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에는 지난 연재에서 예고드린 대로, 심부자궁내막증 4기 환자였던 필자가 한 산사(山寺, 절)에서 하루하루 어떻게 (요양) 생활을 했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종교적 배경이 달라 다소 낯설게 느끼실 독자분들이 계시다면 먼저 양해의 말씀을 구합니다. 참고로 사찰(절)에서의 요양기간은 24년 3월부터 12월까지였으며, 절과 관련된 내용은 18화 그리고 19화입니다.
이 글은 필자의 개인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을 뿐, 의료 전문 지식과 조언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진단·치료 및 의학적 판단은 반드시 전문 의료진의 진료와 상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본 글의 정보로 발생하는 법적·의료적 결과에 대해 필자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글을 한 줄 쓸 때마다, 단어 하나를 가져올 때마다 생각합니다.
과연 이 글이 가치가 있는가? 적절한 표현이자 단어인가? 무엇보다 진짜(진실)인가? 하고요.
무책임한 지나침으로 주제에 없는 과한 관심과 사랑을 받진 않을까, 무책임한 자만으로 지면 아닌 지면의 낭비와 실망을 사진 않을까 하고요.
마음을 나누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지나친 미사여구로 책임지지 않을 진심만을 남발하는, 입술만 화려한 사람(들)을 압니다.
지나친 과신과 오만으로 자신 외의 세상을 헤아리지 않는, 입만 똑똑한 사람(들)을 압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며 상처입고 실망하던 제가 도리어 어딘가에서 의식 없이 글로나마 "그런 사람" 흉내를 내고 있진 않을까 늘 경계합니다.
오늘도 그런 의식을 갖고 이 연재를 씁니다.
지난 연재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제 연재가 절 관련은 아니기에 사찰 관련 자세한 내용과 설명은 과감히 생략했습니다.
또한, 치료-요양 관련 정서적 측면에 관해서도 자칫 특정 종교에 대한 홍보 내지 편향적 내용의 전달로 오인될 수 있기에 산사(절) 내용이 들어가는 이번 회차에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환자인 제가 절에서 요양 아닌 요양생활을 하며 특별했던 점은 다음의 세 가지였습니다.
수면
식사
단순함
뇌에는, 뇌가 스스로 일하고 회복하는 자정작용의 시간이자 피트 스톱(pit stop: 경주 중인 차량이 연료 보급, 타이어 교체, 기계 점검, 드라이버 교체 등을 위해 트랙 옆의 피트 구역에 들어가는 것을 말함) 처럼 스스로 점검해야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은 바로 밤 9시~새벽 2시 사이입니다. 그 시간, 우리의 뇌-몸속에서는 하루동안의 신체활동, 뇌 활동과 스트레스, 과로, 음식물 섭취 등으로 인해 쌓인,노폐물, 독소등을 우리 몸-뇌에서 배출하고 자정하고 점검하는 일이 활발히 일어납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의 우리는 그 시간에 거의 깨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그로인한 신체적, 정서적 문제들이 점점 더 많이 야기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다른 신체 기관보다 의식하지 못하는 뇌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해도, 초 당, 한 도시의 불빛을 켤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를 갖고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 뇌를 단순히 신체기관의 하나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 뇌에 대해서 단 1%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거지요.
불면증은 현대인 대부분이 경험하는 질병 아닌 질병 중 하나라고 하지만 막상 불면증을 겪는 당사자에게는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일 중 하나입니다.
"제발 오늘 밤은 잠이 오길..." 이렇게 기도하며 한밤중에 누워 다음날 동이 트는 것을 뜬눈으로 맞이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점점 파삭하게 메말라감을 느낍니다.
저 역시 심각한 불면증 환자였습니다.
몇 년간의 수험생활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제 수면패턴은 심각할 정도로 엉망이 돼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층간소음으로 인해 수면생활을 제 의지대로 할 수 없는 환경까지. 저의 불면증은 정서적으로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심부자궁내막증과 불면증 외에도 불안, 강박, 우울, 그리고 가끔씩 예기치 않게 찾아오던 공황장애가 제가 절에 들어가기 전 갖고 있던 문제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절에 들어간 첫날밤, 제 몸에는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특별한 경우 없이는 밤 9시~새벽 3시까지가 공식적인 사찰의 수면시간입니다.
일개 손님인 보살이 그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큰절에서 오래 기거할 수 없다는 뜻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굳이 어길 필요도 없는 것은, 다음 날 새벽 3시~5시까지 이어지는 새벽예불과 기도 그리고 6시의 아침공양을 규칙적으로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일개 손님이자 보살인 사람이, 그것도 환자가 절에 와서 매일 하루 세 번씩 이어지는 예불과 기도를 한결같이 참석하지 않는 모습, 그리고 매끼 정해진 시간의 공양을 하지 않는 모습은 절에 오래 기거할 수 없다는 뜻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큰절은, 템플 스테이 손님 외에도 기도와 봉사를 하러 온 사람들을 마다하지 않지만, 그 외의 직원으로서의 직무자가 아니라면 일반인이 총림 안에서 템플 스테이가 손님이 아닌데도 장기간 기거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첫날밤, 당연히 저는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강제정적, 강제수면이었지요. 뜬 눈으로 누워있다 새벽 2시에 일어나 새벽예불을 갔던 기억이 납니다.
잠을 한숨도 못 잔 저는 그날 하루 종일 수면제를 몇 알쯤 먹은 사람처럼 비몽사몽에 헛구역질을 삼켜가며 절의 첫날 일과를 버텼었지요.
제정신이 아닌 하루가 가버리고, 둘째 날 밤은 9시가 되기도 전에 곯아떨어졌다는 사실이 제 불면증의 대반전이었습니다.
