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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독일에서] 안경 사러 베를린?

안경은 처음이에요

by 노란대문

안경을 사서 사용하시라-라는 안과의 처방을 받고도 한 달을 뻐겼다. 에이, 나는 생눈으로 살았던 사람인데 안경이 정말로 진실로 진심으로 꼭 필요할까? 하는 현실 부정과 앞으로 안경과 함께 하는 삶을 받아들이기에 겁이 물씬 났던 탓이다. 워낙 덜렁거리는 성격인데 내가 그 유리를 얼굴 위에 올려놓고도 멀쩡할까 과연? 거기다 렌즈를 끼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지경이다. 눈알에다가 유리를 껴야 한다니! 나도 모르게 비비기라도 하면..!!

하지만 한 달 동안 주변에 수많은 친구들이 이미 안경과 함께 살고 있었고 -그러므로 별일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으며 이 모든 귀찮고 품이 들어가는 일은 휴가에 처리해야만 한다는 시간적 압박이 들었던 탓에 결심을 했다. 자 이제 그럼 독일에서 안경 사기 시작해 볼까




미리 밝히자면 베를린은 내 독일의 고향 같은 곳이다. 첫 시작의 도시에서 학업도 마쳤고 일도 좀 헸다. 그러다 지금 직장으로 취업을 하게 되면서 이사 온 것이고. 그래서 뭔가를 사야 한다, 뭔가를 해야 한다 하면 베를린에서 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차오르곤 하는 것이다. 지금껏 살아온 독일 정보 데이터의 기본이 베를린으로 설정되어 있으니 더 그럴 것이다. 아 그거 베를린 가서 먹을 수 있는데, 아 그거 베를린에 매장 있던데, 아 그거 베를린. 베를린.


그런고로 안경을 사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언젠가 지나가면서 궁금해했던 '그 매장'이 생각이 났다.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또 기회가 생기다니!


그전에 독일에서 안경을 맞추는 시스템에 대해서 찾아봤었다. 첫째로는 가격이 비싸다, 둘째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셋째로는 안경태가 동양사람의 얼굴에도 어울릴까?라는 것들. 물론 잘 알아보면 좋은 안경사를 만날 수도, 좋은 안경태를 만날 수도 있지만 이미 마음에 결정한 것이 있으니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안경 하나 맞추자고 일주일 내지 이주동안 기다리는 것도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고.


나는 경도 근시안에 들어가는 범위였고, 그러므로 안경알이 엄청 두꺼워지는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다만 살면서 안경을 처음 맞춰보는 것이니 무조건 가벼운 테를 사용하고 싶었다. 선글라스로 조금 알게 된 내 취향은 테가 아무리 예뻐도 플라스틱 콧받침은 금세 아파진다는 것, 그리고 무거운 안경은 얼른 벗고 싶어 한다는 것. 보통의 취향이었다.


여하튼 베를린에는 한국 시스템과 흡사하게 20분 내에 안경을 만들어주는 가게가 있다. 역수출되어 지금 한국에도 매장을 열었다고 하던데 첫 매장은 베를린인 독특한 이력을 가진 가게이다.

"YUN Belin"이라고 가게 안에 공장을 형상화한 것을 만들어놓고 안경을 주문하면 바로바로 눈앞에서 만들어주는 시스템으로 한동안 엄청난 성공을 거뒀던 곳. 베를리너일 적 오다가다 구경도 해보고 슬쩍 매장도 들어갔었지만 안경을 쓰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필요한 가게인 것 같아 괜히 쭈뼛거리다 나온 기억만 있다. 첫 매장은 동베를린이자 힙스터들의 성지인 'Hackescher markt'에 있었다. 세상의 온갖 패션을 선두 할 것 만 같은 사람들이 매장 안에 가득했으니 분위기도 엄청났다.


이번에 내가 방문한 곳은 'kurfürstendamm'이라는 서베를린, 그리고 쇼핑의 성지에 생긴 새 매장이었다.

매장이 넓고 깨끗하다. 게다가 저 거울 간판에서 사진을 찍으면 부서진 교회(Kaiser-Wilhelem- Gedächtiniskirche)와 한프레임에 담길 수 있다.

원래는 본점에 방문하고 싶었으나 시간상, 일정상 방문하기 편한 지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확실히 새 매장 냄새가 나고 깔끔하기도 아주 한국식이다.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지는 안경의 세계. 전날 이것저것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며 마음에 정해둔 얇고 가벼운 테를 중심으로 구경하기 시작했다. 멀찍이서 보던 직원이 어느새 다가왔다.


"우리 매장, 우리 안경 시스템을 알고 있니?"

"오 어떤 시스템을 말하는 거야?"

"우리는 안경 가격에 렌즈 가격이 포함되어 있고, 20분 내로 안경이 완성돼."

"맞아, 홈페이지에서 봤어"

"그래 그럼 천천히 골라보고 또 궁금한 거 있으면 알려줘."


