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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의 기적은 "과학" 입니다_(feat 공황장애)

통증, 물과 함께 사라지다_목욕탕, "나에게는" 과학

by 천변만화

※ 본문에서는 지난 연재에서 예고드린 대로, 필자의 "통증"과 "어혈" 치료에 도움을 준 두 번째 물인, "목욕탕"에 대한 개인적인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필자의 염증, 어혈, 유착, 침윤, 통증, 그리고 자궁-직장 유착으로 인한 장의 구조적 문제인 변비 그리고 정서적인 부분까지 치유했던 첫 번째 물인 "바다"와 마찬가지로 필자를 살린 두 번째 물, "목욕탕"은 필자의 통증과 어혈을 푸는 치료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목욕탕을 가면 "바다"의 같으면서도 다른 지대한 정서적 행복감과 온전함 그리고 안정감과 정(淨)함을 느낍니다. "목욕탕" 만이 주는 그 감정과 감각을, 기초적인 과학적인 원리와도 함께 풀어보았습니다.

※ 아울러, 이 글은 필자의 개인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을 뿐, 의료 전문 지식과 조언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진단·치료 및 의학적 판단은 반드시 전문 의료진의 진료와 상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본 글의 정보로 발생하는 법적·의료적 결과에 대해 필자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지난 연재_ 24화 "바다", 환자의 통증 상처 치유하는 슈퍼어싱_Earthing


지난 연재에서는 바다를 맨발로 걷는 일(접지), 일명 "슈퍼어싱(Super Earthing)"을 매일 하게 된 계기와 함께, 그 효능의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알아보고, 어싱(Earthing) 의 방법, 유의할 점 등을 설명드렸습니다.

또한 필자가 (절기에 따른) 바다 걷기와 입수를 통해 어떠한 효과를 느끼고 보았는지, 바다가 우리에게 주는 지대하고 신비로운 정서적 치료 영향까지 다루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필자의 심부자궁내막증 중증 유착과 침윤으로 인한 통증과 변비 등에 바다 맨발접지(어싱)와 입수(入水)가 어떤 작용을 했는지도 함께 이야기했었습니다.



오늘 연재_ 25화 "통증", 물과 함께 사라지다_"목욕탕"의 기적은 "나에겐" 과학이었다



이번 연재에서는, 제가 지난 연재에서 말씀드렸듯, <서른아홉 이토록 아픈 생리통> 연재를 시작하며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의 하나인, 저를 치유해 준 두 번째 "물"에 대한 내용입니다.

제목에서 이미 아셨겠지요? 바로 "목욕탕"입니다. 네, 바로 그 대중목욕탕이지요.

요즘에는 찜질방이 함께 운영되는 경우도 많지만, 대중목욕탕의 간판이름이 "사우나" 이든 "온천"이든 "찜질방" 이든 어쨌거나 저쨌거나, 바로 그 "목욕탕"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목욕탕"이 어떻게 저의 지독한 몸과 마음의 "통증"을 씻기고 위로하고 치유했는지 말이지요.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대중목욕탕을 얼마나 자주 가시나요?


아니, 마지막으로 가보신 적이 언제일까요?

아마, 코로나 이전, 그나마 한 번씩 가셨던 분들도 코로나 종식 이후에는 가지 않게 된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혹은, 대중목욕탕에 대한 위생과 사람들의 시선등이 불편해서 가지 않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아! 그리고 이윤 모르지만, 집에서의 샤워는 괜찮은데, 목욕탕만 가면 피부가 뒤집어지고 트러블이 나거나 몸이 아파, 가지 않는 분들도 계실 거고요.

마지막으로! "난 살면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굳이 왜? 집에서 샤워면 충분하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까지요.


제가 이렇게까지 대중목욕탕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적어본 이유는, 이번 목욕탕 예찬론 글을 씀에 있어, 목욕탕에 대한 경험과 생각이 저와는 다른 분들을 십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본문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 "목욕탕" 싫었던 천변만화



저는 아직 싱글이라 아이가 없습니다만, 반려견을 하나뿐인 자식으로 키우다 보니 아이를 키우는 과정처럼 육아 비슷하게 배우는 점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경험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감정)" 입니다.


