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e 독일에서] 완벽한 보양식이 있는 베를린

크으-캬아 하는 국밥의 도시

by 노란대문

너무 덥다. 여름이 끝나가는 줄 알았는데 다시 무더워지고 있다. 한국이 정말 정말 무덥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덥다! 하고 외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독일은 에어컨이 귀한 나라니까.. 정말 무더울 때 ICE기차는 에어컨을 틀어주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그 외에는 얄짤없다. 가끔가다 개미 콧김 같은 선풍기가 나오는 버스, 혹은 RE가 있다. 이렇게 무더울 때면 계절이 바뀌던 시절마다 끙끙 앓으면서 먹으러 다녔던 베를린의 보양식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번에도 여차저차 베를린을 방문한 김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국물이 끝내주게 진한 국밥은 한국인의 소울푸드다. 나도 피가 끓는 한국인이니 만큼 국밥을 먹어야 하는 순간이 꼭 온다. 보통 계절이 바뀌는 구간에 몸이 으슬으슬할 때 국밥이 땡기고, 무척 더울 때 무척 추울 때 꼭 한 번씩 먹고 싶다. 그러나 감자만 먹는 독일 사람들이 국밥의 효능을 알겠냐고. 모른다. 1도 몰라. 그래서 국물이 먹고 싶으면 그나마 찾아먹는 게 베트남 쌀국수다. 그래도 베를린은 외국인 비율도 높고, 특히 한국인 비율이 무척 높은 도시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주 화려했는데 베를린을 벗어나자 눈물만 흐른다. 물론 뒤셀도르프,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등등 먹거리 맛도리가 넘쳐나는 또 다른 도시들이 있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나의 독일 고향은 베를린이니 이건 약간 향수병 같은 것이다.


사람이 많아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베를린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추억의 맛을 되새길 수 있는 이런 시간들 덕분이다. 이번에는 한 여름의 중심에서 그 메뉴를 외쳤다.


"순댓국 먹자!"


그래, 베를린에는 순댓국을 판다. 런던에는 감자탕을 파는 것처럼 베를린에는 나만의 소울 푸드인 순댓국이 있다. Halensee 역에서 내려서 5분 거리, 혹은 쿠담역에서 버스를 타고 숑숑. 처음 그곳을 방문했던 것은 같이 학교 다니던 친구와 함께였다. 너는 뭐 먹을 거야? 묻는 친구에게 한동안 메뉴판을 골똘히 들여다보다 '나는 갈비탕 먹을래.'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친구는 '여기는 순댓국 먹으러 오는 집이야. 순댓국 시키는 게 좋을걸?' 하며 다시 한번 권했고, '나 그거 안 먹어봤어 한국에서도.'라고 거절했다.


나는 사실 어릴 적에는 입이 짧은 아이였다. 다행히 엄마는 그런 나에게 이것을 먹으라 저것을 먹아야 한다며 음식을 억지로 먹이는 분은 아니셨다. 김치가 맵다 하면 씻어주셨고, 떡볶이가 맵다 하면 어묵국물에 씻어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게다가 나 어릴 적 초등학교에서는 잔반 없는 점심이 유행이라 선생님들이 도끼눈을 하고 아이들에게 모든 음식을 다 먹게 하는 풍습 아닌 풍습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워낙 입이 짧았던 시절이라 급식카트에 밀려 들어오는 음식을 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식판에 받는 것도 워낙 적었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혹시라도 무언가 남긴다면 억지로 먹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선생님께 전달하셨던 것 같다. 물론 주변 분위기가 울면서도 먹는 분위기였으니 휩쓸려서 먹기 싫어도 영차영차 삼켰던 것도 같지만 잔반에 큰 스트레스가 없었던 기억을 되짚어보니 심하게 누군가가 강제하지 않았던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토속적인 음식을 또 꽤나 좋아라 했다. 엄마도 '너는 내가 어릴 때 입에도 안 대던 걸 잘 먹어서 그건 참 다행이다,;라는 감상을 하실정도였으니. 아마 최애 반찬은 고기요, 국은 된장국이었을 것이다.


중학교 때는 학교에 급식실이 없어서 도시락을 싸가야 했다. 그러니 엄마는 내가 잘 먹는 반찬으로만 요조모조 챙겨주셨고 심지어 겨울이 되면 보온병에 코코아를 넣어주셨다. 따뜻한 우유에 가득 들어있는 제티의 맛. 그 맛있는 코코아를 친구들과 나눠먹으며 우정을 다지곤 했다. 그렇게 영원히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아는 것만 먹으면서 살 줄 알았는데 웬걸. 한식이 귀한 유학지에 올라서 세상이 뒤집혔다. 처음에는 저렴한 한식당 특유의 쩐내에 비위가 상한다며 들어가길 거부하고, 독일생활자들의 소울 푸드인 되너(Döner)에서는 고기 비린내가 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댔다. 그러나 시간 앞에 장사 없고 유학생은 항상 배가 고프기 마련. 어디서나 무엇이나 냠냠 쩝쩝 잘 먹는 쩝쩝 석사가 되었다. (참고로 되너는 베를린이 제일 맛있다.)


사설이 길었는데, 그런 고로 한국에서는 순댓국을 입에도 안 대봤었다. 순대는 좋아하지만 그것을 왜 굳이 국물에 빠트려 먹는 것이며 각종 부산물을 도대체 왜 먹는 것인가. 의문만 가득한 음식이었고 세상 모든 맛도리를 알고 있는 아빠는 그것을 아주 애석해하셨다. 세상에 맛난 것이 얼마나 많은데, 맛의 지경을 넓히면 참 좋을 텐데. 이 맛있는 것을 왜 안 먹니. 그래서 음식점 가면 한 입만 먹어봐라-는 아빠와 안 먹을래-하는 나, 그리고 안 먹는다는데 먹으라고 하지 마, 그러다 체해-라는 엄마의 심중주가 하루가 멀다 하고 울려 퍼졌었다.


