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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대문 Jan 28. 2023

새벽 세시, 비자를 받으러 나갔다.

끔찍한 성공률, 비켓팅.

목도리도 두 개나 둘둘 싸매고, 옷도 한겹-두겹-세겹 아주 있는 대로 껴입없다. 상의고 하의고 할 것 없이 얼마나 두툼해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생각하며 몸집을 세배로 불렸다.


세벽부터 오들거리며 서 있으려면 이정도는 필수였다. 입에서는 쉴 새 없이 – 아휴 이 독일놈들- 하는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메일도 답장을 안해, 전화도 안받아, 비자청 자리도 안 열어. 아- 어쩌란 말인가 이 타는 가슴을.

      

독일에서 사는 삶 어떤지 궁금하세요? 이쯤해서 한번 말씀드리자면 생각보다 그지같습니다.




특히 나의 필요의 때과 그들의 공급의 때가 맞지 않을 때, 한없이 늘어지는 이놈들의 머리카락을 한올 한 올 붙잡아다가 일하라고 의자에 앉혀놓고 싶은 심정이라서.      


외국생활이란, 감히 한마디 얹어보자면 생각보다 그지같고, 생각보다 행복하다는. 그런 이야기가 되겠다. 여튼 각설하고, 들어나 봤는가 세상에서 가장 극악의 성공률을 자랑하는 비켓팅.     


티켓팅도 아니고, 연휴에 고향가는 기차료를 잡는 기켓팅도 아니고, 내가 이 나라에 발 붙이고 살겠다는 인증을 받으려는 이 비자테어민 잡기는 거의 전쟁이나 다름없다. 학생때 수강신청하면 원하는 과목에 착착 잘 안착하던 과거가 있었기에 사실 이 비켓팅도 자신이 있었다. 철이 없었죠. 손가락만 빠르면 비자청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던게.     


이게 왜 이렇게 사람의 정신을 쥐고 흔드느냐면, 언제 어느 순간 어떤 날에 자리가 열리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회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 사이 아침 7시부터 대충 저녁 언젠가 까지. 언제 열리는지 얼마나 열리는지 아무것도 모른채 비자가 급한 이들을 컴퓨터와 핸드폰에 눈을 박아 넣고 의미없는 새로 고침을 계속 하게 만드는 것이다.      


홈페이지는 계속해서 ‘자리가 없지롱-다음에 다시 시도하던가’라는 아주 시뻘건 경고문만 내보내고.     

그러면 비자 마감이 아주 다가오기 전에 여유롭게 잡아두면 되지- 싶겠지만. 언제가 됐든지 비자청에 자리가 없는 것은 여전하다. 그것은 내일이 되어도 어제가 되어도 오늘이 되어도 매일매일 일어날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건 내 상황이 학생이어도, 직장인이어도, 프리랜서여도. 모두에게 공평하게 자리가 없다. 비자 앞에 만인평등.     


여튼 그래서 비자가 만료되기 한 3,4 개월 전부터는 슬쩍슬쩍 비자청 홈페이지를 찔러보는 편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시기가 왔다. 항상 비슷하게 준비하면 해 낼 수 있었던 일이 거대한 벽이 되었을 때의 좌절감이란.     


이렇게 불법체류자가 되는건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에이 이러다가 일주일 전에는 잡히겠지, 에이 이러다가 하루 전에는 자리가 나겠지. 하고 애써 마음을 다독여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독일 산지 꽤 되었던 시점이었지만 한번도 비자를 위한 약속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약간의 좌절과 자괴감에 허우적 거리는데 친구가 손을 내밀어줬다. ‘나는 새벽에 줄 서본 적이 많다. 함께 가주겠다.’     


그때 친구의 모습 뒤로 후광이 비췄다. 아 진짜로.      


그렇게 두 외국인은 외국인인 죄로, 멀쩡한 비자를 받기에 부족함 없는 모든 서류를 들고서 불법체류자가 되지 않기 위한 여정을 나섰다.


비자청 앞에 새벽부터 줄서서 비자받은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었지만, 그 안쓰러운 성공신화가 내 이야기가 될 줄이야. 그때 느꼈던 것은 ‘학생비자 약속 잡기가 좀 더 수월하다.’는 것과 ’사회는 어느 나라나 차갑구나.‘였다.     


사회의 차가움인지 날씨의 차가움인지. 하필이면 초 겨울로 접어들던 그 날의 공기. 살을 에이는 추위. 그렇게 집을 떠난 지 어언 1시간 만에 4시에는 비자청을 지키는 거대한 철문 앞에 줄을 설 수 있었다.

나는 이 시간이면 내가 일등일줄 알았다. 내 앞에 열명도 더 되는 사람들이 낡고 지친 얼굴로 서 있을줄은 정말 몰랐다.      


나도 그 낡고 지쳐가는 대열에 합류했다. 기분이라도 좀 밝아져 보고자 따뜻한 차와 약간의 먹을 것도 싸왔다. 순전한 호의로 새벽 줄서기 대열에 합류한 친구는 속도 없이 웃으며 차를 받아 마셨다. 멀리서 동이터오는 게 보였다.

아 정말로 인생이든 현실이든 해뜨기 직전이 가장 춥더라.

비자청을 지키는 경비원들도 출근하고, 그러면서 너무 문에 바짝 달라붙지 말라는 엄포를 놓았다.  아무도 그 앞에 달라붙어 있지 않았는데도!