갑작스레 바뀐 수면패턴과 새벽 5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이어진 후원봉사 생활로 제 몸은 한 동안 어지러움과 헛구역질이 이어졌지만, 밤 8시, 9시가 되면 저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질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깊은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뇌가 노폐물과 독소를 배출하고 뇌세포를 재생하는 밤 9시~3시 사이에 잠을 잘 수 있었기에 저의 컨디션은 오히려 전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긍정적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절에서는 "잠이 안 온다" "생각이 너무 많아 머리가 아프다" 그러면 이런 말들을 합니다.
잡념이 많으면 몸을 움직여라. 귀신도 바쁘고 고된 몸은 무서워 붙질 않는다.라고요.
맞는 말이자 특효약이었습니다.
뇌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재정비를 해야 할 시간에 숙면을 한다고 해서 인생사 다반의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맑은 정신은 건강한 신체의 기본이고, 바르고 적절한 판단과 행동의 기본이란 사실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
올바른 치료와 요양생활에도 물론이고요.
제 이야기를 통해 뇌-수면시각의 관계에 대해 처음 알게 되신 분들이 계시다면, 꼭 한 번 뇌- 수면시각에 대한 의학정보와 국내방송 등을 검색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신체건강은 물론이거니와 무엇보다 정신건강의 바로미터란 사실을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제가 아프기 전 어떤 식생활을 하고 주로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었기에, 제가 먹었던 음식들이 독과 쓰레기라고 칭했던 것인지,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그와 관련하여 지난 연재, 08화 생리를 위해 하지 마세요: 생리통의 적 '열 가지'를 참고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독이나 쓰레기라고까지 표현하는 것에 거부감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장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의심 없이 마트에서 사서 먹는 오일류 상품들이 실은 상품의 이동과 보관 중 오랜 실온보관과 햇빛 노출로 인해 이미 산패되어 독이나 다름없는 오일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상품 뒷면의 성분을 읽어보면 실은 맛만 낸 쓰레기와 다름없는 초가공 음식도 허다하고요.
심지어 우리 몸에서는 그 성분을 제대로 흡수-소화조차 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성분들이 버젓이 식품류로 분류되어 거대한 마케팅 속에 숨어 열심히 판매되고 있습니다.
그런제 제가 환자가 된 이후, 궁금했습니다.
그런 (초)가공 식품들을 내 주변에는 나보다 더 많이, 더 자주 먹은 사람들도 있는데, 왜 그들 중 나만 아플까?
같은 음식을 먹어도 누구는 아프고,
누구는 왜 안 아플까요?
다른 예로, 같은 감기 환자 옆에 생활을 해도 누구는 감기에 걸리고 누구는 왜 걸리지 않는 걸까요?
그 이유를 과학적-의학적으로만 답하자면 간단명료합니다.
면역 그리고 유전(혹은 DNA)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면역과 유전이 강하고 좋은 사람은 같은 환경에서도 질병에 우세하지만, 반대로 저처럼 면역과 유전이 약하고 나쁘면 좋은 환경에서도 내 몸에 방어력이 약해, 질병에 노출되는 확률과 기간이 높고 암세포가 더 많이, 더 빠르게 자라게 됩니다.
면연에 대해 좀 더 얘기하면, 우리 몸에는 외부와 내부 환경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막중한 임무를 띠고 일하는 세포들이 있습니다.
생소하게 들리는 이 세포들은 지난 코로나 팬데믹때 언론에서 많이 거론이 되었지요.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밀접 접촉한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코로나에 걸리고 다른 어떤 사람은 왜 걸리지 않는지에 대해 그리고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임에도 어떤 사람은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앓고 또 어떤 사람은 무증상으로 지나가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한 결과, 슈퍼면역자 즉, 우리 몸을 방어하는 T-cell 이 남들보다 우월한 유전자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지요.
제가 음식을 이야기하려다 면역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면역을 지키고 키우는 방법에는 타고난 유전적 힘이 가장 크겠지만, 그다음이 바로 우리가 먹는 음식이 면역의 바로미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앞서 말씀드린 질 좋은 수면 그리고 일정한 체온유지와 근력을 위한 적절한 유산소 운동과 스트레스 관리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면역과 관련하여 "체온유지"에 관한 중요성 역시 08화 생리를 위해 하지 마세요: 생리통의 적 '열 가지'를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절밥 얘기를 하기에 앞서, 제가 아픈 환자들에게 절에 가서 절밥을 먹으면 낫는다는 것을 권하기 위한 내용이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끝까지 읽어보시면 절밥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닌, 사찰 식생활의 고유성과 특징을 말하려 합니다.
이러한 부분은 환자나 보호자가 각별히 노력하면 가정에서도 그 고유성과 특징을 살려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비용이 비싸거나 어렵지도 까다롭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몇 년 만에 절에 돌아가 "밥", "식사"라고 일컫는 것이 아닌, "공양" "발우"라는 단어로 먹는 일을 대면하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아...
네가 그렇게 먹고살고도 안 아프길 바랐니?
그렇게 먹고살아 이 지경에 왔구나...
제정신이 아니었구나...
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해서...
물론 저를 위해서였고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였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달려왔었습니다.
결국 다 착각이란 사실을 병이 들고서야 알았지만요.
저를 위해서 돈을 벌고, 공부를 하고, 먹는 것이라면 결코 그렇게, 그런 것들을, 그런 식으로 먹으며 만족하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혀만 만족하는, 스트레스 풀기 위주의, 양만 채우는, 급하고 바쁜, 쉽고 편하지만 내 몸과 영혼에 죄스러운 것들 말이지요.