"불편함이 없는 좋은 기억"


그러나 저희 어머니는 저를 키우던 시절, 제가 반려견을 키우며 깨달은 법칙을 잘 모르셨나 봅니다;;;


어머니는 굉장한 "목욕광"이십니다. 지금은 연로하셔서, 목욕탕을 가계신 시간이 3시간 정도이지만

마전까진 (찜질방도 아니고 사우나도 아닌) 목욕탕에서만 4~5시간을 계시는 분이셨습니다.

목욕탕에서의 친목도모나 누군가와의 수다삼매도 없습니다.

심지어 거의 매일 가셔도 같은 시간을 할애하신다는 사실이 저에겐 늘 미스테리한 일어었습니다.


어릴 적, 그런 어머니를 따라 목욕탕을 가면 어린 저는 할 일도 없이 어머니를 몇 시간씩 기다려야 했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 손톱, 발톱, 피부 여기저기, 하여튼 어머니는 목욕탕에서 할 일이 참으로 많으셨습니다.

얇은 피부에 벗길 때가 어디 있다고, 때를 미시는 데만도 2시간이 넘게 걸리셨습니다.

거기에 제 때까지 벗기려면 또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데요, 그나마도 미꾸라지처럼 몸을 비트는 저 때문에 빨리 끝났다고 잔소리를 하셨었습니다.

어머니가 머리 한 번 감는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 저는 지금도 지루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어렸던 저는 울고 불고 때를 쓰고, 또 지쳐 넋을 놓고 기다리면 지루하다 못해, 목욕탕 작은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목욕탕은 정말로~! 할 일 없이 작심하고 시간을 죽여야 하는 공간이었죠.

그 지루한 시간을 견디려면 그저 탕에 걸터앉거나 목욕탕 의자에 거울을 마주하고 앉아 공상을 하거나

넋을 놓고 하염없는 물만 뿌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제가 혼자살기에 목욕을 따로다닙니다만,

어쨌든 이런 이유로 목욕탕에 대한 저의 기억은 성인이 되어서도 정말로 취미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 2015년도 생일날의 불행, "공황장애" 그리고 "목욕탕"의 기적


여러분, 세상살이의 대부분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의 연속입니다.

극단적으로는, 갑자기 사고를 당하고,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며, 장애를 얻기도 하고, 쓰러져 못 일어나기도 하며, 암 판정을 받거나 사기를 당하고, 잃어버려선 안 될 것들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별의별 시시비비와, 감정의 회복 못할 외면과 상처를 받기도 하지요.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저는 특이하게도, *저의 삶에서 만큼은* 살며 제게 일어났던 모든 불행과 질병과 악연들이 결국은 다, 저라는 "존재"가 밑바탕이 되어 끌어당긴 일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의 "존재"를 하나의 "행성"이라고 한다면


이 우주의 모든 "행성"들은 그가 지니고 태어난 구성성분(성질)과 외형 등이 다 다를 것입니다.

그렇담 같은 사건, 같은 충돌, 같은 변화를 맞닥트리더라도 그 "행성"들은 모두 다 다른 결과의 상처와 피해와 흔적을 입고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건을 맞닥트리지 않고 비켜간다면 가장 좋겠지만, 어쨌든 이 세상 대부분의 "행성"들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라는 "행성"은 살며 제가 한 모든 행동과 생각의 결과를 고스란히 이번생의 삶으로 도출해 냈습니다.


그것을 처음으로 공부하고 깨닫게 해 준 질병이 바로 "공황장애"였습니다.


"공황장애 극복"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 연재로 준비 중입니다.
그때 자세히 말씀드리기로 하며, 이번 연재에서는 다만 제가 "공황장애"를 앓을 적,
목욕탕으로 인해 받은 기적 같은 도움을 적겠습니다.


그 당시 이십 대의 중후반이었던 저는, 매일 "처녀작"이라 일컫었던 장편소설 탈고에 몰두해 살았습니다.

삼십 대에 직작생활을 하며 고시공부를 할 때도 그랬지만, 이십 대 때는 체력에 무서움이 없었습니다.

아니, 다들 아시다시피 그때에는 체력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릅니다.


책상 앞에 12시간이 지나도 마치 30분이 흐른 듯한 그런 느낌의 나날들을 거의 몇 년을 보냈었습니다.

그런데도 힘듦을 몰랐고, 그 생활이 싫지도 않았습니다.


때문에 이십대 때 제가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설명하라고 한다면 너무 쉽습니다.

책상에서 먹고, 자고, 쉬고, 쓰고의 무한반복이었습니다.


