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레언니 Dec 14. 2023

절박한 이혼 프로포즈

 

내 멱살을 잡고 삶을 끌어주던 알약들

 다시 원점이다. 돌아가지 않은 것이 있다면, 내 멱살을 잡고 꾸역꾸역 삶을 끌어주던 알약엔 더이상 손대지 않았다. 잠시 잠깐의 숨통만 트이는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뼈저리게 경험했기에. 나는 결국 가족을 지켜보겠다는 알량한 자존심도, 나만 포기하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던 자만심도 다 버려버렸다. 남편과 헤어져야만 숨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만이 살 길이었다.

 내 이혼 결심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다. 엄마처럼 실패한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고 주둥이를 나불거리던 내가 또다시 같은 듯 다른 아픔을 엄마에게 줘버린 것이다.



“엄마, 숨이 막혀 살 수가 없어. 얼굴만 봐도 숨이 턱턱 막혀. 엄마... 나 좀 살고 싶어.”



 저녁 산책이랍시고 함께 나온 딸이 뜻밖의, 아니 어쩌면 예상했던 말을 했기 때문일까. 엄마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엄마, 사람이 살면서 내가 됐든, 다른 사람이 됐든 제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거잖아. 근데 나는 요즘 항상 그 생각뿐이야. ‘내가 죽을까? 쟤는 왜 출장 가서 안 죽고 돌아왔을까? 어떻게 하면 둘 중 하나가 죽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어. 


엄마, 걔랑 나랑 둘 다 목숨부지하고 살려면 이혼하는 방법밖엔 없을 것 같아. 나 정말 많이 노력했어. 그런데, 아파. 너무 아파.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파. 내가 없어. 세상에 나란 존재가 없는 기분이야. 엄마는 내가 엄마 딸 같아 보여? 지금까지 엄마가 알던 엄마 딸 같아 보이냐고... 


나는 자신이 없어. 앞으로 이렇게 몇십 년을 더 같이 살아야 한다고? 그건 나한테 시체처럼 살라는 건데, 그렇게 생각하면 나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아. 너무 우울하고 괴로워.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은 다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야. 


직장에서 올바른 정신으로 보람찬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면 공주가 나 왔다고 들러붙고 안기고 하는데 거기까진 정말 살 것 같거든. 행복하고 좋아. 근데 걔가 집에 들어오면 웃을 수가 없어. 걔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것이 정전이야. 내 마음에 불이 꺼진다고. 엄마가 그랬지? 나더러 좀 웃으면서 살라고. 왜 다 죽은 사람처럼 사냐고 했잖아.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그게 내 의지대로 되질 않아. 걔를 보면 숨이 막히고, 내가 갖고 있던 작고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이 다 빠져나가. 


엄마도 알잖아. 나 장난치는 거 좋아하고, 얼마나 잘 웃는지, 사람들 재밌게 해주는 것도 좋아하고, 얼마나 밝고 명랑한지. 여전히 밖에서는 그런 나로 잘 지내는데 집에 들어오면 도무지 웃지를 못하겠어. 엄마, 내가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할까? 공주 때문에라도 그냥 다 참고, 내 영혼은 어디 한구석 저 멀리 나오지도 못하게 꽁꽁 묶어 숨겨두고 이렇게 불행하게 살아야 할까? 그게 공주한테도 좋은 일이야? 나는 크게 바라는 거 없어. 좀 덜 아프고, 좀만 더 행복하게 살고 싶어. 아니, 더 솔직하게는 지금 당장엔 살고 싶지 않은데, 그래도 살아야만 한다면 좀만 행복하면 안 될까?”








 한 번 봇물이 터지자 멈추지 못하고 그간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려는 듯 엄마에게 속사포로 뱉어냈다. 이미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고, 얼마나 소리를 내어 말을 뱉어냈는지 말이 끝날 즈음엔 목이 쉬어 있었다. 아무런 말없이 듣고 있던 엄마는 내 팔을 끌어 벤치에 조용히 앉혔다. 나란히 앉은 엄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도 엄마와 함께 걷는 산책로, 그리고 그 날의 그 벤치.



“내 딸, 힘들었겠네. 엄마가 옆에서 봐도 알겠던데 뭐. 얼마나 답답했을지, 네가 얼마나 잘 견디고 있는지. 엄마는 네가 참는 것보다 아프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공주도 행복하지 않은 엄마를 보는 것보다 행복한 엄마를 보고 싶을 거야. 엄마는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네 엄마고 널 지킬 거야. 널 응원할 거고, 네 곁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만 아프자.”


 처음이었다. “네가 예민해서 그래.”라는 말을 앞세우지 않고 온전히 내 힘듦을 토닥여준 것이. 아마도 엄마는 자신이 겪은 아픔과 고통을 내가 경험하지 않길 원했을 거다. 어린 딸을 데리고 나와 홀로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견뎌낸 엄마였기에.


