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의 미학을 거부하는 시간
가벼움의 미학 Ⅳ – 느리게, 그러나 정확하게
ㅡ 조급함의 미학을 거부하는 시간
나도 해봐야 안다.
오더가 떨어지면, 나는 먼저 움직였다.
완성물을 전달하기까지는 늘 모험이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고,
그 모험을 감행하는 역할이 늘 나였다.
조급함을 달래기 위해
나는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였다.
다행히 SNS에서 본 정보들이 도움이 되었다.
회의 테이블에 도면과 샘플을 펼쳐두고,
나는 가능한 방향을 모두 열어두고 설명했다.
실물 샘플, 원단 스와치, 누끼 이미지,
시안 A, B, C, 그리고 급하게 만든 D안까지.
준비된 선택지는 충분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늘 같았다.
> “아니, 이건 아니야. 좀 더 예쁜 걸로.”
‘예쁘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질문할수록 대답은 모호해졌다.
> “그냥… 감으로 알잖아.”
감으로 알 수 있었다면
SNS 검색에 매달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밤새 시안을 다시 만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정확한 요구 없이
정확한 답을 요구하는 구조.
그리고 결국, 모든 책임은
손을 움직인 사람에게 돌아온다.
빠른 시간 안에, 빠르게,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그건 분명 다행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게 아니야’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무엇이 ‘아닌지’ 말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시작했다.
뭐가 나오든 보자,
결과가 말하게 하자,
그렇게 또 밤을 지샜다.
그리고 돌아온 말은
언제나 같았다.
“오랫동안 쉬었으니 많이 봐야 돼.”
그 말은 빠르지 않아서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확하지 않아서의 문제도 아니었다.
애초에 요구가 없었다는 뜻이었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어떤 결과도 정답이 될 수 없다.
조급함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방향의 문제다.
방향 없는 속도는 허망하다.
그건 노력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의 실패다.
그래서 나는 이제
조급함의 미학을 거부하려 한다.
빠르게가 아니라, 정확하게.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아무거나가 아니라, 분명한 것 하나로.
나는 속도를 줄이기로 한다.
느리게, 그러나 정확하게.
그것이 나의 가벼움이고,
내가 앞으로 지킬 방식이다.
#지시만있으면좋겠다.
#지시없는요구
#미결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