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은 다양한 (만성) 통증의 근본 원인 중 하나인 "염증"에 대해 알아보고, 무엇보다 (만성) 통증을 겪는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통증-내면 훈련"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 아울러, 이 글은 필자의 개인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을 뿐, 의료 전문 지식과 조언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진단·치료 및 의학적 판단은 반드시 전문 의료진의 진료와 상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본 글의 정보로 발생하는 법적·의료적 결과에 대해 필자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지난 연재에서는 18화 죽자고 든 하룻밤, 사랑에 들다: 희망이 없는 당신께 에 이어서, 심부자궁내막증 4기였던 환자가 한 산사에서의 열 달간의 요양 아닌 요양 생활을 통해 수술 없이 유착과 염증과 침윤이 나아진 시간들을 이야기 했었습니다.
특히나 사찰 음식만이 가진 특수성이 유착과 염증이 심했던 필자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또한 뭐든 "제때" 일과를 지키는 규칙적인 생활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순하지만 반복되는 산사에서의 생활이, 환자가 된 후 모든 것을 잃고 절망했던 필자를 어떻게 다독이고 일으켰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일상 속 다양한 통증의 원인이자, 생리통 그리고 심부자궁내막증의 주요 병증인 유착과 침윤의 근본적 원인이기도 한 "염증"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또한 저와 같이"만성중첩통증(Chronic overlapping pain conditions, COPCs)"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통증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통증-내면" 이론이 우리가 통증을 다루는 일에 있어 어떻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지도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만성중첩통증(Chronic overlapping pain conditions, COPCs)이란,
단일 질환에 의한 통증이 아니라, 여러 만성 통증 질환이 한 사람에게 겹쳐 동반되는 상태.
예를 들면, 섬유근통(Fibromyalgia), 만성 골반통(Chronic pelvic pain), 자궁내막증 관련 통증, 과민성 방광 증후군(Interstitial cystitis/Bladder pain syndrome), 과민성 장 증후군(IBS), 만성 두통/편두통, 턱관절 장애(TMD) 등이 한 사람에게서 중첩되고 증폭되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그 외에도 많은 통증 관련 질병들이 포함된다.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여러분이 혹시 지긋지긋한 (만성) 통증을 갖고 계신다면, 그래서 "통증"이 오면 우리는 왜 아픔-고통을 느끼는지 알고 싶으시다면, 지난 연재 10화 통증원인, (생리통과 자궁내막증) 통증엔 'P'를 끄세요 와 이번 연재를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통증 유발의 핵심 물질인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습니다.
통증(痛症): 몸에 아픔을 느끼는 증세_네이버 국어사전
여러분, "통증"은 말그대로아픔을 느끼는 증세이지, 병의 원인-본질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우리 몸 어딘가의 통증이 느껴지면, 그 "통증" 하나만을 가지고 질병의 원인과 치료에 접근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의사나 약사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오십견과 같은 지독한 어깨통증이나, 꾸준한 생리통,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인한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
"선생님, 제발 이 어깨 통증 좀...".
"선생님, 생리통 좀..."
"선생님 회사에서 배 좀 안 아프게..."
이 모든 말의 공통점이자 맹점은 "통증"을 빨리
낫게, 멈추게 해 달라는 겁니다.
또한 일부 의사들 역시, 해부학 또는 병리학적 설명보단, 그 통증을 누르는 처방약 설명에 머무는 게 현실입니다.
"통증"이 우리 몸안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우리는 마치 우리 몸과 상관없는 별개의 사건을 다루듯, "통증"을 외부인처럼 치부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통증"을 내 몸의 내밀한 상태와 연결 짓지 못한 채, 항생제, 진통제, 소염제, 해열제등을 "치료약"이라 오해하며 습관처럼 혹은 장기적으로 복용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감기"입니다.
통증이 없는 비염이나 아토피 피부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질병에 대한 환자 스스로의 질문과 고민이 없이, 매번 증상 자체만을 호소해, 약으로 누르는 횟수가 잦아지다 보면 나중에는 만성질환이 되어 또 다른 주변부 질환까지 생기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 사실을 대부분 의학정보로써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몸이 아플 때는 통증-염증이라는 관계를 단박에 연관 지어 떠올리지 못한 채
"통증" 자체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통증의 원인이 염증이라는 사실을 스치듯 알게 되지요.
