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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독일에서] 옛날집에 세탁기 주문하기

기다리는 자와 배송하는 자 그리고 포기하는 자.

by 노란대문


독일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배달, 배송, 오지않는 배달 등등이다. 늦게 오거나 잘못오거나 안 오거나 안주고 가거나. 그 모든 상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벗어나는 배송 사건 사고. 세탁기를 들이기로 결정하고 영원히 배달받지 못했던 나날들이 있었다. 게다가 오래된 집들이 한가득인 이 나라, 엘베가 없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나또한 엘레베이터 없는 집에 살고 있고.




기숙사, 셰어하우스를 건너 나만의 집에 도달했다. 나만 사는 집. 나만의 보눙. 방이 두개(거실 포함), 복도가 하나, 화장실이 하나 작은 부엌이 하나, 창고가 하나. 아이구 이 한몸 건사하기에 넘치고 넘친다. 창문은 얼마나 튼튼하며 문짝은 얼마나 헐거운가.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이웃들의 목소리가 가끔 왕왕 울리지만 그래도 나만의 공간이다. 감사하게도 부엌이 자그마하게 딸려있던 공간에 들어서면서 그 외의 모든 가구를 주문했어야 했다. 침대도 고르고, 청소기도 고르고, 옷장도 주문하고. 독일에 산게 벌써 어언 10년차인데 가구를 구매해본 것은 처음이라 무척 설렜다. 그래서 잘못된 선택을 몇가지 했는데.. 이건 다음에 풀어보자.

여튼, 필요하다 생각되는 가구를 요모조모 사서 사람 사는 공간이 되도록 만들었다. 다만 한가지 해결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세탁기였다. 왜냐하면 화장실에는 세탁기를 넣을 공간이 안 나오고, 부엌에 연결하자니 대공사가 될 것만 같았기 때문에. 싱크대 옆에 바로 넣어야 손쉽다는데 그려러면 세탁기와 싱크대의 거리가 꽤나 생겨버리는 것이다. 연결위한 연장 호스부터 준비해야 할게 무척 많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포기하고 집 근처에 있는 공용 빨래방을 방문했다. 빨래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동안 챙겨간 책도 읽고 혹은 타임어택을 하며 주변 마트에서 장도 봤다. 한달쯤 지났을까 빨래하는게 너무 고된 일이 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가깝다 한들 십분 이상 걸어가야 하고, 직장 다녀오면 빨고 싶은 옷은 자꾸 쌓였다. 검은옷 흰옷 구분해서 빨래하는것을 포기한지는 한참이었다. 건조기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옷은 함께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건조기에 몽땅 빨래를 넣어서 자알 말려서 들고 와야했다. 입었던 옷을 또 꺼내입고 빨래통에 넣었던 수건을 건져올리기를 몇번, 안되는게 어디있어! 하며 세탁기를 검색했다.


그냥 주문해서 설치하면 되지 왜이리 미련했냐- 라고 묻는다면, 독일에서 세탁기 설치를 보장하는 것은 연장호스를 사용하지 않았을 때의 경우였다. 세탁기 설치에 포함되어있는 처음 그 구성 이외의 것이 필요하면 ‘스스로’해야 한다. 하지만 난 수전 기술자도 아니고 그것에 대한 지식도 없는데? 그럼 알아서 해결책을 찾아야했다. 세탁기 회사들마다 ‘우리는 테크니커를 보내드립니다’라고 멋지게 설명란에 써 놓았지만 결국에는 하청-하청으로 이어져 배달기사가 약간 배운 지식으로 세탁기를 연결해주고는 가버리는 것이다. (내가 상담받은 경우에는 그랬다. 운이 좋다면 진짜 테크니카가 올지도). 그래도 열심히 유투브를 찾아보고, 또 여러 사례들도 찾아보고. 독일의 바우하우스-집 공사하는데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파는 곳에 갔다. 세탁기와 싱크대 사진을 들고가서는 ‘이걸 연결하려고 하는데요 요것을 사는게 맞나요?’ 하며 거기에 상주하는 분들에게 물어봤다. 동료와 상의하고, 싱크대 사진을 확대해 보면서 필요한 것들을 조언해주고, 나도 조사해간 것들을 사 모았다.

이제 또 무얼해야했냐면 싱크대 설치를 했던 기술자를 불러 싱크대 옆쪽에 구멍을 내 달라고 부탁했다. 세탁기를 연결하고 싶어서요. 하고 부탁하자 그 분은 동그랗고 예쁜 구멍을 두개 뚫어주고 갔다. 혹시 세탁기 연결 할 줄 아는지 물어보자 ’해 본 적이 없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니까 정리해보자면

1. 세탁기 없는 생활에 지쳐 돈을 모은다

2.세탁기가 들어갈만한 공간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본다

3.부동산에 연락해 혹시 집 안에 세탁기를 들여도 되는지 물어본다(중요!)

