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을 추억하며
트렁크를 밀고 가방을 메고 내려가 보니 집채만 한 구급차가 번쩍거리는 형광봉을 켜고 대기 중이었다. 이윽고 구급차 조수석에서 진행요원이 내리는데 마치 수술실에 들어가는 의료진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진행요원은 간단히 우리의 신원을 확인하고 차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구급차에 탔다. 구급차는 생각보다 넓었다. 그리고 특수 장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차 안을 둘러보기가 무섭게 진행요원이 말을 걸었다.
“저희는 다른 곳에 들러서 한 사람을 더 태워서 이동할 겁니다.”
구급차를 타고 가는데 앞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운전석과 구급차 내부를 연결하는 작은 창문 하나를 닫으려는 소리였다. 여닫이 창문이 뻑뻑했던지 조수석에 앉은 진행요원은 문을 닫으려 낑낑대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 이쪽에서 닫아주겠다고 하고는 손잡이를 잡고 힘을 주었다. 창문은 가볍게 긁히는 소리가 내더니 이내 닫혔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다시 멈추었고 50대 중반의 아주머니 한 분이 더 타셨다.
그분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모두를 태운 차는 미끄러지듯 달리기 시작했다.
“엄마, 이게 구급차구나.”
“응, 엄마는 처음 타봐.”
“어, 나도 처음이야. 근데 좀 졸리다.”
“엄마한테 기대서 잠깐 자도 돼.”
그렇게 둘째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구급차 안의 공기를 마시며 나는 스쳐 지나가는 경치와 가벼운 덜컹거림을 온몸으로 느꼈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아이는 이대로 괜찮을 걸까.’
‘첫째는 잘 있을까.’
이렇게 한순간에 삶이 바뀌는구나 싶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호기심과 두려움이 반반씩 뒤섞인 이 감정이 참 묘했다.
다시 한번 신원 확인을 거친 뒤, 둘째 아이와 나는 배정받은 방에 들어갔다. 공공기관의 연수원을 임시로 사용하는지 시설은 깨끗했고 그럭저럭 지낼만했다. 생활치료센터에서의 하루는 특별할 게 없었다. 매 식사 때마다 도시락이 문 앞에 놓였고 일주일에 몇 번 쓰레기를 배출할 수 있었다. 매일 오전 오후로 체온, 혈압 등 생체활력지수를 확인하였다. 우리는 금방 새로운 생활에 적응했고 가져온 책을 읽거나 TV, 유튜브를 보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점점 입맛은 떨어졌고 의자를 창틀에 놓고 우두커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래도 첫째 아이에게 전화하는 시간만큼은 잊지 않았다. 영상통화로 만난 첫째는 처음 며칠은 힘들어 보이다가 이내 적응하는 듯했다. 아직 어린아이인데 엄마 없이 떨어져 지내는 걸 보니 기특하면서도 애틋했다.
이와는 다르게 둘째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평소와 다르게 하루 종일 엄마와 함께 있고 더군다나 언니도 없이 엄마가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기에 마음이 흡족한 모양이었다. 책 읽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중 대부분을 TV를 보면서 지낼 수 있으니 둘째는 정말 휴가라도 온 듯 표정이 밝았다. 열 밤 자고 우리 집으로 돌아간다는 얘기까지 해놓은 터라 둘째는 나와는 달리 아무 걱정 없이 퇴소 날까지 매일을 즐겼다. 새롭고 무료하며 불안한 일상은 그렇게 이어졌다.
퇴소 날이 다가올쯔음, 방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확진자는 퇴소 시 별도의 검사 없이 나가지만 함께 들어온 나는 음성이었기에 감염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퇴소 전날 가벼운 마음으로 검사를 했다. 그날 밤도 여느 밤처럼 잠이 들었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