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에는 필자가 병명을 찾은 후, 본의 아니게 한 산사(절)에서 계획 없는 요양을 하게 된 계기와 그로 인한 내용이 불가피하게 담겨 있음을 독자분들께 밝힙니다.
아울러 종교가 달라 거부감이 드시는 독자분들이 계시다면 먼저 양해의 말씀을 구합니다.
참고로 사찰(절)에서의 요양기간은 24년 3월부터 12월까지였으며, 절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된 연재 회차는 18화 그리고 19화입니다.
지난 연재에서는 생리에 관한 여성분들의 다양한 질문들을 간략하지만 세세하게 질문하고 답해 보았습니다. 또한 생리 관련뿐만 아닌 생리주기 계산, 배란기 계산, 가임기 계산방법에 대해서도 다뤄보았습니다.
다음은 생리와 배란기, 가임기 등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다룬 저의 연재 링크입니다.
06화 My F.O.V.O Dictionary 여성생식기 사전
07화 잠깐, 헷갈리는 배란기, 가임기, 임신 Q&A
17화 여자를 위한 생리 상식 7가지(생리양, 혈, 색, 기간 등)
아마도 이번 연재를 제외하면, 브런치 연재 목차 계획대로, 여성질병에 관련된 의학적인 내용의 연재 회차는 4회가 남은 것 같습니다. 그 남은 4회의 주제들이 무리 없이 설명되기 위해 이번 연재를 씁니다.
필자가 처음부터 비수술을 목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시다시피 유착과 염증이 사라졌다는 기적 같은 검사결과를 24년 10월에 확인 후에도 필자는 올해 3월까지도 수술에 대해 깊은 장고를 해왔습니다. 약물치료의 첫 시도가 실패했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제가 비수술로 병증이 호전된 계기는 다만, 필자의 수술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인해 미루고 미루며 지낸 시간 동안, 필자가 기울인 갖은 방법과 노력들이, 필자가 꿈조차 꿔 본 적 없는 비현실적인 결과를 가져다주었을 뿐이란 사실입니다.
지난 연재 본문의 일부입니다.
저는 병명을 찾기 전과 후를 다 합쳐 스물네 곳의 병원 및 일반 종합병원, 한의원, 재활의학병원, 민간치료시설 등을 방문했었습니다.
그리고 열여덟 곳의 일반 종합병원 및 병원과 한의원과 재활의학과 등을 다닌 후, 열아홉 번째의 일반 종합병원 진료에서 병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난 24년 3월에 한 일반 종합병원에서 그토록 고통스럽게 찾아 헤매던 병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병명은 '심부자궁내막증', 의학명의 줄임으로는 'DIE' 4기였습니다.
24시간, 한 달 내내 저를 놓아주지 않던 끔찍한 고통 속에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은 "대단히 어려울 수 있는 수술" 이란 진단이었습니다.
제 첫 번째 연재인 01화 제발, 그건 생리통이 아니라고요 를 보시면 대충 아시겠지만, 재 인생을 벼랑 끝으로 몰고 저를 오롯이 혼자가 되도록 바닥으로 내몬 이 질병의 이름을 찾았던 날, 저의 마음은 마냥 감사하기만 하진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바로 "수술"에 대한 부분 때문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지난 연재인 16화 그렇게 말하시면 제가 수술을 할 수 없어요를 보시면 "수술"에 대한 저의 심정이 어땠는지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사실 저는 어릴 적부터 막연히 제 나이 사십이 되면 제가 죽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었습니다.
삶이 늘 모질고 고됐기에 절실한 바람이기도 하였지만, 몇 장의 종이에는 다 담을 수도 없는 수많은 군상의 인연들을 겪어내며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직감하게 되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제 자신의 "마지막(죽음)"이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DIE 진단과 수술에 대한 얘길 듣고 돌아온 한동안, 제가 오랫동안 직감해 오던 저의 "죽음"의 형태가, 제 불행의 끝이 드디어 모습을 갖추고 저를 찾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제가 일생을 바라던 불행의 조속한 끝이 죽음이 아닌, 수술로 인한 평생의 후유증과 합병증의 고통과 장애가 가난과 불행에 종지부를 찍는 형태로 왔다는 것을 느꼈을 때, 저에겐 더 이상 선택지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오랫동안 인연이 험하고 무정했던 아버지의 죽음(그분을 이렇게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로 인한 혈육들과의 무자비한 대면 그리고 몇 년간의 고시공부의 허무함, 그리고 마지막 노력이었던 가정을 이루는 희망에 대한 포기 등, 일련의 힘든 일들이 겹치며 갑작스러운 생의 첫 해외여행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진심과 진실의 힘을 믿고 살면 살수록, 나를 등 떠미는, 내 편 하나 없는 세상 속에서 저의 질병은 제게 너무 가혹하고 억울한 일이라는 생각이 울컥 치밀었습니다.
