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제1차 세계대전'

[전쟁의 역사 3] 고기분쇄기 소모전 전말

by 최경식
제1차 세계대전은 역사상 최악의 소모전으로 기록됐다. 막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긴 교착 상태에 머물렀다.

#. 아래 내용은 2025년 8월에 출간된 '전쟁의 역사' 주요 부분.


"많은 병사들이 쓰러져 죽은 곳에 바로 매장됐다. 새로운 참호를 파다 보면, 십중팔구 지표 바로 아래에 묻힌 채 썩어가던 상당수의 시신이 발견되곤 했다. 이런 시신과 더불어 참호의 여기저기 버려진 상당량의 음식 찌꺼기들을 쥐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쥐들은 엄청나게 컸으며,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부상병의 상처를 뜯어먹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쥐의 번식력은 왕성해 한 쌍의 부부 쥐가 1년에 880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특히 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시체의 눈과 간이었다. 죽은 병사들의 시신을 파먹기 위해, 쥐들이 뚫어놓은 참호 옹벽상의 작은 구멍들이 발견되는 것은 흔한 현상이었다." -이프르 전선 영국군 병사 증언 中


... 1914년 6월 28일, 페르디난트가 부인과 함께 보스니아의 수도인 사라예보를 방문했다가 암살자 프린치프에게 살해됐다. 사후 조사에서 프린치프를 비롯해 암살에 관여한 자들이 세르비아 민족주의 단체와 연관돼 있음이 밝혀졌다. 다만 세르비아 정부가 이 사건에 얼마나 연루돼 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공격적인 외교전을 펼치며 눈엣가시였던 세르비아에 대해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외무장관인 베르히톨트는 베를린으로 가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 간의 분쟁이 불가피하며, 범슬라브주의 정책의 중심축(세르비아)을 제거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어느 정도 설득된 빌헬름 2세는 해당 주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에 힘입어 베르히톨트는 7월 7일에 열린 제국내각 회의에서 즉각적인 군사 행동을 주창했다. 헝가리의 수상인 티서가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군사 행동 이전에 요구 조건을 담은 문서를 먼저 제시하자고 했다. 오스트리아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는 여기에 동의했다. 요구 조건은 강경했다. 우선 세르비아 정부에게 제국 영토의 일부 분리를 주장하는 모든 선전을 비난하라고 요구했다. 이 비난을 세르비아 군대에 일일 훈령으로 주입시키라고도 했다. 또한 암살에 연루된 세르비아 공무원들을 체포 심문 처벌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공무원들이 세르비아 영토에서 관련 절차에 참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요구 조건에 대한 답변 시한은 전달 후 48시간으로 못 박았다. 당초 세르비아 정부는 요구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이려고 했다. 영국과 프랑스 등도 가급적 수용하라고 조언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라예보 사건의 후폭풍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 선에서 해결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세르비아가 돌연 입장을 바꾸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의 배경에는 러시아가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아니꼽게 봤던) 러시아 차르 정부가 세르비아를 전적으로 지지하며, 예방적 차원의 '전쟁준비 태세'를 선언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에 세르비아 정부는 오스트리아 공무원이 자국의 영토에 들어와 조사하는 것 등을 단호히 거부했다. 나아가 군대까지 동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가 젊은 예비군을 소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독일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독일 대사는 "러시아의 군사 조치들이 중단되지 않는다면 독일도 동원할 수밖에 없고, 이것은 '전쟁'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세계 각지에서 우려가 터져 나왔다. 영국 외교관인 조지 뷰케넌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겨냥해 동원을 선포할 경우 발생할 '부정적 연쇄효과'를 걱정했다. 실제로 부대 배치까지 이뤄지면 전쟁은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다행히 러시아가 완화된 태도를 보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세르비아에 대한 요구 조건을 경감하자는 취지의 협상을 제안했다. 세르비아에 있는 열강의 대사들에겐, 세르비아의 강경한 태도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압력을 행사하자고 했다. 독일도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간의 직접 협상에 우호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강경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이 기회에 건방진 세르비아의 버릇을 고쳐놓기 위해 7월 28일 전쟁을 선포했다. 러시아는 깊은 고뇌에 빠졌다. 세르비아를 보호하기 위한 군사 조치를 내려야 했는데, 문제는 얼마만큼의 강도로 조치를 내릴 것인지였다. 니콜라이 2세는 부분동원과 총동원 사이에서 고민했다. 의외로 강경한 조치가 내려졌다. 