환자의 입장에서는, 시중 편의점과 마트에 파는 음식들의 뒷면의 성분들을 보면 대부분 기암 할 정도입니다. 제대로 알아보고 나면 아무리 입에서 당겨도 양심상 먹을 수가 없단 생각이 듭니다. 거저 준대도 말이지요.
이윤. 제 몸은 그런것들을 제대로 처리(소화-흡수)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명 카페, 베이커리, 백화점, 길거리 등에서 파는 음식들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책임이나 양심도 없이 단순히 매출과 유명세를 위해, 시각적, 미각적인 자극과 환상을 위해 만들어진 음식들이 대부분입니다.
맨 밥에 물만 말아먹어도
저것보단 낫겠다 싶은 성분들이 없이는
우리가 사 먹는 대부분의 것들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제가 절밥을 먹으며 가장 먼저 변화가 일어난 부분은 바로 "변비"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심부자궁내막증 4기 환자의 변비는 단순히 "변비"라 일컬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유착" 때문이지요.
대장내시경을 할 때 장을 비우기 위해 마시는 약을 밤새 먹고도 변을 보지 못해 까무러치는 것이 심부자궁내막증 중증 환자의 변비양상입니다.
그런 날이 매일, 몇 달, 몇 년도 이어집니다.
뿐만 아닙니다. 대변 시 직장을 예리한 칼날로 베는 듯한 고통은 어떤 말로도 다 담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제가 절에 가서 "변비"로 인한 어려움을 이야기하자 어떤 보살님이 이렇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00야~
우리는 장이 행복해야 뇌가 행복하대~
처음에 저도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그게 대체 무슨 말이지? 싶으면서 굉장히 생소했습니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사실이었습니다.
건강한 장은 우리의 신체건강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마치 땅이 단단하면 그 위에 서 있는 생물들이 온전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장 내 환경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면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저는 제 뇌-혀와는 다르게, 제 장이 절밥을 먹으며 비로소 편안해하고 행복해한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장이 행복해지니 점차 그 사실을 인지한 뇌도 편안해지고,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도 점점 건강한 생각으로 돌이킬 수 있는 의지(힘)가 생겨났습니다.
마치, 매일매일 나무가 자라는 것을 육안으로는 정확히 볼 순 없지만, 어느 날 쑥 커버린 사실을 알 수 있는 나무의 성장 속도처럼 아주 서서히요.
몇 년 만에 다시 절밥을 먹던 첫날은 정말이지 고역이었습니다. 헛구역질도 났습니다.
갑작스레 바뀐 수면패턴과 수면부족 때문에 세상이 핑핑 돌기도 해서였지만, 음식 아닌 음식 흉내를 낸 먹거리에 길들여진 뇌-혀는 도저히 단출하고 단정한 절밥을 사람 먹을 것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제가 흰쌀밥에 고추장에 마른 김만 있어도 밥알과 고추장과 김의 온전한 맛이 느껴지는 데에는 3개월이 걸렸습니다. 절의 간장이 대단히 맛있다고 느끼는 데는 5개월이 걸렸습니다. 절의 김치가 세상 최고로 맛있다고 느끼며 한 젓가락 가져가는 데는 6개월이 넘게 걸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감사한 것은, 절에서 지내며 자연적으로 밀가루 면류, 빵류, 과자, 인스턴트, 유지방류, 시중의 음료 등을 뇌가 스스로 찾지 않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같은 말로, 혀가 유해한 (초)가공음식들에 대한 올바른 미각을 찾고 거부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억지로 참고 끊으려면 고통스러웠을 음식들을 몸이 정화되고 회복되며 자연히 멀리 하게 되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온지 8개월이 넘은 지금도 절의 장류와 김치를 배워 집에서 직접 담가 먹고 있습니다. 예전의 저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변화입니다.
김치는, 포기김치로 김장을 하기에는 사실상 현실적으로 어려워, 몇 달에 한 번씩, 알배추를 소량 사와 담가 먹습니다. 간장은 몇 년에 한 번만 수고하면 되니, 적당 양을 정성을 다해 담아 두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김장과 간장을 담기 위한 도구를 장만하고 씻는 일부터가 매우 번거롭고 힘들었지만, 저는 저를 살려준 약과 같은 음식의 힘과 고마움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소량을 목표로 담그면 혼자서도 크게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특정 기대를 갖고 비싸게 돈을 주고 사먹는 유산균 제품들의 대부분은 입안을 통과하며 즉시 사균이 되어버리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장에 좋다는 상당수의 다양한 요구르트 제품들 역시 사실은 설탕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인체에 들어가 온도나 환경 등에 크게 방해받지 않고
장까지 살아서 가는
유일한 유산균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 전통 장류와 김치류에 있는 유산균입니다.
이 사실을 저의 몸은, 저의 뇌-혀와는 달리 절밥을 먹으며 단박에 알아차렸습니다.
절밥을 삼시세끼 꾸준히 먹은지 3일 만에 어떤 변비약과 식이요법으로도 신호가 없던 변의가 느껴졌습니다.
밖에서 지내며, 매일 직접 짠 생레몬즙물 몇 잔, 채식위주의 식사, 공복의 직접 짠 과채즙, 무슨 무슨 단식, 변비에 특효인 지압과 마사지, 호흡, 명상, 뜸, 침, 한약, 온갖 양약, 등산, 달리기, 줄넘기, 훌라후프, 요과, 필라테스 등으로도 근본적 해결되지 않던 변비가 절밥을 먹은지 3일 만에 장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알려주었습니다.
물론 변의 모양과 양이 바로 정상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너진 장내 유익균이 장내 해로운 균보다 수가 늘어나고 자리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변을 볼때의 직장을 자르는 듯한 고통 역시, 제 몸 안의 유착과 염증등이 낫은 것은 아직 아니었기에 여전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어질 3회 차의 연재에서 다룰 여러 다른 노력들과 함께) 절밥으로 식이 아닌 식이를 한 지 2~3개월쯤 지나자 저의 변비는 완전히 해결되었으며, 4~5개월이 지나자 그 모양이 풀리기 시작했고, 6개월이 지나자, 몸이 병들기 전의 정상적인 변으로 완전히 돌아왔습니다.