제주도도 안 가본 제가, 내용물의 반이 온갖 진통제인 트렁크를 싸들고 생애 처음 비행기를 탔었지요. 그 비좁은 공간에서 저는 여러모로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의 통증의 고통과 정상적으로 섭취하지도 배설하지도 못하던 식이장애를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무모한 여행길이었죠.
하나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옛 어른들의 말씀처럼, 마치 이 한국땅을 떠나 저 멀리 바다를 건너가면 이 불행이 따라오지 못할 것만 같은 어리석고 간절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타국에서의 4박 5일의 일정을 끝으로 한국을 오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던 택시 안에서 참아지지 않던 눈물... 그 두려움과 슬픔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저는 병원으로 바로 향해 수술 일정을 잡아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입국장에서 나오마자 한 일은, 들고 있는 짐 그대로 공항에서 충남의 한 사찰(寺刹, 절)로 향한 일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제가 열여 살 때부터 운명 같은 계기로 마음을 주고 다녔던 절이 한 곳 있었습니다. 제가 향한 곳이 그 절이었습니다.
갑자기 무모한 생의 첫 해외여행 끝에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절로 달려간 이유는 이러했습니다.
하룻밤만
오늘 딱 하룻밤만...
꿈같은 여행 후, 한국에 돌아왔지만 막상 돌아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수술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전, 한 번만 더 도망쳐보고 싶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정상적으로 살고 싶어서, 살고자 도망쳤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전히 제 영혼은 오랜 기간 시달려온 고통과 절망으로 인해 그 고통으로부터 놓이고 바닥이 된 삶을 포기하고 마무리하고 싶은 바람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제 삶의 오랜 무게가 비단 질병 하나의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날 밤, 일찍이 불이 꺼진 한평 남짓의 객방에 홀로 누워 생각했습니다.
나는 여길 대체 살자고 돌아온 것인가
아님 죽자고 돌아온 것인가
제 자신도 정의 내릴 수 없는 그 당시의 복잡한 마음을 안고, 저는 수년간 돌아섰던 종교와 믿음으로의 회귀와 정리를 핑계로 절로 들어섰던 겁니다.
당장 수술이 시급한 환자가 하룻밤을 핑계로 절로 달려간 도피는, 의학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무모해도 너무 무모한, 죽자고 든 하룻밤의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단 하룻밤을 계획하고 들어선 산중(山中)에서 저는 장장 10개월의 매일을 사랑에 들게 되었습니다.
일평생 단 한 번도 제대로 바라봐준 적 없고, 세상과 사람들이 씌운, 내 것 아닌 온갖 망상과 번뇌와 욕망에 쌓여, 내 인생과 남의 인생의 주변만을 맴돌며, 나 자신을 남들이 나를 원망하고 업신여기듯 미워하고 평가절하했던 바로 제 자신과의 사랑이었습니다.
사실 제 연재의 진짜 이야기는 앞으로 남은 여성질병 관련 4회분의 연재가 끝나면 시작됩니다.
"고통이 걸러낸 가짜" 들을 통해 "나를 먼저 사랑하라는, 그 이해할 수 없던 수수께끼 같던 말"을 비로소 이해하고, 그러나 "무소의 뿔처럼 온전히 혼자서 살아감이 인생" 이란 잔인한 진실을 알았지만
그 진리의 균형 속에 비로소 내가 생각조차 못 해본 "자유"가 기다리고 있었음을...
계획치 않았지만 그곳, 절에서의 열 달의 시간 동안 유착과 염증과 다양한 통증(무엇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던 극심한 항문통, 배변통, 변비, 생리불순등)이 해결되었고, 저는 다음 회차인 19화에서 환자였던 제가 절에서 어떻게 하룻밤 같던 열 달의 하루하루를 살았는지, 저와 같은 환자분들께 작디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며 적으려 합니다. 저의 하루 일과 또는 루틴 말이지요.
다만 제 연재는 사찰(절) 생활을 주제로 한 연재가 아니기에, 절 사정과 생활에 대한 거의 대부분의 설명과 이야기를 생략하며 연재의 목적과 주제에 맞춰 환자로써 제가 노력했던 부분에 대해서만 다루려 합니다.
