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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통증과 상처를 치유하는 슈퍼어싱_Earthing

by 천변만화

※ 본문에는, 다양한 통증과 만성변비를 겪는 분들과 또한 필자처럼 (심부) 자궁내막증 직장유착으로 인한 극심한 변비의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에게, 필자가 바다를 걷는 행위, 일명 바다어싱(Earth+ing) 또는 슈퍼어싱 (Super Earthing)으로 불리는 바다접지를 통해 심부자궁내막증 4기 통증과 변비 호전에 어떤 도움을 받았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염증으로 인한 침윤과 직장(直腸) 유착 그리고 오랜 책상생활 등으로 인해 장(腸)이 늘어지고 활동성을 잃은 구조적 문제를, 바다접지 (Super Earthing)을 통해 구조적 문제가 개선되고 장내 공간이 확보되는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본문에는 바다를 맨 발로 걷는, 일명 슈퍼어싱이 우리 인체의 통증과 정서적 문제 등에 어떤 메커니즘으로 도움을 주는지에 대한 그 기전을 나름의 노력으로 설명해 보았습니다.

※ 아울러, 이 글은 필자의 개인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을 뿐, 의료 전문 지식과 조언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진단·치료 및 의학적 판단은 반드시 전문 의료진의 진료와 상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본 글의 정보로 발생하는 법적·의료적 결과에 대해 필자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지난 연재_ 23화 (만성) 변비의 2가지 핵심: "변"이 풀려야 ""이 풀린단 사실


지난 연재에서는 (만성) 변비의 핵심인 "장내 유익균" 그리고 "장의 구조적 문제"를 말씀드렸습니다.
동시에 (만성) 변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필수조건인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

무엇보다 변을 풀어야 병이 풀리는, 너무도 생소하지만 중요한 메커니즘을 설명드리면서, 제가 변을 풀어야 한단 사실을 알게 된 계기와, 변을 풀이 위한 노력으로 섭취했던 식품들을 연재 말미에 간략히 적었습니다.

참고로, 지난 연재의 말미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장내 유익균"은 우리가 먹는 것들을 통해서 충분히 개선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식품 외에 변비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장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대한 저의
이야기를 다음 연재, 즉 오늘 이어질 24화에서 다루겠다 예고드렸었습니다.


오늘 연재_ 24화 통증유착풀어준, 지구의 물, "바다"


<서른아홉, 이토록 아픈 생리통> 연재를 시작하며 가장 다루고 싶은 주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글의 구성상, 그 주제들이 뒤로 밀리며 연재의 후반부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주제인 "물" 역시 그렇습니다.
제가 본문에서 말씀드릴 "물"은, 마시는 물이 아닙니다.

바로 "바다"입니다.

지난 23화 변비 핵심 둘 & "변"이 풀려야 "병"이 풀린단 사실 에서 예고드렸듯, 변비 치료의 두 번째 핵심인 "장의 구조적 문제" 에 대해 다루겠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장내 구조적 개선" 은 결국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질병의 직접적 수술치료입니다.
절대적으로 수술을 통해서만이 구조적 문제를 정상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경우가 있겠지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수술 전 또는 수술 후의) 생활속 노력을 통한 개선입니다.
바로, "끊임없이 장이 움직이도록, 그래서 다시 탄력성을 회복하고 스스로 일하도록" 걷고 또 걷는 일입니다.

* 물론 저는 수술을 하지 않고 유착을 낫았기에 아주 많이 예외적인 케이스이지요.

그런데 무작정 걷기를 해서는 그 효과가 미미하거나 없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인지라, 그리고 우리의 인체는 하나의 우주와 다음없는 메터니즘으로 만들어져 태어난 존재이기에, 우리의 정서와 인체에 좀 더 유리하고 더 나은 환경속에서 꾸준히 걸어준다면, 가장 과학적인
걷기의 접근 일거라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제 자궁과 직장유착의 가장 큰 원인으로 여기는 것이, 제가 지난 세월 너무도 몸에 가혹할 정도로 책상에 앉아서만 생활한 오랜 집필기간과 직장생활 그리고 고시공부라고 말씀드린 적 있습니다.

또 아시다시피 저는 산사(山寺)에서 10개월 동안, 절에서 움직이는 걸음수만도 ㄱ의 매일 하루 5천보에 가까웠다고 말씀드렸었죠.