절에 어떤 반찬이 나오고, 어떤 양념을 하고, 어떤 재료를 쓰는지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바라 따로 다루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점은 다음의 음식들이 식단의 베이스가 된다는 점입니다.
아래의 음식들이 없었다면 절밥이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참고로 음식들은 모두 국산 재료를 기준으로 합니다.)
직접 담은 간장
오래 묵은 (씨)간장
직접 담은 된장
직접 담은 김치류
음식을 조리 시 다음의 사항은 환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었습니다.
충분히 씻는다
천천히 조리한다
끝까지 제대로 익힌다
제철과 제때에 맞는 재료를 충분히 사용한다
절밥을 통한 다음의 사실 또한 환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점이었습니다.
제때 식사를 한다
건강한 공복시간이 규칙적으로 유지된다
공복에 미지근한 혹은 따뜻한 물과 간장이 먼저 들어간다
플라스틱 용기와 주리도구, 비닐과 랩, 전자레인지 노출과 사용이 현저히 낮다
밀가루, 유지방, 당류, 자극적인 조미료에 대한 진짜 미각이 회복된다
몸에 해로운 음식들에 대한 의식과 몸의 반응이 살아난다
완전한 조리를 거친 채소와 탄소화물의 부드럽고 안전한 섭취가 지속된다
콩과 수제 두부를 통해 안전하고 꾸준한 단백질 섭취를 한다
차가운 음식(물, 커피, 얼음 등)에 대한 유혹이 낮아진다
유전자변형 대두, 옥수수, 토마토등에 노출이 없다
신장을 망가트리는 "제로당류, 제로칼로리"등에 쓰이는 알룰로오스, 스테비아 등의 노출이 없다
소화기에 무리를 주는 자일리톨과 다양한 감미료에 노출이 없다
대부분 질환에 영향을 주는 (인공) 당성분과 (가공) 유제품에 대한 노출이 없다
질 낮은 육류와 기타 지방 등으로 배만 부르게 하는 식사를 벗어나 건강한 체력(근력)과 면역이 회복된다
참고로 우리 몸에 "제때"라는 말만큼 건강한 조건은 없습니다. "제때 식사" "제때 운동" "제때 수면" 등 말입니다.
제가 절에 들어가기 전, 일상에서 그토록 많은 식생활과 식이요법등의 노력을 해도 변비에 차도가 없었던 이유는 바로 장내 유익균에 있었습니다.
시중에 파는 대부분의 먹거리는 김치와 장류마저저도 뒷면의 들어간 성분들을 읽어보면 사실 환자가 먹을 것들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당연합니다. 그것들은 다 이윤추구를 위해 철저히 계산되어 만들어진 상업적 결과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상품의 맛을 내기 위해선 가장 손쉽고 단가가 저렴한 방법과 재료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내 손으로 나를 위해 가정에서 만든 음식과는 그 목적과 정성에서부터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제 질병을 앓고 치유하며 여실히 배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일상의 나쁜 것들을 지속하면서 "~에 좋다" "~에 특효다" "~에 직방이다" 하는 것들만은 찾아다니며 실천하는 것은 백약이 무효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병은, 특별한 무엇을 해서가 아닌,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지 않는 가운데 치료된다는 사실입니다.
음식으로도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
여러분도 이런 말을 한 번쯤 들어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저는 절에서 처음 들었었습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맞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절밥을 통해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것들이 병을 고치는 약과 같은 역할을 하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환자가 아닌 건강한 일반인 모두가 약이 되는 음식만을 먹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뜻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인식하고 판단하여 건강함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길 희망할 뿐입니다.
입안에 넣으니 맛있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해서, 입으로 들어가 변으로 나온다고 해서 다 먹어도 되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건강을 잃어본 대부분의 환자분들이 아마 제 말에 깊이 공감하실 겁니다.
멋진 인테리어에 값비싼 재료와 예쁘고 먹음직스럽게 만들어 놓은 음식들이라고 해서 다 무해한 음식이 아닙니다.
회사와 브랜드가 크고 유명하다고 해서, 유기농이라고 쓰여있다고 해서, 맛있다고 해서, 간편하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먹어도 되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현대사회의 음식은 지성인이라면 한 번쯤 "이래도 되나?" 싶은 죄의식을 느낄 만큼 차고 넘치게 만들어지고 그 이상으로 버려집니다.
이제는 음식이 주린 배를 채우고, 건강을 유지하며, 내가 해야 할 일을 위한 에너지를 내기 위해 먹는 것을 넘어, 우리의 감각(욕망)을 채우는 당연한 문화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 젊은 여성들의 즐거움과 사교활동을 위해 빠질 수 없는 카페의 수많은 디저트들과 음료 대부분은 여성 질병 등에 주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한국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치킨과 맥주의 조합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미 우리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퇴근 후, 또는 휴일의 안락한 휴식을 위해 빠질 수 없는 각종 다양한 배달음식과 과자와 같은 간식거리들, 정신적 해방과 보상을 위해서는 당연한 듯 일상이 된 음주 등. 우리의 먹는 일은 이제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 삶을 누리고 표현하고 과시하는 다양한 척도마저 되었습니다.
때문에 음식-건강이라는 본질적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만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무언갈 먹는 일은 살기 위한, 즉 생존을 위함이 0번입니다.
그리고 생존은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하지 않으면서 불행하지 않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고, 건강하지 않고도 무언갈 해 낼 수 있는 것 역시 매우 요원한 일입니다.
