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내기 기술

버리는 게 아니라, 비워내는 일

by seoul

가벼움의 미학 III - 덜어내기 기술

ㅡ 버리는 게 아니라, 비워내는 일


화요일 연재일을 놓쳤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잠깐의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긴장된 하루의 연속 속에서,
화요일이라는 감각마저 지워져버렸다.

그 순간 다시 느꼈다.
채움보다 비움이 더 어렵다는 것을.
적응으로 채우려 했으나,
사실은 비움으로 메워야 했던 하루하루였다.


대기업이 실천하는 덜어냄의 미학과 패션 디자이너의 현실

대기업은 어쩌면 덜어냄의 미학을 가장 집요하게 실천하고 있는 조직인지 모른다.
한 제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수많은 아이디어가 올라왔다가 떨어지고,
수백 번의 회의와 협상, 압축과 삭제를 거친다.
초기 기획 단계에서만 해도 인스피레이션, 컨셉설명, 무드페이지, 페르소나, 마케팅 포지셔닝까지
수십 개의 파일과 수백 장의 스케치가 테이블 위에 펼쳐진다.

그러나 그 모든 풍성한 데이터는
기획이 진행될수록 하나둘 덜어지기 시작한다.
대담한 디자인은 원가에 막혀 잘려나가고,
감성적인 디테일은 생산성과 효율성 앞에서 무너진다.
그리고 결국 ‘이 정도면 시장에서 먹히겠지’ 하는
가장 안전한 타협점만 남는다.

결과적으로 티셔츠 한 장에 모든 게 응축된다.
디자이너의 영감, 무드보드에 붙어 있던 수많은 조각들,
브랜드의 방향성과 스토리, 그 모든 건 반복되는 회의 속에서 삭제된다.
붙이고 붙이고 또 붙였던 디자인의 확장된 데이터는
원가를 맞추기 위해 탈탈 털려 사라지고,
최종적으로 남는 것은 가슴 왼편 작은 로고 하나.

그 로고는 모든 것을 말한다.
삭제된 디자인의 무덤,
타협의 흔적,
덜어냄 끝에 남은 최소한의 본질.

대중은 그 제품을
‘비싸서 의미 있는 것’,
혹은
‘싸서 가성비 있는 것’
으로 소비한다.
대기업이 덜어낸 결과물을
가격으로 판단하며 손에 쥔다는 말이다.
대중은 결과만 본다.
보여지는 완성과 창작의 압축된 덩어리만 본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수정과 회의, 삭제와 전쟁이 있었는지 모른다.
아니,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패션 디자이너로서,
그 구조의 한가운데서 살아왔다.
누군가 뜨거운 박수로 디자이너를 예술가라 부른다.
그러나 기업 안에서의 디자이너는
예술가가 아니라 원가를 계산하는 사람이다.

생산 가능한 디자인, 이익이 남는 디자인,
시장 트렌드를 따르는 디자인을 만드는 사람.

나는 예술적 완성도를 지키고자 오래 싸웠다.
그러나 현실에서 나는 어쩌면
원가 절감에 무능한 디자이너로 보였을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생산 조건을 고려하지 못하고,
회사 입장을 배려하지 못하고,
세상을 놀라게 할 히트 아이템 하나 만들지 못한 디자이너.
그들의 기준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은 무능이 아니라 방향의 차이였다.
나는 덜어냄의 미학을 단순한 절감의 기술이 아니라,
본질을 남기는 예술의 언어로 바라보았다.
대기업이 숫자로 삭제한다면
나는 감각과 생각으로 삭제했다.

처음부터 완성에서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
빠른 몰입과 압축된 사고가 가능했던 이유,
한 번의 선으로 형태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도 같다.
나는 이미 머릿속에서 끝까지 완성한 뒤
손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가벼움은 대충이 아니라,
이미 지나온 무게를 정제한 결과다.

대기업은 원가와 시장의 언어로 덜어내고,
나는 예술과 감각의 언어로 덜어낸다.
둘은 모양만 다를 뿐 같은 철학을 가진다.

가벼움이란, 남기지 않아도 남는 것들이다.
삭제했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버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짜 본질은 압축과 삭제를 통과해도 남는다.

티셔츠 왼편 로고 하나처럼.
한 줄 라인 드로잉처럼.
2시간 몰입에서 완성된 작품처럼.


가볍다는 건 비어 있다는 뜻이 아니다.
가벼움은 무게를 견딘 자만이 도달하는 마지막 상태다.
나는 그렇게 완성한다.
삭제 속에서 생존하고,
덜어냄 속에서 빛나는 사람으로.



#가벼움의미학 #덜어내기기술 #비우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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