   

왜이리 눈을 부라리면서 말하는지 정말 모르겠는데, 이렇게 찬바람 맞으며 오들거리다 보니, 이제 온갖 것들이 서러워졌다. 내가 왜 내 나라를 뒤로하고 이 먼먼 외국땅에서 이렇게 천대받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도대체 이 꿈이 뭐길래, 나를 이렇게 찬바람 맞게 하는가. 애매하게 발을 들인 나의 네버랜드는 더 이상의 온기가 없는 듯 했다.


뒤돌아 보니 사람들이 까맣게 몰려들었다. 학생때의 비자 업무를 담당했던 곳과는 건물도, 위치도 다른 곳, 즉 ’외국인청‘에서 이제 나의 비자를 관리한다.  이쪽은 취업비자, 프리랜서 비자를 비롯하여 난민, 이주, 영주권 등의 여러 업무를 다 담당하다보니 모여드는 사람도 각기각색이었다. 변호사와 어깨동무하고 기다리는 사람부터 이 추운 날씨에 얇은 옷 하나를 걸치고 온 사람, 아니 이게 다 뭐야- 하면서 바로 발길을 돌려 집으로 가는 듯한 사람.

     

나는 꽤나 앞 순서였기 때문에 뒤에 온 이들을 여유롭게 구경이나 했지만, 해가 뜨고 나서 도착한 이들은 초조한 모습을 숨기지 못 한 채 사람들 수를 어림잡아 세어 보는 듯 했다.     


“자 이제 문 열게”

“절대, 절대 뛰지 마”

이제 비자청이 업무를 시작할 시간이 되었는지, 거대한 철문을 향해 다가서는 경비원들이 눈을 더 부릅뜨며 이야기 했다.


뛰지 말라니? 그 말은 참으로 역설적으로 ’뛰어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아니 평화롭게 줄 선 상태 그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뛴다니?     

생각을 채 다 갈무리 하지 못했는데 철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고. 내 뒤에 있는 이들이 용수철처럼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어? 어? 뭐야?”

“야 뭐해- 뛰어”

나를 치고 지나가는 두어명의 인파에 넋이 나가는데 친구가 팔꿈치를 휘딱 잡아 끌며 말했다.


“뛰라고-!”     


그 순간 경비원들 너다섯명이 큰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뛰지마! 뛰지마”

“뛰는 사람 다 잡아낸다! 오늘 비자 못 받을줄 알아!”

“뛰지 마! 걸어!”     

튀어나가려던 다리를 간신히 붙들어매고 몸이 위로 솟아오르지 못하게 꾹꾹 땅에 발을 박아 넣으며 앞으로 전진했다. 벌써 다섯명에게 추월당했는데! 억울하게도 경비원들이 이제는 눈을 부릅뜨기 시작해서 경보로 걷는척 달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친구는 내 뒤에 바짝 붙어서더니 앞으로 가로질러 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인간들을 은근히 방해했다. 그렇게 걷는 듯 달리는 듯 3개로 나눠지는 비자청 건물중 나를 담당하는 쪽으로 빠르게 속도를 높혔다. 역시나 이 앞에도 줄이 한 가득이었다. 그와중에 나를 추월했던 놈이 숨을 고르며 맨 앞에 서 있는 꼴을 보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설상가상으로 내 뒤에 도착한 커플은 계속해서 나를 배제하고 새치기 하려는 듯이 구는 것이 아닌가. 잠시 고개를 돌렸다가 보면 몸을 더 내밀면서 내 앞으로 선다던지, 발을 자꾸 앞쪽 공간으로 밀어 넣는다던지 하면서. 결국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내가 너네 앞에 있어. 기다려‘ 하고 말을 하고 나서야 그 짓을 그만 두었다.     

그렇게 간절한 놈들이 남의 간절함보다 앞서려고 하다보니 큰소리도 여기저기서 여럿 터졌다. 내용은 결국 ’내가 앞이잖아!‘ 든지, ’밀지 마!‘ 같은 것들이었다.      


이윽고 비자청이 열리더니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차가 나왔다. 또 다른 경비원이 천천히 자를 나눠주며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을 전했다. 아니 차 말고 번호표를 주세요. 이게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던지 내 앞에 있던 이는 차를 받아들며 황망하게 ’아니 번호푠는?‘ 하며 질문을 던졌다.     

“곧 나올거야”

차를 나눠주던 이가 말을 하며 사라졌다. 받아든 차를 홀짝이고 있자니 곧 마리를 빠글하게 말아올린 직원이 나와서 번호표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99라고 적힌 빳빳하고도 낡은 종이를 받아들었다.

     

다들 얼마만큼의 간절함으로 이 번호표를 받아들었을까. 이 나라에서 내가 일하고 살기에 얼마나 가능성있고 멀쩡한 인간인지 또 보여줘야 할 차례라니.


그렇게 고상과 울분에 찬 음성들을 뒤로하고 잔뜩 낡아져서 비자청 건물 안으로 들어가 시간을 보니 9:30분이었다. 장장 6시간동안 이놈의 비자를 받겠다고 아우성을 쳐댄 것이다.


외국인으로 외국에 사는 첫 관문이자 끝나지 않는 시험대. 비자.

그런데 지금 이 이야기를 왜 하냐고?


오늘로부터 한달 남은 비자 만기일과 영원히 잡히지 않는 비자 연장 약속 때문이지.

내가 성공적으로 나의 쓸모를 증명하여 비자를 받은 뒤 후기로 돌아오도록,

다들 나의 비자 예약 성공에 마음속으로 건투를 빌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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