 그 벤치에 앉아서 얼마나 더 울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예상보다 더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는 것과 퉁퉁 부운 눈을 보고는 공주가 “엄마 눈동자가 안 보여. 눈 감고 있어?”라고 웃으며 물었던 것이 기억난다.


 엄마에게 털어놓고 나니, 어느 정도 마음과 생각이 정리됐다. 이미 2년 넘게 속으로 생각했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마음속 깊숙한 곳에 가둬두고 살았던 일이다. 오랜 시간 그 마음의 몸집이 얼마나 커져 있던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당사자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디데이를 정해놓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할 말 있어.”



 디데이에 공주를 방에 재워놓고 거실로 나와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 늘 웃음기 없던 그는 눈치를 보는 듯했다. 한 건물, 다른 층. 안 그래도 친정집과 가까운데, 병과 싸우고 있던 딸을 보살피고자 친정엄마의 손길이 자주 닿았기에 사실 처가살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래서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나 나름의 배려랍시고 그에게 괜찮은지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나? 괜찮아.”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나는 숨이 막혀 입을 떼기 어려웠지만, 오늘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어렵사리 첫마디를 뗐다.


“너... 행복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가 내게 되물었다.


“행복해야 해?”


‘... 도대체 너라는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산단 말인가.’ 혼란스러웠지만,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하나도 안 행복해. 사실 그런 지 한참 됐어.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네가 없으면 행복하고, 있으면 안 행복한 것 같아.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사실대로 말할게. 네가 옆에 있으면 숨이 막히고, 네가 없으면 그나마 좀 숨통이 트여. 그리고 나는 네가 행복한지 모르겠어. 늘 그렇게 우울한 표정으로 있는 것이... 그러니까 너도 나같이 답답하고 행복하지 않은데 우리가 억지로 함께 살 이유가 있느냐는 말인 거야. 더이상 서로에게 힘듦이 되기 전에 여기서 그만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나의 말을 듣고 한참을 침묵하던 그가 겨우 입을 떼었다.


“... 난 네가 원하는 거 다 해주려고 노력했어...”


 어느 부분에선 맞는 말이다. 내가 친구를 만나겠다면 만나라 했고, 무언가를 사겠다 하면 사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간절히 원했던 거짓말하지 않는 것, 잘못했을 때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만큼은 끝끝내 그러지 못했다.



“그래. 그랬겠지. 우리 가족도, 너희 가족도, 그리고 너도. 항상 내가 예민해서 그런 거라고 했잖아. 맞아. 나는 그만큼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성격도 예민해. 그만큼 신경 쓰이는 것도 많고. 그래서 나의 그런 점에 대해 미리 이야기했었고,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네게 여러 번 부탁도 했어. 그런데 너는 번번이 같은 일로 거짓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내가 그것에 대해 물으면 튀어나오는 말은 변명이고 핑계고. 그런 일들이 자꾸 반복되니까 우리 사이에 신뢰가 없어졌어. 우리 서로 이야기 안 하고 산 지도 오래됐잖아. 이렇게 같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나는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너는 수동적이어서 오히려 내게 모든 걸 기대고 있잖아. 그러면서도 본인을 수동적이라고 말하는 건 싫어하고. 그래, 내가 하나하나 꼬투리 잡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내 배려심이 부족한 탓이고, 내가 못난 탓이야. 하지만 이 집의 가장은 너라잖아. 시댁이며, 우리집이며 우리를 둘러싼 온 식구가 너 힘들까 봐 걱정하는데 정작 이 집을 꾸역꾸역 꾸려가고 있는 건 나인 듯해서 더이상은 못하겠어. 널 끌고 가느라 내 인생은 늘 뒷전이 되는 거. 그게 너무 억울해. 


너도 알 거 아냐. 나 밝고 명랑한 사람인 거. 내가 어디서나 예쁨 받고 살아왔단 거 너도 알았잖아.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배배 꼬이고 예민 덩어리에 성격이 괴팍한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 나도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까맣게 잊어버렸어. 내가 이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표출하면 우리 엄마, 아빠, 너희 부모님 전부 나한테 그러자나. 그 예민함 좀 버리라고, 불평불만하지 말라고. 사는 게 다 그렇다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아, 나는 불평이 많구나. 그릇이 크지 않아서 다 품지 못하는구나. 나는 못났구나. 


네가 음주운전해서 면허가 취소된 것도 술을 많이 마시는 남편을 둔 내 탓이고, 부부싸움 할 때 네가 화를 주체 못해서 스스로 뺨을 때리고 안경을 집어던지고 벽을 치는, 그런 폭력적인 모습들을 보이는 것도 다 질릴 만큼 화나게 한 나 때문이라는데... 그리고 내 내면에서조차 그 모든 선택도 애초에 내 스스로 한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데 내가 무슨 좋은 생각을 하고 살겠어. 그러니까 나 좀 살려주라.”




내가 이야기를 마치자, 그는 조용히 일어나 집을 나갔다. 그가 다시 집에 들어온 건 이틀이 지나고 나서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