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는 심부자궁내막증 4기 환자였던 필자가 수술을 포기하게 된 계기와 일련의 이유들이 담겨 있습니다.
심부자궁내막증 환자들에게 수술하지 않고도 일상을 산다는 이야기는 꽤 자극적이고 의아스러운 사실로 들릴 수 있기에, 비수술을 선택한 이유와 계기가 사실 그대로 오해의 소지 없이 전달되길 바라며, 그로 인해 내용이 다소 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필자의 개인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의료 전문 지식과 조언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진단·치료 및 의학적 판단은 반드시 전문 의료진의 진료와 상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본 글의 정보로 발생하는 법적·의료적 결과에 대해 필자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아울러 특정 의료 기관이나 의료 전문가를 폄하·비난할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지난 연재에서는 심부자궁내막증 검사와 진단이 왜 현실적으로 늦어지는지 설명드리며, 의원급 병원과 일반 병원에서의 진단의 어려움의 이유에 대해서도 함께 말씀드렸었습니다.
또한 일반 종합병원이라 하더라도 진단이 어려울 수 있으며, 원인을 찾지 못해 헤매던 환의 입장일 당시의 제가 의료현장에서 겪었던 다양한 고충과 에피소드들도 함께 말씀드렸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심부자궁내막증 수술방법, 장, 단점, 수술의 어려움의 이유, 위험성, 후유증, 합병증에 대해서도 함께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이번 연재를 준비하며 알았습니다.
심부자궁내막증을 앓는 환자 모두가 수술이라는 똑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의학적 현실 앞에서, 제가 수술을 하지 않은 이유를 제삼자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전달하기란 제 자신을 설득하고 제 자신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는 일과는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요.
저는 생각합니다.
고통과 절망의 시간, 홀로 절박하게 여기저기를 헤매던 저에게 병명을 찾아주셨던, 저의 첫 주치의셨던 선생님의 '수술'에 대한 판단도, 제가 '수술'을 하지 않은 이유도 둘 다, 의학적이며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아마 그분은 이와 같은 말에 동의하지 않으실 겁니다. 저와는 여전히 생각이 다르실 겁니다.
그리고 다른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때 그 선생님의 판단의 0번이 무엇이었는진 모르지만, 제 판단의 0번은 저였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비수술을 결정한 이유를 말하기에 앞서, 수술날짜를 잡던 날의 제 모습을 잠시 떠올려 봅니다.
그 당시(24년 10월) 수술에 대해 설명을 듣던 저는 막상, 어딘지 볼 때마다 점점 날카로워지고 빡빡해지는 의사 앞에서 불이익이 무섭고 진료실 분위기에 눌려 "아"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만 반복하다 나왔었습니다.
무언가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의사의 의욕에 제가 다른 방향을 물으며 브레이크를 건다는 건, 마치 의사의 목표를 방해하고 고단함을 보태는 해악처럼 까지 느껴져, 해선 안될 일처럼 느껴졌죠.
"저희 과장님 정말 바쁜 분이세요. OOO 씨, 그런데도 저희 과장님이~"
"저희 과장님 정말 너무 힘드세요. OOO 씨, 그런데도 저희 과장님이~"
거기에 더해 환자가 무언갈 요청하기도 전에 이어지는 간호사의 위와 같은 말을 들으며 저는 그 기세에 눌려 점점 병원 가기가 힘든 일이 되어갔습니다.
"선생님, 제가, 그런데요, 저기, 혹시~"와 같은 말 다음에 이어진 저의 질문들은 다 말끝이 잘려나갔습니다.
자신이 따르는 의사를 닮는 건지, 간호사는 또 왜 그렇게 칼같이 똑똑한지요.
아마도 많은 군상의 환자들을 수없이 치러내야 하다 보니, 저렇게 변했나 보다, 이해하다가도 의사와 간호사의 결정에 떠밀려가듯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은 매 한 가지였습니다.
그때 그 간호사 선생님을 생각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의사의 편에서 대변하는 의료진도 훌륭하지만, 환자의 편에도 함께 서 있어 주면 어땠을까, 하고요.