때문에 (의사분들께서 들으시면 참으로 무지한 이야기라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다만) 저는 제 질병의 접근을
어쩌면 지극히 단순히 접근했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앉고 움직이지 않는 일이 지긋지긋할 나의 몸, 특히 고관절(정확히는 골반강)이 품고 있는 자궁과 직장, 방관 등에게 더이상 앉는 일을 참아내도록 하지 말자!

무조건 움직이고 계속 움직이자. 무식할정도로 움직이자!

앉아서 붙었다면 움직여서, 활동성을 만들어주어 다시 공간을 확복해 주자!

물론 넓게 퍼진 심각한 염증과 깊은 침윤과 유착으로 처음에는 오히려 움직임을 주는 일이 더 고통일 수다 예상했습니다만, 염증, 어혈, 유착, 침윤, 통증, 변비 등의 증상들을 먹는 일과 자는 일과 기도하는 일과 침 치료와 한약치료를 동시에 병행하고 있기에, 저는 시간의 힘을 믿기로 하고 그 고통을 감내하기고 작심한 채, 매일 1만보를 어떤식으로든 걷겠다. 스스로 결정했습니다.



*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여러분은 혹시 제 연재를 읽어오시며 제 글이 내용의 완성도를 떠나, 구성상 너무 길거나, "누가 이렇게까지 하겠어?"라고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그러나 정말로 생사를 오가는 병의 무게를 짊어진 사람에게 두꺼운 책이란 없고, 어려운 노력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당히 아프고 적당히 힘들 때는 뭐든 요령을 찾고, 핵심을 묻고, 편한 방법을 생각합니다만


"생사(生死)가 하나다
즉, 죽고 사는 게 결국 하나였구나,
이렇게 왔다 가는 거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을 건너고 나면 오히려 어려움과 요행을 구분하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사람은 (나만의) 방법을 찾기 위해 태어난 동물이지
정해진 답을 답습하며 좌절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고군분투하며 찾는 과정 속에서
(나의) 존재, 태어남의 이유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다룰 내용 속, 제가 한 노력 역시 그렇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날 살린 번째 ""을 만난 계기


기억하실 겁니다.


제 DIE라는 병명으로 인한 통증은 상급병원의 어떤 처방약이나 마약성 진통제 주사로도 듣지 않았었다는 사실을요. 특히나 유착과 광범위한 염증과 깊은 침윤으로 인한 직장과 항문의 통증과 경련은 삶을 살며 "고문"이 있다면 이 정도일까?라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통증을 저는 "첫 번째 물"로 낫았습니다.


또 기억하실 겁니다.

제가 수술에 대한 현실적 어려움과 두려움으로 모든 걸 포기하고 죽기 위해 한 산사(山寺)로 도망쳤던 이야기도요.

그리고 그곳, 산사에서 지독한 통증을 낫게 한, "첫 번째 물"을 만났습니다.


날 다시 일으킨 물, "바다"


저에게 육체적 질병과 영혼의 묵은 고통을 씻어내 준, 지난한 아픔의 시간들로 쪼그라들고 가난해진 영혼까지 씻기고 넓혀준 운명의 바다는 "서해(西海)"였습니다.

사실 저는 아프기 전까지 개인적으로 서해를 가장 즐겨하지 않았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바다는 동해(東海)였지요.

사실, 서해를 지나칠적바다 "저것도 바다냐?" 싶은 게 서해였습니다.




---> "바다"를 맨 발로 걷게 된 계기


작년 3월, 아무 약도 듣지 않은 채, 통증과 수개월 간의 "변비"를 고스란히 안고 산사로 갔을 적, 그곳에서 어릴 적부터 인연이 있던 노스님은 저에게 바다를 "매일" "목숨처럼 여기고" "기도라 생각하고" 맨 발로 걸으라는 절대명령? 같은 숙제를 주셨습니다.


그 스님은 저뿐만이 아닌, 스님을 찾아와 인연이 된 여러 부류의 "환자"들에게 오래전부터 무조건적으로 바다를 맨 발로 걸을 것을 주야장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절대" 걷지 않았습니다.

"저 스님이 안 아파봐서 저러지" , "본인이 생리통도 모르면서 이 고통을 어찌 안다고"


통증들로 사경을 헤맬지경인데, 밥 숟가락도 못 드는 지경에, 홀로 운전대를 잡고 왕복 두 시간을 바다를 다니라니요.