4. 이웃들에게 ‘집 안에 세탁기 있는사람?’하고 물어나 본다

5. 설치에 필요한 연장호스, 나사 등등 온갖 준비물을 구비한다

6 싱크대 기술자를 불러 싱크대에 구멍좀 뚫어달라고 부탁한다

7 마음에 드는 프로모션이 있는 곳에서 세탁기를 주문한다

7 실패한다


그래, 실패했다. 나는 처음에 세탁기를 미디어마크- 독일의 온갖 전자기기 용품점-에서 주문했다. 아니 봄세일이라지모야. 30퍼센트 이상 할인한다고 하니 그럴듯한 세탁기로 조사를 해서 주문을 했다. 심지어 무겁고 커다란 배송용품이라서 돈도 더 내고 마음을 정갈하게 한 뒤 배송받을 준비를 마쳤다. 장장 2주를 기다려야했고 나도 출근하지 않는 날과 맞아야 하니 신나서 주문을 했다. 그리고 배송 실패. 내가 집에 없었다는 뻥 아닌 뻥같은 이야기를 하며 배송기사가 스스로 배송을 취소했다. 오호? 이럴수가. 그래서 바로 다음 예약을 잡았다. 심지어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뭐 배송이 오기만 한다면야. 그리고 또 다시 이유도 없이 취소 되었다. 아마 짐작컨데 계단이 없는 집에 무거운 세탁기를 배송하고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물건을 파는 판매원은 ‘아 우리가 당연히 배송해주지 걱정 하나도 하지 마!’라고 큰소리 떵떵 쳤지만, 배송을 하는 사람은 또 다른 생각일 수 있으니. 세착기를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돈을 환불해달라고 하자 기다리란다. 그때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할 수 밖에. 돈빼가는 것은 순식간, 배송 취소도 순식간. 소비자가 물건 포기하는 것은 한세월, 환불 받는 것도 한세월. 오죽하면 이 이메일의 나라에서 전화로 따져물을 정도로 화가 났다. 배송이 혼자 취소 되고(두번이나!), 내가 물건을 안 사겠다고 했더니 왜 환불에 한달이나 걸린다는 거냐고 따져묻자 상담원은 ‘너가 잘 몰라서 그런데 독일은 원래 그래’라며 전화를 똑 끊어버렸다.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해서 이메일로 보낼 수 밖에. 이메일을 한 세 통을 보낸게 소심한 복수였다. 아 정말 독일살이 쉽지 않다.


그렇게 세탁기를 구매해야징~으로 부터 포기하기까지 장장 한달 반이 걸렸다. 무사히 환불된 돈을 보며 이 집에서 내가 새탁기를 살 수나 있을지 궁금해 하며 약간 슬펐다. 그러나 또 한달이 지나고 여름이 다가오는데 세탁기 없는 삶이 나의 인생을 질을 점점 떨어뜨리고 있었다. 게다가 공용 빨래방 근처세 생긴 공사 현장으로 빨래방은 점점 과부화 상태가 되어갔다. 심지어 ‘신발은 빨지 마세요’라고 써 있는 문구 아래서 신발까지 야무지게 세탁기에 넣는 사람들을 보니 다시 한번 세탁기를 구매할 의지가 샘솟았다. 이번에는 프로모션이고 뭐고 공식 사이트에서 구매하기로 했다. 진짜 테크니커를 보내 줄 지는 미지수이지만 우야든동 배송이라고 성공적으로 받고 싶었다. 주문 전에 ‘우리집에는 엘레베이터가 없어요. 배송가능합니까?’ 라는 질문을 실시간 채팅으로도 물어보고 전화로도 물어보고 이메일로도 물었다. 가능하다는 대답을 세번이나 받고 주문 버튼을 눌렀다. 일주일 뒤 배송가능날짜를 잡을 수 있었다. 휴. 제발 성공적으로 배송받기를 바라며 애써줄 배송기사들을 위해 물과 오렌지쥬스를 준비했다.


7 AEG에서 세탁기를 주문한다

7-1 엘베없는 집에 배송이 가능하지 물어본다

7-2 ??? 전화를 받는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배송날이 되었다. 마음을 다시한번 정갈하게 다잡고 배송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혹시 너 괜찮으면 지금 배송해도 되니?’