저에게 절밥은 이 모든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공부의 시간이자, 지난 제 식생활을 대면하는 뼈아픈 후회의 시간이었습니다.
자유로운 식생활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아직) 아프지 않은 것은 여러분의 타고난 면역과 유전적 요인이 우세, 즉 강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방송매체가, SNS가, 대기업이, 대형마트가 온갖 마케팅으로 홍보하고 유혹하는 "음식을 가장한 편한 상품" 말고, 부디 여러분의 몸이 무리 없이 소화하고, 안전하게 흡수할 수 있는 "진짜 음식"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와 같은 건강한 식단을 단 열흘 만이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시도해 보신다면, 여러분의 뇌-시각-혀가 얼마나 깊이, 오랫동안 여러분을 속여왔는지 아시게 되실 겁니다.
"먹는 일" 에는 그만한 노동과 수고가 들어감이 정상임을 한 번쯤 생각해 보신다면, 우리가 얼마나 "먹는 일"을 등한시하는지 느끼시게 될 겁니다.
제대로 잘 먹고, 자고 싸는 일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하기 전, 잠시 절에서의 제 하루 일상과 일과를 과거의 시점에서 적어보겠습니다.
내가 지내는 한 평 남짓의 객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고 낡은 허름한 책상 하나, 백반집이나 기사식당에서나 쓸법한 허름한 업소용(식당)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한 밤 중, 요의가 급할 땐 요강을 대신하던 파란색 플라스틱 뚜껑 없는 작은 쓰레기통.
벽면 한쪽에 붙어있는 형광등 스위치와 기름보일러 컨트롤러.
봄부터 여름이 지나 한겨울 함박눈이 내려도 이불도 베개도 놓여 있지 않은 노란 장판의 맨바닥.
사실 절에서의 하루하루가 너무도 고되고 치열해, 누군가에게 이불을 챙겨 달라고 말하는 일조차 대수롭지 않아 까먹는다.
해 질 무렵이면 형광등 불빛에 환하게 드러날 실루엣을 감추기 위해 암막이 커튼대신, 문풍지 미닫이 문위로 겹겹이 포개어 걸어놓은 옷과 수건들.
태국여행에 들고 갔던 기내용 20Kg짜리 여행용 트렁크 하나와, 어깨에 메고 다녔던 가방 하나가 매일같이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 안에 열 달을 살, 몇 개의 속옷, 양말, 수건, 옷가지들이 다 들어있다. 부지런히 빨아 입으면 된다.
다만 계절이 바뀔 적에는 한 번씩 살던 집으로 돌아가, 주인이 죽어버린 듯한 원룸에서 바뀐 계절에 맞는 옷가지를 챙겨 온다. 절에 있는 동안 두 번 정도 집에 갔다.
때로는 옷가지와 수건이 담긴 열린 트렁크 반쪽을, 때로는 옷가지와 잡동사니가 든 가방을, 때로는 내 팔을, 때로는 태국서 쓰기 위해 가지고 갔었던 담요를, 때로는 수건을, 때로는 그냥 맨바닥을 베개 삼아 몇 초면 까무룩 잠이 든다.
깔고 자는 요도 없다.
절간의 적막과 고요함과 서늘함이, 내가 밖에선 누릴 수 없었던 평온과 안락의 요다.
절에 들어온 3월부터 나가던 12월까지 맨바닥이다.
전기장판 위에서 파삭하게 말라죽어가던 몸과 영혼이, 이곳에 와서는 한 평남짓 절절 끓는 기름보일러 맨바닥에 매일같이 살을 지지고
잠이 들어도, 한여름에도 더운 줄을 모른다.
더, 더 뜨겁고 따뜻하길 몸이 바란다.
덮는 이불도 따로 없다.
들어온 3월부터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내가 입고 들어온 봄 외투가 내 배를 덮는 이불이었고, 낙엽 떨구는 늦가을에는 내가 결코 돌아가기 싫었던 집에 가서 따로 챙겨 온 롱파카가 내 발을 데우는 이불이었다.
때로는 베개가 되고 요가 되던 담요가 이불 역할마저 대신하기도 한다.
덮고 있던 것으로 입고 나가 돌아다닌다.
덮고, 베고 있던 것을 입고 걸치고 나가 예불을 하고, 기도도 하고, 화장실을 가고, 밥을 먹고, 넓은 절간 곳곳을 걷고 오르고 뛰고, 돌아다닌다.
덮던 것을 입고 봉사를 하며, 설거지 물에 적시기도 하고, 차담도 명상도 한다.
내가 알고, 믿고, 붙잡았던 바깥세상의 모든 것들, 그리고 지난 서른아홉 평생, 내 안의 모든 기억과 감정과 생각들이 절간에 들어와 매 순간 벗겨지기 바쁘고 치열하다.
새벽 2시면 일어나, 전날밤 미리 머리맡에 챙겨두고 잠든 양말, 목도리, 겉옷, 외투등을 앉은 자리서 주섬 주섬 챙겨 입고 객방문을 열고 나간다.
전날 손 닿을 거리에 챙겨두지 않음, 도저히 새벽 2시, 깜깜한 새벽 기운을 이기고 스스로 일어날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새벽 정기는 서늘하게 맑고 아찔하게 반짝인다.
억수 장대비라도 오거나, 나뭇가지 꺾어대는 태풍이 불거나, 잔뜩 무거운 함박눈이라도 오는 새벽에는, 객방 문을 열고 나서는 몸과 정신이 더욱 칼날 같다.
스산하게 마른 잎 떨어져 나뒹구는 소리, 앞 산, 뒷 산 소나무들이 거칠게 부딪치는 소리, 마당에 마른 흙들이 쓸리는 소리가 요란한 문풍지 밖 새벽을, 내 안의 새벽 결기가 이기고 문을 연다.
