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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대문 Jul 18. 2023

(바라건데) 나의 마지막 비자 일지 -2

뜻밖의 도움

사실 경비원을 지나쳤다- 라는 말이 아주 스리슬쩍 인사를 보내며 지나갔다는 이야기 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비자청의 첫 번째 통과선은 바로 경비원이다.


삼삼 오오 모여 커피한잔을 하거나 짤막한 수다를 떨며 허허 웃는 사람들처럼 보여 마음을 놓고 있다가는 시간이 지체되기 십상이다.


그 착해보이는 사람들의 임무는 ‘요놈이 약속을 하고 왔는가, 그게 오늘이 맞는가, 알맞은 주소로 왔는가, 예약자가 이놈이 맞는가’ 등등을 확인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중한 나의 개인정보를 그러모아 여권과 함께 가방속에 차륵 담아놨다면, 진땀 빼며 성공한 비켓팅 확인 이메일을 두 부 정도 프린트 해가는 것이 좋다.

그게 아니라면 아이구 아이구 하면서 가방을 뒤져서 예약확인서를 보여를 주네, 서류가 날아를 가네, 하면서 한바당 난리가 인다.


한 부는 소중한 개인정보들과 함게 서류철에, 나머지 한 부는 고이고이 접어서 주머니, 혹은 가방 앞쪽에 넣어뒀다가 경비원을 만나서 착 보여줘야한다.

그러면 이리저리 확인해보고 여권을 보자- 하거나, 통과! 를 외쳐주기 때문.


그동안의 경험을 발판 삼아 꼬깃하게 접어온 예약 확인서를 들이밀고 성공적인 통과 싸인을 받아 안쪽으로 들어갔다.


제대로된 예약 확인서에는 WarteNummer(대기번호), 그리고 Warteräume(대기실) 정보가 촤르륵 적혀있기 마련이다.


몇층, 어디로 가라는 것 까지 잘 적혀있는데, 독일식 층수는 한국보다 한층을 더 올라가야 한 다는 것만 잘 기억하면 크게 어려울 것이 없다

- 독일은 한국식 1층이 땅층, 즉 0층으로 불린다. 한국식 2층은 독일식 1층이 되는 것!-


그렇게 2층으로 (한국식으로 3층을) 올라가면 걱정근심이 가득한 사람, 기다림에 지친 사람, 변호사랑 중얼거리는 사람 등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여기 저기 젖은 낙엽처럼 앉아있다. 비자를 받는 다는 것은 모두에게 필연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다보니 참 다들 그러하다.


높이 달려 있는 모니터에는 “띵동”하는 알림음과 함께 대기번호가 나타난다.

명확한 순서 없이, 숫자로만이루어진 대기번호, 혹은 알파벳이 섞인 대기번호가 산발적으로 나타나는데, 그걸 보고 내가 제대로 온 것이 맞나!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이유는 없다.

그 산발적인 대기표는 새벽부터 줄서서 대기 표를 받을 사람들을 인터넷으로 예약잡은 사람들 사이사이에 끼워넣어주기 때문이며, 종종 오랜 심사 시간이 필요한 이들을 대기실로 내보냈다가 다시 부를 때도 그 화면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손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멀쩡한 직원을 만나기를’ 기도하고 있으면 된다.


그리고 혹시나 비자에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면, 가지고 있는 온갖 공식적인 서류란 서류는 다 모아가면 비자청 직원이 쏙쏙 골라서 확인할 수 있다.


모자라는 것보다는 넘치는 것이 낫다. 나는 저저번 비자 심사 때 부터 직원들이 더 이상 Anmeldung(전입신고서)는 확인도 안하지만 항상 들고 간다.

오늘의 심사관은 갑자기 한번 확인하고 싶은 열망이 일어날 수 도 있으니까.




예약시간이 가까워져 눈을 모니터에 고정하고 있자, 내 대기번호와 함께 몇번 방으로 오라는 안내가 나타났다.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서 심사가 이뤄지는 방으로 들어갔다.


보통 심사가 이루어지는 방 안에는 두명의 직원이, 많으면 세명까지 일하고 있다. 직원들 끼리도 서로 모르는 정보가 있으면 가볍게 질문을 던지거나, 혹은 다른 직원을 불러주기를 요청하기도 한다.


이번에 나를 심사할 직원은 친절해보이는 젊은 직원이었다. 입꼬리를 부들거리며 밝은 척 인사를 건네고, 직원은 나에게 ‘기존의 비자를 연장하는게 맞는지’ 한번 더 확인차 물어보았다.


그러고 가방을 열어서 정리해간 서류들을 꺼내는데 엄청난 소리와 함게 문이 열어젖혀졌다.

‘꽝!’


나는 서류를 넘겨주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고, 직원은 내 서류를 넘겨받으면서 펄쩍 뛰어올랐고, 옆자리 직원은 몸을 잔뜩 움추러뜨린채 귀를 막았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거대한 거구의 사나이가 벽에 부딧혀버린 문짝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멋쩍게 사과를 건넸다. 약간 나이가 있어보이는  외국인이었다. 그는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땅이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내 옆, 그러니까 다른 직원 앞에 앉았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나의 비자 심사에 집중하려는데

’내 이름은 아르코야‘

하며 방을 울리는 목소리가 옆자리에서 터져나왔다.