가족이나 사람들로 인한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등은 늘 이어져왔던 일들이었기에 딱히 어느 시점을 구분지어 가장 힘들었다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에 대한 대답은 너무 쉽습니다.


그러다 (제 안에서) 일이 터졌습니다.


제 자신의 삶의 성취를 위하여, 열정이란 미명으로 몸과 마음을 몰아치는 일이 그땐 혹사라는 것을 절대 알 수 없는 나이였습니다. 그것이 제 자신도 모르게 몸과 영혼을 죽게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요.

게다가 어릴 적부터 가정 내에서 세뇌된 갖은 참음의 세월이, 제 삶을 주인으로 살지 않고 제 스스로를 지켜주지 않았던 제 자신에 대한 몸과 마음의 "원망"으로 이어진 "자명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제 몸과 마음의 "파업"의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공황장애"를 앓으며 제 몸과 마음의 소리에 끝없이 묻고 또 묻는 수년의 지옥 같은 세월을 관통하고서야 알았습니다.

심지어 더욱 불행했던 점은, 그 당시에는 미디어에서도 병원에서도 "공황장애"라는 단어를 몰랐습니다.

그러니 제 인생, 공황장애가 닥쳤던 "첫날"의 불행을 여러분도 얼추 상상해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공황장애"가 닥쳐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공황장애의 전조증상은 꽤 수년간을 매일매일의 크고 작은 스트레스처럼 나타나다, 정말로 "어느 날" 정체모를 괴물의 얼굴로 삶을 송두리째 덮칩니다.


공황장애가 덮쳤던 첫날을, 아마 저와 같은 분들이라면 생생히 기억하고 다시금 공포와 무력감을 느끼실 겁니다.


분명 내 두 눈앞의 세상이 이렇게 밝고 환한데, 집안의 방방마다 형광등이 온통 켜져 있는데도, 나만이 세상이 다 보이는 유리관짝 속에 갇혀, 매 순간 못질을 당하는듯한 그 공포와 무력감......


하물며 개미도 숨을 쉬고, 살인자도 숨을 쉬는데


왜 나만이 숨을 쉬지 못하는지에 대한 끝없는 질문을 매 순간 되풀이하며, 내가 살며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디서 어떻게 무엇이 잘못되었지를 끝없이 질문하고 의심하고 되풀이하는 고문 같은 낮과 밤의 세월들을 살아내야 했습니다.


돌지 않기 위해 수많은 정신과 약을 털어 넣고, 숨 쉬어지지 않는 가슴을 후드려 패다 멍이 들어, 미치지 않기 위해 어머니의 손을 잡고 눈물을 훔치며 산으로 길로 뛰쳐나가 헤매던 그 시간 속에 저를 유일하게 숨 쉬게 해 준 곳이 바로 "대중목욕탕"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숨 쉬게 해 준 곳, "목욕탕"




---> "목욕탕"은 어떻게 나를 숨 쉬게 했나

"목욕광"의 딸이 "목욕 예찬론자"가 되다



목욕탕에서 거짓말같이 숨이 쉬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것은 그저 어느 날의 우연이었습니다.

공황장애 이후로 사람이 몰리거나 밀폐된 곳 등이 가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위에도 썼다시피, 대단한 "목욕광"을 어머니로 둔, "공황장애" 딸이 노모를 유일한 보호자로 의지하며 살며, 그 어머니를 따라 목욕탕을 가는 일은 언젠간 일어날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애원에 그저 끌려간 저는 평소대로 목욕탕에 들어갔을 뿐이었습니다.

얼굴에는 미간의 주름이 잡힌 채로 그렇게 얼마간 목욕탕에 반쯤 몸을 담그고 넋을 놓고있던 중, 그 순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숨을 쉬네? 그냥 쉬어지네? 숨이..."


심지어 그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도 저는 편안히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간혹 진동 섞인 울음 같은 깊은 한숨을 가까스로 몰아 쉬어야 막힌 가슴이 잠시 뚫리는 듯 더 편안해지긴 했어도, 숨에 대한 그 어떤 공포심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후로 저는 어머니를 먼저 졸라 목욕탕에 하릴없이 앉아, 넋을 놓고 물이 주는 세상 더없는 안정과 평화와 만족감을 누리고 즐길 줄 아는 "목욕 예찬론" 자가 되었습니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느낄 수 없던 정서적 평안함을 주는 곳을 제 인생에서 찾은 날이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제 인생에서 목욕탕을 예찬하게 된 것을 매우 감사한 일이자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 "코로나"의 재앙=심부자궁내막증(DIE)발병


"공황장애"를 앓는 그간의 세월 동안에 저는 책상에 앉는 것은 고사하고, "글자" , "문자"라는 텍스트만 보아도 숨이 턱턱 막히고 심장박동수가 오르고 눈앞이 어질 했습니다.