염증(炎症): 생체 조직이 손상을 입었을 때에 체내에서 일어나는 방어적 반응. 예를 들어 외상이나 화상, 세균 침입 따위에 대하여 몸의 일부에 충혈, 부종, 발열, 통증을 일으키는 증상_네이버 국어사전
염증성 통증은 단지 경보-신호일뿐, 그 배후에는 우리 몸 안에 어떤 손상등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단 뜻입니다. 이 과정에서 손상된 우리 몸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염증 반응을 일으킵니다.
예를 들면, 혈관이 확장되고, 면역세포가 몰려들며, 여러 염증 매개물질(프로스타글란딘, 사이토카인 등)이 분비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통증을 느낍니다.
저 역시 초경 이후 겪어 본 적 없는 극심한 생리통이 찾아왔을 때도, 그리고 심부자궁내막증 진단을 받은 이후에도 "통증" 자체에만 집중했었습니다.
때문에 자궁과 직장의 "유착" 그리고 자궁내막조직세포의 "증식"과 "침윤"의 근본적인 핵심 이유와 답이, 바로 "만성 염증"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짧지 않은 시간, 근본적 병의 이해와 치료와는 점점 멀어진 채, 통증의 고통과 몸에 맞지 않는 약복용의 악순환만 반복하며 방황했었습니다.
그러다 제 병과 "통증"에 대한 답을 찾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지난 연재, 11화 다양한 진통제, 알면 달라지는 똑똑한 복용법에서 중점으로 다뤘던, 염증에 효과를 둔 "덱시부프로펜(Dexibuprofen)" 성분의 소염진통제를 우연찮게 복용하게 된 일 그리고 절에서 지내며 우연찮게 만나게 된 한의사 내외분을 통해 알게 된 제 몸속 "염증-어혈" 체질과 원리였습니다.
참고로 "어혈"에 관해서는 한의학 치료과정을 담게 될 추후 연재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통증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원인 모를 혹은 지긋지긋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면, 가장 먼저 몸 안의 염증반응이 높다는 사실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또한 신체가 염증반응이 높은 체질로 바뀌면, 다양한 (바이러스성) 질병, 비염이나 그 외 호흡기 질환, 피부병, 만성피로 그리고 다양한 만성적인 통증 등에 시달리게 됩니다.
외부 환경에 대한 면역체계(방어와 대응력)가 저하된다
면역의 항상성이 저하된다
면역의 자연 치유력(회복력)이 저하된다
때문에 건강이 유지된다는 것은 곧 면역력(방어, 항상성, 자연 치유력)이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는 유전적 이유입니다.
저를 예로 들면, 제 父계(아버지) 쪽으로는 대부분 염증 관련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유전적으로 건강한 보통의 사람들보다 피가 맑지 않고 탁하며, 모든 기관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친가 쪽 어른들 모두 다양한 크고 작은 질병들을 하나 이상씩 앓고 있습니다.
저의 질병과 증상들이 단순히 면역-체질이나 환경적 문제를 넘어, 유전의 문제라는 것을 인지한 후부터,
제가 염증을 대하는 자세는 매일매일 일상에서의 꾸준하고 집요한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면역-체질적 이유입니다.
제가 면역을 체질과 함께 엮어 말한 이유는, 면역이 좋아지면 체질도 바뀌고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로 면역이 무너지면 체질도 나쁜 쪽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또한 유전적으로 면역-체질이 좋고 나쁨에 따라, 같은 유전, 환경, 식습관에도 우리 몸의 결과는 달라지게 됩니다.
앞선 연재들에서 거듭 강조해 왔듯이, 면역-체질을 보호하고 도움이 되는 방법에는 다양한 일상의 노력들이 있습니다. 정보가 필요하신 분들은 19화 山寺일기: 과학을 품은, 기도 그리고 08화 생리를 위해 하지 마세요: 생리통의 적 '열 가지'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는 일상생활-습관-환경적 이유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어떤 환경에서 자고, 먹고, 씻고, 일하고 생활하는지 그리고 어떤 습관을 갖고 생활하는지를 말합니다.
