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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안다는 것

능소화와 해오라기의 이름을 부르며 느끼는 마음

by Swimmer in the Forest

능소화가 능소화인 것을 나는 언제쯤 알았던가. 확실히 대학시절은 아니었다. 그 시절에는 꽃이고 나무고 새고 뭐고 관심이 없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싫어하는지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일을 하면서부터겠다. 꽃을 보고 나무를 보고 이름을 알고 싶어했던 것 말이다. 나는 능소화가 능소화인 것을 알고 난 이후 이 꽃을 더 좋아했다.

5월 장미로 들썩이던 시즌이 지나고 나면 언제인지 모르게 능소화가 폈다. 능소화는 여름이 왔다고 알려주는 것 같아 여름을 좋아하는 나는 능소화가 좋았다.


언젠가 병원에 다녀오는 길, 발에 무언가 툭 떨어져 보았더니 능소화가 떨어졌다. 어디서 날아온 것인가 두리번 거리니 저 길건너 편 담장에 이제는 얼마남지 않은 꽃 몇 송이가 위태롭게 달려있다. 저기서부터 날아온 것일까.



온실에서 자라고 꽃집에서 깔끔하게 디스플레이 되어있는 꽃이 아니라 길에, 담장에, 강변북로에 아무렇게나 잘 피는 꽃이라 좋다. 여름 내내 잘 버티는 꽃이라서 좋다. 선명한 주황색이 나의 퍼스널컬러(?)라고 생각하기도 하고...후후


작가의 시작, 바버라 애버크롬비

하루에 한 페이지씩 필사하는 책에 '이름을 안다는 것'에 대한 짧은 글이 있었는데 그 글을 읽고 능소화를 떠올렸다. 능소화가 능소화인 것을 알게 되어 나는 땅과 더 가까워졌다. 되지빠귀와 해오라기의 이름을 알고, 나는 그들이 살아 갈 서식지에 대해 생각한다. 베르네천에서 만난 해오라기는 여름을 이 동네에서 잘 났을까. 너무 거친 환경은 아니었을까. 이런 염려를 하게 된다. 내가 해오라기의 이름을 몰랐다면 그런 염려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 많은 꽃과 새와 동물의 이름을 알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부르고 싶어지는 것이다.

해오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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