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나쁜 길을 달립니다

by 시와 카피 사이

<환절기>



시간은 필기체로 흘러간다

속절없이


사랑과 청춘과 계절이 갔다


두 번의 학사경고 두 번의 퇴사 두 번의 장례 그리고

텅 빈 방

저녁 하늘의 불꽃놀이


침대 맡 선잠에서 깬

짧은 귀밑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사람도

이젠 갔다


지금은

청춘의 낙서장 위로

눌러 쓴 문장들을 지우는 시간


쓸쓸함과 쌀쌀함은

다른 거라 다짐하며

옷장에서

오늘을 견딜 외투를 고른다


두터운 스웨터 속으로 얼굴을 밀어넣듯


찰나의 어둠만 지나면,

쏟아지는 빛 속에서 눈 뜨겠지

고개 들게 되겠지

되뇌이며


바짝 자른 손톱으로

운동화 끈을 고쳐 묶는다


여름의 바통이 가을의 손끝을 스치는 무렵이었다




인생은 이어달리기 같습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여름의 내가 가을의 나에게,

어린 내가 어른이 된 나에게,


시간이란 바통을

끊임없이 쥐여주는 일 같습니다.


매번 같은 나이지만

매번 다른 주자가 되어 나아갑니다.


도저히 알 수 없는 길 위를

도무지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그저 묵묵히 나아갈 뿐이죠.


자코메티의 작품 <걷는 사람>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 <걷는 사람>


뼈대만 남은 앙상한 조각상은

연약하고 위태로워 보이지만, 한편으론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단단한 걸음을 내딛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에

더욱 강하게 발을 내딛는 사람처럼


우리의 약함은

우리를 걸어가게 합니다.


약할수록

더욱 강하게

발을 내딛게 합니다.


약함이 힘입니다.


당신이 연약해지는 굴곡을 지날 때

비로소

당신이 가진

진정한 힘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구르고 부딪히고

뒤집히면서 얻는 것은

그 어떤 길에서도 강해지는 기술,


가장 좋은 차가 되기 위해

가장 나쁜 길을 달립니다

-현대자동차 광고




https://brunch.co.kr/@hyungsic7/126


*위 시는 자작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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