게다가 3월의 바다는 겨울 칼바람ㄴ과 다름없이 바람이 살을 에는 시기인데, 가뜩이나 온몸이 찬 환자에게 그 바다를 맨 발로 걸으라니요. 상상만 해도 통증이 배가 되는 듯 끔찍했습니다.

무엇보다, 오랜 변비와 항문과 직장통으로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인 사람에게 운전이라니...

참으로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 보아도 말도 안 되는 짓을 시킨다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서해바다는 제게 위생적으로 "더럽다"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혹여 맨발로 걷기 상처가 나서, 감염으로라도 이어진다면, 혹은 여성의 생식기에 치명적인 유해균등이 들어가 병을 더욱 악화시키면 어쩌지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해보지 않은 자의 우려일 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직까진) "더러워 보이는 서해 바다" 보다 부정한 건 차라리 사람의 몸과 마음이었습니다.




그 터무니없는 권유에 "정말일까?" 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 계기.


여러분, 이것도 기억하시지요?

산사로 떠난지 며칠 만에 그 지독한 변비는 조금씩 "스스로" 신호를 보냈었지요.

죽자고 떠난 곳인데, 단 하룻밤만 있자 작정했는데, 어찌 된 게 하루하루 있을수록 자꾸만 망가진 몸뚱이로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넘치는" 관심과 애정과 걱정과 조언들로 저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를 계속해서 해야만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죠.

그러다 보니 환자 자신만이 느끼는 아주 약하고 미세한, 치료의 희망이 되는 신호들을 저는 산사에 가서야 만날 수 있었으며, 여러모로 닫히고 다친 저의 마음의 틈도 만들어졌습니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죽게 아픈 거, 속는 셈 치고 한 번만 걷고 오자!"


그렇게 해서 저는 산사에 간지 몇 주 후, 4월의 어느 날부터 바다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왕복 두 시간짜리 거리의 운전을, "이것이 내 현실인가" , "내 인생이 어쩌다 이지경까지 왔나"싶은 통증으로 인해 신음하고 땀 흘려 가며, 눈물 콧물을 바닷바람에 훔쳐가면서요.




※ 본문의 "바다 걷기와 입수" 관련된 내용은 지극히 개인의 경험과 생각일 뿐, 바다=치료라는 이론을 일반화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다시 한번 밝힙니다.


---> 그 "바다"를 어떻게 걸었나


바다를 걷는 일에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위에서도 썼듯이, 스님은 제게 바다 걷는 일을, "매일" , "목숨처럼 여기고" , "이게 지금은 너한테 기도다" 생각하고 걸으라고 하셨지요.


그리고 여기에는 다음의 조건이 더 있습니다.

두번째 조건을 말하기에 앞서, 사람이 살고자 하는 마음, 그러니까 사람이 자신 스스로를 살리겠다는 마음에는 행성이나 별 하나의 에너지와 맞먹는 굳은 결기가 생겨난다는 것을 저는 경험했습니다.

때문에 저는 스님이 말씀한 또 두 번째 조건이 어떤 뜻을 품고 있는 바인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그 조건은 바로, 날씨가 "무엇" 하더라도 "무조건" 걷는 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즉, 지진이 나도, 폭우가 와도, 태풍이 와도, 폭설이 와도, 미세먼지가 꽉 차도, 대단한 폭염이나 한파일지라도, 해무가 가득해도 매일 걷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저는 그리 지켰습니다.


셋째,

세 번째 조건은 "절기"에 따라 걷는 방식을 달리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제는 중년이 되어가는 나이인지라 그런지 몰라도, 어릴 적부터 환경이 오염된 지금까지도 우리나가 달력에 적힌 "절기"에 따라 어김없이 돌아간다는 것을 느낍니다.


코로나 종식 이후부터는 "절기"에 맞춘 계절의 변화가 조금씩 뒤틀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연은 절기를 따르고, 사람의 몸 역시 절기에 따라 바뀌는 자연을 따라갑니다.


"입하"가 되면 무릎까지 맨 살로 걷다가, "대서"로 갈수록 허리까지 들어가 걷습니다.
그리고 한 여름인 "대서"가 되면 목까지 입수를 하여 바다를 누립니다.

절기가 다시 돌아, "처서"가 되면 더 이상 입수를 하지 않고, 다시 맨 발로 복숭아뼈 정도까지만
바다에 담그고 걷습니다.

