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지독한 장마 속에 시작된 장편 소설입니다. 그즈음 저는 지구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예감하며 나날이 우울해지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그리고 제 안에는 늘 자라지 못한, 사랑만이 넘치게 필요한 한 아이가 있었고, 저도 몰랐던 반짝거리게 아픈 그 아이는 어느 날 칠일 간 비 내리는 세계에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집필 기간만 10여 년. 저는 그 아이를 아직도 구원 중입니다. 이 소설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제 세계관과 함께 몸살을 앓으며 제 뱃속에 잉태 중입니다. 낳지 못해 화석이 되어가는 고통. 제가 제 운명의 소용돌이에 착실하게 휘둘려 사는 동안 부지런하고 똑똑하고 운도 좋은 훌률한 작가 분들이 신, 신의 물방울, 신과 함께 등, 신이라는 존재와 함께 인간의 전생관 등이 나오는 대단한 창작물들을 세상에 내놓으시는 걸 보면서 저는 제 부족한 재능과 게으름과 어리석음과 운 없음에 몸부림쳤었습니다. 그럼에도 2024년 11월, 수없이 실패했던 시도를, 노력을 또다시 5년 만에 도전해 봅니다. 부디 부족한 저와 함께 여러분이 그 아이를 사랑해 주세요.
여는 글
시작과 끝을 헤아리려 드는 일이 부질없는 곳.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여기는 그곳에 수많은 길이 나 있었다.
그리고 그중, 네 개의 길이 보였다.
한 번은 보았음직한 길들.
한 길은 갓 틔운 잎처럼 반짝이며 싱그럽고 푸르렀으며
한 길은 물 위에 뜬 태양처럼 뜨겁고 붉게 일렁였으며
한 길은 빛의 숨통을 끊어 낸 듯 검었으며
마지막 남은 한 길은 티끌만 한 영혼들의 진조차 잊지 않고 거둔 듯
우울한 회색 안개만이 충만한 얼굴로 부유하는 길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길이 하나의 땅에 나 있었다.
한 날, 누군가에겐 더 이상 새롭다, 새롭다 할 것이 없어 새것이 없는 날 즈음에
어떠한 길과도 상관없이 신의 총애를 받는 만 가지의 눈이 최고신께 물었다.
<신이시여, 당신은 왜 그리 화가 나 계십니까?>
신은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신이시여, 당신은 왜 그리 슬퍼 보이십니까?>
신은 답하지 않았다.
<신이시여, 당신은 무엇을 그리 바라보고 계십니까?>
신은 여전히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만 가지의 눈은 두려움에 떨며 신께 물었다.
<신이시여, 당신은 어째서 제게 그 입술을 보이지 않으십니까...?>
신이 답했다.
<너의 물음이 처음부터 틀렸기 때문이다. 나는 꿈을 꾸고 있다. 꿈이 정녕 깨어지는 날, 내가 먼저 그들의 의식에서 새롭다, 새롭다 하는 그 오랜 착각의 즐거움을 끊으리라.>
그러나 만 가지의 눈, 그는 꿈을 꿀 필요도 꿈을 꿔 본 적도 없었기에 별스럽지 않은 듯 다시 천상을 뛰어놀았다.
1부 1장
멈추지 않는 세계
한 세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신이 있다면, 신의 저주인지 아님 그저 불행인지 모를 비가 한 세계에 멈추지 않고 내리고 있습니다. 칠일 간의 비가 내리다 팔일 째의 단 하루가 맑은 그 세계는 자연이 태초에 허락한 것 외엔 인간이 가꾸는 무엇도 지속되거나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세계였습니다. 칠일 간의 비가 내리다 팔일 쨉의 단 하루가 맑은 날이 보여주는 세상은 더없이 찬란하고 눈부셨지만, 그 세계에 사람들은 비 내리는 칠일보다도 팔일 쨉의 단 하루 맑은 날을 더 고되고 힘겹게 보냈습니다. 비가 그친 세상에 꽃은 피고 새들은 울었지만, 비에 젖은 삶을 그날 하루에 다 말리고 이어가야 하는 그들에게는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가 거짓말처럼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과 좌절을 통해 자신들의 세계가 인간이 살기에는 비의 악조건을 모두 갖춘 행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죠.
1부 1장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는 아이
그런 외로운 땅에 한 아이가 살고 있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는 아이'
무엇도 오래 기억하지 못하고 뭐든 잘 잊고 잃어버리는 아이를 보며
사람들은 그렇게 이름 붙였고, 사람들에게 아이는 시작이 언젠지도 모르고
변하지도 않는 이 세계의 비처럼 그런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저기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는 아이가 온다!”
