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친구들이 모이면 레퍼토리처럼 빠지지 않고 누군가 꺼내는 그 시절 이야기가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다 같이 다녀온 남도 여행. 목포에서 시작해 보성, 강진을 지나 해남 땅끝마을에서 (기어이) 배를 타고 보길도까지 갔다가 완도를 통해 뭍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여행은 일주일 남짓이었지만 장마가 끝나고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던 터라 생각보다 고되었다. 덕분에 예상치 못한 일들로 추억은 더 풍부해졌다. (전지적 현재 시점)
나름대로 알찬 여행을 해 보겠다며 의기투합한 우리들은 떠나기 전 계획을 짜고 공동으로 쓸 돈을 모았다. 가벼운 주머니는 팔팔한 젊음으로 채울 만큼 혈기 가득했기에 되도록 많이 걷자 다짐했다.
아침 일찍 서울에서 새마을 열차를 타니 점심쯤 목포에 이르렀다. 역에서 빠져나와 짐을 메고 시내를 향해 걷기 시작하는데 아뿔싸 한낮의 무더위는 상상 이상이었다. 더워도 너무 더웠던 그 해 여름.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내 지쳤지만 처음 다졌던 굳은 의지와 주머니 사정을 떠올리며 우리는 묵묵히 걸었다. 목포에서 보성으로, 또 강진으로 지역을 옮길 때 시외버스를 타는 것 외에는 시내에서는 대부분 걸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친구 하나가 슬슬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우리 저기 앞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사 먹을까?”
“응, 다음번 나오는 슈퍼에서 살까?” (당시엔 마트보다 슈퍼가 더 일반적인 용어였음)
아이스크림을 먹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는 또다시 말을 건넨다.
“우리 그늘에서 좀 쉬었다 갈까?”
마음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오늘 안에는 땅끝마을까지 가야 했고 강진에서 떠나는 버스를 타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그래, 우리 5분만 더 걷다가 그늘 나오면 쉬자.”
이런 대화를 몇 차례 거듭하니 자연스레 징징대고 어르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나도 힘든데… 그래도 이왕 여행을 시작한 김에… 우린 이제 성인이잖아.’ 자주 쉬자는 말에 혹여 일정이 틀어질까 조바심이 났다. 친구도 어색한 기류를 느꼈는지 일렬로 들어선 우리들은 한참 동안 말없이 걸었다.
어느덧 정오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길은 한적한 시골 풍경을 지나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장으로 향했다. 친구가 말했다.
“우리 시장 구경 좀 할까?”
힘들고 지쳐 딱히 구경할 기분은 아니었지만 이렇다 할 거절 거리도 없었다.
“나는 상관없긴 한데... 시간이 좀 애매하기도 하네. 너는 어때?” 다른 친구에게 물었다.
“버스 시간 다시 볼래? 아까 좀 빠듯하다고 하지 않았어?”
처음 말을 꺼낸 친구는 얼른, “알았어. 그럼 여기에 잠깐만 있어 봐.” 하더니 늘어선 가게 행렬 사이로 슬그머니 사라진다.
남은 우리들은 잠자코 시장 입구에서 친구를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돌아온 그의 손에는 커다란 빵이 들려 있었다.
“이거 천 원 밖에 안 한대. 내 (개인) 돈으로 산 거야.”
친구는 어리둥절한 우리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술빵을 내밀었다. 시골 인심인지 술빵의 매력인지 천 원어치는 과연 풍성했다. 셋이 나누어 먹어도 남을 만큼. 빵을 호호 불어가며 한 입 베어 물었다. 생각보다 훨씬 뜨거웠다.
더위에 지쳤던 친구는 시원한 생수 한통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달고 고소한 냄새를 맡았던 것이다. 달콤한 냄새를 맡고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기에 술빵 한 덩어리를 덥석 사고 말았다. 허기지고 지쳤던 우리는 그 자리에 선 채로 커다란 술빵을 와구와구 먹었다. 달콤한 냄새와 잔잔한 맛 그리고 뜨거움이 주는 신선함. 삼박자가 갖춰진 술빵은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그 시절 기억 덕분일까. 어느 순간부터 ‘술빵’이라는 글자를 보기면 달콤함이 느껴진다. 앗, 저기 술빵 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