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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치노매드 Dec 13. 2022

이제와 생각해보니 손절당한 거였다

내가 뭘 잘못했더라?

출근해서 커피잔을 데우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걔는 잘 지낼까? 지금쯤은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겠지? 전공을 뭘로 했을까.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더라.


그와는 대학교 같은 과였다. 과 친구들과는 그리 재미있는 기억이 없다. 과 행사에 잘 참여하지 않고 겉도는 애. 좀처럼 끼지 않는 애. 나를 그렇게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라면 오히려 동아리나 교외 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이였다. 같은 과 친구들과는 좀처럼 친해지질 못했다. 그런 내가 안타까웠던지 챙겨주는 사람이 있었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함께 MT 가자고 연락해주는 고마운 이었다.


졸업반이 되자 적지 않은 과 동기들이 의전으로 갔고 나는 회사에 취직했다. 그 역시 의전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졸업하고 한동안은 잘 만났다. 몇 년 지나 내가 결혼하게 되었을 때 그때까지 연락했던 대학교 사람들 몇몇에게 소식을 전했다. 동기 중에는 조금 이른 결혼이긴 했다. 얼굴을 보며 청첩장을 건네었을 때 그는 말했다. “어어, 축하해.” “그래 고마워.” 무덤덤한 성격의 그가 할 수 있는 무던한 축하였다.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결혼식 아침, 문자 하나를 받았다.

“미안해, 너 결혼식 못 갈 것 같아.”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우리는 졸업하고도 종종 연락했기에 그 동창은 결혼식에 올 줄 알았다.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오래 알고 지낸 찐친도 아니고 학부 때도 붙어 다니는 사이는 아니었기에 ‘그래? 일정이 겹치나?’ 하고 무심코 넘겼다. 아니 넘겨졌다. 결혼식 이후로 정신없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결혼하고 일하며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 외로움을 느낄 틈도 없이 시간이 갔다. 그때 왜 안 왔을까 하고 그 동창 생각을 하기에는 일상에 치었다. 아마 걔도 그랬겠지.



그렇게 십 년이 훌쩍 지난 어느 평범한 오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손절당한 거였구나.’


우리가 친해진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

같이 MT를 다녀오고 과 행사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말이 통한다는 걸 알았다. 둘 다 크게 예민하지 않고 무던한 성격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서로 비슷했다. 과 사람들은 종종 우리더러 닮았다고 했다.


졸업 후 각자 새로운 삶을 마주하다 보니 삶의 방향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우리를 한 울타리에 묶어주던 캠퍼스도 학사 일정도 MT도 더는 없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 만날 때마다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새로 시작하는 의전 생활과 거기서 만난 남자친구 얘기를 주로 했다. 나는 신입사원으로 회사 생활을 풀어놓곤 했다. 서로 다른 얘기를 우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비슷한 일 얘기를 하거나 고민을 나누거나 했다면 서로를 이어 줄 끈이 되었을까. 적당히 쿨했던 우리 사이는 어느 순간 매듭지어져 버렸다. 그간 핸드폰을 몇 차례 바꾸면서 번호마저 잃어버렸다.


그다지 슬프지도 않은 그냥 그런 마음이었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다면 알아볼 수 있을까.


마흔이 되니 이런 관계도 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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