오.. 그날은 하이쭝을 검진할 테크니커들도 오는 날이었다. 일부러 겹치지 않는 시간으로 잡았는데 아침 8시부터 지금 당장 배송하고싶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10시에 있는 약속을 떠올리며 우선 오케이라고 외쳤다. 이번에도 거절하면 정말 세탁기 없이 살아야 할 지도 몰라. 게다가 설치까지 넉넉잡아 한시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좋아요, 그럼 바로 오나요?”

“아 그럼! 곧 봐요!”

“우리집에 엘레베이터 없어요. 알고 있나요?”

“네네, 알고 있어요 곧 봐요!”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전화를 끊고서는 30분이 지나도 오지를 않았다. 그렇게 초조하게 한시간이 지나고 나서 우당탕탕탕 하는 소리가 나더니 세탁기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게 대문에 훌쩍 내려놓고는 배송 완료- 하고서 가 버렸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었다. 집 안까지 배송해달라고 따로 돈을 줘야 하는지 걱정하며 땅층으로 내려갔다. 한 손에는 여차하면 줘야 할 팁 10유로를 꼭 쥐고 도달한 곳에는 우락부락한 두 명의 배달원이 있었다. 집이 몇층인지 물어보더니, 신기한 기구를 꺼내들었다. 계단을 오르기 쉽게 만들어진 것이라며 그것으로 세탁기를 하나하나 올릴 거라고. 세상에. 진짜 배달을 해주는 구나. AEG만세. 만만세.


그렇게 한동안 읏챠 으쌰 하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퍼졌다. 땀을 뻘뻘 흘리는 이들에게 시원한 물과 오렌지 쥬스를 드리며 감사를 표했다.

‘ 자 이제 설치를 해볼까’

‘근데 연장을 해야 하는데-‘

‘오 우린 그거는 못해.’

그래. 그럴 줄 알았지. 물과 오렌지쥬스를 들고 발걸음도 가벼움게 룰루랄라 떠나갔다. 이제 부엌에는 나와 설치되지 못한 세탁기와 그동안 드레곤볼 처럼 사 모아 놓은 ‘세탁기 연장에 필요한 부품’들만 남아있었다. 좌절감을 느낄 새도 없이 곧 다른 약속시간이었다. 배송을 잘 받았냐 물어보는 친구가 팁 을 두둑히 주겠다고 하면서 하이쭝 점검 테크니커들에게 세탁기 연결을 부탁해보라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일하는 분야가 다를텐데? 라며 반문하자 모르긴 몰라도 집안 전체를 봐주는테크니커들이니 더 전문가일 것이라고 백번쯤 이야기 했다. 이윽고 공구상자를 든 두 명의 테크니커가 들이닥쳤다. 아까 배달기사와 약간 다른 점이라면 진짜 그 테크니커 특유의 옷차림(주머니가 한 백개쯤 되어보이는 바지와 단단한 신발)을 하고 이것저것 들고 온 것이 한가득이라는 점이었다.

‘안녕, 너 세탁기 샀나보네 좋아보인다-“

나이가 좀 더 많아보이는 이가 점검해야하는 보일러 바로 아래 자리잡은 세탁기를 보며 스몰톡을 건넸다.

“오 맞아, 그리고 아직 설치를 못했어. 혹시.. 이런거 연결 하는 것도 너네 일이야? 내가 부탁해도 될까? 돈은 바로 현금으로 지불할 수 있어“

“오? 그래? 점검이 끝나고 시간이 되면 해줄게. 영수증에 청구하면 되니까 따로 돈 안줘도 돼.“

세상에, 오마이갓.

주머니에 따로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정식으로 청구해서 해결해준다니. 물어보지 않았으면 큰일이었을 뻔 했다. 게다가 내가 사 놓은 부품들보다 더 단단한 것으로 제대로 설치해주기까지. 세탁기 아래 소음 방지 패드까지 착실하게 깔아주더니 작동을 잘 하는지 하나하나 살펴주기까지 했다. 따라온 젊은 직원은 눈을 빛내며 세탁기 설치하는 방법을 하나하나 배우고 있었고 나는 조금 멀리서 눈을 빛내며 이 감사를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들이 오기 전에 힘내서 배달해준 직원과 기꺼이 시간이 남아 세탁기를 설치해준 이들까지. 그들에게 물어보라 조언을 건넨 친구와 세탁기 구매를 포기하지 않고 힘낸 나. 모두가 협력해서 드디어 집에서 빨래하는 행복한 인생이 시작되었다. 뒤돌아 가는 이들에게 수 많은 감사를 보냈다. 정말 고마워요. 잊지 않고 물과 오렌지쥬스를 들려보냈고.


한동안 감격에 차서 세탁기 앞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나를 울리고 나를 웃게하는 이 징그러운 독일 일상. 이제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기도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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