( 그때를 생각하면 제가 이렇게 브런치 글을 쓰고 있는 날은 두 번 다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책을 펼치고 글자를 읽고 쓰는 일이라면 수년동안 생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지긋지긋했습니다.


가족이나 지인과의 몇분의 대화조차 숨이 차고 막혀, 상대방이 건네는 일상 속 선의의 사소한 질문마저 싫고 버거웠습니다.


그러다 저의 "공황장애"는 수년간의 노력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아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책상에 앉기로 결심한 일이 바로 직장생활과 고시공부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2019년 연말, 저의 "공황장애"가 저를 조금씩 놓아줄 때쯤, 인류에는 "팬데믹(pandemic)"이 시작되었습니다. "코비드 19(COVID-19)"였습니다.


코로나 환진자가 늘어날수록 목욕탕을 통해 얻던 평온과 치유의 일상도 한순간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래, 직장생활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먹고 죽을 시간도 없는데, 집에서 이제 씻으면 돼지. 많이 낫았잖아."


한 번씩 업무와 시험의 스트레스와 과로가 몰아칠때면 다시금 과호흡과 근육의 수축으로 공황증세가 올라오긴 했지만, 그 당시에 저는 악착같이 스스로를 (또다시) 달래는 듯 누르며 제 몸과 마음을 터부시 했었습니다.


또 믿었죠.
제 몸과 마음이 제 계획과 열망을 버텨줄 것이라고요, 다시...

지금도 이 대목을 쓰며, 가슴속에서 울컥 치미는 화가 있습니다.
제 몸과 마음에 대한 죄책감과 사죄의 마음말입니다......


그렇게 목욕탕을 다니는 일상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사라지고, 저는 4년 가까이 직장에서나 회사에서나 책상 앞을 목숨 걸고 사수하는 그런 사람으로 다시 돌아갔던 겁니다.


기억하시죠?

22화 어혈(瘀血): 생리통과 자궁내막증 유착(癒着)의 해답에서 제가 어느날 어머니께 부탁을드려 부황을 뜨니, 온몸에 죽은 어혈들이 보기 흉한 얼룩처럼 올라와 퍼져있었단 대목.


대중목욕탕을 끊은지 몇 달, 몇 년이 되어갈수록 제 고질적인 관절과 근육, 신경의 통증들이 지긋지긋하게 올라와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에 없던 만성두통과 변비, 생리통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따금씩 생겨나던 항문통도요.


그런데도 목욕탕을 가는 일은 "코로나" 당시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집에 노모도 계셨거니와 혹여 제가 아파, 직장도 시험도 다 물거품이 되는 일은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직장에서도 공부에 있어서도 완벽하려 늘 남몰래 지독한 애를 썼습니다. (제가 그 당시 어떻게 먹고 어떻게 생활했기에 제 몸이 DIE라는 질병을 얻었는지 08화 생리를 위해 하지 마세요: 생리통의 적 '열 가지'에 자세히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에 목욕탕을 아주 가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확진자수와 속도가 조금씩 주춤한다는 뉴스가 들릴 때는 저와 어머니는 조심스러운 마음을 안고 목욕탕을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 만에 목욕탕에 다녀온 후, 제 몸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극심한 통증이 시작됐습니다.


협압이 올라 후두부가 터질 것 같은, 눈도 뜰 수없고 고갤 들 수 없는 두통, 온몸의 근육이 찢어지고, 구석구석 혈관의 피를 뽑아내는 고통, 가만히만 있어도 전신에 쐐기벌레가 기어가는듯한 통증, 심지어 이불만 스쳐도 입에서 신음이 나올 정도의 통증이 하루 반나절을 이어졌습니다.


그후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목욕탕을 다녀오면 어김없이 같은 통증의 고통이 밀려왔었죠.


여러분도 이유가 짐작가실까요?

22화 어혈(瘀血): 생리통과 자궁내막증 유착(癒着)의 해답 즉, "온몸의 염증과 어혈"이 코로나 시기에 제 몸을 잠식했던 겁니다.



