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김 부장이 아무렇지 않게 일하는 이유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을 뿐
김 부장은 대학 졸업 후 입사한 회사에서 16년째 일하고 있다.
계열사를 옮기긴 했지만 이직했다기보다는 보직을 옮겼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비슷한 분위기였다. 동기들이 직장 생활이 안 맞는 것 같다며 하나둘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거나 다른 업계로 이직할 때도 김 부장은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갖은 위기를 잘 지나온 김 부장은 선배와 동기들 사이에서 '끈기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어느덧 그들도 회사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김 부장은 어쩌다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게 되면 '내가 내야 하나?' 슬그머니 고민이 될 때도 있고 윗사람이나 아랫사람들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연차가 되었다.
김 부장은 회사에서 종종 이런 피드백을 받는다.
“부장님은 잘 모르실 거예요. 완벽한 사람이라...”
남편이 회사에서 이런 말을 듣고 있다는 걸 김 부장의 아내가 알면 놀랄 수 있다. 집에선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있고 벗은 양말을 여기저기 끼워놓는 게 아내가 보는 김 부장이기 때문이다. 요즘엔 제발 비누로 손 좀 씻으라는 잔소리까지 하고 있는 아내에게 '완벽한 김 부장'이란 상상하기 쉽지 않다.
김 부장은 출근 전 졸린 눈을 비비고 조르르 나오는 막내에게 종종, 아니 자주 어리광을 부린다.
"민~↘서~↗야~↘ (멜로디 있음) 아빠 뽀뽀 해죵. 여기 왼쪽 볼 했으나 오른쪽 볼도 해죠. 앙~"
같은 팀 신입사원이 이런 김 부장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다시 말하지만 김 부장은 흰머리도 꽤 있는 40대다.
왜 이러시냐고 따져 묻기엔 김 부장이 억울한 면도 있다. 대졸 신입으로 입사해서 일하고 살아남는 법을 열심히 배웠다. 자주 야근하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회사 생활을 했고 회식 자리엔 끝까지 남아 사람들과 어울렸다. 2차, 3차까지 갔어도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출근해서 총기 있는 눈으로 프로페셔널하게 업무를 처리했다. 같이 일하는 팀원이 맡은 업무를 질질 끄는 경우엔 어르고 달래는 일도 김 부장 몫이었다.
회사에서 바라는 대로, 회사 일을 내 일처럼 했더니 사람들은 '일 잘한다. 프로답다.' 혹은 '냉정하고 완벽하다'는 말로 김 부장을 표현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으쓱하기도 했지만 사실 김 부장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회사 생활과 썩 맞지 않는다는 걸. 김 부장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혼자 멍 때리는 걸 좋아했다. 인적 드문 시골에서 한 달, 아니 일주일, 아니 며칠만이라도 쉬다 오고 싶었다.
솔직한 얘기지만 살아남기 위해 일한 거지 남들이 보는 것처럼 일이 즐거워서 하지는 않았다. 누가 금요일 밤에 야근하고, 주말에 출근하고 싶겠는가.
이런 김 부장을 가리켜 아내는 '태생이 한량인데 회사 생활하느라 고생'이라고 했다. 이른 아침 일어나 출근하기 싫었지만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몸이 움직여졌다. 아이들의 쿰쿰한 머리 냄새를 맡으면 '이 어린것들을 잘 길러야지'하는 마음에 저절로 기운이 났다.
아직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겨울 아침.
김 부장은 오늘도 말끔한 차림으로 일찍 출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