실은 이 글을 써 놓고 며칠 전 보험청구 서류를 떼기 위해 열 달만에 다시 그 간호사 선생님을 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하더군요.
오랜만에 본 환자에게 인사나 안부 대신, 대뜸 "000씨 수술 날짜 잡으러 오시건 아니죠?" 하더군요. 저는 그저 부드럽게 웃으며 "네" 하며 감사하다 인사하고 돌아섰습니다.
아, 극명히 바뀐 것이 하나 있긴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선생님들의 노고의 대가인지, 진료실 자리가 별관 2층 구석에서
본관 2층, 인공분수대와 능소화가 통창으로 환희 보이는 널찍한 자리로 옮겨졌더군요.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곳을 돌아서며 생각했습니다.
저와 같은 많은 환자분들의 고통의 깊이와 시간이 그 변화만큼 줄었을 것이라고요. 그렇기에 저와같은 많은 환자들에게 감사한 일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15화 심부자궁내막증 수술의 이면 및 검사와 진단의 고충 본문 중, 수술의 위험성 부분을 읽으셨다면 아실 겁니다. 제가 수술을 통해 얻게 될지도 모를 후유증 및 합병증에 대해서요.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하게 된 이유는, 그 당시의 제가 영구적 장루의 위험성을 피해 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릴 적부터 유전적으로나 후천적으로 모든 감각과 신경이 지나치게 민감하고 예민한 제가 수술 후의 만성 신경 통증이라는 것을 피해 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당시 최소 8시간 이상이 예상됐던 대수술 후, 제가 정상적으로 회복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치료는 결국 환자의 의지입니다.
"수술 환자 10명 중 10%~20%가 일시적 장루를 착용하며, 일시적 장루를 착용한 환자 100명 중 4명이 영구적 장루를 착용한다고 합니다."
지난 연재 본문 중의 내용입니다.
누군가는 저 숫자를 보고 매우 희박하다고 느낄 수 있고, 또 어떤 누군가는 저처럼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의 숫자로 볼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의사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저 같은 환자를 보면, 환자 한 명, 한 명을 위해 자신이 반평생 노력하고 공부한 지식과 임상과 능력과 심혈을 기울여 수술을 할 것이기에, 의사를 믿고 의학기술을 믿으면 그저 수술 전 고지 정도에 불과하다며, 저와 같은 환자를 피곤하고 황당해 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마 어떤 분들은 제게 이렇게 말하고 싶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운전하다 죽고, 밥 먹다 죽을까 봐 어떻게 사냐고요.
저에게는 장루, 똥주머니에 대한 익숙하고도 낯선 기억 있습니다.
어릴 적 저희 친할머니는 당시 췌장암을 앓고 계셨는데, 할머니 곁에 가까이 가면 은은한 대변냄새가 났었던 기억이 납니다. 옷 어딘가에 감추어진 장루는 늘 극진한 자식들에 의해 그나마 잘 관리되고 있었지만, 한 번씩 어른들이 할머니의 장루를 비우거나 교체를 할 때는 어김없이 좀 더 진한 냄새가 났었습니다.
옷 밖으로 얼핏 얼핏 보이던 거부감이 느껴지던 색깔의 내용물이 담겨 있던 , 어릴 적 장루에 대한 기억.
그리고 저는 제 수술에 대해 그리고 장루에 대해 각각 다른 두 분의 대장항문외과 전문의께 설명을 들으며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내가 영구적 장루를 달겠구나, 내가 그 쉽지 않은 확률에 들겠구나"라고요.
두 분 다 병원은 달랐지만, 제가 둘 중 한 병원에서 수술을 결정한다면 제 직장절제를 해 주실 의사분들이셨습니다.
두 분 모두, 수술날 복강경으로 병변을 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들 하셨지만 "병변도 안 좋고, 위치도 안 좋고, 상황도 안 좋고..."라는 말이 제 귀에는 마치 행간처럼 들렸습니다.