서늘한 공기에 혹은 살 애는 바람 가르고,세탁실 겸 샤워실로 가, 물을 틀고 좀 씻다 보면 새벽 3시.
도량석 소리 들으며 담요 하나를 가슴에 품고 대웅전에 들어서면 나보다 더 먼저 와있는 스님과 신도. 정신이 번쩍 난다.
목탁소리에 맞춰 앉았다, 일어났다, 절을 하고 소리 내어 기도하다 보면 5시가 된다.
기도 후, 공양간에 내려가 공양준비를 돕다보면 허기가 절로 돌아, 조심스레 몸을 돌려 몰래 먹는 숭늉도 꿀맛이다.
눈앞에 허연 김이 나는 흰 밥에 간장 한 술 떠, 마른 김에 싸 먹고 싶은 충동은 매일의 아침이다.
6시 30분~7시, 새벽 공양이 끝나면 설거지를 하고, 빗어준 기억이 없는 머리를 제대로 한 번 빗어주고, 세수를 한 번 하고 나면 8시 아침 기도시간이 된다.
대웅전에 올라가 절을 하고 소리 내 기도하다 보면 9시가 되고, 밀린 빨래나 다림질을 하거나 전화할 일을 처리하다 보면 다시 10시쯤부터 점심 공양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다.
다시 후원에 내려가, 점심 공양 준비를 분주히 돕다보면 자연히 11시 30쯤 점심공양을 하게 된다.
점심공양을 마치고 설거지와 정리를 돕다보면 12시~1시.
혹은 10시 예불을 참석하기 위해 후원 점심 봉사대신 대웅전으로 가, 앉았다, 일어났다 절을 하고 예불을 마치고 나면 11시 30분, 점심 공양 시간이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설거지와 정리 후, 방으로 돌아오면 12시 30~1시가 된다.
이번에는 옷을 갈아입는다.
바다를 가야 하기 때문이다. (바다-치료 관련해서는 다음 회차에서 따로 다루겠습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태풍이 와도 간다.
생사를 이기고 싶다던 나와의 약속이다.
천지가 개벽해도 간다. 아프고 졸리고 힘들어도 한 시간 남짓의 운전을 하고 바다로 향한다.
바다에 가서 다시 옷을 갈아 입는다.
지독한 통증에 숨도 허리도 펴지지 않을 때에도 바다의 생명력을 부여잡기 위해 걷는다.
절기에 따라 맨발로 걷거나, 종아리까지만 바지를 걷어 올려 걷는다.
살이 에일 정도로 양 볼이 떨어지게 춥다.
5월이 되어도 양 귀가 쨍-하니 아프고 먹먹할 정도로 바닷바람은 거칠고 세다.
한 여름에는 목까지 입수를 한다. 유착과 염증을 고치기 위해서다.
그런데 다 이기고 걷고 걷다 보니 더 이상 바닷물이 차갑지도, 바닷바람이 세지도 않다. 평이하다.
바다를 한바탕 걷고 나면 오후 3시다.
공중화장실에서 대충 발을 씻고, 간략히 모래를 해결하고, 이제는 다시 한 시간 남짓 운전을 해, 절 근처 온천으로 향한다.
배가 쫄쫄 고프다.
말이 거창해 온천이지 일단은 입탕 할 수 있는 목욕탕이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이, 진통제로도 잠들지 않던 통증이 신기하게도 짠 바닷물속을 맨 살로 걷고 나면 거짓말처럼 조용해진다.
바깥세상 같았으면 이불 위에서 꼼짝도 못 했을 통증인데, 이 거친 바닷바람을 헤치고도 컨디션은 하루 중 최고가 된다. 매일이 깨어남이고 태어남이다.
목욕탕에 도착하면 오후 4시.
탕에 들어가, 절에서는 눈치가 보여 제대로 씻지 못했던 것들을 씻고, 뜨거운 물에 들어가 피로를 풀고 뭉친 근육과 혈액들의 순환을 돕는다.
린스나 트리트먼트 같은 것은 애초에 없는 채로 들어왔기에, 굳이 사서 쓸 마음의 여유도 없다. 그러나 점차 몸이 회복될수록 불편함을 못 느낀다.
씻고 나오면 오후 5시, 닦고 말리고 입고 나면 5시 반이다.
절로 돌아가 바로 저녁 공양을 하면 된다.
공양을 마치고 나면 6시~6시 30분.
처음에는 통증과 여러 가지 이유로 밥이 들어가질 않아, 거의 1시간씩 식사를 홀로 했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나면 하루 일과의 마지막인 저녁 예불과 기도가 기다린다.
저녁 6시 30분에 대웅전에 올라가, 다시 앉았다 일어났다, 절을 하고 소리 내 기도하고 내려오면 밤 8시.
한여름에는 습하고 찌는 더위를, 한겨울에는 핫팩을 몇 개씩 붙이고도 떨어질듯한 두 발과 두 손을 기꺼이 괴롭지 않게 참아내는 시간 자체가 기도다.
때론 지독한 통증과 고됨에, 내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서있는지조차 까마득할 때가 있다. 그래도 그 역시 기도다.
큰 대웅전 법당에는 촛불뿐이다. 대웅전 자체가 문화재이자 국보이기에 난방도 냉방도 없다.
기도를 마치면 서둘러 객방으로 돌아가 갈아입을 옷과 닦을 수건과 세면도구를 가방에 챙겨 씻으러 간다. 종종걸음으로 달리는 게 일이다.
밤 사이 소변이 마려우면 두루두루 낭패이니, 그 일 역시 매일 밤 꼼꼼히 잘 챙기고 들어온다.