막힌 혈관과 정체된 어혈과 염증들이
목욕탕의 더운 열기와 뜨거운 물로도 흐르거나 풀리지 못해
오히려 자극을 받아
일반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극심한 통증들을 만들었던 겁니다.


그러나 그땐 몰랐습니다.

제 몸이 망가질 때로 망가졌다는 사실을요.






---> "목욕탕", 다시 나를 치유하다_"DIE"통증의 사라짐


DIE=심부자궁내막증의 의학적 약자


그러나 코비드 19 팬데믹이 종식되고, 10개월 간의 산사(山寺) 생활 중, 바다어싱(슈퍼어싱) 덕분에 저는 목욕탕과 재회할 수 있었습니다.


이윤, 바다접지(바다어싱)와 입수를 하고 나오면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공간적으로도 쫄딱 젖은 꼴을 하고 절에 돌아가 씻는 일은 여러모로 조심스럽고 민폐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 근천의 온천에 들려 씻고, 옷을 갈아입고 들어가는 일을 생각해 냈습니다.

여러분도 대도시가 아닌, 지방의 이곳저곳을 다니시다 보면, 무슨 무슨 온천, 어디 어디 온천이라고 쓰여있는 곳들을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제가 머물던 사찰 근처에도 그런 온천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중 한 곳이 "세심천(洗心泉)"이었지요.


세심천 (洗心泉): 마음을 닦다


동네 목욕탕을 가려면 절과 거리가 있는 읍과 같은 곳으로 나가야 했기에 세심천(洗心泉)이 거리상 용이했습니다.

물론 세심천(洗心泉) 외에도 그 일대에는 다른 온천들도 많았지만, (DIE 통증을 앓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심리적으로 갑갑하고 어두운 것을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 분위기나 그런 공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심적인 불편함과 두려움이 물리적인 고통으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왕이면 가장 크고 넓고 탕의 온도가 다양하며 실내가 환한 곳으로 가 씻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곳이 바로 세심천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 세심천을 가보신 분들이라면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웃으며 이해하실 겁니다.


참고로 세심천은 제게 익숙한 곳이었습니다.

제가 10개월간 머물렀던 절은 제가 어릴 적부터 다녔던 절이었습니다. 때문에 과거에도 한 번씩 절을 다녀갈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 혹은 혼자서 세심천을 이용하곤 했었죠.


또, 코로나 사태가 번지기 전에는 간혹 세심천의 매력을 잊지못해 대전에서 한 시간 넘게 운전을 하고 목욕을 하러 오기도 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립기도 했고 잊고 지내기도 했던 그 공간의 문을 열고 몇 해만에 다시 들어서자마자, 몇 백 평 크기의 공간 안에 차 있던 뜨신 공기와 탕내 특유의 향기가 제 벗은 피부와 후각을 덮쳤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살것만 같았습니다.


어디서도, 무엇으로도 느끼고 받을 수 없던 "자유로움"과 "해방감" , "안전함" 그리고 완벽한 "편안함"이 마치 오랜 시간 억울하게 잃어버린 채 지낸 향수(鄕愁)를 기억해 낸듯 울컥 올라왔습니다.


아직 물 한 방울 몸에 묻히지 않았음에도, 제 몸과 마음은 이미 잊고 있던 완벽한 정(淨)함, 즉 정결(淨潔)함을 입은 듯,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한 행복감과 기쁨을 느꼈습니다.


샤워기의 물줄기가 정수리부터 닿아 내리는 순간, 마치 오랜 수용생활을 마친 죄수가 드디어 자유의 물줄기에 몸이 닿은 듯, 더없는 전율이 온 혈관을 타고 일었죠.


그리고 두 번째 "물"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몸을 씻고 탕에 몸을 담그자, 제 몸과 영혼을 한시도 놓아주지 않던 DIE의 통증(배, 직장, 항문, 고관절 부위 전체 등)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내렸습니다.


탕에 몸을 담근 그시간, 오랫동안 제 안에 들이지 못했던, 관짝 속에 장못을 쾅쾅 박아 잔인하게 쓰러트려 놓았던 제 안의 영혼에 일렁~일렁~자유가, 위로가, 치유가 들어왔습니다.


관짝의 못이 빠져나가고, 관짝 안에는 정(淨)함만이 가득한 물결들이 들어와, 그 관짝을 제 영혼에서 흘려보냈습니다.