만약 장루의 문제까지 생긴다면, 가뜩이나 재발률과 재수술률이 높은 질병인데, 직장누출 등으로 인한 불가피한 수술들이 사는 내내 이뤄질걸 생각하니, 눈앞이 암담해지고, 더 이상 남에게 일어나는 확률처럼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를 돌봐줄 보호자도 없고 계속해서 병원비를 감당할 여력도 없는 제가 만신창이 현실 속에 만신창이 몸에 장루까지 달고 사는 모습이 당장의 눈앞에 선현 했으니까요.
더군다나 수술에 대한 과정과 후유증, 합병증을 들으면 들을수록, 결국 회복도 후유증도 합병증도 고통도 다 환자만의 몫임을 그제야 깨달으며, 저는 도저히 그 몫을 감당할 자신이 1%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노력했습니다
무엇보다 오랜 고시공부와 직장생활의 병행 그리고 원인 모를 당시부터 겪어온 지독한 통증들로 인해 말할 수 없이 체력적, 정신적으로 고갈이 난 상태였습니다. 중간에 코로나를 극심히 앓아 기존에 갖고 있던 체력과 면역마저 오랫동안 회복이 안되고 있는 상태였지요.
그러나 비단 이것 때문에만 수술이 잘 안 될 것이라 단정지은 것은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잠시 저의 어머니와 제가 태어나게 된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며 또 다른 이유를 말씀드립니다.
저는 1986년에 태어났습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건지, 생각하실 겁니다.
그러나 평범해 보이는 이 숫자에, 저희 어머니의 연세를 대입해 보면 마냥 평범한 것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저희 어머니는 1943년생입니다. 그러니까 저희 어머니는 저를 마흔넷에 자연임신 하셨지요.
어머니가 저를 낳던 80~90년대에는 마흔다섯의 여성이 아이를 낳는다는 일은 매우 희귀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희 어머니는 선천적, 후천적으로 몸이 매우 약하셔서 제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매일 거의 앓는 소리와 함께 흰색 머리띠를 두르고 기거나 누워계셨다는 겁니다. 남들에게 별일 아니고 힘들지 않은 일상의 일들도 어머니한테는 굉장한 무리였고, 남들에게 별 탈 없는, 우리가 흔히 먹는 음식들이 어머니께는 소화하기에 대단한 부담감을 주는 음식들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태생적으로 모든 감각이 지나치게 민감하고 예민한 분이셨습니다. 때문에 지금도 사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위장약과 대장약 그리고 신경안정제와 두통약과 피부과약 등을 달고 사십니다.
딱히 무슨 큰 질병이 있으신 것도 아닙니다. 다행히 당뇨, 혈압, 고지혈, 콜레스테롤 같은 지병도 전혀 없으시지요. 오히려 잘 드시지 못하고, 채식 위주의 소식을 해 오신 것이 몸에는 이로웠던 듯합니다.
어머니가 몸이 후천적으로 더 약해지신 이유도 있습니다.
젊으실 적 겪었던 대형 감전사고와 나팔관 한쪽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으신 후 체력은 더욱 약해지셨는데, 때문에 폐경 역시 30대 중반에 겪으셨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이유 모를 짧은 생리를 한, 두 달 하셨고, 그 기간에 제가 임신됐던 것이지요.
하지만 어머니는 제가 뱃속에 있단 사실을 상상조차 못 하셨기에 뱃속의 제가 4개월이 넘도록 온갖 약을 다 드시며 생활을 하시다, 계속되는 출혈에 암을 의심하고 산부인과를 찾으셨다가 초음파로 저의 존재를 발견하셨다고 합니다.
그 당시 의사는 어머니께 임신중절을 적극 권하셨다고 합니다. 그 시절의 어머니와 같은 조건의 여성이 장장 임시 4개월 동안 태아의 존재를 모르고 거의 태아가 방치된 상태였기에, 태아의 출산 전이나 후의 안전과 온전한 건강을 기대할 수 없단 이유 때문이었죠.
그러나 어머니는 저를 나으셨고, 뱃속에서 거의 자라지 못하고 2KG 초반으로 태어난 저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서 한동안 자라야 했습니다. 어머니를 포함한 주변 어른들은 제가 얼마 가지 못해 죽을 것으로 예상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절 보셨다고 했습니다.
