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캐나다에서 갱신하십시오
분명 작년에 결혼 증명서 떼러 갔을 때만 해도 캐나다 대사관은 무척 캐나다스러웠다. 직접 가기 전에 미리 모든 절차를 이메일로 마치고, 예약 당일 날에는 5분 정도의 적절한 기다림과 함께 나타난 친절한 캐네디언 대사관 직원들을 마주하면서 별 쓰잘 때기 없는 스몰토크를 하며 문제없이 재빠르게 서류를 접수할 수 있었다. 끝으로 모르는 것 있으면 물어보라길래 혹시 몰라서 이탈리아와 캐나다 결혼 절차에 관해 물어봤더니 역시나 책임은 1도 지지 않으려는 그 특유의 의뭉스러운 답변까지 받으니까, '역시 아무리 이탈리아라도 대사관은 아직 캐나다 느낌 물씬 나네!' 생각했었을 때가 있었다.
비록 이번에는 여권 갱신이지만, '행정 절차는 그래도 비슷하게 가겠지...'라며 마음 편히 먹고 갔더니, 그때 봤던 캐나다 직원들은 어떻게 1년 만에 바람처럼 쌩 하니 모두 사라져 버렸고,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가 더 편한 이탈리아 스러운 캐나다 직원들만 남았더란다.
사실 처음 메일로 예약할 때부터 싸하긴 했다.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안 하고 답변 복사 붙여 넣기만 하길래 1년 내내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원하는 답변을 얻고 예약까지 어찌어찌 잡았더란다. 대사관 직원이 혹여나 마음 바꿀까 봐 서둘러 예약 날짜 잡느라 기차표도 2배로 더 내고 갔는데...! 막상 마주하니 정말 가관이었다.
캐나다는 미리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약속 시간 5분 전에는 미리 입실하는 것이 보통이다. 보안 검색 시간도 걸리니 20분은 미리 도착해서 보안 검색을 마쳤더니 보완관이 직원 누구 만나러 왔냐고 물어보더라. 근데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대사관을 총 3번을 방분했는데, 대사관 직원들 중 누구도 본인 이름을 먼저 밝힌 적이 없었다.
이중 삼중 되는 보안 검색을 뚫고 겨우 위층 창구에 도착하니, 창구 접수원이 또 누구 만나러 왔냐고 물어보더라. '창구 직원 본인 이름도 소개를 안 하는데, 내가 도대체 무슨 수로 대사관 직원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라며 물음표를 띄고 모른다고 성실하게 대답했더니, 아마 누구일 거라고 혼자 예상하면서 밖에서 조금 기다리라고 하더라,
'그래 알겠어, '라며 기다리는데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30분이 거의 다 되어서야 슬그머니 들어오더라. 미안한 기색은 전혀 없고, 혼자 바쁜 척을 하는데, 이미 나와 남편은 방음은 하나도 안 되는 사무실에서 저들이 직원용 복도에서 수다를 떠느라 늦었다는 걸 그 사람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듣고 알아차린 지 오래였다. 기분이 나빴지만, 이미 이탈리아 기다리는 시간에 적응하고 있기도 하고, 외국에서는 한국에서처럼 직원에게 화내버리면 일이 더 꼬이면 꼬였지 더 잘 풀릴 수가 없기 때문에 굳이 불편함을 드러내진 않았다.
대화를 해보니 자기가 이메일 한 사람이라면서 소개하는데, '아! 너구나! / 도 어떻게 쓰는지 모르면서 나한테 답변 제대로 하라고 꼽주던 녀석이.!!' 생각이 스쳐갔다. (맞춰보세요! First Name/Last Name 이렇게 쓰면 둘 다 쓰게요? 하나만 쓰게요?)
역시나 뭐 하나도 제대로 모르면서 본인이 말하는 게 정답인 양 술술 떠들더라. (캐나다에 있는 캐나다 직원들은 절대로 이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꼬투리 하나 잡히면 바로 컴플레인에 고소 가니까. 그래서 뭘 물어봐도 보통 의뭉스럽게 대답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 직원은 한참 재잘대다가 영어가 불편한지 나를 지나치고 내 남편에게 이탈리아어로 설명하느라 바빴다. 중간에 내가 달라붙어 물어봐도 아예 영어 귀가 안 뚫린 사람 마냥 내 질문들은 그 사람 얼굴에 팅-하고 튕겼다.
내가 한국계 캐나다 시민권자라 다행이지, 아마 네이티브가 그 여자를 상대했으면 "너 왜 캐나다 대사관에서 영어를 못 알아듣니!!"라고 컴플레인받았을 정도로 심각했다. 짧은 영어를 듣고 있으면 그 아줌마의 영어 발음은 네이티브 같이 자연스러운데 막상 길게 얘기하는 순간부터 그녀의 대화 속에 중요한 알맹이가 없는 느낌이었다. 겉모습만 차르르 윤기가 났다. 알맹이는 휑하니 비었는데.