그 후, 절기가 다시 돌아 "입동"이 되면, 그때는 운동화 등의 신을 신도 걷습니다.

그러다 또 절기가 돌아 "경칩"이 되면 다시 신과 양말을 벗고 맨 발로, 복숭아뼈 정도까지만 바다에 담그고 걷다가 다시 서서히 "입하"가 돌아올 때까지 종아리까지 바다에 담그고 걷다,
다시 "대서"가 되면 입수로 바다에 온몸을 담급니다.

다만, 맨발로 복숭아뼈~발목~종아리 정도까지 담그고 걸을 때는 자신의 통증정도에 따라 20분~50분 정도 걷습니다.

참고로 저는 중증의 허리도 못 필 통증일 때에는 40~50분 정도를 걸었었습니다.
이윤, 절에서 채우지 못한 1만보를 반드시 채우기 위해셨지요.

** 아시죠? 이번 연재 소개단락에서도 썻듯이, 자궁과 직장의 유착 그리고 장의 구조적 문제로 인한 극심한 변비를 해결하기 위한 저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서"가 되어 온몸을 바다에 담글 때엔 사람마다 다를 순 있겠지만, 20분을 넘기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다에 들어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바다를 즐기는 몸과 마음은 너무도 좋지만,
바다와 파도에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어 체력이 떨어지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 바다에 나온 후 기력이 더 떨어져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저는 입수 시 거의 항상 30분~50분 정도 몸을 파도에 맡기다 나왔었습니다.

*** 그 이윤, (지극히 개인의 경험입니다만) 근 이십년 가까이 앉아서만 생활하며 죽어가던 저의 몸, 특히 유착이 되어버려, 제 삶을 멈추게 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존재의 고통을 호소하는 저의 유착부위 (즉 하복부 부위)가, 때론 살랑이고, 때론 일렁이며, 때론 격정적으로 넘실대는 파도에 닿고 부딛칠수록, 제 몸이, 특히 유착된 부위들이 회복되고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걸 제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생명력말입니다.

입수(入水) 후, 물밖으로 나오면 넘치는 에너지와 함께 굉장한 허기를 느끼는데요, 그 역시 굉장히 기분이 좋아지는 건강한 허기짐이었습니다.

다만, 그만한 영양보충을 해주지 못한다면, 역시나 20분 이상의 입수를 추천하지 않는 이유에 타당성이 있다고 봅니다.

는 것은 절대 아



---> "바다" 입수와 맨발 걷기, 걱정했던 부분들


바다를 맨발로 매일 걸으라는 스님의 권유를 받고, 바로 걷지 않은 이유는 위에서 말씀드렸듯, 위생적인 문제가 가장 컸습니다.


"서해(西海)"에 대한 위생적인 면에 대한 안정성의 우려였습니다.


바닷바람에 감기라도 걸려, 병이 더 도지면 어쩌지?

바닷바람과 물이 얼음장같을텐데 몸에 냉기가 더 들어 악화되면 어쩌지?

차가운 바닷물속을 걷는 건 고사하고, 맨 살을 추워서 어떻게 드러내지?

혹여 유리조각이나 조개껍질이라도 밟아서 다치면 어쩌찌?

다친 부위가 부패된 어패류나 바닷물의 균때문에 염증이 생기면 어쩌지?

잘못하면 패혈증으로 번져 죽기도 한다는데?

자궁과 직장질환의 환자가 바닷물에 입수를 하면 위생적으로 위험하지 않을까?

당뇨환자들은 특히나 상처나 감염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데, 일반인은 얼마나 안전할까?


여러분, 제가 바다를 걸으며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고, 길을 가보지 않은 자가, 가본 자 보다 더 말이 많다는 사실을요.

갖은 걱정과 핑계는 일단 해보고 나서 할 일입니다;;;


무엇보다 바닷물은 우리가 생각하는것처럼 그렇게 차지않습니다.

또 한겨울일지라도 옷을 제대로 갖춰입고 걸으면, 걷는 과정에서 몸에 에너지가 돌아 추위를 크게 느끼지 않습니다.


바다를 걸으며 우려했던 부분들은 단 한 개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중간에 한 번, 절에서 발톱을 깎다 상처를 낸 적이 있는데, 꽤 깊은 상처였습니다. 그럴 땐, 바다 걷기를, 상처가 아문 후에 이어가는 것이 맞다는 경험정도입니다.