일부 장군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부분동원은 물론 총동원도 승인한 것이다. 독일과 인접한 지대에서의 동원까지도 포함하는 후자는, 곧 독일과의 전면전을 각오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었다. 니콜라이 2세는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독일의 반응을 예의주시하며 초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러시아의 의도는 어디까지나 세르비아 보호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한 억제에 국한됐다. 독일과의 전쟁은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조만간 빌헬름 2세가 차르에게 전보를 보냈다. 러시아가 다른 국가들의 분쟁에 개입하지 말아야 끔찍한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독일의 중재자 역할을 암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니콜라이 2세와 정부 각료들은 독일의 경고성 전보를 무시할 수 없었다. 총동원을 취소하고 부분동원만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것으로는 독일을 안심시킬 수 없었다. 독일 군부는 부분동원도 위협적이라고 판단했다. 전쟁장관인 폰 팔켄하인은 물론 참모총장인 몰트케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더욱이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간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자칫 독일의 동부전선이 큰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결국 몰트케는 러시아의 동원에 맞서서 독일도 강력한 동원령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빌헬름 2세는 사라예보 사건으로 전쟁까지 가는 것을 원치 않았었지만, 마음이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었다. 독일의 강경한 분위기를 직감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총동원령까지 선포하며 확전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러시아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움직임에 심대한 위협을 느꼈다. 특히 외무장관인 사조노프와 군부 지휘관들이 그랬다. 기저에는 발칸 지역과 러시아의 흑해 출구인 보스포루스 해협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존재했다. 상호 간 느끼는 위기감의 증폭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었다. 사조노프는 차르를 만나 위기의식을 고스란히 전달했고, 세계대전의 가능성을 크게 높이는 결정을 이끌어냈다. 러시아의 총동원령이었다. 독일은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전쟁위험상태'를 선언한 뒤 러시아와 프랑스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에 따르면 러시아는 12시간 이내에 군사 조치를 중단할 것을 확실히 보장해야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독일의 총동원령이 뒤따를 것이었다. 프랑스는 18시간 이내에 독일과 러시아의 전쟁에서 중립을 선언해야 했다. 전쟁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갔다. 이번에는 프랑스가 움직였다. 이들은 (1892년 러시아와 맺은 협정에 따라) 러시아가 독일에 공격받으면 자연스럽게 참전하게 돼 있었다. 프랑스 수뇌부에게는 독일에게 유럽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침략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상존했다. 평소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프랑스군 원수 조프르도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얼마 뒤에 그는 대통령을 만나 총동원령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8월 2일, 프랑스의 총동원령이 선포됐다. 1시간 뒤에 독일도 총동원령을 선포했다. 조지 뷰케넌이 우려했던 부정적 연쇄효과가 현실화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국도 움직일 태세였다. 그동안 영국은 물리적 충돌보다는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선호했다. 이제는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프랑스가 위기의식을 공유하며 양국 간 협정에 기반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것을 요구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도 영국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독일이 벨기에를 겨냥해 최후통첩을 보낸 게 결정적이었다. 이에 따르면 독일은 프랑스를 공격하기 위해 벨기에 영토를 사용해야 하며, 만약 벨기에가 길을 내주지 않을 경우 적으로 간주하겠다고 했다. 앞서 1839년에 영국은 벨기에의 중립을 보장한 바 있었다. 이에 근거해 영국 내각은 8월 4일 벨기에를 겨냥한 독일의 군사작전 계획을 중단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독일은 영국의 통첩을 무시했다. 결국 영국도 이날 자정을 기해 프랑스, 러시아와 함께 전쟁에 돌입하게 됐다. (영국과 프랑스는 12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게도 선전포고했다. 3국 동맹의 한 축이었던 이탈리아는 일단 중립을 선언했다.) 사라예보라는 작은 도시에서 발생한 암살 사건의 후폭풍에 모든 유럽 열강들이 휘말려 들면서, 인류 역사상 최대의 비극이 고개를 쳐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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