우리 몸에 갑작스러운 큰 질병들이 생겼을 때, 유전적 이유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부정적인 환경-습관, 이 두 가지가 오랜 기간 합쳐져 발생한 시너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부정적인 환경이 건강에 미치는 극단적인 예로, 환기시설이 열악한 급식 조리실, 반도체 공장이나 섬유화학공장 등의 근로자들의 산업재해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네 번째는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입니다.
염증과 관련해서 가장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요. 이윤, 유전적인 부분, 면역-체질적인 부분 그리고 환경적인 부분까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과 만나, 건강에 좋고 나쁜 시너지를 내기 때문입니다.
직전 연재의 본문 중에 이런 말씀을 드렸던 기억 나시지요?
"음식으로도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오랜 기간 섭취하냐에 따라, 유전적 요인을 더 빠르고 앞당길 수도 있으며, 면역-체질을 고질적으로 나쁘게 변질시킬 수도 있으며, 나쁜 일상습관과 환경과 만나서는 큰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모든 안 좋은 조건과 환경 속에서도 건강한 수면생활과 꾸준한 운동 그리고 스트레스 관리를 통해서 몸의 순환을 돕고, 노폐물과 독소 등이 잘 배출이 된다면, 우리 몸의 염증반응을 관리하는 일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진료를 갈 때마다 의사나 간호사의 말들이 늘 이해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이 설명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제 몸의 통증들은 믿을 수 없게 다양하고 끔찍한데, 저는 의료진들의 설명 속, 실마리 삼을 수 있는 몇 개의 단어나 문장들을 겨우 기억하며 곱씹어 보는 게 다였습니다.
단순하고 일시적인 통증이 아닌, 내 몸을 점령하다 못해, 주인이 되려 하는 중증의 통증을 상대하기에는, 환자인 제 자신도 통증에 대해 다른 자세로 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제가 저의 첫 주치의와의 면담 때마다 "통증"의 대한 근본적인 의문과 그에 대한 실마리를 갖게 해 준 단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단어를 말하기에 앞서, 제가 찾아본 "통증"의 의학적 정의를 한 번 적어보겠습니다.
통증이란,
통증은 실제 또는 잠재적 조직 손상에 대해 신경계가 만들어내는 보호적 경보로, 말초 자극이 뇌의 처리, 조절을 거쳐 불편하고 불쾌한 감각과 정서 경험으로 지각되는 현상을 말한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여러분, 위에 통증의 정의를 읽으시며 뭔가 의아스럽거나 이상한 점이 없으셨을까요?
저는 있었습니다.
바로
정서-감정입니다
"신체적 통증이 정서적 경험을 내포한다."
제 첫 주치의였던 의사 선생님은 저와의 첫 면담 때부터 줄곧 저의 통증을 마음-정서-감정과 연결 짓는 문장으로 말했었습니다.
그러면서 권했던 책이 바로 김주환 교수가 쓴 베스트셀러 <내면소통>입니다.
의사의 입에서 통증-정서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저는 의문이었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여서 자꾸 저런 말을 하는 건가?
아니면 몸의 실제적 통증이 정말 심리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얘길 하는 건가?
종교인이나 사이비교주도 아니고... 심지어 의사가?
그렇다면 더 혼란스러운 문제였습니다.
무협지 속 이야기도 아니고, 내 마음이 바뀌면 통증도 사라진다?
---> 그러나 맞는 이야기였습니다.