그런 저의 건강이력은 제가 자라면서도 드라마틱한 반전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삶을 살며 체력적으로 건강면에서 겪어야 했던 무수한 어려움과 장애들을 여기에 다 적을 수도 없을 지경입니다.
그러니 의사 선생님들이 저에게 수술에 대해 얘기해 주는 모든 말들은 마치 "수술을 하지 말라"는 말처럼만 들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무조건 비수술을 고집한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정말 오랜 시간을 고통 속에 고민했었습니다. 올해 25년 3월까지도요.
그러나 작년 10월, 제가 비수술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고민하면서도 수술 날짜를 10월 중순 경으로 잡아놓은 상태였습니다.
다만 수술 전, 재검사를 꼭 한 번 해보고 수술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첫 검사로부터 이미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기에 그리고 저에게는 그사이 정말로 많은 유의미한 긍정적 변화들이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저는 선생님께 수술을 앞두고(24년도 10월) 재검사를 하고 싶다 요청했지만, 선생님은 저의 요청을 받아들여주지 않았습니다.
이윤, 첫 검사 (24년도 03월) 후 6개월이 흘렀지만, 제가 워낙의 중증이었기에 수술을 앞두고 다시 검사를 해봐야 의미 없는 일이고, 저는 수술밖에는 답이 없으며, 어차피 수술에 들어가 복강경을 보면 다 알 수 있단 이유였습니다.
누가 다 알 수 있는 건가요?
제가 요청한 재검사가 의료검사의 남용 혹은 과잉진료에
포함되거나 환자의 잘못된 요구였을까요?
만약, 재검사로 제 병증이 첫 검사때와 확연히 (사진상 100%) 다르단 걸 알았다면 그 선생님의 수술의 계획과 준비 그리고 환자인 제 마음가짐이 역시 확연하게 달라졌을 겁니다.
그 당시 의료진들은 "000 씨 수술을 준비하기 위해 과장님과 의료진들은 한참 전부터 함께 수술실에 들어갈 항문외과 과장님과 그외 의료들과도 면밀한 논의와 준비를 해야 해요" 라며 설명했었습니다.
그러면 왜 첫 검사로부터 6개월이 지난 후의 환자의 병증의 상태는
수술 전 알 필요가 없는 걸까요?
저는 의사 선생님께, 제가 첫 검사로부터 6개월간 오로지 치료를 위해 요양을 하며 얼마나 노력했는지 말씀드렸었습니다만, 그분은 제가 요양을 하는 사이, 유튜브와 여러 매체를 통해 꾸준히 심부자궁내막증과 수술을 홍보해 오신 노력의 결실로 제가 첫 진단을 받을 당시인 6개월 전보다도 몇 배의 많은 환자들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뵈었던, 여유 있고 환자의 말을 깊고 길게 들어주던 명석한 그 의사분이 맞나, 과연 같은 분인가, 의심이 들정도로 매우 날이 서있고 몰골 역시 많이 상해 있었습니다.
때문에 수술에 관한 한 번의 면담을 끝으로 저는 더 이상 그 진료실의 문을 두드리지 않고, 수술 날짜를 취소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이야기를 환자의 입장에서 소상히 들어주고, 재검사를 흔쾌히 해주신 지금의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재검사 결과(24년 10월),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수술을 하지 않고도 약물로 써 관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뚜렷하게 나아졌고, 처음부터 약물시도가 순조롭지 못했음에도, 제 주치의 선생님은 계속해서 함께 방법을 찾아 나가자며 늘 꾸준히 저의 상태를 묻고 들어주십니다.
덕분에 저는 지난 일 년간의 요양 때처럼 다시 시간을 갖고 자연치료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죠.
저는 결과만큼이나 과정도 중요한 치료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첫 진단 그리고 수술에 대한 첫 면담을 그 산부인과 과장님이 아닌 다른 의사를 만났었더라면, 어쩌면 저도 다른 환자들처럼 기껍게 혹은 별 고민 없이 수술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결과까지 예측할 순 없는 사실이지만요.
