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은 이과적 학문인가

수포하지 말아 주세요.

by 마케터유정

수학은 숫자 놀음인가

나는 종종 ‘이과생’이라는 말을 듣는다. 논리적이고 전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따른 부연 설명이다. 감성적이기보단 이성적이라는 얘기이다. 나는 여기에 어느 정도 수긍하기도 하고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이미지도 있었기에 굳이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나를 평가하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내 나름의 논리의 토대는 수학에서 비롯되고 그 수학의 모태는 사실 철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넌 수학적인 사고를 하네'라는 표현은 인정하지만 '수학적이므로 따라서 이과생이다, 좀 드라이하고 감성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에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옥스퍼드 수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미국계 금융회사 아시아 총괄 매니저로 일하는 이가 학부 시절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수학은 철학, 나아가 신학으로 이어지는 문이다. 즉, 더 넓은 학문의 세계로 나아가는 입문이 수학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배운 수학은 문제를 푸는 기술이었다. 나는 수학과 교수가 되고자 하는 꿈을 안고 옥스퍼드에 갔지만 수학을 기술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고 생각하고 정말로 즐기는 동급생들을 보고 아 나는 이 길이 아니겠구나 생각했다. 그 이후로 수학에 대한 흥미가 점점 줄었다.


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져 본다. 나에게 수학이란 무엇인가.




나에게 수학은 삶의 태도


대학교 졸업반 시절 한 회사에서 보았던 면접이 생각난다.

"우리가 이런 경우를 가정해 볼게요.

레이치노매드님이 면접관이 되었다고 하고 신입사원을 뽑는다고 하겠습니다. 면접 자리에 세 사람의 면접자가 들어왔습니다. 한 사람은 수학을 전공했고 다른 사람은 회계를, 마지막 사람은 통계를 전공했습니다.


면접관인 당신은 세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어요.

[1 더하기 1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수학을 전공한 사람은 [2입니다]라고 대답했어요.

회계를 전공한 사람은 [평균적으로 2가 나옵니다]라고 했지요.

마지막으로 통계를 전공한 사람은 [어떤 답을 원하십니까?]라고 합니다.

레이치노매드님은 어떤 사람을 뽑겠습니까?"


나는 고민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저는 1+1은 2라고 답한 사람을 뽑겠습니다.


그 이유를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나는 입사 이래로 정말로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이다. 웃으며 넘기는 화이트 거짓말도 더러 있었지만 나는 결정적인 순간엔 1+1이 무엇이냐고 묻는 물음에 대부분 2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순간을 쉽게 지나갈 수 있는 일들도 더디고 어렵게 지나간 적도 있었고 알게 모르게 불이익도 여러 번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롯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일하고 있다. 순간을 잘 넘기고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만들며 나보다 먼저 가고 높이 갔던 선배들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도 있지만 한순간에 떨어진 사람들도 더러 있다. 내가 정말 부러운 사람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생각했을 때 미소가 지어지고 그래서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싶은 사람이다. 이를테면 윤여정, 김미경, 지나영 같은 사람들.




수학은 나에게 머리 아픈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도구이자 현실 문제를 푸는 단초


현실 문제로 머리가 복잡해지거나 하면 나는 남들처럼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하거나 혹은 드물지만 수학 문제를 꺼내 본다. 문제를 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문제에 집중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잠시나마 현실 문제를 잊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현실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결되곤 했다. 그리고 하나 더. 문제를 풀다 보면 자연스레 일반화되는 것들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수학 문제 속에서의 일반화가 종종 삶에 적용되기도 하였다.


문제를 푸는 순서

수학은 방정식, 집합, 로그, 행렬, 수열 등 범위도 다양하지만 내가 이해하기로 접근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첫 번째, 문제를 읽고 목적을 (무엇을 묻는지) 확인한다.

두 번째, 주어진 조건을 조합하여 얻을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낸다.

세 번째,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답을 찾아낸다.


그런데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일까?


목적을 확인하는 것, 단서를 찾아내는 것, 논리적으로 답을 도출하는 것. 다양한 대답이 있겠지만 나는 목적을 확인하고 주어진 조건을 활용하여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실행’하는 것이다.

이런 기억이 있다. 중학교 때 중간고사를 보는데 나름 열심히 공부한 과목에서 모르는 문제가 나왔다. 억울해서 내가 아는 내용을 시험지에 빼곡히 적었다. 답은 쓰지 못해 그 문제는 결국 틀렸지만 그래도 나는 덜 억울했다. 수학이 어렵고 재미없다는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 도입 부분부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무엇을 구하는 문제인지 알고 주어진 조건을 이용하여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면 처음에는 몰랐지만 어느새 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수학 문제에 빗대어 표현했지만 사실은 이러한 자세를 우리의 일상에 적용해도 비슷하게 해석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딪친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순간이 너무나도 괴롭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고 고민했던 시간이 부끄럽게도 일단 무엇이든 하다 보면 생각보다 별 것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아니 내가 이런 걸로 고민했다는 말이야 라는 생각이 끝머리에 항상 드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수학 문제를 보고 아 이걸 어떻게 풀지, 또 이런 어려운 문제가 나왔네 하며 머리 아파하지 말고 그냥 연필 잡고 주어진 조건 하나씩 툭툭 쳐가면서 실마리를 만들어 가면 된다. 글을 쓸까 말까 할 때 그냥 쓰고 운동할까 말까 할 때 그냥 하는 거다.


귀찮지만 연필을 잡고 이것저것 건드려 보며 답을 찾는 것처럼 귀찮지만 그래도 해내는 것이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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