몸이 거대한 사람, 행동이 커다란 사람, 그는 성량도 엄청난 사람이었고, 그를 제외한 우리 셋, (두 명의 심사관과 나)는 상대적으로 개미목소리들이었다. 그는 이전에 받았던 비자에 대해서 이래저래 할 말이 많은 사람이었고, 서류로 그것들을 증명하고 정리하기 보다는 이야기를 통해서 상황을 좀 진전시켜보고 싶은 소망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내 비자 심사관과 나는 그 옆자리 거구의 사나이의 목소리가 잦아들 때 재빨리 소통을 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깍깍 거리는 작은 목소리는 그의 목소리에 묻혀서 조금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예를들자면

심사관 :‘그러니까 너가 저번에 -…??’

아르코 : 아니, 이거는 너무 불공평해!

나 : 응..? 나 저번에..?


심사관 : 여기 ..? 를 보면..?

나 : 어? 뭘 봐?

아르코 : 내가 저번에 받은 비자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야!


나 : 안들렸어. 다시 말해줄래?

심사관 : (절레절레).. 뭐라고?

아르코 : 이건! 말도 안되는 처사라고!


하는 꼴이 되었던 것이다.


나와 내 심사관, 그리고 아르코의 심사관은 점점 말을 잃어가고, 아르코를 본인의 상황을 설명하다보니 점점 화가 났는지 가뜩이나 컸던 목소리가 거의 소리치는 지경에 이르르고 있었다.


그를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아르코의 심사관은 최대한 그에게서 조금이라도 떨어지고 싶었는지 책상 끄트머리에 간신히 매달려 서류를 보고 있었다.


내 심사관은 몇번이고 나에게 질문을 건넸지만, 중요한 단어들마다 아르코에게 집어 삼켜졌고, 상황을 유추해서 대답하는 내 대답도 아르코에게 잡아먹혔다.


심사관은 나중에

‘이 서류가 필요한데’

하고 중얼거리며 날 쳐다보다가

‘이번에는 괜찮아, 필요없어.’

하고 혼자서 묻고, 답하고, 해결하기에 이르렀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그의 뻐금거리는 입을 들여다보다가

‘이게 필요해?

하고 서류를 넘겨주면 그는 기가 잔뜩 빨린 표정으로 의미없이 종이를 팔랑 팔랑, 넘기고는 ’응 좋다 좋아‘하고는 다시 돌려주었다.


그는 아르코가 숨을 몰아쉬는 사이, 랩퍼라도 된 듯 나를 향해 자신의 모니터를 확 돌리더리 모든 설명을 와르르륵 쏟아내었다.


’자! 나는 너에게 성공적으로 비자를 연장해준다는 소식을 알려줄게!,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아르코가 다시 입을 열었기에 나는 눈을 좀 더 동그랗게 뜨고 심사원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그는 고개를 한 번 더 절레절레 흔들면서 ‘싸인하라고!’라는 말을 한 세번정도 나에게 전했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코로나 시대의 산물인 투명 플라스틱 가림막이 있었고, 결국 그는 얼굴을 가림막 바깥으로 빼더니 “싸인!!!”하고 외쳤다,


하지만, 나도 이미 내 정보가 화면에 뜨는 것을 보고 순식간에 싸인을 했던터라 삐져나온 그의 얼굴에 대고

“했다고!”

라고 소리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우리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 느껴지자 조금 잦아들었던 아르코의 목소리는 다시 고점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한번 천둥같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내 심사원은 흰자를 도르륵 굴려가며 나에게 ‘너는 이제 나가’ 하며 축객령을 내렸다.

아마 그 방안에서 떠드는 목소리를 하나라도 줄여보자는 심산인 모양이었다. 앞으로 독일에서 살아갈 몇년간의 거주허가증의 영수증을 손에 달랑 들고 문을 나섰다. 대략 100유로의 돈으로 또 이 나라에서 나를 증명하는 시간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심사관은 영수증을 넘겨주며 미소와 함께

‘다음엔 영주권도 가능해, 너가 관심이 있다면!’

하고 호의를 담아 마지막 정보를 전달해주었다.  


나는 그 친절한 얼굴에다가 대고

‘뭐라고? 안들려!’

라고 또 외쳤고.


그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영주권! 다음에!’

하는 티키타가의 끝을 달린 날이었다.


아 이름모를 아르코.

닫힌 문 뒤로도 그의 쩌렁한 목소리는 울분을 담아 복도를 웅웅 울려대고 있었다. 당신의 성량이 모두의 혼을 빼놓고, 나에게는 성공적인 영수증을 줬어요. 고마워요. 당신의 비자도 성공적으로 해결되기를.


비자를 받는 데에는 이렇게 이름모를 도움도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 독일에서 살가는 외노자 여러분,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이름모를 도움들이 한가득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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