그렇게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독일에서 매장에 들어가면 꽤나 편한 게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 가끔 '뭐 필요해? 도와줄까?' 하고 물어보지만 '나 그냥 좀 보려고'라고 대답하면 대개 '그래 뭐 필요하면 알려줘'하고서는 사라진다. 내가 이것저것 들춰보고 구경하는 것을 멀찍이서 보면서 마음껏 자유롭게 쇼핑하도록 놔둔다. (심하면 궁금한게 있어도 느믈럭대느라 오지도 않는다) 마음껏 구경해도 그러려니 하는 태도가 상당히 편하달까.


여하튼 그래서 예쁘게 놓인 안경들과 직원과 손님 모두가 편하도록 안경마다 놓여있는 가격표들 사이에서 방황이 시작되었다. 모델들이 멋지게 찍어놓은 사진을 보면서 골라놓은 안경이 있었는데 현실은 참 달랐다. 안경을 골라잡아 얼굴에 올릴 때마다 자꾸 슬픔이가 되는 매직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얄쌍한 안경태는 어째 'B사감과 러브레터'의 그 사람이 생각나게 하고, 두꺼운 뿔테는 나를 '슬픔이'로 만들고. 이 안경은 부엉이가 되고 저 안경은 사막여우가 되고. 게다가 안경은 미세한 차이로 인상을 전혀 다르게 만들어서 나의 추구미가 무엇인지 다 까먹게 만들었다. 그러나 역시 가볍고 얇은 테를 선택하는 것을 옳은 일이었고 수많은 안경의 홍수 속에서 그래도 마음에 드는 모양을 하나 집어 들 수 있었다.


얼추 안경을 고른 것처럼 보이자 직원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나 이 안경으로 하려고."

"그래, 좋은 선택인 것 같네."

"근데 나에게 안과에서 한 시력 검사지가 있어. 내 렌즈가 두꺼워질까?"

"어 아냐, 이 정도면 기본이지. 이렇게 바로 만들어줄까? 아니면 검사를 다시 하고 싶어?"

"그게, 잘 모르겠어. 나 안경을 사용하는 게 처음이라. 한번도 안써봐서-"

"오!"


약간 무료하던 얼굴에 갑자기 빛이 돌았다. 네가 안경이 처음이구나. 이 시력 검사는 약 한 달 전에 했네. 아마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지만 우리도 좋은 기계가 있거든. 한번 해보고 그러면서 오차범위를 줄여보자. 이게 안과랑 안경점은 또 다르거든. 중점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달라. 안과는 종종 너무 강하게 검사결과가 나오기도 해서-.....


그는 숫자가 서너 개 쓰여있는 시력 검사지를 찬찬히 오래 들여다보았고 친절하게 안쪽으로 안내해 주었다. 마치 고인 물의 세상에 처음 방문한 뉴비를 대하는 태도였다. 놀랍게도 안과보다 좀 더 정밀한 것 같은 기계가 나를 반겼다. 숟과락과 작아지는 글씨는 오간데 없었다. 하나는 시력검사 하나는 난시와 근시를 체크하는 기계. 돌아가는 열기구도 보고 렌즈를 하나하나 바꿔가며 어떤 지점에서 더 명확하게 보이는지 체크하는 시간이 한동안 이어졌다. 게다가 이쪽눈 저쪽눈 바꿀 때 마다 눈을 쉬어야 한다며 눈을 감아라 떠라 미세한 요구도 넘어왔다.


안과보다 더 정밀하던 기계. 저 방에서 꽤나 오래 씨름을 했다

이 렌즈는 어때, 다음 거랑 비교해 보니 어때 다시 맨 처음 렌즈를 끼워볼게. 이제 두 개를 동시에 볼게. 오른쪽이 좋니 왼쪽이 좋니. 뭐가 더 명확해.


체감상 백만 가지의 질문이 다가왔고 나중 가서는 '나 이 두 렌즈의 차이를 모르겠어'라고 대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럼 눈을 감고 10초만 세어봐 그리고 다시 찾아보자'하며 또다시 눈에 찰떡콩떡으로 맞는 렌즈를 찾는 과정이 이어졌다. 하얀 방과 안경사 그리고 초보 안경 착용자가 영원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이윽고 내 눈에 꼭 맞을 렌즈를 찾아내었다. 드이어 하얀방에서 빠져나와 내가 선택한 안경테가 이게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이어졌고 그가 다시 말을 했다.


"안과에서 검사한 것은 역시 좀 강하게 설정한 거 같아 그것보다는 렌즈는 좀 약하게 했어."

그렇구나 응응. 알아서 잘해줬겠지 하는 믿음을 넘기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휴, 해치웠나.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 한평생을 안경과 함께 했던 친구가 대답을 스틸했다.