제가 모를 곳, 제가 몰라도 되는 곳,
저 멀리멀리요.




---> 대장의 구조적 문제와 공간 확보를 위해 했던 "" 속 운동


심부자궁내막증 유착과 침윤으로 인한, 그리고 오랜 책상 생활과 유전적 요인 등으로 인해 늘어지고 탄력을 잃어, 스스로 일하는 것이 둔화된 장의 회복을 위해서 저는 ""내에서 저만의 운동을 했습니다.


그 운동은 짧은 시간일지라도 매일 반복되어, 장의 탄력과 움직임을 회복하고, 공간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주의할 점은, (염증으로 인한) 유착과 침윤이 중증일 시, 다른 치료의 병행 없이 오로지 움직이는 행위나 격렬한 운동과 자극만으로 그것을 해결하려 강한 자극이나 압력을 가하면 오히려 큰 부작용을 초래하고 병증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때문에 이런분들은 요가, 필라테스 등의 운동을 매우 조심스럽게 판단하고 결정하셔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저는 염증과 어혈을 푸는 침치료, 한약치료 그리고 매일같이 이어진 산찰 내에서의 여러 활동과 바다어싱으로 거의 매일 만보를 걸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섭식(먹는 일)에 대한 집요하고 철저한 노력이 매끼 이어졌었고요.


※ 저는 거의 매일 바다어싱 후에 세심천으로 가서 바다에서와 마찬가지로 직장의 침윤과 유착으로 구조적 문제를 겪고 있는 대장, 직장의 병증을 호전시키기 위해, 탕 내에서 역시 나름의 스트레칭과 발차기, 새우처럼 복부와 허리 흔들기, 좌우로도 흔들기 등을 하며 장의 움직임과 공간확보를 위해 애썼습니다.

※ 참고로 "세심천"은 그만한 행위를 누구나 일반적으로 하는 그런 공간입니다.

목욕탕 자체의 크기도 몇 백 평이지만, 사람이 곁에 있을 때 물을 심하게 튀게 하는 행위만 아니라면, 그곳에 수년, 혹은 수십 년씩 매일 오시는 목욕탕 이용자분들에게는 그정도의 스트레칭과 움직임은 일상적인 "세심천"의 풍경이지요.

세심천에 오는 이용자들의 거의 90%가 매일 오는 분들이라고 말씀드리면, 조금 이해가 가실까요?^^;;




---> 욕조안 되는 걸까요?


제가 절에 가기전 그리고 절에서 나와, 집에 있는 욕조를 이용하여 통증과 정서적 고통을 다스려보려 매일같이 입욕을 해 보았습니다.


화학성분이 가장 적다는 "바스볼"이나 유기농 아로마 "오일"을 풀거나, 아로마 "초"를 켜거나, 음악을 틀거나, 피부질환과 통증완화와 심신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유기농 "국화", "쑥", "향나무" 등을 욕조에 우려 입욕을 해보았으나, 통증을 줄여주는 일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 , "목욕탕"이었을까?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힌트는 아마도, 지난 연재 24화 환자의 통증과 상처를 치유하는 슈퍼어싱_Earthing에서 말씀드렸듯,

정서적 이유가 지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더욱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만, 결국 병원의 수술과 치료약물 등이 없이 기적같이 낫았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사례들의 공통점은, 과학에 기반을 둔 지독한 섭식 노력과 낫고자 하는 막강한 에너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공통점이 또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매우 조심스럽) "뇌의 작용"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히 너무나도 지극히 개인적으로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여기서 말하는 " 작용" 이란 "뇌 과학" 과도 같은 뜻으로써, 바로 뇌에서 분비되는 뇌신경물질의 작용을 말합니다.


즉, 환자가 특정 환경이나 경험 등을 통해서 느끼는 막강한-강력한 긍정적 감정(의 반복-노출)이, 환자의 몸의 치료와 회복 그리고 정서적 치유에 "설명할 수 없는" 영향-과가 나타났을거란 가설입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일으키는 뇌신경물질들과 호르몬이 바로 여러분도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보신, 도파민(Dopamine) , 세로토닌(Serotonin) , 엔도르핀(Endorphin) , 옥시토신(Oxytocin) , 멜라토닌(Melatonin) , 코르티솔(Cortisol)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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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신경물질과 호르몬이 우리 감정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
(참고로 각 물질의 긍정적인 면을 위주로 아주 아주 간략히 적어보았습니다.)