그렇게 쓰잘대기 없는 소리를 듣고 듣다가 지쳐서, 잠시 조용해진 틈을 타서 내가 대사관에 직접 행차해야 했던 이유, 여권 소지 관련 본론을 끄집어내었다.
그랬더니 다짜고짜 안된다며 손사래를 치더라.
'분명 이메일로는 된다면서, 왜 했던 말 반복하게 하니...' 한숨을 쉬며 "서류에도 타당한 이유가 있으면 여권 갱신할 동안 기존 여권 들고 다녀도 된다면서, 네가 이메일로 그랬잖아. 그래서 내가 여기 온 거고, 네 말대로 페이까지 더 냈고." 그러면서 영수증을 꺼내 보여준다. 그랬더니 바로 말을 바꾼다. 1차는 해결했다.
더 중요한 건 여권 갱신 후에도 기존 여권까지 이탈리안 퍼밋 때문에 둘 다 소지하고 있어야 되는데, 분명 서류에는 본인이 직접 가던, 메일로 보내던 둘 다 가지고 있을 수 있도록 체크하는 칸이 있다. 그렇지만 대사관 직원들의 의견에 따라 이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길래, 내 남편이 이탈리아어로 '기존 여권을 봐라. 아내가 워홀 비자도 있고...'라고 설명을 하고 있었다.
말도 다 안 끝났는데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이 워홀 비자 요번 연도 7월에 만기잖아'라고 학을 뗀다.
나는 또 열받아서, '아니! 퍼밋 받을 때 경찰이 기존 여권을 들고 다니라고 했다니까! 비자 기간이 아직 만료도 안 됐는데!'를 열차게 설명했지만 역시나 못 알아듣고, 남편이 '그것보다 이탈리아 퍼밋이 그 여권으로 등록되었어.'라고 하니까 그제야 인심 쓰듯, '아, 그럼 기존 여권도 필요하겠네.' 그러면서 자기 딴에 여러 가지 팁을 주던데 당연히 나는 열이 머리끝까지 났으므로 그 인간의 조언이 단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캐나다 대사관에서 영어가 안 통해서 남편이 이탈리아어로 도와주고 있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고 짜증 나서 울고 싶었다. 무엇보다 심지어 여기서도 내가 내 일을 하려고 하는데도 쓸모가 하등 없음에 정말 우울의 끝을 달렸다. 내가 캐나다에서 가게 일 해결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뛸 때 내 부모님이 아마 이런 심정이었으리라...
남편은 그런 내 속도 모르고, 직원이 친절하게 걱정해 주며 대답해 줬다고, 여기서 일해볼 수 있냐고 물어보라고 쿡쿡 다리를 찌르는데 순간 소리 지르고 싶은 걸 꾹 참고, 내 여권을 인질처럼 붙들고 있는 그 직원에게 전혀 고맙지 않지만 겉으로라도 고맙다고 인사하고 그렇게 접수는 일단락이 되었다.
일주일이 지났을까, 같은 직원인지 아님 다른 직원인지 전화가 와서 너의 새 여권이 준비되었는데, '메일로 보낼래? 아님 직접 올래?'를 또 되돌 임표 마냥 물어보길래 너무 열받아서 '메일로도 여러 차례 전화하지 말라고 언급했고, 저번에 직접 제출하러 갔을 때 분명 담당 직원이 내 상황을 듣고 교환하지 않고 가져도 된다고 허락받았는데 왜 또 메일로 보내고 기존 여권은 못 받는다고 협박 타령을 하느냐'라고 쏘아 댔다.
전화 너머 당황하는 기색을 보니 아마 같은 직원이 아닌 것 같았다.
'다 필요 없고 이메일로 이 내용 다시 보내달라. 지금 같은 말 5-6번 계속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라며 어찌어찌 마무리하고 전화를 성질내며 끊었다.
캐나다 15년 차, 이건 이대로 다음에 대사관 방문 하면 백 프로 다음 직원과 또 똑같은 이유로 똑같이 실랑이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문제는 그 직원이 거기서 '나는 싫다' 그러면 거기서 가존 여권을 빼앗길 수밖에 없으므로, 너무 열받아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에세이 마냥 한 페이지를 빼곡하게 써서 이메일을 보냈다.
다행히 그 멍청한 직원이 처음 나를 꼽줄 때 본인 이름을 적어서 보내는 바람에 내가 맞다는 증거는 충분했다.
바로 담당 직원 이름과 이메일에 적힌 내용을 들먹이며 '그 직원이 몇 날 며칠 몇 시에 된다고 남편과 갔을 때 대사관에서 구두로 합의를 봤다. 내 남편이 증인이다. 지금 몇 번째 같은 내용 반복하는 줄 아느냐, 이번에 가서 또 같은 내용으로 다른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으니, 이번에 이메일로 확실하게 새로운 여권 받고, 대사관에서 기존 여권 처리 후 다시 받을 수 있다는 확인 메일을 제대로 적어서 다시 보내달라' 적어 보냈다.
혹시 몰라 담당 직원 이름도 물어봤지만, 역시 얘기해주지 않는다.
어쨌든 문서로 증거를 남겨뒀으므로, 굳이 더 싸우진 않았다.
