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님의 경제적 가치

아이와 나를 함께 키우는 방법

by 마케터유정

돌고 돌아 이 이야기를 입맛도는 소재로 시작하게 된다.

“이모님, 여기 김치찌개랑 제육볶음 주세요.”라는 말보다 “이모님, 죄송한데 제가 좀 늦을 것 같아요.”라는 말이 더 와닿는다면 저는 지금 아이를 기르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한 것과 같다.


아마도 나를 포함하여 아이를 기르는 부모들은 ‘이모님’이라는 말에 더 민감하게 귀를 기울일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명운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니까. 응당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며 운 좋게 양가 부모님께 틈틈이 도움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는 나이이기에 여전히 이모님의 손을 빌려야 한다. 천재 1명이 평범한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지만 물리적으로는 한 사람이 두 사람의 몫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오죽하면, 아이를 기르는 엄마들이 개미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고 하겠는가.


사실, 이모님과 엄마는 참으로 오묘한 관계이다. 일단 이모님이 아이를 맡아주면 숨통이 좀 트인다. 함께 있다 보면 서서히 정이 들어 이러저러한 집안 얘기를 나누면서 눈물이라도 흘리는 날엔 이제야 내 인생의 귀인을 만난 듯싶다. 한편으론 종종 생길 수밖에 없는 의견 차이 때문에 머리를 싸매며 갈등하다 결국 헤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다. 이렇게 울고 웃는 경험을 하다 보면 내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슬며시 돌아보게 된다.


나의 괴벽 같은 습관 탓에 지난 10년의 육아생활 동안 우리 집을 거쳐가셨던 분들에 대한 기억을 매번 메모로 남겨두었는데 대략 이런 것이다. 처음에 어떻게 이모님을 알게 되었고 얼마나 계셨는지 그리고 시간, 급여 등의 조건은 어떠했는지 등. 이모님과 있었던 일을 회상하다 보면 결국 지난 세월 이모님께 드린 돈이 얼마나 되었지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다. 이 돈이 가치 있게 쓰였을까를 생각한다면 입술을 굳게 다물게 된다. 금액도 금액인 데다 이모님은 아이를 기르는 집에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에 마스크와 자가진단 키트를 왜 쓰냐고 묻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이모님’은 구인구직 시장에서도 유난히 특화되어 수요과 공급이 정해져 있다. 남녀 직업에 구분이 없다지만 ‘이모님’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아이를 대신 돌보아 주는 일은 아직은 금남의 영역인 듯싶다. 그렇다고 여성이라면 누구나 라고 하기에는 사람을 구하는 측에서 원하는 조건이 뚜렷하다. 아무래도 아이를 길렀거나 가사를 돌본 경험이 있는 여성을 선호할 것이며 이러한 이유로 보통의 ‘이모님’이라고 하면 엄마와 주부를 경험해본 40대 이후의 여성을 쉽게 떠올리게 된다. 여기에 출퇴근 거리가 가깝고 등등의 조건을 따지고 나면 구하는 쪽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러한 구인란과 매년 상승하는 최저임금 등의 영향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한국인만큼이나 재중교포도 많다. 최근에는 영어 조기교육을 목적으로 필리핀 출신 이모님을 구하는 집들도 속속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고용주이면서도 이모님들을 모시다시피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엄마들의 현실이다. 이모님과 함께 주로 시간을 보낼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용을 하는 입장임에도 왜 이모님에 전전긍긍일까? 이 질문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과장을 좀 보태어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뉘게 되는데, 먼저는, ‘그러게.. 한 달에 나가는 돈이 얼만데. 내가 번 돈 고스란히 이모님께 드리나 이모님 없이 내가 하나 똑같지 뭐. 그럴 바엔 직장 그만두고 내가 아이들을 기르는게 낫지.’라고 생각하는 경우.

다음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모님을 고용하며 내 일을 하는 경우.


어떤 태도를 취할지 고민하게 된다면 이모님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권하고 싶다. 이모님은 일정한 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보아준다. 명목상으로는 이러한 육아 서비스의 대가로 이모님은 급여를 받는다. 언뜻 이 자체만으로 경제적 가치를 가늠해보기 쉽다. 그러나 이모님이 나를 대신함으로써 내가 얻는 시간적 여유를 어찌 흘려보낼 수 있을까. 직업이 있는 사람들은 그 시간에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일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소득 외에 성취감, 사회생활기술 등 부가적인 혜택도 마땅히 이모님의 경제적 가치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모님의 서비스가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동안 내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치는 직업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아이들은 자란다. 얼마 전에 태어난 아이가 어느새 보니 돌을 맞이하고 또 어느 순간엔 엄마 엄마하고 말을 시작하고 있는 것을 목도하지 않았는가. 물론 남의 아이는 더 빨리 자란다.


아이는 어느 순간 어린이집, 유치원을 지나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중학교에 진학함에 따라 어느 새 엄마의 손을 서서히 떠나게 된다. 이 시절이 지나고 나면 육아에 전념하던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그제야 찾게 된다. 이때 함께 등장하는 단어가 경단녀이다. 십 년이면 이제 강산이 몇 번씩 바뀌는 시대다. 한참을 현업에서 떨어져 있다가 다시 돌아와 그 괴리를 확인해가며 괴로워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처럼 보인다. 그러면 답은 없는 걸까? 그 답을 나는 다시 돌고 돌아 이모님의 경제적 가치에서 찾고자 한다. 이모님은 나를 이롭게 한다. 그 시절 그 돈이 아깝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돌이키지 못할 나의 시간과 에너지도 마땅히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뛰어난 능력이 있다. 그것을 남편이나 가족들이 몰라주더라도 나 스스로는 그렇게 믿고 또 찾아야 한다. 결혼하고 한참을 가정주부의 삶을 살다가 본인의 능력을 찾아 궤도에 오른 분들이 꽤 많다. 요리연구가 이혜정 선생님이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긴 시간 후에 마침내 일을 찾아내어 스스로를 증명하는 훌륭한 분들은 귀감으로 삼아야 마땅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기는 어려운 점도 있다. 그래서 힘들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에도 자신의 능력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운동 마찰력과 정지 마찰력이 어찌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이모님에게 지급되는 급여는 제공받는 육아 서비스에 대한 지불이면서 동시에 나를 나답게 해 주는, 아이를 기르면서도 오롯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가치도 포함한다. 유아기를 지나 아이가 청소년이 되었을 때 마주하게 될 나에 대한 투자인 셈이다. 그것이 이모님의 숨겨진 경제적 가치가 아닐까 싶다. 여하튼 입맛 도는 얘기로 시작한 탓에 오늘 저녁은 남겨둔 삼겹살로 제육볶음이나 만들어 먹어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