무턱대고 심부자궁내막증 환자가 수술을 하지 않고 절에서의 요양을 통해 유착이 나았다고 말씀드리면, 자칫 절이란 공간과 자연치유에 대한 무책임한 환상과 기대를 심어 드리게 될까 싶어, 잠깐 절이라는 공간의 생리에 대해서도 간략하게나마 집약적으로 함께 이야기하며 넘어가려 합니다.
아시다시피 불교는 기독교처럼 여러 종파가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언급하는 사찰(절)은 대한불교조계종단입니다. 흔히 저희들이 알고 있는 그 절입니다.
절에는 층층 품계의 스님(중)들 외에도 스님이 되기 위해 준비 중인 행자도 있고, 비구계를 받기 위해 공부 중인 학인(사미)들도 있고, 다양한 직분의 일반 남성 직원들 (보통은 절에서 스님이 아닌 일반 남성들을 처사님 또는 거사님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요소요소 일하고 계십니다.
물론 남성뿐만이 아닌, 절의 규모에 따라 보살(님)이라고 불리는 여성분들이 상주 또는 출퇴근을 하시며 절의 여러 일들을 도우십니다.
암자라 불릴 정도의 아주 작은 규모의 절이라면 스님만 계시거나 공양(供養)을 위해 한 분정도의 공양주(供養主)만 계실 수도 있지만, 총림(叢林)의 조건을 갖춘 큰 규모의 절은 훨씬 많은 처사님들과 보살님들이 각각의 처소에서 요소요소 일하고 계십니다.
처소(處所): 사람이 기거하거나 임시로 머무는 곳. 또는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어떤 물건이 있는 곳
예를 들면 종무소, 템플스테이, 대웅전, 밥 먹는 공양간(=후원), 각각의 부처님 또는 불보살님을 뫼신 크고 작은 전각들, 다양한 목적의 매점, 미술관, 박물관, 사중 내 바느질과 미화담당 등등이 있겠습니다.
열여섯부터 인연이 닿아 다닌 절, 특히나 오랫동안 봐왔던 어머니, 할머니 뻘의 보살님들, 신도분들 그리고 너무 오랜만에 다신 만난 그분들 속에 또 새로운 얼굴, 새로운 인연으로 저를 딸처럼 손녀처럼 반겨주고 품어주셨던 분들까지... 그 많은 분들의 응원과 "지금의 그 몸으로는 돌아가면 큰일 난다며 건강을 회복하고 돌아가라"는 진정 어린 붙잡아주심과 숨겨주심으로 저의 하룻밤은 이틀이 되고, 이틀이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열 달이 되어 수술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정도의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당장에 병원으로 달려가, 나 좀 수술해 달라고, 빨리 뭐라도 해달라고 매달리고 싶었던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숨이 깔딱거리게 어렵던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사지가 부들거리고 손하나 까딱할 수 없이 맥을 놓고 고꾸라질 만큼 아팠던 때도 많았습니다.
특히나 무엇으로도 도리가 없는 통증이 느껴져 당장에 짐을 싸고 싶을 때면 스스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당장 응급실로 뛰어들자. 그래, 내일 당장 수술날짜를 잡자!
라고요.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며, 조금씩 좋아지는 것들을 힌트 삼아, 매일매일 수술을 버틸 체력과 마음을 가늠해 보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때마다 그분들은
사고무친 四顧無親, 혈혈단신 孑孑單身 같은 저를
대가 없는 넘치는 사랑의 손길과 온정으로
제가 하루하루,
때론 순간순간을
뜨겁게 넘길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아마 제가 그분들께 자신들이 베푼 진정한 사랑의 행위를
감사드린다고 하면
힘껏 손사례 치고 놀라시며
무슨 소리냐고,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뭘 했냐고, 하실 겁니다.
그러나 어디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든, 세상에는 나를 반겨주는 품도 있지만, 곡직불문曲直不問 하고 나를 내몰고 할퀴는 눈과 입도 있습니다.
절 또한 사람이 사는 곳이라 스님이든 아니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손님으로 머물다 오지 않는 이상, 속속들이 내밀한 사정을 들여다보면 바깥세상과 다름없이 뉴스에 나는 좋고 나쁜 일은 다 일어나는 똑같은 곳입니다.
그렇기에 세상 근심 없고 평온해 보이는 절일지라도, 그곳에서 권력과 물질과 색(色)에 마음 쓰지 않고, 내 몸과 마음을 돌아보며, 영원한 피안(彼岸)의 도(道)를 닦을지, 아님 겉모습만 바뀐 채, 범인(凡人), 범부(凡夫)와 같은 속인(俗人)으로 살지는 오로지 개인의 결기와 선택이지요.
