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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치노매드 Jun 17. 2022

교집합이 큰 결혼 vs. 합집합이 큰 결혼

날 이렇게 대하는 건 니가 처음이야

다들 그러하겠지만 나역시 나와 다른 면이 있는 사람을 보면 끌렸다.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나와 가장 교집합이 적어 보이는 아주 매력적인 남자와 결혼했다. 그리고는 결혼 이래로 십 년을 고생했다. 십 년이 지나니 그 고생이 없어졌을까? 아니 그냥 적응이 되었다. 고달픔이 지속되다 보니 그게 삶이 되어 버린 웃픈 결과랄까.


hope for the best, plan for the worst. (최고를 희망하지만 최악을 준비한다)

베트남 전쟁 포로로 살았던 이의 수용소 시절 좌우명이라던데 이상하게도 공감이 되었다.


남편은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연애할 때는 손 잡고 걸어가고 뒤에서 안아주기까지 하던 남편은 결혼하고 아이들과 외출을 할 때는 멀찌감치 앞서서 걸어갔다. “여보 여기 군대 아니야, 일렬로 가지 않아도 돼.”라는 말을 수 년동안 했다.


미동도 없이 자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잠이 들면 잠꼬대를 심하게 했다. 신혼 초엔 코 고는 소리에 많이 놀랐다. 아침이 되어, “여보, 간밤에 호랑이가 왔다 갔어. 아주 으르렁으르렁 하더라고.” 하는 말에 남편은 멋쩍게 웃었다. 번번이 숙면을 방해받던 나는 어느 날 새벽 어김없이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에 화가 난 나머지, “여여 김 씨, 곱게 자!” 하고 남편의 등짝에 스매싱을 날리기도 했다.

 

생활습관도 우리는 많이 달랐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외투를 벗어 가지런히 옷장에 정리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눈에 보이는 데에 걸어두었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바로 짐을 풀어 원래대로 놓는 사람은 나였고 남편의 짐은 다음 출장 때까지 그대로 있는 경우도 여러 번이었다. 빨래통에 옷은 왜 항상 뒤집어 놓는지, 샤워가 끝나고 나면 화장실 정리 좀 하고 나오라는 잔소리도 늘 하게 되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부딪히는 게 너무 많았다.

 

힘든 점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나와 얘기하고 싶어 했지만 일과 육아로 지쳤던 나는 얘기를 듣고는 공감보다는 솔루션을 먼저 이야기했다. 나는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하는데 익숙한 사람이었고 남편은 비록 답이 없더라도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마음을 나누는 것을 더 좋아했다.

대화를 빨리 마치고 쉬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기에 한 행동이었지만 남편은 서운해했다.




생각해보면 나와는 ‘다름’이 그의 매력이었는데 솔직히 이렇게까지 다를 줄은 몰랐다. 이 불편한 ‘다름’을 해소하려고 각자의 방식을 기준으로 삼아 오랫동안 기싸움을 했다. 이제와 돌아보면 싸울 것도 없는데 나와 다른 점을 어떻게든 바꿔보겠다고 열을 올렸다. 그 여파로 몇 주, 몇 달을 얘기하지 않고 지내는 시절도 여러 번 있었다.

 

사이가 점점 멀어졌고 남편이 마냥 낯선 존재로만 느껴졌다. 지금 힘든 까닭은 아이들이 어리고 일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기에 이 시간은 언젠가 지나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에도 남편과 이렇게 서먹서먹하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록 지금은 몸이 지치고 고단해서 남편에게 서운한 말을 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또 넘어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벌어진 틈에 애써 소금을 뿌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한 점을 굳이 꺼내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엔 답답했지만 다른 일에 집중하니 잊히고 지나가기도 했다. 남편과 나도 서로가 바뀌지 않는 부분은 그냥 내려놓게 되었다. 남편이 꼭 바꿔주었으면 하는 부분에는 ‘논리’가 아닌 ‘감정’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힘들고 어려웠는데 도와주어서 고맙다’는 피드백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결혼 10년이 지나고서야 우리는 ‘다름’과 함께 사는 방법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지난한 다툼 가운데 휴식에 이른 것은 비로소 최근이었다. 며칠 전 아침, 남편이 차를 마시다 말고 문득 말했다.


“우린 참 MECE 하네.”

 

MECE (미씨)

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 (상호 배제와 전체 포괄)

상호 배타적이지만 모였을 때 완전히 전체를 이루는 것을 의미. 시스템 개발이나 신상품 개발 등 경영학, 공학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루 쓰이는 논리이자 원칙

출처: 위키피디아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서로가 너무 다르다는 점을 빗대어 자조한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합치면 전체를 아우를 수 있다는 다소 희망적인 메시지도 깃들여져 있었다.

 

한 번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나는 무지와 오만으로 결혼했지.”


결혼생활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시작했고 그럼에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여겼다는 웃픈 자기 고백이었다.

이런 결론을 얻기까지 남편 역시 얼마나 많은 세월을 고민하며 혼자 끙끙대었을까를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시렸다.

 

때때로 얘기하게 되는 주제가 ‘어떤 사람과 결혼하는 게 좋은가’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과 비슷한 점이 있는 상대를 만나야 서로 공감하면서 살 수 있다고 한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다만,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과 결혼할 것이냐는 물음에는 잘 모르겠다. 내가 나를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의 배우자는 나와 달랐으면, 내가 없는 게 있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야 이 사람과 계속 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매력을 감당하며 사는 것이 현실적으로 녹록진 않지만 나는 여전히 나와 ‘다름’이 있는 사람에게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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