설명을 드리기 앞서, 임상적으로 통증의 분류에 대해 간단히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통증의 분류---> 유해수용성 통증, 신경병증성 통증, 노시플라스틱 통증
---> 조직 손상(외상, 염증, 기계적 자극)으로 생기는 가장 일반적인 통증
칼에 베였을 때의 즉각적인 통증
뜨거운 물이나 불에 데었을 때 통증
발목을 삐끗(염좌) 했을 때 통증
충치로 인한 치통
근육통, 관절통
생리통(자궁내막이 벗겨지면서 생기는 염증 반응)
---> 신경 자체의 손상, 병변이 원인
대상포진 후 신경통 (피부 발진이 사라진 후에도 한동안 따갑고 화끈거림)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 (발바닥 화끈거림, 저림)
좌골신경통 (허리 디스크로 신경 눌림 ---> 다리로 뻗치는 전기 온듯한 통증)
손목터널증후군 (정중신경 압박)
치과치료 후 신경 손상으로 인한 지속적인 감각이상 통증
오십견(유착성 관절낭염)과 석회성 건염(석회성 건병)
외과 수술과정에서의 신경절단 및 손상 등의 이유로 환자가 호소하는 신경성 통증
---> 명확한 손상, 병변은 없는데, 중추 신경계의 통증 처리 시스템 이상(중앙 감작)으로 발생
섬유근통 (전신 근육통, 만성 피로 동반)
과민성 방광 증후군 (요의, 잦은 긴급감, 통증 있지만 뚜렷한 손상 없음)
과민성 장 증후군(IBS) (배 통증과 설사·변비 반복)
만성 골반통 (특히 자궁내막증, 골반 장기 손상등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
편두통 (노시플라스틱 기전으로 설명되는 두통을 말함)
자궁적출 후에도 환자가 수술 전에 느끼던 병변의 통증을 계속해서 느끼는 증상
중앙 감작이란,
척수와 뇌 같은 중추신경계가 과도하게 흥분하고 예민해져서, 원래라면 아프지 않을 자극도 통증으로 느끼거나, 작은 자극에 과도한 통증을 느끼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1. 과통각(Hyperalgesia): 원래 아픈 자극이 훨씬 더 아프게 느껴짐
2. 이질통(Allodynia): 원래 아프지 않은 자극(옷이 스치기, 가벼운 압박)이 통증으로 느껴짐
: 통증 부위가 원래 손상 부위를 넘어 더 넓게 퍼짐
유해수용성 통증과 신경병증성 통증 부류와 달리, 노시플라스틱 통증은 비교적 최근에 추가된 통증분류라고 합니다.
또한 예전에는 통증에 대한 접근이 1차원적 이었으나. 최근 들어서 현대의학은, 신경병증성 통증과 노시플라스틱 통증으로 인한 질병과 환자들에 대해 새로운 견해로 접근하며 다양한 통증의 해석과 관리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심부자궁내막증 4기 환자였던 저는 위 세 가지 통증부류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연재를 소개하면 설명한 "만성중첩통증(Chronic overlapping pain conditions, COPCs)" 환자인 셈이지요.
제가 수술을 두려워하며 우려했던 후유증과 합병증들 역시 신경병증성 통증과 노시플라스틱 통증에 해당이 됩니다.
아시다시피, 중증의 DIE 환자가 느끼는 통증은 단순하고 일시적인 통증이 아닙니다.
이 문장을 쓰며 기억이 납니다.
제가 <서른아홉 이토록 아픈 생리통>을 통해 'DIE'라는 질병을 그토록 알리고자 했던 강력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심부자궁내막증(DIE)으로 인한 통증의 "각인"이었습니다.
통증 각인
일상 속, DIE로 인한 통제불능의 "통증"은 단순히 통증을 넘어서, 환자의 영혼에 깊이 "각인" 됩니다.
(원인 모를) 끔찍한 통증들에 오랜 기간 노출되어 무력함을 느끼게 된 환자는 극도의 불안증세와 우울증세를 보입니다.
통증 앞에 "먹고-자고-싸고"라는 인간 공통의 일상을 잃어가며 환자는 두려움이나 불안을 넘어, 공포-공황상태를 경험하지요.
"통증"을 통해, 나를 잃어간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그리고 어떻게 인간이 인격을 잃가는지를 몸소 알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통증-내면(정서) 이론이 발휘됩니다.
처음에는 통증의 원인인 질병 자체가 사라져야 (환자인) 저의 마음이 안정된다고 여겼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절에서 열 달을 지내는 동안, 통증이 저를 잠식할 때마다 의사의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습니다.
통증... 마음.... 내면...
이 지독한 통증이 (실제 하지 않는) 내 마음 때문이라고?