어싱(Earthing) 할 해안가를 우리가 걷기 위해서는 결국 바닷물 안에서 걸어야만 합니다.

직접 걸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위치에서는 유리 등의 이물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또한 처음 걸을 시, 모래위를 걷는 일이 너무 아파서, 한 걸음 떼기도 무서울 수 있습니다.

더욱이 조개껍질과 바다 이물질등이 해안가 바깥쪽으로 대부분 모여있기에 맨발로는 걷기 어렵다고 판단되실수 있으나, 사실 모래와 조개껍질이 아픈 것은, 우리의 피부가 적응하지 않은 환경에 대해 보이는 당연한 (통각) 반응입니다.


더욱이 걷고 걸어 건강해지다 보면 한 여름의 뜨거운 모래든, 많은 조개껍질의 파편들이든 그다지 아프지 않게 됩니다.


그럼에도 만약 너무 우려되신다면, 바닷물 앞까지 가벼운 슬리퍼 정도를 신고 가셔서, 걸으실 때 벗으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4월의 살을 애고 몸을 날리는 해안가 바람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귀가 멀어질 정도로 아찔한 매서움을 경험했었습니다.

"미쳤나? 여길 걷는다고?" 엄두가 나질 않았었지요.

그러나 후일 깨달았습니다.
우리 몸이 광활한 에너지와 생명력을 품은 "바다"에 적응하기 위한 당연한 신체적 반응이었습니다.

마치, 우리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북극 주변의 에스키모인들의 신체와 정서적 에너지가, 모든 것이 편리하고 편안한 일상을 사는 우리의 에너지와 자석의 극과 극처럼 다른 이치처럼요.

여러분이 만약 바다어싱의 매력과 효과를 느끼시고 나면, 아마 한겨울에도 영혼까지 씻기는 듯한 해안가의 청량한 바람과 한여름의 뜨거운 빛을 그리워하시게 될 겁니다.

도시에 부는 한겨울의 매서운 칼바람과, 아스팔트 위 작열하는 한여름의 더위는 절대로 줄 수 없는, 건강하고 청량하며 광활하고, 무엇보다 자유로운 바람과 빛과 열기, 그 모든 에너지를 바다는 신비로운 환경 속에 품고 있습니다.




---> "바다"는 어떻게 통증과 염증을 치료했나 1


365일 매일 지킨 바다 "맨발 걷기" 그리고 "입수(入水)"


어떤 이유에서든 말을 지어내어, 없는 말을 하면 참으로 어려운 법입니다.

글이 풀려나가질 않기 때문이지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사실 저는 바다 걷기가 어디에, 어떻게, 왜 좋은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했고 묻지도 않았었습니다.

제가 산사에서의 열 달간의 요양이 끝나, 일상으로 나와서까지도요.


다만 제가 매일같이 지독한 통증과 지독한 날씨에도 어김없이 걸으니, 주변분들께서 저조차 궁금해본 적 없는 "바다 맨발 걷기와 입수"에 대한 효과와 근거를 제게 이야기해 주셨지만, 그마저도 사실 저는 질문을 하거나 귀담아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유는, 이미 바다를 걷고 온 첫날, 제 몸과 마음이 모든 면에서 효과를 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제 몸이 바다를 강렬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통증으로 인해 운전이 매우 힘듬에도, 바다를 향해 가는 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독하고 고단했지만, 신기하게도 바다를 걷다 보면 허리도 필 수 없던 통증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사라지는 경험을 거의 매일 했습니다.
그 효과의 정도는, 제가 통증과 염증과 어혈이 가장 심할 때 더욱 크게 느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직장의 유착으로 인해, 매주 3회, 매회 12만 원씩을 주고받던 도수치료와 경략과
마사지로도 낫지 않던, 지독한 고관절(골반, 엉덩이, 허벅지 주위의) 방사통과 허리통증 역시
그 추운 바다를 그렇게 오래, 맨 발로 걸었음에도 나날이 좋아지고, 근력마저 생겨났습니다.

더욱 신기한 점은, 바다로 향할 때마다 겨우 이끌고 가던 몸의 상태와 통증이, 돌아오는 길에
이미 회복이 되는 경험을 매일 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평소 지니고 있던 이유를 알 수 없던 다양한 알러지성 피부질환 역시 건강해졌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입을 통해 알았습니다.


