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역사 1] 미국 내전사 전말
#. 아래 내용은 2025년 8월에 출간된 '전쟁의 역사' 주요 부분.
"스스로 분열된 집은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정부가 반 노예, 반 자유 상태를 영구히 지속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연방이 해체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집이 무너질 것이라고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열이 끝날 것이라고는 기대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가 되거나 다른 하나가 될 것입니다." -링컨 '분열된 집' 연설 中
... 링컨은 대선에서 어부지리 효과를 누릴 수 있었으며, 약 40%의 득표율로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남부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노예제를 격렬히 반대하는 강경주의자와 그 세력이 백악관까지 점령했다고 판단했다. 기실 링컨은 기본적으로 노예제를 혐오했고, 노예제 폐지라는 신념도 갖고 있었다. 한 연설에서 그는 "노예제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서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다만 급진적 폐지론자는 아니었다. 점진적인 폐지를 추구했다. 이는 정치적 현실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노예제 문제로 인해, 남부의 연방 탈퇴라는 불상사가 발생할 가능성을 극도로 우려했다. "누군가가 연방이 분열되는 한이 있더라도 노예제를 당장 폐지하자고 한다면, 나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겠다"라는 발언은 링컨의 현실 인식을 정확히 보여준다. 즉 개인적으로는 기독교 신앙, 자유, 평등에 기반해 노예제 폐지를 적극 옹호했지만, 수많은 사안들을 감안해야 하는 공직자의 위치에서 개인적 신념을 함부로 내세울 수 없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남부에서는 링컨이 당선되자마자 연방 탈퇴론이 거세졌다. 입법부에서 아군인 민주당이 분열된 것에 더해 행정부까지 넘어간 이상, 연방 차원에서는 미래가 없다고 확신했다. 노예제에 기반한 강고한 기득권을 지속적으로 빼앗기는 일만 남았다는 위기감이 확산됐다. 급기야 1860년 12월부터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대표적인 남부 노예주인 사우스캐롤라이나가 연방 탈퇴를 선언했다. 이곳은 남부 극단주의자들이 가장 많이 존재하는 지역이었다. 뒤이어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조지아, 앨라배마, 플로리다, 텍사스 등이 줄줄이 연방을 탈퇴했다. 또 다른 노예주인 델라웨어, 켄터키, 미주리는 연방에 남았다. 남부는 1861년 2월 제퍼슨 데이비스를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한 뒤, 앨라배마의 몽고메리를 수도로 삼아 '아메리카 연합국'을 건국했다. (수도는 추후 버지니아의 리치먼드로 이전했다.) 이들이 제정한 헌법을 살펴보면, 전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총과 인도를 구하면서'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시키는 조항도 추가됐다. 대통령은 개별조항 거부권을 부여받았는데, 이를 통해 의회에서 제정한 법안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또한 노예 가격이 낮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노예수입 금지 조항도 넣었다.
이 같은 일들은 링컨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직전에 이뤄진 것이었다. 이전 대통령인 제임스 뷰캐넌은 상당히 무능했기 때문에, 갈등을 조정하거나 남부의 준동을 조금도 막지 못했다. 표면적으로는 남부의 연방 탈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지만, 그렇다고 무력을 사용해 강경 대응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하지 않고 수수방관했다. 사실상 문제 해결을 차기 정부에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남부의 연방 탈퇴는 가속화됐고, 연방정부 기관을 무력 공격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남부에 있는 연방정부 조폐국이 습격당해 금이 탈취됐다. 이는 추후에 전쟁을 위한 군자금으로 사용될 터였다. 아울러 연방군의 요새와 병기창 등이 무력 점령되기도 했다. 남부연합은 군사들까지 모집하며 노골적으로 전쟁 의지를 드러냈다. 링컨은 이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취임식 연설에서 "갈라진 집안은 올바로 설 수 없다"라며 연방의 유지를 강력히 역설했다. 그러면서 남부연합의 움직임을 명백한 '반란' 행위로 규정했고, 군사력을 동원하는 한이 있더라도 진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함께 남부연합의 노예제에 간섭하지 않을 테니, 알아서 연방으로 돌아오라는 회유책도 병행했다. 링컨은 통합적인 내각 구성을 통해 국가의 분열상을 극복하려는 의지도 표출했다. 국무장관에 정치적 라이벌인 윌리엄 수어드를, 전쟁장관에 민주당원인 에드윈 스탠턴 등을 임명했다. 또한 열차를 타고 70여 개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분열이 아닌 통합을 강조하는 연설도 했다. 남부연합은 링컨의 메시지에 전혀 화답하지 않았다. 링컨의 연설에서 드러난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 영토 내에서 노예제의 완전 폐지라고 결론 내렸다. 남부연합은 링컨과 북부연방을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판단했다. 파국적인 남북 전쟁의 시간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