밤 8시 30분~9시.
종이 지키전, 서둘러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머리를 풀어놓은 채, 감으로 화장품을 바른다. 핸드폰 불빛도 밝다. 옷도 감으로 갈아입는다.
선풍기 바람에 채 마르지도 않은 머리를 뒤로 하고, 나는 단숨에 깊고 노곤한 단잠에 든다.
그리곤 눈뜨면 다시 새벽 2시다.
절에는 감자 캐기, 배추 뽑기, 고추장 만들기, 된장 담기, 메주 띄우기, 간장 담기, 떡국 만들기, 팥죽 쑤기, 주중과 주말마다 이어지는 각종 크고 작은 행사에 쓸 음식과 재료 준비하기 등등등 무수한 노동의 릴레이다.
하지만 절에 살며 그 모든 일을 모른 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여러분은 이유도 모른 채, 제가 뜻 없이 줄줄이 나열한 저의 절에서의 하루 일상과 일과를 읽으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질문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로든 생사의 기로에 선 자라면
그것이 신체의 문제이든 정신의 문제이든
혹은 인간관계나 경제적 문제이든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일까요?
바로 버리는 일입니다.
현재 자신의 힘이 턱없이 약한 현실을 인정하고, 전에 자신이 알고, 갖고, 누리고, 혹은 원했던 것들이, 그것이 무엇이건 생사를 오가는 자신 앞에 무의미-무가치함을 깨닫고 버리는 일입니다.
그 시간들이 건강했다면, 혹은 그 과정들이 건강했다면 자신이 현재 생사를 오갈 자리에 서 있을 리 없기 때문입니다.
제 인생도, 그리고 몸도 마음도 제가 뭔가를 뼈저리게 깨닫고 반성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리셋하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무시하고, 누르고, 누르던 작은 태풍의 점은, 인생을 내려놔야 할 정도로 큰 쓰나미가 되어 저를 덮쳤습니다.
제가 쓴 저의 하루 일과를 읽으셨다면 아시겠지만, 그 어디에도 사회에서 개인이 추구할 만한 욕망을 위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의 일상과 일과는 오로지 단 하나를 회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 생존의 기본전제조건인 자고, 먹고, 싸는 일.
저는 잘 싸지 못해ㄱ 잘 먹지 못했고, 잘 자지도 못했습니다.
때문에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일을 방해하는 일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의도치 않았던 제 요양 아닌 요양의 첫 단추가 바로 그것이었고, 제 스스로에게 제대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일 외에, 그보다 더 큰 일은 없다는 사실만큼은 단 한시도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잘 자고, 먹고, 싸는 일이 인간의 목숨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님을 뼈아프게 배웠습니다.
처음에 제가 이 병으로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하고, 제 직업을 놓게 되고, 제가 평생 노력하고 꿈꿔오던 일들 조차 모조리 다 놓아야 한다는 현실을 직면했을 때, 여러분은 제가 매일매일 감당해야 했을 절망과 불행을 상상해 보실 수 있으실까요?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착각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환경과 여건이 좋으면 자신이 원하는 대다수의 일을 원만하게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역시 착각에 가깝습니다.
현재의 우리 자신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저역시 그렇게 착각하며 살아오던 삶에, 생각지도 못했던 질병이란 변수가 찾아와 제 인생을 꺼버렸습니다. 이태까지 제 몸과 제 삶을 움직이던 방식으로는 더 이상 길을 갈 수 없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해서도 아니고, 노력을 덜 해서도 아니고, 허황된 꿈을 좇아 살아서도 아니고,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용서치 못해 벌어진 일도 아닙니다.
돈도 벌 수 없는 몸, 일도 할 수 없는 몸, 혼자의 생활조차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몸.
그런 절대적인 무력함 앞에, 저는 절에 들어가서 절망과 불행이란 이름의 얼굴을 똑바로 인지하는 대에만 반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인지를 해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받아들여야만 다음 길로 선택을 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삶의 포기이든 삶의 나아감이든 말이지요.
그리고 절에서의 일상의 단순함의 반복은
저로하여금 제 자신과 주변을 똑바로 바라보고 인지하도록 돕는, 인생 최고의 공부-배움의 시간을 열어 주었습니다.
절에서 일과를 살다 보면 5천 보는 기본입니다.
바다를 걷고오면 1만보는 기본입니다.
게다가 어디서든 눈만 감으면 단잠에 듭니다.
별이 총총히 새는 새벽부터, 달과 별이 뜨는 까만 밤까지 이어지던 예불과 기도와 명상가운데 그리고 오고 가는 걸음걸음 가운데 저는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고요한 평온과 행복을 느꼈습니다.
잘 못 자서 생긴 병, 잘 못 먹어서 생긴 병, 잘 배출하지 못해 생긴 병, 너무 앉아만 있어서 생긴 병이 현대인들의 겪는 대부분의 병들입니다.
매일이 하루같이, 절의 요소요소 오르고 내리고 걷다 보면, 앉고, 일어나고, 절하다 보면 힘들어도 제 몸이 좋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살아있다, 깨어나고 있다, 느꼈기 때문입니다. 다시 "약동' 한다는 것을 환자의 몸으로 느낄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환자의 몸과 마음 안에서 싹트는 그 에너지는 어떤 약으로도 살 수 없는 치유였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아픈 환자가, 그것도 몸을 고치러 들러온 환자가 그렇게 무리해서 새벽예불을 가고, 삼시세때 덥고 추운데 서서 기도를 하고, 먼 곳까지 운전을 해 찬 바다를 걷고 오냐고요.
그런데 저는 그 질문을 듣고서야 알았습니다. 제가 중증 환자임과 동시에 낫아야만 하는 환자임을요.