괴상한 이 이치가 믿어지지도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절에 있으면서도 저를 괴롭히는 바깥의 문제와 관계들은 늘 객방까지 따라 들어와 저를 멱살 잡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다 열 달이 하루같이 반복되는 단순하고 치열한 나날 속, 어느 순간부터 제가 알고 있던, 저라고 믿었던 제 자신과 현실을 (본능적으로 혹은 자연적으로)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좋아 내려놓은 것이 아닌, 희망과 선택지가 없어 내려놓게 되었지요.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이 벼랑 끝에 오래 매달려 있으면, 어느 순간 지쳐 손을 놓게 되는 시점이 온다는 것을요.
그러나 그 순간이 고통스럽거나 불행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살며 느껴본 적 없는 명료하고 청량한 감정이었습니다.
그때부터는 더욱 "오늘 하루치 희망"에 집중해 살았습니다.
매 순간 현재 할 수 있는 일들에만 집중했습니다. 저를 에워싼 모든 것이 사면초과라, 굳이 불행했던 과거를 돌아볼 이유도, 희망을 갖고 앞을 그려볼 미래도 없었습니다.
내게 주어진, 내 노력으로 가능한 "오늘 하루치의 희망"인 매일 제때 먹고, 제때 자고, 제때 싸고, 기도하고, 예불하고, 바다를 걷고, 목욕을 가고, 다시 돌아와 기도하고 자는 일.
그러다 신비한 일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오늘 하루치 희망"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단순한 일상이 습관이 되더니, 어느 순간, 평생 저를 "못난 인간" "자라지 못한 아이"로 괴롭히던 제 안팎의 모든 문제, 관계, 결핍, 과잉들이 죽고 사는 생사 앞에 한 톨 먼지만큼도 아무것도 아님을 "인지" 하게 되었습니다.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 당연한 것을 왜 이제야 인식하는가?
그럼 여짓 덜 아프고 덜 고통스러워 몰랐단 말인가?
아니었습니다.
덜 아파서도, 덜 고통스러워도 아니었습니다.
통증이 올 때마다 그 고통이 믿어지지 않아 통증-정서라는 말의 답을 찾으려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통증으로 인한 고통이 이토록 형벌과 같을 수 있나? 그런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제 지난 생애를 낱낱이 살피고 샅샅이 뒤지는 일을 하고 또 했습니다. 그리고 끝이 없을 줄 알았던 통증-정서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점령당해 가던 저의 통증은 질병 자체로 인한 통증만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신체적 고통-통증에는 제 지난 서른아홉 해의 삶의 고통과 불행과 절망이 모두 덮혀 있었습니다.
마치 태중에 있던 아이가 열 달 양수 속에서 탯줄로 세상밖의 좋고 나쁜 모든 것을 흡수했듯이, 저의 통증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과 기억들을 먹고 있었습니다.
일평생 제 몸과 마음의 (무) 의식에 쌓이고 덮인 저의 부정적인 경험과 기억과 감정들이 결국은 저의 나쁜 유전적 요인, 약한 면역과 체질 그리고 나쁜 생활습관, 식습관, 환경을 만나, DIE라는 질병을 유발하게 된 겁니다.
"그럼 왜 굳이 자궁-직장의 유착일까?"
직장 관련 가족력이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저는 평생 여자로 태어난 제 자신의 운명이 너무도 싫었습니다.
특히나 여러 이유로 인해 자궁-여성의 생식기관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과 기억들이 많았지요.
남녀의 성관계 행위 자체에 대한 어떤 "혐오"와 "기피"도 있었습니다.
저만(이) 알 수 있는 그런 복잡하고 불가측(不可測)한 내면의 시간들이 결국 질병의 유발뿐만 아니라, 모든 통증을 과통각 (Hyperalgesia) 하고 이질통(Allodynia) 하게 저의 뇌-감정에 "각인" 시켰던 겁니다.
이 사실을 인지하자, 제 자신이 "통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부각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시무시한 통증의 가면을 한 꺼풀 벗겨 낸 겁니다.
통증 자체가 작은데, 제가 그 통증을 정서적으로 부풀려 키웠었단 뜻이 아닙니다.