수술 포기에 관한 이 일은 마치 제가 서울삼성병원에 갔을 때 의사와의 몇 분간의 면담만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의료기관이 가져다 줄 많은 혜택을 포기한 것과 비슷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부 의사들은 의사를 앞서가는 느낌과
인상을 주는 환자를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제가 심부자궁내막증으로 인해 만났었던 의사분들 중, 딱 두 분의 과장님만 빼고요. 지금의 주치의 선생님과 그리고 (위에서 잠시 언급한) 두 항문외과 의사선생님 중 한 분이 그러하셨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선생님은, 제 태도, 시선, 자세, 말투, 표정 등 어느 것 하나 무례하거나 공격적이거나 따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제가 마치 당신께 수술 후의 책임을 미리 전가하여 따져 묻듯, 제 질문의 의도를 곡해하며, 제게 지레 공격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일관하시는 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그분의 시종일관 예민하고 방어적인 태도에 오히려 환자인 제가 차분하게 그런 의도가 결코 없음을 친절히 설명드리며 안심시켜 드리다가 대화를 급 마무리 했던 진료실의 풍경이 떠오릅니다.
저보다 똑똑하고 배움도 높고 몸매도 얼굴도 미남이신, 모든 게 완벽하신 그런 분이 왜 환자에게 그런 위축되고 예민한 자세를 취해야만 했는지, 지금도 떠올리면 씁쓸하기만 합니다.
제 어떤 부분이 그분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다 알 순 없지만, 다 큰 성인인 제가 눈앞의 의사에게 미운털이 박혔다란 느낌을 받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기에, 그 후로는 진료실 문을 두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입장의 차이입니다.
어쩌면 그분은 과거 언젠가 수술 후의 결과에 대해 환자나 보호자들로 하여금 일방적으로 어떤 책임을 추궁받아야 했던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제게 그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저처럼 꼼꼼하고 소상하게 자신의 수술 후의 경과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을 던진 환자나 보호자들을 아직 만나본 경험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사람의 성향과 인격의 차이이자 한계이겠지만요.
반대로 위에서 언급한 두 대장항문외과 과장님 중 한 분은, 수술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제게 그림까지 그려주시며 소상히 그리고 편안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저의 모든 태도와 질문에 대해 공감하시며 일관되게 편안한 자세로 설명을 해주셨지요.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그 의사 선생님께는 환자의 불안하고 염려스러운 말과 마음들이 그다지 공격적으로 받아들이고 방어해야 할 '이슈'로 다가가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저는 이것이 비단 의사가 맡은 환자 수와 비례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현실적으로 누구는 시간이 없어 환자의 말을 들어줄 겨를이 없고, 누구는 환자가 적어, 시간이 많아 환자와의 면담이 친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제 첫 주치의 선생님은 저의 "만약에~혹시~"라는 질문에 늘 한숨 쉬며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000 씨는 병변이 나쁜 케이스로써 수술이 아니고선 도저히, 절대로 나아질 수도, 낫을 수도 없다고요.
때문에 수술 없이 낫거나 좋아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 이라고요.
만약 수술을 하지 않고 이대로 두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어느 날 안에서 피가 터져 목숨도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극단적인 상황까지가 가서 응급실에 어느 날 실려와도 자신은 아무것도 책임을 질 수가 없으며 그때의 수술과 환자가 감당해야 할 고통과 위험은 지금보다 몇 배로 더 어렵고 위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선생님의 말을 이해 못 한 건 아닙니다.
세상 모든 수술은 크던 작던, 짧던 길던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하며 예측할 수 없는 위험 상황을 동반하기에, 모든 의사가 의사의 소명을 걸고 환자를 최우선으로 두고 판단하고 행하려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비단 제가 받으려 했던 심부자궁내막증 수술만이 유독 위험하고 어렵고 위험성이 많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의사들은 말합니다. 암에 준하는 혹은 암보다 더 위험하고 어려운 수술이라고요. 그리고 수술의 예후에 따라서는 차라리 암 수술이 낫다 할 정도라고요.