마지막 픽업 당일날, 우리도 이탈리안스럽게 여기저기 쇼핑하다가 느긋하게 약속 시간 좀 넘어서 대사관에 도착했다. 이건 사실 캐나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ㅋㅋ 이랬다간 직원이 몇 분에 온 것과 상관없이 내가 늦었으므로 바로 예약 자동 캔슬 된다.
이번에는 대문부터 말썽이다. 하필 FM대로 하는 경호원을 만나서 처음으로 스피커에 대고 (마치 캐나다에서 이탈리아 총영사관 방문 했었던 것처럼...) 방문 목적 말하고, 하나하나 꼼꼼하게 다 검사당하고, 심지어 이번에는 모자도 못 쓰고 올라 가게 했다. 그렇게 내 남편은 휑한 머리로, 나는 문서를 꼼꼼히 챙겨서 올라갔다. 경호원들이 이 번이 처음이냐고 묻길래 '아니, 세 번째인데 이렇게 자세하게 한 건 이번이 처음이야'라며 모자에 대한 컴플레인을 슬쩍 흘렸다. 올라가니 약속시간은 이미 지나서인지, 원래 그런 건지 창구 직원도 아예 없더라.
벨을 누르니, 직원이 나와 방문 목적을 묻길래 대답했다. 앉아 있으래서 앉아있었는데, 다른 직원이 나오더니, 왜 왔냐고 또 물어본다... 아휴. 이거 또 시작이구만.
아까 말했다고 했더니, 직원 이름을 대면서 맞냐고 물어보는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알려주지도 않은 이름을 어떻게 아냐고!!!' 속으로 소리를 치지만 겉으로는 착하게 대답해야지, "그런 것 같네."
이번에도 역시 부스에 앉아 있으라길래 기다렸고, 이 번에는 그 창구 직원이 온다. 그러고 여지없이 여권 달라고 한다. 오 마이갓.
그래서 인쇄한 이메일 넘겨주며 (대사관에서는 꼭 미리 인쇄해서 가길 바란다! 특히 로마 캐나다 대사관은 휴대폰 들고 못 들어간다.) 우선 읽어보라고 소리를 쳤다. 읽고 나서도 못 믿어운지 아까 처음 봤던 직원을 불러 세우며 프랑스어로 묻고 답하는데, 아마 거의 다 때려 맞춘 거겠지만 불어를 배운 적이 있어서 그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나는 영어하고 내 남편은 이탈리아어를 하니까 자기들끼리 빠르고 비밀스럽게 소통한다고 프랑스어를 쓴 것 같은 내 개인적인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그 직원은 얼떨떨한 건지 겁에 질린 건지 헷갈리는 얼굴로 가능하다고 대답을 해줘서, 겨우 마지막 허락을 받았다. 소리쳐서 미안한데, 너네 왜 자꾸 이런 식으로 일하냐 볼멘소리로 물어보니, 그 창구 직원은 허공을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대로 보안 때문에 절차상 어쩔 수 없이 안된다고 하는 거라고 하소연을 한다. 저번 이민국 갔을 때도 느꼈지만 아프리카계 직원들은 보통 이렇게 뭔가 변명을 해야 될 때면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허공을 쳐다보면서 이야기를 하는 게 문화인 것 같다..? (아니면 아니라고 댓글에 써주세요.)
내가 못 미더운지, 처음으로 서비스가 어땠냐고 설문지를 들고 와서, '그래- 직원은 죄가 없지'라며 다 만점을 주고 제출했다. 어차피 의견 내봤자 이렇게 엉망진창인 시스템이 바로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 어쨌든 이민국보다는 훨씬 다들 친절하다. 캐나다에서는 예약만 1년 걸리는 걸 여기서는 몇 달안에 해결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지. 그렇지만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어른이 되고 나니 맨 서류 띄느라 정신이 없다. 서류 작성하고, 서류 제출하고, 또 실랑이하고, 하나 해결하면 다른 하나가 문제 터지고... 하하하
30대가 되니까 하루는 시간처럼 흐르고, 달은 며칠처럼 훌쩍 지나간다.
그렇게 또 하나를 해결했다.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뭐 하나씩 해결되는데, 하늘에게 하소연하고 싶다. 뭐 저를 가지고 조련하시는 겁니까?! 시련도 정도껏 주셔야지요!
아참, 내가 이 길을 선택했지..ㅋㅋㅋ
이제 퍼밋 카드 수령하고, (안 그래도 오늘 프로세스 완료되었다고 노티스 떴다! yay!) 은행 계좌도 열고 병원도 접수해야 되는데...! 이 번 연도에 다 할 수 있겠지? 여름 오기 전에 빨리 해야 되는데...! 할 일은 산더미이다.
지금도 새벽이지만 또 수업 준비하러 가야 한다. 이탈리아어도 공부해야 되는데, 요즘에는 가르치는 게 흥미가 붙어서 관련 자격증도 알아보고 있다.
그래도 '바쁜 게 어디냐'라며 마음을 다시 다 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