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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치노매드 Nov 11. 2022

그 오빠 잘 지낼까

복병처럼 나타나는 옛 기억

대학교에 간 뒤로 종종 소개팅을 했다.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과는 제법 길게 만나기도 했다.

한 번은 대학교 때 친구가 자기 남자친구의 선배를 소개해 주었다. 그는 대학원생이었는데 서로의 학교가 멀지 않았기에 우리는 공강 시간에 맞춰 자주 만났다.


나이차가 꽤 났음에도 오빠는 나를 잘 받아 주었고 엉뚱하면서도 귀엽다며 좋아해 주었다. 우리는 생각하는 바가 대체로 잘 맞았고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소개해준 친구 커플과 더블데이트를 한 적도 있었고 둘이서만 여행을 간 적도 있었다. 오빠와는 모든 것이 무난했고 잘 맞았다. 생각해보면 오빠는 종종 결혼한 형과 형수 얘기를 하며 신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마다 나는 무심히 넘겼던 것 같다. 


오빠가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 나는 학부 3학년이었다. 

스물셋.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많았던 나는 어느 정도 안정된 그의 미래보다 그려지지 않은 그 너머가 궁금했다. 결혼은 먼 미래라 생각했던 나와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오빠 사이에 어느 순간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회사 인턴에 합격하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는 헤어졌다.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며 한참을 분주하게 지내던 어느 날, 저녁 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걸려오는 전화가 누군지 알 수 없던 시절. 늦은 시각, 취기가 가득했던 나는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는 이내 끊어졌다.


알 수 없지만 모를 수 없는 사람.


'잘 지내나 보네. 목소리 좋아 보여.'라는 문자를 본 건 다음날 아침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시간은 또 바람처럼 날아갔다. 대학교 친구는 오랜 연애 끝에 그 남자친구와 결혼을 했다. 또래 중 꽤나 이른 결혼이었다. 축하하는 마음으로 결혼식에 갔다. 신부대기실에서부터 결혼식 내내 자리를 지켰다. 물론 식이 끝난 뒤 친구, 직장 동료들 사진 촬영도 했다.


몇 년 뒤 대학교 친구를 만났다. 서로가 바쁘게 지내느라 결혼식 이후에 처음 보는 자리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점심을 먹으며 안부를 나누었다. 그는 수원으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우리 오빠가 직장이 이쪽이라 자연히 여기에 자리를 잡게 됐어.”


아 그래? 오빠..  문득 떠올랐다.

“그 사람 잘 있어? 너희 오빠랑 연락해?”

“어 그럼. 같은 연구실에 있었으니까. 잘 지내지.”

“난 헤어진 이후론 한 번도 본 적이 없네.”

친구는 의아하다며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야, 우리 결혼식 사회 본 사람이 그 오빠야.”


뭐라고?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결혼식 사회를 봤다면 얼굴도 보고 내내 목소리도 들었을 텐데.. 심지어 사진도 같이 찍었을 텐데.. 전혀 기억이 없었다.


친구는 말을 이었다.

“그 오빠, 같은 동아리 사람 만나서 결혼했어. 무슨 천문 동아리였던 것 같은데.”

“아 그래? 축하할 일이네.”


나이가 많으니 나보다는 빨리 했겠지 생각했지만 막상 옛 남자친구가 결혼했다는 얘길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옛 일기를 꺼내보다 한순간에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 아련한 기억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그 사람. 그 오빠 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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