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의 하바롭스크는 도로에는 다행히 제설작업이 되어있어 눈이 없었지만 도로에 쌓여있던 눈을 도로의 양옆으로 밀어 두고 방치해 얼어버린 하얀 눈얼음이 사람 허리만큼 높았고, 그 눈이 녹아 도로는 흙탕물 범벅으로 조금만 달려도 앞 차의 바퀴에서 튄 흙탕물 때문에 앞유리가 뿌옇게 되어 수시로 워셔액을 뿌려 와이퍼로 닦아줘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갓길에 주차된 차들 지붕 위에 와셔액을 올려놓고 판매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러시아의 워셔액은 생각보다 비쌌다. 아마도 얼지 않게 보장하는 영하 온도가 -50도까지 되는 겨울용 워셔액이라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운전할 때는 그나마 차 안에서 튀기는 물을 피할 수 있었지만 도시를 구경하기 위해 다닐 때는 물 구덩이를 피하기 위해 바닥만 보고 걸어야 했다.
너무 추운 데다, 그런 환경에서 하바롭스크 도시 탐험은 금방 흥미를 잃게 했다.
하지만 아침에 들렀던 대형 홈퍼니싱 마트에서 있었던 일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하바롭스크에 도착해 아무르강가에서 밤을 보내고 도로 건너편에 리로이메를린이라는 대형 마트에 캠핑카 수리에 필요한 몇 가지를 사기 위해 들렀다.
전쟁 중인 나라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물건들이 다양하고 많았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농사에 필요한 물건에서부터 집을 직접 짓기 위한 물품까지 다양하게 있었고, 캠핑카도 움직이는 집으로 치면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린 접이식 버킷(나중에 머릴 감거나 샤워를 할 때 유용하게 사용했다.) 수납할 수 있는 제품, 가위등을 쇼핑했고 마지막으로 19 육각볼트를 하나 집어 쇼핑카트에 넣었다.
그렇게 요리조리 눈을 돌리며 쇼핑을 하고 있는데 한 젊은 남성이 우리에게 다가와
“밖에 주차된 한국에서 온 캠핑카가 너희 것이니?”
“어! 맞아! 무슨 일이야?”
“아. 너무 반가워! 나는 한국을 좋아해. 그리고 너희는 차를 가지고 여행 중에 있는 것이니?”
“한국을 좋아한다니 고마워! 맞아 우린 한국에서 저 차를 끓고 동해를 건너 블라디에서부터 달려 하바롭스크로 온 거야. 우리는 시베리아를 횡단해 조지아, 튀르키예를 지나 유럽의 서쪽 끝까지 가려고 해.”
“우와!! 멋지다!!! 사진 한 장 같이 찍을 수 있을까?”
“당연하지”
우린 그렇게 그 청년의 폰으로 셋이 다정히 사진을 찍고 사진을 공유할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혹시 인스타 하니? DM으로 보내줄게”
“어?….. 아니 인스타 없는데..? 러시아는 인스타 못하는 거 아니야? “
“ㅎㅎㅎ 아니야 다들 우회하는 프로그램을 써서 인스타를 해”
“아.. 근데 우린 인스타를 안 하니까 와츠앱으로 보내줄 수 있겠어?”
“그러자!”
나는 인스타를 당연히 한다.
나의 인스타 계정은 우리 부부 계정으로 우리의 결혼사진부터 여행사진, 다정하게 찍은 커플사진으로 그득했다.
하지만 청년에게는 알려줄 수 없었다.
러시아의 동성애선전금지법이 우리는 두려웠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가기 전부터 우린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여보! 우리 러시아에 가면 커플인 거 티 내면 안돼.”
“맞아 거기 동성애혐오국가잖아”
“그러니까 우리 손잡고 다니는 것부터 자중해야 해”
“알았어… 우린 하찮은 여행객일 뿐이니 말이야…조심해야야지..”
그렇게 그 청년에게 인스타 계정을 알려주지 못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헤어져 계산대로 갔다.
계산대에 올려놓은 물건 중 19 육각볼트 하나의 가격바코드를 뽑아 붙여 와야 한다는 말을 계산원은 우리에게 러시아 말로 전했고, 우린 순간 당황해 무슨 일단 번역기를 돌려 번역을 하려고 하였으나 자꾸 오번역이 나서 서로 소통이 안되고 있었다.
“여보 이거 꼭 사야 해? “
“…..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한데.. 그냥 나중에 사지 뭐…”
하며 물건을 안 산다고 손으로 엑스를 그리고 있는데 우리를 발견한 사진을 같이 찍었던 청년이 볼트를 집고 잠깐 기다리라며 계산원에게 말하고 자기가 직접 볼트를 가져가 바코트를 출력해 붙여 왔다.
“땡큐!!”
“고맙긴. 너희의 여행을 응원하고 잘 마치길 기도할게 “
하며 팔을 벌려 우리를 안아 주었다.
너무 고마운 마음이 미안한 마음과 함께 들었다.
순수하게 우리를 응원해 주는 러시아 친구에게 우린 인스타 계정하나 알려주지 못한 것이 말이다.
여행 내내.. 그리고 다시 돌아온 러시아 횡단길에서도 그 청년은 언제나 마음속에 있었고 가끔씩 우리의 여행 여정을 와츠앱을 통해 소식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인스타 계정을 이쯤 하면 알려줘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의 갈등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알려주지 못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우리나라는 동성애혐오국가일까?
러시아에는 동성애선전금지법이 있어 무지개 귀걸이를 한 여성에게 한 남성이 귀걸이를 지적하고 빼라고 하자 여성이 저항해 여성을 처벌하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니 혐오국가는 아닐까?
나는 유럽을 여행하며 어느 누구에게도 우리의 관계를 숨기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우리의 관계를 신기해하거나 혐오하거나(겉으로 표현은 절대 하지 않았다.) 특별히 여기지 않았다.
우리 부부를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너무나 평범한 부부로 대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그것이 우리 부부도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지 그러기엔 쉽지 않다.
여행 전 5년 동안 다녔던 회사에서 커밍아웃을 결심하고 애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절대 피하지 않고 우리는 동성커플임을 이야기했던 것은 나에게 아주 큰 결심이었다.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 불이익으로 돌아올 때 기댈 수 있는 아무런 사회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의 반동성애법은 좋은 친구 관계를 맺기 어렵게 했고, 러시아의 퀴어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되게 했다. 하지만 우린 하찮은 객으로 빨리 이 추운 러시아를 통과하기에만 집중하기로 하며 다음 행성지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