바다를 맨발로 걷는 일을, 요즘사람들은 "슈퍼어싱"이라고 부르며, 저는 몰랐었지만 꽤나 알려진 "접지" 행위 중 하나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마치 "숲 속 피톤치드 황톳길 맨발 걷기"처럼 "바다 어싱"을 체계적으로 즐긴다는 사실도요.


접지(接地) 어싱(Earthing)이란,

접지: 땅에 닿음. 또는 땅에 댐.
어싱(Earthing): 어원은 earth(지구, 흙) + -ing

: 인체를 지구의 전자(전자기적 에너지)와 직접 연결시키는 행위를 말합니다.
즉, 맨발로 흙·모래·바닷물·잔디 위를 걷거나, 자연 표면과 직접 닿는 것을 통해 인체의 전하를
‘지구로 흘려보낸다’는 개념입니다.

이런 연결이 염증 완화, 수면 개선, 스트레스 완화, 자율신경 안정 등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라고 합니다.

※ 어싱과 함께 바닷가 환경 자체가 만드는 복합 효과,

“해양과의 전기적 접지 + 해양 환경 + 심리생리적 안정”이 결합된 결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해풍---> 인체의 음이온활성산소 억제, 세로토닌 농도 조절을, 바닷소리의 주파수---> 부교감신경 자극을 하여 과잉활성되고 교란된 교감신경과 뇌파 안정 (알파파 유도), 모래의 자극---> 인체의 순환, 근육 긴장 완화, 전해질과의 접지---> 인체에 전자를 유입하여 항염 및 혈류 안정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어싱의 다른 말로는 그라운딩이라는 표현도 있다고 합니다.

그라운딩(Grounding) : 원래는 전기공학에서 접지(接地)를 의미하지만, 건강·심리학에서는
“몸과 마음을 지구 혹은 현실에 안정시키는 행위”라는 확장된 의미로 쓰인다고 합니다.


위의 참고 내용 외에도 제가 아는 사실은, 바닷물은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미생물 서식지이자, 본질적으로 전해질 용액 자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모든 물질 속엔 좋은 미생물과 무해한 균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제가 아는 또 다른 사실은 (아직까진 과학적으로 온전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바닷물의 수많은 미생물과 전해질과 삼투압 작용이 우리의 맨살, 특히 오장육부가 다 모여있는 발바닥과의 접지를 통해 흡수됨으로써 매우 지밀한 현상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 "바다"는 어떻게 통증과 염증을 치료했나 2.


바닷물의 전해질 및 삼투합이 인체에 미치는 기전(메커니즘),

바닷물은 전기적으로 도전성(conductive) 이 매우 높은 환경입니다.
즉, 전해질이 많을수록 전류(전자 흐름)가 잘 이동할 수 있습니다(=도전성)
이 도전성 덕분에 맨발이 바닷물과 닿을 때, 우리 몸(생체 전기 시스템)은 지구 전위(ground potential)와 직접 연결됩니다.

이게 바로 어싱의 전기적 본질입니다.
접지(어싱, Earthing)의 전기생리학적 작용인체는 전기적으로 약간 양전하(+) 쪽으로 기울기 쉬운데, 지구 표면은 음전하(−)를 띠고 있습니다.

따라서 맨발이 전도성 매질(흙, 모래, 바닷물 등)에 닿으면 인체 내 정전기성 양전하가 중화되고 지구로부터 전자가 인체로 자연스럽게 이동합니다.
이 전자의 이동은 미약하지만, 생체 내에서 다음과 같은 효과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전자 이동의 생리적 가능 효과

* 염증 반응자유 라디칼(reactive oxygen species, ROS)을 전자가 중화 → 항염 작용 가능성
* 혈액 점도적혈구 전하를 안정시켜 응집 억제 → 혈류 개선, 혈점도 저하
* 자율신경계교감신경 항진 억제, 부교감 활성 → 심박수 안정, 수면 개선
* 통증 경로, 염증성 사이토카인 감소, 말초신경 과흥분 완화 가능성바닷물의 삼투압 효과 (Osmotic and ionic influence) 바닷물은 인체 체액보다 삼투압이 높습니다.

즉, 바닷물 속 염 농도가 우리 혈장보다 높아, 피부가 장시간 노출되면 약간의 수분이 피부 밖으로 빠져나가는 방향(탈수성)으로 작용합니다.

