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을 추억하며
날씨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맑았거나 약간 구름이 끼었거나. 소나기라도 내렸더라면 나는 그날의 창밖 풍경을 잊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아니, 사실 경황이 없어서 날씨가 좋았더라도 즐길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때 내 눈에 보이는 건 집채만 한 구급차뿐이었으니까.
정말로 기억에 남을 것이 없었다. 우리의 주말은. 느지막한 아침에 눈을 떴고 별 다른 일정이 없었기에 집이나 주변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다. 오후가 되어 키즈카페에 갔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일요일에는 집에서 뒹굴었다. 그게 주말 동선의 전부였다.
한주의 시작을 위해 일찍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등교 준비로 바쁜 시간대에 학교 알림톡이 울리기 시작했다. 학교 인근 키즈카페에서 확진자가 나왔으니 주말 동안 방문했던 사람이 있다면 PCR 검사를 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등교를 자제해주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혹시나 싶은 생각에 당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오후에 보건소로 검사를 받으러 갔다. 결과는 내일 오전에 문자로 알려준다는 설명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검사를 받으라고 해서 받긴 했지만 확진자와 접촉한 것도 아닌데 콧속을 깊게 찌르는 PCR 검사를 굳이 받아야 할지 싶었다. 지금은 일일 확진자가 수만 명에 달하지만 그때만 해도 하루에 백 명이 채 안되었을 때였다. 더군다나 우리 주변에서 확진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적도 없었다. 남편과 나는 집에서 일하면서 주말이 하루 더 늘어난 셈 치고 내일부터는 일상으로 복귀할 준비를 했다.
다음날 아침. 아직 보건소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오늘도 애들 학교 못 보내는구나 싶어 이른 아침이었지만 보건소에 전화를 걸었다. 어제의 결과를 물어보자 담당자가 한 명씩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 나, 첫째까지 음성이라고 확인해주더니 둘째 아이에 대한 얘기는 어쩐지 뜸을 들였다.
“저희가 내용을 좀 확인하고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뭐지 싶었다. 결과가 안 나온 건가? 설마 다시 코를 찔러야 하는 건 아니겠지? 얼마 가지 않아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OO구 보건소입니다. 윤민서 님 댁인가요?”
“네, 맞습니다.”
“어제 PCR 검사 시행하셨고요. 결과는.. 양성입니다.”
“....”
‘응? 코로나에 걸렸다고?’
전화를 받으면서 나는 침대에서 폴짝거리는 둘째를 바라보았다.
‘애가 저렇게 멀쩡한데?’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이어졌다.
“혹시 치료가 필요한 증상이 있으신가요?”
“아, 아니요.. 세상 멀쩡한 것 같아요.”
“콧물이나 열도 없고요?”
“네 그냥 멀쩡해요.”
“네, 그럼 생활치료센터로 이송되실 거예요.”
“아이 혼자서요?”
”아이가 미성년자라 보호자 동반은 가능하신데 보호자의 감염 우려에 대한 동반 입소 동의서를 작성해주셔야 해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언제 가는 거죠?”
“네, 별도로 연락이 갈 겁니다. 또한 역학조사팀에서도 전화를 드릴 거고요.”
그것이 시작이었다. 학교, 회사, 이웃, 알려야 할 곳에 전화를 걸고 보건소에서 걸려온 전화들을 받았다. 몇 시까지 데리러 올 것이고 짐을 어떻게 챙기라는 설명 그리고 역학조사..
한참을 이어진 전화들을 끊고 나니 정신이 멍했다.
“여보 뭐해. 데리러 온다는 시간이 20분도 안 남았어.”
불안해하는 첫째와 둘째를 거실에 두고 나는 아이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상황 파악이 안 되었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려!!
집에 남아 자가격리를 하게 된 첫째를 소파에 앉혔다. 은서야.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어. 우리가 뭘 잘못하거나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생기더라고. 너는 아빠와 계속 있을 거고 엄마랑도 매일 전화할 거야. 답답하겠지만 밥 잘 먹고 잘 지내보자. 사랑한다.
첫째는 아무 말 없이 없었다. 시간은 다가왔고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집을 나섰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둘째와 함께 집을 나서는데 묵직한 마음이 들었다. 행여 사람들과 마주치지는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바닥만 보고 둘째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둘째는 홀로 유학이라도 떠나듯 결연한 표정으로 제 몸보다 더 큰 가방을 아무 불평 없이 짊어졌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