도파민 → 감동, 해방감, 기대감, 활력.

세로토닌 → 안정감, 평온함, 마음의 정리.

엔도르핀 → 위로, 희열, 통증 완화.

옥시토신 → 치유감, 애착, 따뜻함.

멜라토닌 → 수면 안정뿐 아니라 물가의 빛, 소리에서 오는 진정.

코르티솔 감소 효과 → 스트레스에 대한 조절능력의 향상.

** 제가 바다를 어싱(Earthing) 하며 느꼈던 해방감과 자유와 치유 등의 감정과 효과 역시 위와 같은 호르몬 물질 때문입니다.


*** 제가 추측하는 두번째 목욕탕의 과학적 근거는 "높은 습도와 온도 그리고 공명" 입니다.


오랜 스트레스와 화(火)로 긴장(수축) 상태가 계속된 가슴(폐)근육과 정서적 긴장감이 목욕탕의 높은 습도와 온도 그리고 목욕탕 특유의 공명과 만나, 신체와 마음을 즉각적으로 깊이 스며들어 이완시키는 작용을 했다고 추측해 봅니다.

즉, 계속되는 스트레스와 집중상태로인해 우리 뇌에 과잉되고 교란된 "교감신경" 을 다스실 답인, 우리를 살리는 "부교감신경"이 올라가며 자연스럽게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신체적 과호흡이 가라앉는 현상을 경험한 이치라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고선, 저로써는 중증의 공황장애가 목욕탕만가면 사라졌다는 사실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 대중목욕탕위생 때문에


저는 목욕탕에 갈 때, 꼭 챙기는 아이템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목욕탕 전용 신발입니다.

탕내에서 신는 목욕탕 신발은 미끄럼방지에도 도움이 되지만 위생적인-혹은 심리적인- 부분에서도 아주 유용합니다.


사실 저는 지난친 결벽증이 있는 성향이라, 대중탕을 이용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이러니한 사람입니다.

고백하자면, 위생적인 부분에 대한 결벽 때문에 사실

저는 제가 대전에 살 때 오랫동안 다년던 한 동네목욕탕 그리고 세심천 밖에는 이용을 못합니다.


다른 목욕탕을 적응하기란, 엄두가 나질 않는 일입니다.


제가 원래의 고향인 대전을 떠나 지금의 이곳에 정착한 이유가 정말이지 "세심천(洗心泉)" 하나 때문이라면 이해하실까요?;;;


혹시 저와 같은 "목욕탕 예찬론자"가 계시다면 부디 저를 십분 이해하며 웃어주시기 바랍니다.^^




---> 목욕탕에 가면 피부 트러블 또는 근육통이 오는 분들과 어지럼증과 혈압이 있는 분들께


제가 이부분에 대해서는 뭐라 말씀드리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만, 다만 제가 위에 "코비드 19 팬데믹" 시기에 목욕탕을 가지 못해 생긴 몸의 변화와 관련된 내용에 썼듯이, 저역시 너무 오랜만에 목욕탕에 다녀온 뒤, 위와 같은 증상보다 더 심한 작용들을 겪었습니다.


그 이유는 위에서도 썼듯, 어릴 적부터 목욕을 주기적으로 다니던 몸이, 팬데믹 시기에 목욕탕을 가지 못하며, 몸의 혈액순환과 혈관에 쌓인 독소, 노폐물, 어혈 배출등이 오랫동안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아서였지요.


때문에 목욕탕에 갔을 시, 위와 같은 증상들을 호소하시는 분들은 아마도 몸의 혈관건강이 안 좋거나(특히 뇌혈관, 심장혈관), 어혈(죽은 피)의 정체가 심하거나, 평소 피부가 너무 뜨겁고 차가운 온도에 익숙하지 않아, 혈관이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알레르기가 올라오는 체질을 가진 분들일 것 같습니다.


중증의 질환자에게는 목욕탕을 이용함 이전에, 어느 정도 물의 온도에 신체가 안전하게 반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치료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요)

또한 대중탕 목욕이 가능하신 정도일지라도 갑작스러운 탕내 입욕과, 몸의 온도와의 차이가 큰 물의 온도보다는, 자신의 체온과 비슷한 온도에서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무엇보다 조금이라도 시야가 어지럽거나 흐려진다거나 혹은 귓속의 소리가 울리거나 멀어진다거나 혹은 호흡이 갑자기 느려지거나 가빠진다거나 속이 매스꺼워진다면 신속히 탕에서 나오시어 안전하게 휴식을 취하신 다음, 자신에게 어지럼증 등의 증상을 주는 물의 온도를 피하심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우선은 몸의 치료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 내가 공황을 다스린-낫은 방법

공황장애에 대한 접근이해




사실 (당연한 사실이지만)
공황은 숨을 정말로 못 쉬는 병이 아닙니다.