이 현상은 단순히 물리적 탈수만이 아니라, 피부 표면의 세포막 전위 변화를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가능한 생리적 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온교환: 피부의 각질층과 땀샘에는 Na⁺, K⁺ 채널이 많습니다.
바닷물과의 접촉으로 국소적인 이온교환(ion exchange)이 일어나 전위 안정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미세 순환 자극: 삼투성 자극으로 피부 모세혈관 혈류가 일시적으로 증가 → 말초순환 촉진

피부 장벽 재정렬: Na⁺, Mg²⁺, Ca²⁺ 이온은 각질층의 세포 간 지질 배치를 안정화시켜 피부 장벽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감각신경 자극 완화: 염화이온(Cl⁻)은 말초신경의 탈분극 억제에 관여 → 통증 신호 전달 억제 가능성 즉, 바닷물 속 전해질과 삼투압은 단순히 “전류 흐름을 돕는 역할”뿐 아니라 피부·신경·순환에 미세한 조절 자극을 줍니다.

※ 이런 이론이 바로 "바다어싱" 시 느끼는 ‘차분함’, ‘풀리는 느낌’, ‘통증 완화감’, '심리적 해방감'의 생리적 근거 중 하나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바닷가 환경 자체가 만드는 복합 효과는 “전기적 접지 + 해양 환경 + 심리생리적 안정”이 결합된 결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해풍의 음이온활성산소 억제, 세로토닌 농도 조절, 바닷소리의 주파수부교감신경 자극, 뇌파 안정 (알파파 유도), 모래의 온열 자극미세 순환, 근육 긴장 완화전해질 접지전자 유입, 항염 및 혈류 안정 가능성 즉, 바닷물 어싱은 하나의 ‘자연 전자요법 + 삼투요법 + 감각요법’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바다"를 걷던 첫날, 저는 운명처럼 우연처럼 그곳에서 중증의 환자들을 만났습니다. 홀로 바닷바람을 안고 바닥만을 내려다보는 저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주셨지요.


아마도, "젊은 아가씨가 왜 그렇게 곧 바다로 들어갈 사람처럼 슬퍼 보여요. 어디가 아픈가요?"라고 물을 정도로 제가 불행하고 위태로워 보였나 봅니다.


해안가를 혼자 혹은 둘씩 걷던 그분들은 서로가 다 모르는 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서로의 병명과 병의 진행상태조차 다 다르다고 하셨지요.


어떤 이는 말기암 4기, 어떤 이는 그조차 지나 의사로부터 3개월이 남았단 통보를 받은 이, 또 어떤 이는 병명조차 몰라 평생을 통증 속에 시달리는 이, 등등등.


그러나 "바다접지", "슈퍼어싱" 효과를 듣고, 보고, 어차피 아프다 고통 속에 죽을 거, 병원에서 혹은 요양원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기 싫어, 바다로 달려왔다고 했습니다.


제가 "바다어싱"의 효과를 절대 일반화하거나 권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분들 중에는 말기암 판정을 받거나, 수술만이 답이라고 하셨던 환자분들이, 시한부 판정기간을 몇 배나 지나서도 건강히 웃으며 바다를 걸으셨고, 수술하지 않고도 (그 당시로부터 열 달 후의) 저처럼 병리학적 소견이 사라지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다 근처 민박이나 원룸이나 펜션을 얻어 걷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지금은 함께 응원하며 걷는 동지가 되었다고 하셨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병원의 어떤 약도 듣지 않던 통증들이 사라지고, 마약성 진통제로만이 잠재울 수 있던 말기 암의 통증들 역시 혼자서 버틸 만큼 좋아지셨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이곳저곳 병원에서도 알 수 없던 오랜 만성 지병들이 바다를 매일, 몇 달, 몇 년을 걸으며 대부분 사라져, 삶도 마음도 행복하고 건강해지셨다며 웃어 보이셨지요.


지금도 그날의 그 만남을 기억하면 희한한 감정이 듭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의사로부터 수술없이 낫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장담을 수차례 들었었습니다.

또한 제 병은 완치가 없으며, 수술 후에도 재차, 삼차 다시 유착이 되어 재 수술이 빈번한 고통스런 질병입니다.

그런 제가 말로는 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속, 지독하고 치밀한 노력들로 기적이라는 말로밖엔 설명이 안되는, 말끔한 결과를 얻었지요.