아이를 본 한 사내아이가 손가락을 치켜들며 소리쳤죠.
“쉿! 조용히 해!”
사내아이의 엄마가 사내아이의 등짝을 때리며 나무랐습니다.
“그러다 이쪽으로 오면 어떡하려고 그래!”
하늘색 작은 소풍 가방을 멘 아이가 그들을 바라보며 악기가게 앞을 지나치자,
주인 남자의 부인이 물었습니다.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는 아이야, 오늘은 뭐 잊어버린 거 없니?”
아이를 본 야채가게의 주인 여자도 물었습니다.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는 아이야, 오늘은 뭐 잃어버린 거 없니?”
사람들 모두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는 아이야, 오늘은 뭐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거 없니?!”
사람들이 아이에게 이렇듯 묻는 이유는 오늘이 바로 칠 일간의 비가 내리다
팔 일째에 찾아온 “단 하루 맑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는, 팔일 만에 비가 그친 이런 황금 같은 날에
무언가를 잊거나 잃어버리고 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하지만 기억이 멀쩡한 그들도 잊고 잃어버리고 사는 동물임은 매 한 가지였습니다.
단지 무엇을 잊고 잃어버렸는지가 문제겠지만 말이죠.
사람들의 똑같은 질문에 잊어버리고 잃어버리는 아이는
전혀 다른 대답을, 아니 전혀 다른 말을 했습니다.
“아줌마! 새들은 비가 올 때 하늘의 색이
자신들의 깃털 색과 정말 닮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그래서 비가 올 때면 새들은 다들 자신들의 집에서
담대한 심장을 지닌 작은 몸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걸까요?
새들의 심장은 정말로, 정말로 작은데도 말이지요!”
아줌마든 아저씨든 간에 새들의 깃털 색을 떠올리는 건 고사하고,
조막만 한 새들에게 담대한 심장이 있단 말은 평생을 살아도 처음 듣는 말이었습니다.
“아이야, 무슨 새를 말하는 거니?!”
사람들은 아이의 말이 답답한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대답대신 여자의 얼굴을 말간 눈동자로 바라만 보았습니다.
그러자 여자가 등을 돌리며 말했습니다.
“나 참, 내가 지금 누구랑 얘길 한담!”
아이가 살고 있는 세계의 하늘색은 비가 오려할 때면
흡사 걸레를 빤 구정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모래사막을 거꾸로 뒤집어쓴 광경 같기도 했죠.
아이는 그 어둡고 거친 하늘 속에서도 새들의 보드라운 깃털 색을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원치 않지만 아이는 이제 야채가게 앞에 꼿꼿이 서 있었습니다.
어깨의 맨 작은 하늘색 가방끈을 두 손으로 꼭 쥔 모습이 사뭇 진지해 보였죠.
“아줌마! 어제 헌책가게에서 정말 멋진 걸 들었는데요,
책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어요! 그 소리는...”
그때 악기가게 아저씨의 부인이 시든 배추 잎을 떼다 말고 아이의 말을 잘랐습니다.
다행히도 아이의 말이 시든 배추 잎보단 중했나 봅니다.
“아이야, 책들은 절대 춤을 추거나 노랠 하지 않는단다.
그건 음악이라고 하는 거고, 헌책가게 쌍둥이 손녀들의 피아노 연주와 노래였단다.
대체 언제쯤이나 말을 제대로 할 줄 알거니?! 휴...!”
순간, 아이는 고갤 숙인 채 두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혔지만
아무도 아이의 떨구어진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아이가 자신들 앞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서 있자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이야, 아침부터 가방을 메고 어딜 가는 거니?”
그러자 아이는 무언가 생각 난 듯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그렇지? 나는 소풍을 가야 하지?!’
아이가 사람들에게 무언가 대단하고 소중한 일처럼 말했습니다.
“소풍을 가야 해요. 소풍!”
아이는 다시 즐거워졌는지 이번에는 빨래터 앞으로 뛰어갔습니다.
뛰어오는 아이를 본 빨래방의 할머니는 손자들을 돌보랴
바느질을 하랴 분주한 손을 놀리며 중얼거렸습니다.
“도대체 혼자서 무슨 소풍을 간다고, 날만 밝으면 저런담. 쯧쯧쯧.”
옆에서 빨래 밟는 일을 하던 안나도 아이를 보자 물었습니다.
“아이야, 소풍을 간다고? 왜? 어디로? 누구랑 가는 거니?”
하지만 사람들의 질문에 또다시 두 눈망울이 그렁그렁 해진 아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서쪽을 향해 작은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아이는 돌아서며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습니다.
“빨래터의 언니가 나와 함께 소풍을 가준다면 언니의 빨래를 내가 다 해 줄 수도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