통증의 신체적-정서적 뿌리를 들여다보게 되어,
통증과 제 자신을 분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통증이라는 괴물에 잠식되지 않을 힘을 회복하게 된 것이지요. "통증"만 생각해도 불안과 공포로 공황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닌, "통증"을 다스리는 다양한 저만의 방법과 여유, 즉 마음 안의 공간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무가치한 지난 서른아홉의 삶의 방향을 인지하고, 그 많은 것들을 버리자, 비로소 저를 잠식하던 "통증"을 병리학적 이유 안에서 정확히 이해하며, 제 몸에서 일어나는 상황들과 변화를 차분하고 깊게 관찰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 덕분에 "통증"을 다스리며 수술을 하지 않고 낫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요.
통증의 각인이 무섭고 위험한 이유는, 병-통증과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통증의 강도나 빈도에 관계없이 환자는 신체적-정서적으로 24시간 통증으로 인한 공포와 우울감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환자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도록 환자를 정서적으로 무너트리게 됩니다.
또한 (제 경험으로는) 신체적-정서적으로 조금만 부정적인 이슈가 있어도, 혹은 그와 관련된 생각-감정을 떠올리기만 해도 환자의 통증은 정서와 연결되어 자동벨처럼 통증도 함께 울립니다.
아마 이 부분이 위에서 설명한 "중앙 감작" 증상일 겁니다.
때문에 만성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통증-내면 훈련은 매우 중요한 이론입니다.
통증을 지닌 환자들은 자신이 "통증"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살핀 후, 통증이 뇌-내면에 각인되지 않도록 환자 스스로가 자신을 보살피고 구해줘야 합니다.
이미 "각인" 이 됐다 해도 시간을 갖고 노력하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하는 가족 또는 친밀한 관계의 누군가와의 내밀하고 활발하고 꾸준한 소통일 겁니다. 가장 건강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지요.
하지만 모든 환자가 그런 축복된 일상을 누리진 못합니다. 슬프게도요......
그러나 불행해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자신을 가장 강력하고 빠르게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는 바로 환자 스스로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자신의 질병과 불행에 대해 누구의 설명과 도움도 아닌, 스스로 알려하고, 스스로 인지하고, 스스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실천하고, 스스로 북돋는 일이 저를 통증의 각인으로부터 서서히 살렸습니다.
지난 서른아홉 해의 "빈틈없이 빼곡하던" 삶의 절망과 불행까지도요.
마치 민달팽이가 사람 달리는 길을 기어가듯, 그렇게 느리고 눈에 띄지 않는 속도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 작고 미천한 민달팽이는 자신을 지킬 집은 갖고 있지 못했지만, 대신 무너질 대로 무너진 몸과 마음과 영혼을 안전하고 단단하게 지킬 집으로써, 평생에 이어질 기도와 명상 그리고 건강을 위한 꾸준한 실천의 길을 찾고, 선택했습니다.
저와 같이 미천하고 미약한 사람도 찾아냈다면, 여러분은 더더욱이 충분히 찾을 수 있습니다.
삶이 던지는 수많은 예츨불가의 역경 속에서 자신을 단단히 지켜줄 "내면의 집" 을 말이지요.
이번 연재를 준비하며, 제 안에 담긴 통증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나와 같은 환자들은 분명 통증에 효과적인 방법을 알고 싶어 이 글을 클릭할 텐데..."
그러다 예전에 건강과 질병 관련 정보성 책을 사보던 제 자신을 떠올려 봤습니다.
저 역시 독자의 입장에서 제가 필요한 정보-답을 알기 위해, 책을 사자마자 목차부터 펼쳤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실 겁니다.
세상 어떤 일에도 지름길이나 왕도 같은 것은 없습니다. 때문에 세상 어떤 책도 해답만을 펼쳐놓을 순 없습니다.
인간-삶에 관한 모든 일들이 유기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답을 흉내 낸 글이 아닌, 이정표가 될 수 있는 글을 전달하자"라고요.
저라는 부족한 사람이 준비한 이번 연재가, 부디 이 글을 읽을 여러분들 중, 누군가에게는 꼭, 반드시 만났어야 할 "이정표"와 같은 글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