때문에, 저는 제가 바다걷기 첫날에 만났던 그분들의 이야기가 거깃도 아니고 과장도 아니며,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 그분들이나 저의 치유는, 단수히 바다때문도 아니고, 또 알게 모르고 피나게 노력한 그 어떤 노력이나 무엇 하나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적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그분들의 치유의 결과는, 오직 살고자 했던, 낫고자 했던 그래서 죽겠단 마음으로 살려는 갖은 노력을 지혜롭게 매순간 해낸, 그분들 마음의 결기, 즉 의지의 에너지가 도출해 낸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세상 모든 환자의 낫고자 하는 마음, 살고자 하는 의지에 어떤 높고 낮음의 편차를 가릴 수 있겠습니까만, 사람의 의지와 환경과 상황과 노력 등의 그 모든 것이 맞물려 일어난 "기적=사실" 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치며


바다를 걷던 제 마음은 몇 달간은 참으로 매일같이 서럽고 서러웠습니다.

갑자기 병든 몸으로, 사람으로서도 여자로서도 모든 것을 잃고, 바닥까지 떨어져, 여기까지 밀려와 있는 제 홀몸이 너무나도 비참하고 한스러웠습니다.


제가 살며 꿈꾸거나 한 줌 쥐고 있던 무엇 하나 제 손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완치도 없을) 병든 이 몸으로는 아무것도 다시 쥘 수조차 없는 현실이 바닷가의 거친 바람보다 애리고 아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며 바다 입수를 통해,

때론 한없이 고요하고, 때론 한없이 격정적인 파도 속에 온몸을 맡기자 비로소 경험하고 만났습니다.


바로, 신을요.


물론 신은 산사(山寺)의 대웅전에서도, 봉사를 하면서도, 한 평짜리 작은 방에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기도를 하면서도, 그 무엇을 하며 그 어디에서도 만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난 신은, 기독교나 불교나 그 외 다른 종교의 신을 뜻하지 않습니다.


온몸을 바다에 담근 채 바라다본, 저 광활한 지평선 너머와 하늘, 저 높고 높은 곳에서 마주한 신은 곧 제 자신이었습니다.


바다와 우주와 제가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제 안의 그 신은 알려주었습니다.


나는 자유로워야만 하는 존재이고
자유로울 수 있으며
또한 그러기 위해 태어났다고요.


지난 40여 년 가까이 더럽혀질 때로 더럽혀지고, 닳을 때로 닳고, 헤질로 헤져, 가난해지고... 텅 비어버린 제 자신의 부정(不淨)함과, 모태에서부터 이때까지 핍박받아온, 혈육과 세상으로부터의 올가미가 씻어 녹아내리는, 기억하지 못하는 숱한 전생들과 이번생의 무언가가, 천일의 기도와 염원으로도 녹아지지 않을 그 무언가가, 비로소 이 바다에 와, 녹아 사라지는 경험을요.


대자연의 바다가 열 달간의 저에게 안겨준 것은, 우리가 도시에서는 결코 접하고 누릴 수 없는, 어떤 값비싼 심리상담치료나 어떤 약으로도 받을 수 없는 정결(淨潔)함, 즉 정화(淨化)되는 씻김이었습니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가피(加被):부처나 보살이 자비를 베풀어 중생에게 힘을 줌"라고 합니다.


두둥실 거리는 몸의 감각조차 사라진 채, 지평선 어딘가, 하늘 어딘가를 향해 몸을 띄우다 보면, 제 자신도, 바다도, 파도도, 물결도, 또한 두 발 디딘 모래도, 그리고 내가 물속에 있음조차 한 순간 사라짐을 경험합니다.


"업장(業障)"이 녹습니다.


업장이 무언지를, 저는 글로써 여러분께 설명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바다, 바다가 열어준 그 황홀한 경험과 가피를 저는 <서른아홉, 이토록 아픈 생리통> 연재 시작부터 온전히 전할 수 있길 간절히 염원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제가 전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주제임과 동시에, 저의 경험과 감상 역시 지극히 조심스러워 참으로 여기까지 씀에 있어 많고도 많은 숨 고르기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바다에 대한 저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다"

"바다"가 내게 새긴 것은
두 번 다시 잃지 않을 "자유"
그리고
내 안의 "신"이 함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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