"근데 렌즈에도 종류가 있잖아 이건 어떤 옵션이 들어간 거야? 렌즈는 어떤 종류야?"

렌즈에도 종류가 있구나. 다 거기서 거기인 유리알이 아니라니. 지금까지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렌즈를 찾아주던 안경사가 잠시 주춤했다. '렌즈라.. 어떤 종류의 렌즈..'라고 혼자 곱씹으면서.


"저희 렌즈는 보통 옵션이 추가된 상태로 나와요. 거기다 프리미엄으로 더하고 싶으면 50유로가 추가되고 시간도 한 일주일정도 더 걸려요. 기본으로 추가된 옵션은 이런 거, 이런 거..... "

옆에 그림처럼 앉아있던 다른 직원분이 일어나며 유창한!! 한국어로!! 대답을 이어나갔다. 엄마야 깜짝이야.

"보니까 난시가 조금 있으신데 근시는 심하지 않거든요. 기본으로도 충분하실 거예요. 안경 처음 써보시는 거라고 하시는 거 같은데 기본으로 사용해 보시고 나중에 다음 안경 맞출 때 옵션도 고려해 보세요."

"아 그럼 이 안경테는 다 한국에서 수급하는 건가요? 개런티는 얼마나 포함되나요?"

"그건......."


안경잡이와 안경사의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가고 나는 내 시력을 맞춰준 또 다른 안경사와 미소만 주고받았다. 갑자기 혜성같이 나타나 한국어로 유창하게 설명해 주며 YUN안경의 장점을 쏙쏙 골라서 이야기해 주니 첫 안경으로 꽤나 좋은 선택이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음- 좋은 안경이겠거니 하고 넘어갔을 텐데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다 하며 안경의 철학을 담아서 열심히 설명해 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순간인지.


20분 이따 봐요- 하고 잠시 거리를 거닐다 되돌아갔다. 날씨가 너무 더워 시원도 하고 향기도 좋았던 안경점에서 땀을 마저 식히려고 했는데 그 짧은 사이 안경이 이미 나왔단다. 아아, 시원한 소파에서 뭉개려던 계획이 이렇게 무너지다니. (참고로 새 매장에는 그 안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컨베이어 벨트가 없다.)

이제는 한국말이 유창한 직원분이 나를 담당해서 안경을 얼굴에 씌워보고 이리저리 발란스도 맞춰줬다.

"사용하다가 불편하거나 문제가 생긴 거 같으면 언제든지 가지고 오세요. 다 봐드릴게요."

생에 첫 안경을 얼굴 위에 올려놓고 넹넹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 좋아요. 잘 맞는거 같아요. 그러자 옆에서 친구는 가만히 보다가 또 한마디를 얹어주었다.

"고개 숙여봐 흘러내리는지 확인해 보자."

아하?! 시키는 대로 고개도 숙여보고 안경 쓰고 걸어도 보고. 도리도리도 해보고. 세명의 안경인과 하나의 초심자의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콧대까지 완벽하게 조절하고서는 밖으로 나왔다.

꽤나 좋은 경험이었다. MBTI가 대문자 I로 시작할 것 같았던 친절한 첫 안경사와 똘똘하게 안경의 장점을 어필해 준 두 번째 안경사. 만약에 독일에서 안경을 맞출 일이 생긴다면 베를린을 적극 추천한다.


이제 그 안경을 받아 들고 대략 2-3주가 지났다. 사실 양쪽 눈으로 보는 시력은 1.0 인 사람이라서 밖에서는 안경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보통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한 곳을 집중해서 들여다볼 때 사용하고 있다. 감상으로는 지금까지는 약간 뿌연 세상을 보고 있었으면 안경을 사용해서 보는 세상은 해상도가 무척, 무척 높다는 것. 그동안 보는 세상이 흐릿한 것도 몰랐던 사람의 안경 구매기는 이렇게 끝났다.


159유로의 나의 첫 안경


혹시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 안경을 위해 따로 예약하거나 전화하지 않고 바로 방문했다.

- 안경은 전시되어 있던 안경 옆에 써 있는 것과 동일하게 159유로 (렌즈 포함 가격, 추가되는 금액 없었다. 만약 렌즈를 프리미엄-블루라이트 추가-으로 하고 싶다면 50유로 추가와 시간이 더 걸린다. 필요하다면 직접 상담후 결정하길.)

- 안경을 구매한다면 당연히 시력 검사는 무료, 안경을 구입하지 않는 경우에는 따로 금액 20유로가 추가된다고 홈페이지에 나와있다.

- 안과와 안경점의 시력검사 차이가 심하지 않았다. 안과에서는 -1.5, 안경점에서는 -1.0으로 맞춘다고 했다.(굴절과 어지러움등등 고려해서 결정했다고 설명해줬다. 난시에 대해서는 동일한 결과였다. (다르게 설정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하던데, 혹여나 나처럼 첫 안경 진입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적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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