환자 스스로가 숨을 못 쉰다고 착각을 하도록 뇌가 작용하여, 환자는 정말로 죽을 것 같은 공포심을 느끼는 거지요.


그럼에도 여전히 의료계와 미디어에서는 공항장애-무조건 향정신성 약이 동반되어야 하는 질병으로만 포커싱하여 대중에게 알리는 점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당연히 우리의 것이라고, 내가 곧 나의 몸이자 생각-마음이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몸-뇌와 마음은 사실 우리가 (전혀) 모르는 존재입니다.


어떻게 설명 드려야 할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는 의식의 존재입니다. 즉, "나" "내 것" 이라고 인식하는 생각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의지라고 생각하는 욕구(성취, 갈망, 꿈 등) 아래의 더 깊은 내면, 상처(트라우마)나 거부감 등의 감정 아래의 더 깊은 내면은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입니다.


인간의 "뇌" 와 관련해서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 있지요?

인간은 한 평생 자신의 뇌의 10%도 온전히 활용하거나 탐험하지 못한다고요.


우리의 무식은 그 90%에 해당함과 동시에, 우리가 탐험하지 못하는 90%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하며 또한 (우리의 이론과 이성으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오묘하고 난해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만약, 나의 생각-감정-마음-의지-열망 등이 정말로 "나" 이자 "나의 것" 이라면 공황이나 불안이나 공포는 왜 올까요? 그리고 왜 "상태"를 평소에 미리 인지하지 못하며 또한 인지하더라도 왜 핸들링 하거나 스스로 케어하지 못할까요?


그럼 저의 몸은, 공항을 겪는 여러분의 몸은 잘나가던 차가 일시에 고물이라도 된 듯, 왜 청천벽력같은 그런 끔찍하고 이해 불가한 "파업" 을 했을까요?


결국 내 몸과 마음은 내 마음대로, 내 욕구대로 해도 되는 내 것이 아닌, 언제나 살피고 위하고 배려하며 때론 이해할 수도 받아드릴 수 없지만 "양보" 하며 동행해야 하는 나이자, 내가 아닌, 그러나 부재하거나 아픈채로 나두어서는 내 삶을 결 이어나갈 수 없는 소중한 존재란 반증인 셈입니다.




마치며


여러분, 저는 개인적으로 목욕을 "치유"와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피부로 하는 명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삶속에서 끊임없이 교감신경물질을 분비합니다.


직장생활, 가정생활, 핸드폰중독, 개인의 성장, 인간관계, 경제적 독립 등등, 그 모든 것을 밤잠 설치며 근심하고 이루려면 우리 뇌에서는 끊임없이 교감신경물질이 분비됩니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의 중심을 잃어버리면 누구든 정서적 심한 혼란과 불안과 우울과 불행을 느낍니다.


목욕은, 그런 현대인에게 넓고 따뜻한 물을 통해 안정을 주는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줌으로써, 현대인의 지나치게 과잉된 교감신경물질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낮추어 줍니다.


그 결과 우리 뇌에서는 세로토닌–옥시토신–도파민–엔도르핀 등의 신경물질과 호르몬들 순조롭게 분비며, 몸이 이완되고 마음이 정화됩니다.


제가 목욕탕에 들어가서 느끼는 온전한 "자유", "평안", "안정감", "행복", "정결함", "위로", "치유"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브런치 시작이레, 이웃님들의 글 제목에서 "목욕(탕)" 이 들어간 제목만 보면, 둥근 공에 반응하는 강아지처럼, 저도 모르게 너무 반갑고 신나는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읽고, 좋아요를 누름과 함께 댓글을 달곤 합니다.


이번 연재를 쓰면서도, 쓰는 내내 혼자 미소를 머금고 썼던걸 보면 정말 제게 목욕탕이란 인생의 영원한 "식처"이자 "치유" 이자 "행복" 그 자체인 곳인가 봅니다.


여기까지 부디 편안히 읽으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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