그런데 제가 그 모든 위험성과 후유증과 합병증을 단순히 "누군가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라는 수술을 위한 고지 정도로만 들을 수 있도록, 충분한 신뢰와 용기를 갖도록 말해줄 의사를 만나지 못해 수술을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너무 비겁하고 치사한 말일까요?
저는 이 글을 쓰며 강조합니다.
어느 한쪽이 옳고 그른 것이 아닌, 입장의 차이이고 그것이 현실이라고요.
때문에 제 말을 들은 의사분들은 어쩌면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모든 환자들이 문제없이 다 잘 따라오는데, 왜 당신만 유별나고 특별하게 구는 거냐고요, 그건 당신의 문제이지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고요.
네, 존중합니다. 그래서 그날의 진료실을 마지막으로 조용히 돌아섰습니다.
대부분의 의사는 환자만치 아프지 않고 그 고통을 알지 못합니다. 다행이지요. 그렇기에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한 번쯤 생각할 수 있길 바라여 봅니다.
수술 후에 그 어떠한 결과에 대해서도 오직 환자 혼자 책임져야 하는 현실과 두려움 속에서, 수술이란 결정과 흰 종이의 싸인과 수술 배드 위로 올라가는 그 모든 일 역시 결국 환자 혼자 결정해야 하는 입장을 말입니다.
환자를 궁극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은 '육신의 치료' 그 너머의 환자에 대한 역지사지의 마음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소하고 작은 그 배려가 환자에겐 자신을 지탱하고 치료의 고통 속을 나아가게 하는 믿음과 힘이 됩니다.
그럼에도 혹시 이 글을 읽은 분들 중에 이렇게 질문하는 분은 없으시겠지요?
당신의 병을 못 고치고, 당신이 계속해서 고통받더라도, 듣기 좋은 감상적인 말로 위로나 하는 의사가 더 필요하냐고요.
비수술을 목표로 일 년을 넘게 관리하며 살고 있습니다. 또한 저의 선택을 저와 같은 환자들에게 쉽사리 말하기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 연재의 목적이, 제 모든 말들이 심부자궁내막증 환자들에게 비수술을 추천하거나, 비수술이 수술보다 낫다거나 하는 식의 뜻을 전하려 함이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점은
질병, 그 이전의 건강의 소중함,
그리고
그 너머의 마음에 있음을
전하고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는 운 좋게 시간을 벌었을 뿐, 결국 언젠가는 수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제 첫 주치의 선생님의 말처럼 그때보다 더 많은 위험과 후유증과 합병증을 감당해야 하는 수술이 될 수도 있겠지요.
결국 모든 일은 어떤 곳에 결론을 두고 달려가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혼자 하는 일이든, 다수가 함께 하는 일이든 세상만사 모든 일이 결국 그렇습니다.
글을 마치며, 제가 심부자궁내막증 수술의 부정적인 부분만을 강조하고 부곽하여 쓰지 않았음을 부디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위 글을 통해
저처럼 심부자궁내막증 '수술'의 위험성과 후유증, 합병증에 대해
(어쩌면) 과도한 불안감을 갖고 다양한 각도의 생각을 가진 환자를
좀 더 많은 시간과 배려로 봐주시지 않은 의료진들을
알게 모르게 비난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나 감정이
일체 없음을 밝힙니다.
질병의 진단과 수술은 질병이라는 부분과 함께 통틀어
어느 한쪽의 의견과 경험만으로 쉽게 판단되어서도 안 되며,
또한 그렇게 쉽게 판단될 수도 없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연재를 써 놓고, 사실 2주가 되도록 올리질 못했습니다. 조심스러워 망설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런 기사를 네이버 메인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기사였으며 동시에 준비해 놓고 연재를 망설였던 이 글을 올리게 해 준 기사입니다.
특히 기사 하단에 달린 환자로써 느끼는 진료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한 댓글과 대댓글을 읽으며 몇몇 의료진들의 진료에 대해 제가 느꼈던 안타까움이 비단 저만의 마음이 아니었단 것을 알게 되어 조금은 마음 편안히 이번 연재를 올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6/0011986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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