전 계획을 주도한 독일군 참모총장 프란츠 할더는 서부 전역에 매우 회의적이었다. 히틀러의 압박으로 작전을 내놓긴 했지만, 결정적 승리가 아닌 제한적 목표만을 달성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 일각에서는 할더와 참모본부가 희망이 없는 작전을 내놓음으로써 히틀러의 전쟁 포기를 유도했다는 설도 있다. 작전 계획은 몇 차례 수정이 이뤄졌으나 기존의 것에서 획기적인 변화나 희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의 군 지휘관들은 해당 작전이 기껏해야 벨기에 영내의 영불해협 탈취와 연합군에 대한 공중 및 해상 타격만을 가능케 할 것이라 예상했다. 히틀러의 궁극적 목표인 프랑스 점령은 결코 성사될 수 없다고 확신했다. 히틀러는 좌절과 혼란에 휩싸였다. 참모본부가 밀고 있는 작전은 가망성이 없고, 그렇다고 프랑스 침공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이런 가운데 뜻밖의 사건이 발생했다. 한 독일 공군 소령이 경비행기를 타고 벨기에 상공을 비행하던 중 항로를 이탈해 벨기에 영토에 추락했다. 그에게는 황색 작전 계획이 담긴 문서가 있었다. 벨기에군은 이 문서를 통해 작전 계획을 확인했고 프랑스에게 알려줬다. 계획이 누설된 사실을 알게 된 히틀러와 참모본부는 즉각 황색 작전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총체적 난국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프랑스에 대한 미련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때, 군사보좌관이 와서 한 인물의 존재를 알렸다. 바로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다. 이 사람이 기존 계획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대안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히틀러는 곧바로 만슈타인을 만나 논의했다. 당대 최고의 명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만슈타인은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황색 작전은 적군이 대기하고 있는 지점으로 아군을 고스란히 밀어 넣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뻔한 작전은 지양해야 하며, 적군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점을 강타해 허를 찔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연합군이 예상하는 벨기에 북부 등에는 조공을 가하고, 예상하지 못한 '아르덴' 일대에 주공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르덴은 벨기에 남동부와 룩셈부르크 일대, 프랑스 북동부 일부에 걸쳐 있는 지역이었다.) 조공이 마치 주공인 것처럼 위장해 연합군을 유인하는 사이, 실제 주력군이 아르덴을 돌파한 뒤 적군의 배후(프랑스 북부)로 진입해 포위섬멸을 단행한다면 승리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 유명한 '낫질 작전'이었다. 만슈타인은 대규모 기갑부대를 중심으로 한 기동전이 작전의 성패를 좌우한다고도 했다. 연합군이 진실을 깨닫고 역공을 가하기 전에 끝내는 게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전은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은 굉장한 모험이었다. 아르덴 일대는 삼림이 울창하고 땅도 평탄하지 못했다. 탱크가 진격하다가 뒤엉켜버려 지체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럴 때 적군 정찰기에게 포착된다면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었다. 아르덴 돌파에 성공해도 뫼즈 강이라는 장애물을 건너야 했다. 또한 아르덴 일대를 돌파한 주력군이 북프랑스를 향해 진격할 때, 마지노선 방면에 있던 프랑스군에게 측면을 공격당할 위험성도 있었다. 이 측면을 보호할 방안이 강구돼야 했다. 장단점이 병존했지만 히틀러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는 작전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는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그 즉시 동석하고 있던 알프레트 요들에게 이에 부합하는 전쟁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아마도 프랑스 침공에 집착하고 있던 히틀러에게, 낫질 작전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느껴졌을 법하다.


... 1940년 5월 10일 새벽 5시 35분, 독일군은 공격을 개시했다. '단치히'라는 암호명이 하달되자, 독일 B집단군이 네덜란드와 벨기에 방면을 향해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독일군 폭격기들이 날아가 네덜란드 도시와 비행장 등을 무차별 폭격했다. 제7항공사단과 제22공중강습사단이 도르트레흐, 뫼르빅, 로테르담, 헤이그 방면에 기습적으로 낙하했다. 공수작전은 헤이그를 제외하고 큰 성공을 거뒀다. 벨기에의 에반 에마엘 요새에도 독일군 제7항공사단이 낙하한 뒤 공작을 펼쳐 방어망을 무력화시켰다. 사전정지 작업을 통해 독일군 제16기갑군단의 진격로가 어느 정도 확보됐다. 독일군은 마스트리히트 인근에서 알베르 운하 등을 도하한 뒤, 뫼즈 강의 만곡부에 있는 젬블루 갭을 향해 진격했다. 가믈랭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독일군이 움직이고 있다고 판단했다. 영국 원정군이 합세한 연합군은 작전을 개시했다. 애초에 계획한 딜 방어선으로 병력을 이동시켰다. 프랑스군 제1군 예하에 있는 기병대가 딜 방어선 너머에 있는 지역까지 나아가 방어진지를 구축하기도 했다. 가믈랭과 주변 참모들은 전황이 순조롭게 전개되고 있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 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히틀러였다. 연합군이 미끼에 걸려들었다고 판단한 그는 "기쁨에 겨워 울 것 같다"라고 외쳤다. 독일 B집단군의 전개는 어디까지나 조공에 불과했다. 진짜 공세는 아르덴 일대를 통과하는 A집단군으로부터 나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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