때문에 저는 성직자를 불문(不問)하고, 늘 깨어있는 사람, 매일의 허물을 돌아볼 줄 알며, 행동이 생각과 일치하는 그 사람이 진정한 "수행자"라 생각합니다.
층층이 존재하는 품계의 높낮이와 그 간극만치의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절은, 가지가 많은 나무일수록 남모를 바람이 더 많이 부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이치가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이는 불교뿐만이 아닙니다.
종교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또 다른 인격이 드러나곤 합니다. 어떤 이는 더 좋고 훌륭하게, 또 어떤 이는 더 낮고 강퍅하게 말이지요.
그것은 비밀이랄 것도 없고 부정할 흉이라고 할 것도 없는, 사람 살아가는 곳의 여실한 현실에 불과합니다.
종교와 그 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 자체가 믿음의 본질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사람이 맡은 직분과 자리가 그 사람을 대변하지도 않습니다.
때문에 제가 열 달을 지내는 시간 역시 늘 수승(殊勝)하고 이성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신 사랑, 받은 사랑이 그것을 능가하게 넓고 크고 단단하였기에, 제가 다시 젖 먹던 힘을 내어 두 발, 두 손으로 제가 선 땅을 딛고, 쥐고 일어나, 저의 일상으로, 혼자의 삶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생리통과 심부자궁내막증과 같은 여성 질병을 다루는 제 연재를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아마 이번 연재를 읽으시며 의아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내용이 뜬금 산으로 가나?
다행히도 아닙니다.
사실 제 연재는 여성질병 관련 의학적 내용만을 다루기 위한 연재가 아닙니다.
제 브런치 북 <서른아홉, 이토록 아픈 생리통>의 설명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저는 절망과 죽음만이 답이었던 제 이야기를 통해 저와 같은 분들께 희망이 되기 위해, 그 고통과 절망을 나누기 위해 이 연재를 궁극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혹시 오늘,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 희망이 사라졌다고 절망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건, 여러분의 인생이 얼마나 엉망이고 얼마나 망가졌든,
그리고 세상에 가족도 없이 나만이 버려진 것 같고, 내가 선 자리가 한 발 낭떠러지만 남았다고 느껴지신다면, 사방으로 몰아치는 현실의 고통이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하고 불행한 분들이 계시다면, 제 자신과 그런 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구하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분명코 다른 한쪽 문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이 문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은 인생에 없습니다. 기대를 걸고 믿었던 수많은 모든 문이 닫혀도, 분명코 여러분을 위해 가장 좋은 단 하나의 문이 여러분을 기다리며 어딘가에 열려 있습니다.
인생의 다음 장은, 우리가 겪어야 할 몫의 무게를 바른 인내와 성숙으로 겪어내는 시간 끝에 찾아옵니다.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결코 없습니다.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입니다. 손아귀에 단돈 천 원을 쥐고도 살아갈 길을 도모할 수 있지만, 한품에 다 끌어안을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재물을 쌓고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답지 않은 사람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순전한 개인의 만족과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사람다우면서도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삼시세끼 단정하게 먹을 수 있고, 깨끗하게 다림질한 옷을 입을 수 있다면, 내 한 몸 스스로 입히고, 씻기고, 먹이고, 재울 수 있다면, 당신은 행복해질 수 있으며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돈과 성공이 행복의 절대 조건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인생은 살아갈 가치를 찾기 위한 외로운 과정입니다. 자신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고 재단하지 않는 한, 크든 작든, 내일은 내일의 희망이 '늘' 있습니다. 그러니 그 누구에게도 여러분의 삶을 평가하고 재단할 권리를 허락하지 마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진정 노력하고 있다면 그 무엇도 단정 짓지 마세요.
지난 서른아홉 평생의 저처럼, 정말로 죽는 길 밖에는 없다고 느껴지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하루를 더 사는 것은 밑져야 본전이니, 오늘 하루치 불행에 또 한 번 속아보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새로운 마음, 새로운 나로 내일을 맞이하세요.
내일도 똑같다면, 또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나로 또 그다음 날의 내일을 맞이하세요.
돌아보면 인생은 결코 길지 않으며, 나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불행도 기필코 끝나기 마련입니다.
무수히 다른 이유들로 절망에 빠지고,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삶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삶이 망가지고 사람이 절망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절망을 떨치고 다시 올라오는 방법은 단 한 가지라는 진리를 배운 산사(山寺)의 10개월이었습니다.
삶의 절망을 이기는 방법은 단 한 가지라는 저의 말이 부디, 바스락 거릴 영혼을 위태롭게 붙잡고 너무 오랜 시간 홀로 버티고 있을 저와 같은 분들께 가닿길 진심으로 바라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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