저는 처음부터 병을 낫기 위해서 절에 들어간 것도 아니었지만, 타인들이 제게 저의 병을 인지시켜 주거나, 심한 통증이 찾아올 때가 아니면, 제가 아프다는 것조차 잊고 "매일이 하루같은" 일과 자체에 몰입해 생활했습니다.
때문에 하루 하루가 너무도 짧고, 지나간 열 달은 마치 하룻밤만 같았습니다.
기도를 할 때조차, 제 병을 낫게 해 달라는 기도는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더이상 낫게해달라 비는것 조차 무기력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통증이 극심해 기절이라도 하지 싶은 날은 그저 그 시간을 버티기 위해 이를 무느라 무언가를 빌어야 된다는 생각조차 나질 않았습니다.
제 대부분의 기도는 그저 기도를 위한 기도이자, 제 온몸과 마음을 고백하기 위해 애쓰고 던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거짓이 아닙니다.
절에 들어오니 막상 제 몸이 아프고 병든 것보다, 돌이킬 수 없이 위태로울 정도로 병든 제 마음과 영혼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한 평남짓의 객방 문을 닫고 홀로 들어서면 낭떨어지같은 현실속 그런 제 자신만을 마주했으니까요.
그 작은 객방, 아무것도 없는 그 객방에서 홀로 치른 무수한 전쟁과 투쟁 그리고 무너짐과 다독임의 시간들.
저의 의식은 저의 병을 의식하고 고쳐달라
기도하지 않았지만,
하루하루 단순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지탱하기 힘든 통증의 몸으로
치열하게 해내는 시간 속에,
저의 무의식이 의식을 대신해
절실하고 절박하게 기도했음을
이 글을 쓰며 깨닫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 기대 없이 모든 걸 받아들이고 수술을 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 검사결과에서 저의 지독한 4기 유착과 염증과 통증은 수술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나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무언갈 바랐으면 되지 않았을 일이었습니다.
저의 하루하루는 매우 단순했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출하기 위한 일차원적인 행위와 노력들이었을 뿐이니까요.
저는 그 정도는 움직일 에너지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었고, 저는 그 정도는 움직여야 잠을 푹 잘 수 있는 사람이었고, 저는 그렇게 먹어야만이 건강해지는 사람이었고, 저는 그렇게 먹고, 자고, 배출하면서 온전한 몸과 정신을 되찾을 수 있는 사람이던 겁니다.
제가 저의 지난 열 달간의 절 생활과 요양에 관해서 여러분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절도 살기 편하고 여유가 돼야 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거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거듭 말씀드립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절에 가서 병을 고치라는 말을 하기 위해 이번 연재를 쓴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께 하고자 한 말의 참뜻은 이미 글 요소요소마다 담겨있습니다.
저는 절을 나오기 위해 준비하던 때부터 다시금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했었습니다. 절에 들어가기 전의 지난 시간의 제 모습을 떠올려 보자면 제게는 매우 당황스럽고 불길한 징조였습니다.
나는 절에서 낫았는데, 절에 와서야 비로소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게 되었는데,
그뿐만이 아닌 지난 인생의 불행과 절망마저
이곳, 절에서 비로소 떨치고 일어설 마음의 힘이 생겼는데...
내가 대체 어떻게 나가 살지...?
내가 나가서도 절에서처럼 잘 먹고, 자고, 싸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절 밖을 한 발 딛자마자 다시 열 달 전으로 돌아가 버리면 어떡하지?
절이 아닌 다른 방에서 잠을 자고, 다른 물을 마시고, 다른 공기를 먹으며,
전혀 다른 음식들을 먹어서 내 몸이 다시 유착이 되면 어쩌지?
다시 변이 막히면? 다시 잠이 오지 않으면?!
절을 나오기 얼마 전부터는 절밖을 나가는 상상만 해도 어린아이처럼 불안함과 두려움에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그렇다고 나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언젠가는 홀로 서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스스로의 생존의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결과적으로 잘 홀로 서고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과 시간이 쉽기만 하다고 말한다면 거짓입니다. 누가 나를 품안의 어린아이 다루듯 해 줄 순 없기에, 매 순간 스스로 몸부림치고, 때론 다그치며 때론 다독이며 가고 있습니다.
그 노력의 결과로, 절이 아니어도 절과 다름없이 제 병을 다스리며, 더 이상 유착이 되지 않도록 예방적인 일상생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글 또한 쓰고 있습니다.
<서른아홉, 이토록 아픈 생리통> 연재를 결심하고 준비하던 작년 10월부터 가장 오랫동안 고민을 했던 회차가 바로 이번 회차였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로 인한, 절이라는 곳이 주는 선입견과 편견을 예상하기에도 어려웠으며, 종교가 다른 독자들에게 절 생활을 통한 요양과 치료된 과정을 대체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도 까막득 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깊이 책임감을 가지고 고민한 지점은, 모든 환자가 절로 들어갈 순 없는 현실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질문만을 던지고 문제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적어도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혼의 직장인, 워킹맘, 싱글맘, 전업주부, 수험생, 홀로 가장 등등 수많은 형태의 환자들이 존재합니다. 저도 그중 한 명입니다.
그런 제가, "나는 이렇게 나았다"라고, 환자였던 시절의 일기 또는 감상의 글을 공유하기만 하는 것은 굉장한 위험한 일이고 무책임한 일이라 여겼기에, 여기까지 오는 회차 하나하나가 제게는 대단한 도전이자 모험이었고, 책임의 무게였음을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음 연재에서는 저와 같은 환자분들이, 절이 아님에도 일상에서 어떻게 하면 유착과 염증을 다스릴 수 있을지에 대해, 그 이해와 접근에 대해 총 3회 차를 통해 다뤄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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