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눈이 아파요. 큰 병인가요?
요즘 눈이 참 뻑뻑하다. 간헐적으로 시린 느낌도 계속이고. 계속 집중해서 보고 있어야 하는 행위를 해야 하니 피곤이 쌓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뭔가 이상이 생긴 것 같았다.
눈이 피로하니 머리도 아프고, 눈이 아픈 것 같으니 자꾸 곤두서는 이 느낌. 병원을 갈 때가 되었다.
안과 예약은 또 얼마나 오래.. 얼마나 영겁의 세월을 기다려야 잡을 수 있을까
도시가 크면, 사람도 많고 병원도 체감상 오천오백 개! 하지만 도시의 규모가 작아질수록 병원은 줄어들고 환자는 많아진다. 그러니 '새로운 환자는 안 받아요'하고서는 정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리는 병원이 백만 개다. 그래도 아픈 사람이 우물을 파야하니 주변 중형도시까지 검색의 범위를 넓혀 찾아보았다. 보통 어디가 아프면 가정의학과로 분류되는 1차 병원을 들렸다가 2차 병원으로 넘어갈 수 있는 소견서를 받아서 가기 마련이지만 안과는 예약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 그래서 냅다 전화부터 돌려보았다. 그런데 안된다고 할 줄 알았던 첫 번째 병원부터 '오키오키 오세욤' 하고 받아주는 것이 아닌가. 물론 2주는 기다려야 하지만.
독일에서 2차 병원을 가기 위해 2주 정도 대기하는 것은 뭐 아주 평이한 일이니 감사한 마음이 더 컸다.
기다리다 낫는다라는 말이 있지만, 이번에는 의사를 만나야 할 것 같았다. 괜히 마음이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의사를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 다가올수록 눈은 더 뻑뻑한 것 같았고 눈 주면 근육들의 긴장감과 피로도도 높아져만 가는 느낌이었다. 약 삼 년 전에 안과에 갔을 때에는 '안구건조증 + 눈의 기름샘이 잘 작동하지 않는 문제'라고 처방받았고 연고를 받았었다. 놀랍게도 증상이 호전되기까지 무척 오래 걸렸었다. 이번에는 문제가 무엇일지, 또 안구건조증이 온 것인지 꼭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 갔던 안과는 대기시간이 무척 짧았는데 대신 의사가 처방한 후, 필요하지 않으면 시력 검사는 해줄 수 없다고 했었다. 환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양해해 달라고. 따라서 이번에는 시력 검사도 받고, 안압검사 필요하다면 그 외의 검사들도 진행할 생각이었다.
요즘 독일에도 '병원 빌딩'이라며 온갖 의사들이 들어서있는 빌딩이 꽤나 생기고 있다. 주로 신축으로 생기는 아파트들 근처에 세워지는데 우리 집 근처에도 이런 거 하나 있으면 싶었다.
깨끗한 신축 건물 안으로 들어서서 이리저리 지도를 따라 안과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님도 보이고. 보통 독일 어르신들이 많이 있는 병원은 의사가 친절하거나 아주 화타인 경우가 있어서 마음이 좀 놓였다.
정말 피로해 보이는 데스크 직원에게 이름과 예약 시간을 말하며 보험 카드를 건넸다. 병원에 처음 방문한 것이니 문진표를 작성하고 대기실에 입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 항상 시선이 몰리는데 그럴 때마다 가볍게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는 문화는 꽤나 귀엽다고 느낀다.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자 각자의 방식으로 화답해 준다. 제일 큰 소리로 환영해 준 건 엄마와 동화책을 읽고 있던 아이였다. 소음을 유발하는 전화통화는 대체로 금지되고 다들 조용히 기다리고 있으면 간호사 혹은 의사가 이름을 부르며 환자를 호출한다. 전체 이름을 다 부르지 않고 '김 씨, 이 씨, 박 씨'등등 성만 부르기 때문에 대기실 문일 열릴 때마다 귀를 쫑긋쫑긋 기울여야 한다.
꽤나 친절하고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의사를 만났다. 독일은 의사를 만나기까지 정말 영겁의 시간이 걸리지만 막상 만나고 나면 꽤나 많은 시간을 할애받는 느낌이다. 의사는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나도 열심히 물어볼 수 있다.
'선생님, 저 눈이 너무 피곤하고 뻑뻑하고, 이물감도 느껴지고.'
하며 증상을 나열하자 심각한 표정으로 하나하나 문진표를 채워간다
'렌즈를 사용하나요? 안경을 쓰나요? 언제부터 그랬죠? 어디가 제일 불편하죠?'
눈을 뜨고 세상을 본 이래, 선글라스를 제외한 안경은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아 수경도 제외하고. 꽤나 좋은 시력으로 살고 있었는데 언제였을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시력검사에서 양 쪽 다 1.2의 시력으로 판명 났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며 시력도 꽤나 떨어졌을 것이 자명한 사실, 마지막 시력 검사가 언제였는지 묻는 말에 잘 모르겠다는 대답만 넘길 수 있었다.
