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움, 뭐 어때서

무게를 잴 수 없는 감정들의 서사

by seoul

가벼움의 미학 I – 이단아의 기술
ㅡ 무게를 잴 수 없는 감정들의 서사


나는 어디에서나 이단아였다.
가족에서도,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넌 생각도 안 하고 그리는데, 참 잘 그린다.’
미대 시절, 친구가 무심히 던진 그 한마디는 오래 남았다.
하지만 그 말이 얼마나 틀렸는지, 그들은 모른다.
나는 언제나 그리기 전부터 이미 다 그려놓은 사람이었다.

머릿속에서 형태를 세우고, 구조를 계산하고, 색의 방향을 정리한 뒤에야 펜을 든다.
그래서 내 그림은 빠르다. 그러나 절대 ‘대충’이 아니다.
나는 생각하고 그리기까지의 시간을 압축해 온 사람이다.
그건 훈련이자 생존이었다.

입시미술, 자격시험, 4시간 혹은 6시간 안에 완성해야 하는 세상.
거기선 느림은 낭만이 아니라 탈락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의 속도’를 훈련했다.
눈으로 보고, 머리로 완성하고, 입으로 설명하고, 손으로 구현하는 과정.
그건 예술이라기보다 일종의 구조적 사고였다.
나는 늘 완성에서 시작했다.

그 덕에 강사가 되었고, 또 강단 위에서 그걸 설명해야 했다.
학생들에게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전달 가능한 기술’이 필요했다.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그림은 결국 미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그림은 입으로, 머리로, 손끝으로 완성된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나는 ‘형식’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저 쓰고 싶은 말을 썼고,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걸 좋아했다.
‘너는 니 멋대로 쓰잖아. 또 빠른데 실수도 많이 하지. 그게 날것의 매력이야.’
그 말은 칭찬 같았지만, 사실은 경계의 말이었다.
누구는 배운 글을 쓰고, 나는 날것을 썼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날것이란, 가장 오래 익은 것이다.

그건 그저 가볍게 툭 던진 글이 아니라,
머리에서 이미 완성된 생각이 손끝으로 스며든 결과였다.

최근 나는 두 시간 만에 완성한 작품으로 우수상을 받았다.
운이 아니었다. 몰입이었다.
순간의 집중이 모든 걸 관통했다.
가벼운 터치 같지만, 그건 오랜 무게 끝의 자유였다.
‘가벼움의 미학’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무게를 견뎌본 사람만이 얻는 가벼움의 기술.

라인 드로잉도 마찬가지다.
한 번의 선으로 그려야 한다.
실수하면 찢어진다. 되돌릴 수 없다.
그건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기억과 감각의 합작이다.

나는 한 번 꽂히면 지칠 때까지 몰입한다.
그게 나의 장점이자, 가장 큰 단점이다.
다 타버릴 때까지, 다 써버릴 때까지 끝을 본다.
그래서 늘 소진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끝에서 나는 살아난다.

세상은 나를 ‘이단아’라 부르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건 틀에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틀을 스스로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가벼움의 미학 —
그건 대충의 미학이 아니라,
끝까지 생각하고 난 뒤의 가벼운 확신이다.
완성에서 시작하는 사람만이,
진짜 가볍게 날 수 있다.

가벼움은 깊이의 반대가 아니다.
그건, 무게를 견딘 자만이 얻는 자유의 질감이다.



#생각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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