그렇게 국밥의 나라를 떠나와서는 뜬금없게도 친구가 시킨 메뉴인 순댓국을 홀짝홀짝 먹어봤다. 왜냐하면 갈비탕에 갈비가 한 세 개 둥둥 떠있었고, 국물은 맹탕이어서 너무 실망스러운 탓이었다. 친구는 그런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인심도 좋게 한가득 덜어주었다. 순대부터 각종 살코기까지 한가득 담겨있는 인생 첫 순댓국의 맛은 그야말로 온몸의 열을 올리는 보양식의 그것이었다. 게다가 그 귀한 새우젓도 한가득 준다. 반찬도 요모조모 맛났었고. 그 한 입으로 다음번에는 스스로 순댓국을 시켜서 온전히 먹어보았고 그 뒤로 순댓국은 나만의 보양식이 된 것이다.


원래는 "한옥-Hanok"이라는 이름을 건 음식점이었다. 사실 학생신분으로 날이면 날마다 방문하기에는 꽤나 가격이 있었어서 가도 런치메뉴를 먹으러 가고, 그것도 어쩌다 한 번이었다. 순댓국을 발견한 후에는 계절이 바뀌는 바람이 불 때면 꼭 한 번씩 방문했고.

그러다 어느 날 사장님이 바뀌며 이름도 달라졌다. 지금은 모임-mo:im 이름을 걸었다. 그러나 내부 인테리어는 거의 그대로이고 식사메뉴도 내가 찾는 것들은 그대로 있어서 크게 다른 점은 없다고 느꼈었다.


레스토랑이 새롭게 오픈 한 뒤 또다시 순댓국을 먹으러 방문했는데 새로운 사장님인 듯 한 분이 바로 옆 테이블의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고기를 많이 넣어보려고 해 어때?"

"오 너무 좋은데? 이렇게 점심으로 나가는 거야?"

새롭게 리뉴얼된 순댓국을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오! 고기가 많이 들어가고 양도 푸짐해진다고? 그전에는 너무 맛있었지만 밥 한 공기가 한국처럼 고슬고슬하게 담기지 않는 것이 참 아쉬운 부분이었다. 밥이 한 두 세 숟갈 정도는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항상 밥이 적고 종종 타이밍이 안 맞으면 살코기 부스러기만 들어있는 순댓국을 마주하는 슬픔. 그런데 그것들이 리뉴얼된 모양이니 신나서 순댓국을 주문했다.


오.. 그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독일은 한국처럼 고기를 깨끗하게 정육 하지 않는 모양인지 종종 돼지고기에도 털이 남아있는 부분을 목격하곤 한다. 그래서 집에서 삼겹살을 먹는 날에는 종종 비계 부분을 잘라버리기도 한다. 혹은 한국은 가게에서 그런 것들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여하튼 순댓국 안에 가득 들어있는 돼지 뱃살 부위와 그 비계에 가득 박혀있던 털들. 처음으로 반도 못 먹고 나와야 했다. 사장님은 고기가 많은 눅진한 국물이 취향이셨던 모양이다. 나는 한동안 그 비주얼로 인한 충격으로 국물요리는 모조리 거절했다. 그렇게 한동안 보양식을 잃고 떠돌았다.


시간은 성실하게도 흐르고 나보다 음식에 예민한 친구가 어느 날 그곳에 가서 순댓국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는 것이 아닌가. 비계는 괜찮았어? 약간 먹기 힘들지 않았어? 하고 물어보자 생각보다 괜찮던데! 먹을만하던데!라고 대답해 줬다. 아마 그날로 잃어버렸던 보양식을 찾으러 헐레벌떡 순댓국을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한동안 충격으로 마주하지도 못했던 순댓국이 그나마 먹을 수 있는 모양새로 약간 변해있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또 계절마다 방문하는 곳이 되었다.


이제는 베를리너가 아니게 되어 참으로 오랜만에 방문했다. 베를린에 넘쳐나는 게 맛집이라지만 추억미화까지 얹어진 이 순댓국을 놓치고 가면 얼마나 아쉬울까 싶었다. 여전한 인테리어가 주는 안정감과 정겨움. 무더운 날씨여서 땀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순댓국이 고팠다. 그건 추억이 고팠던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적당하게 파글파글 끓여져서 나오는 순댓국은 이제 과거의 그 어느 맛과 닿아있었다. 혹은 내가 이제 이 눅진함을 크아- 하고 삼키는 나이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몇 알 들어있지 않아 소중하고 맛있는 순대는 귀하고도 맛있고 살코기도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새우젓으로 간을 하며 호록 호록 떠먹기에 딱이었다. 게다가 입이 심심할까 시켜본 탕수육이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세상 바삭하고 세상 쫄깃하고. 바삭과 쫄깃 그 사이를 유영하는 맛의 하모니. 또 다른 보양식으로 베를린표 탕수육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바삭하고 맛났던 탕수육

순댓국은 과거를 포용해서 맛나고 탕수육은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서 신이 난 순간이었다.

베를리너로 살게 되었다면, 혹은 잠시동안 베를리너의 삶을 체험하는 분들이라면 보양식이 고플 때 순댓국을 꼭 드셔보시길. 외국에서 끓여낸 또 다른 눅진함이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