그 길로 다른 방으로 안내되어 그 병원에서 처음으로 나에게 웃음을 보여주는 간호사를 만났다
'여기서 시력검사 할 거야. 근데 혹시 안압검사나 다른 검사도 하고 싶어? 그거는 공보험에 포함이 안되어서 네가 직접 돈을 내야 해. 검사 한번 해보는 거 추천해. 이거는 20유로 이거는 50유로야.'
50유로짜리 녹내장, 백내장 검사는 하지 않고 20유로짜리 안압검사만 하기로 했다.
커다란 기계에 눈을 대고 있더니 갑자기 바람이 퍄샥- 하고 나오는 게 아닌가. 놀라자빠질뻔했더니 간호가 민첩하게 허리를 받쳐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력 검사. 내 기억에는 이렇게 해 본 기억은 없었던 것 같은데. 양쪽눈을 사용해서 보이는 시력이 어느 정도인지 체크하더니 다시 의사에게 보내졌다. 내 기억 속 시력 검사는 한쪽눈을 커다란 숟가락 같은 것으로 가리고 점점 작아지는 숫자를 읽는 것이었는데 안과에 방문하지 않는 동안 세상이 많이 발전한 모양이다.
그러나 클래식은 건재한다던가. 의사에게는 '그 커다란 숟가락'과 작아지는 글씨의 시력 검사지가 있었고 예전 그 언젠가처럼 열심히 글자를 읽어나갔다. 그런데 항상 이 검진할 때 스스로 조심하려고 애쓰는 것은 자꾸 추론해서 떄려맞추려는 의지가 샘솟는다는 것.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세상을 살았나 보다.
오른쪽 왼쪽, 번갈아 가며 시력을 테스트하고 이것저것 문진을 마저 했다. 점점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의사의 표정을 보면서 또 무엇이 문제일까 하고 걱정이 되었다. 모든 검사가 끝났는지 차분하고 고요하게 검사지를 내려놓는 의사를 보며 말을 건넸다.
'왜 이렇게 눈이 피곤할까요? 안구건조증인가요?'
'그것도 조금 있기는 한데, 큰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에요.'
갑자기 본인의 찬장을 열더니 커다란 약을 건넸다.
'이거를 하루에 두세 번씩 눈에 넣어주세요. 촉촉하게 만들어줄 거예요.'
온갖 검사를 다 하고 받은 인공눈물이라니..? 이건 보험이 안된다면서 본인 병원에 상비하고 있는 약 중에 하나를 건네주었다. 앞으로는 약국에서 사야하는데 약사에게 추천받아서 적당한 가격 아무거나 넣어도 될거라면서. 이건 좋은거야 - 씽긋 웃으며 건네주는 호의를 받았다. 인공눈물은 감사하지만 이제 내 피로한 눈의 원인을 들을 차례였다. 얼결에 넘겨받은 약통을 손에 꼭 쥐고 다시 시선을 들자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처방을 내려주었다.
'안경을 맞추는 게 좋겠어요. 잘 안 보이는 것을 잘 보려고 집중하다 보니 눈 근육이 다 피로해지는 거라서요.'
'눈이 많이 나쁜가요?'
'그건 아닌데, 지금 현재로 불편해하니까 그럼 안경을 사용하는 게 좋죠. 난시도 조금 있으니까 아무래도 안경을 쓰는 것이 좋을 거예요.'
갑자기 안경을 처방받다니! 기껏해야 안구건조증 혹은 뭐 그런 것 일 줄 알았는데! 살면서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던 것을 사용하라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여상하게 하다니.
'그, 안경을 맨날맨날 항상 써야 할까요?'
뭔가 들어본 적 없는 질문이었는지 의사는 조금 웃었다. 그분은 자신의 안경을 추켜올리며 -봐야 하는데 안 보이면 사용하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남겼다.
약간은 얼떨떨한 상태가 되어 안과를 나섰다. 한국에서는 시력이 1.0, 1.2 혹은 마이너스 2 등등의 직관적인 언어로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굴절도가 이렇고, 시력이 이렇고, 난시가 저렇고 하니 머리가 팽팽 돈다. 아니 내가 안경을 안 사용하는 사람이었으니 그런 정보에 무지했던 상황이었다는 말이 더 맞겠다. 요즘 인류의 좋은 동반자이자 대답하는 백과사전인 AI의 도움을 받아 도대체가 내 눈이 어떤 상태인지 좀 더 알아볼 작정이다. 그리고 적어도 직장에서 사용할 안경도 하나 맞추고.
'선생님 눈이 아픈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뿌옇죠?'
'안경을 쓰세요 환자분.'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