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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뎃이 떠나온 것들

영화 <어디갔어, 버나뎃>

by 다정

버나뎃 폭스(케이트 블란쳇)가 탄 1인용 카약이 남극 바다 위에 태연하게 떠 있다. 버나뎃은 아주 평온한 표정이다. 영화는 버나뎃이 지리적으로 어디 있는지 밝히고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니 제목의 질문 '어디갔어, 버나뎃'에 대한 진짜 답은 남극이 아닐 것이다.


최연소로 맥아더상을 수상한 버나뎃은 한때 건축계의 아이콘으로 칭송받았지만, 그녀가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인 건물이 몇 시간 만에 어이없이 망가지는 사건 이후 건축에서 손을 뗐다. 대중의 눈을 피해 시애틀로 이사 온 버나뎃에게 아내이자 엄마라는 역할만 남은 듯하다.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일하는 애니메이터 남편 엘진(빌리 크루덥)과 딸 비(엠마 넬슨)를 뒷바라지하는 일상 속에서 창작자로서의 자아는 사라진 지 오래다. 버나뎃이 사람들과의 교류를 피하는 탓에 오드리(크리스틴 위그)와 수린(조이 차오) 같은 이웃들로부터 질타를 받기 일쑤다.



기숙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비는 가족끼리 남극 여행을 가는 게 소원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딸을 위해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지만 버나뎃은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다. 그녀는 많이 예민한 편이고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 그런데 남극 여객선은 무려 150인용이다. 거기서 꼼짝없이 모르는 사람 147명과 부대낄 생각을 하면, 불안과 신경증이 폭주할 것만 같다.


그래도 비를 실망시킬 수 없다. 버나뎃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스트레스를 어떻게든 견디기 위한 방책을 찾는다. 온라인 비서 '만줄라'의 도움을 받으며 부산스럽게 움직이지만, 오히려 문제를 가득 만들고 큰 곤란을 겪는다. 회사 일에 몰두하는 게 모두를 위한 일이라 믿었던 엘진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버나뎃에게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고 종용한다. 하지만 버나뎃은 약물 치료나 상담이 필요한 게 아님을 너무 명확하게 알고 있기에 자리를 피한다. 그리고 홀로 남극으로 떠난다.


SNL 작가 출신인 마리아 셈플의 동명소설 『어디갔어, 버나뎃』은 편지, 이메일, 통지서 등이 나열되는 서간체 소설이다. 소설은 버나뎃의 부재를 이해하려는 주변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주로 그리는 반면, 영화는 버나뎃의 행동을 직접 보여주는 길을 자주 택한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케이트 블란쳇을 자주 등장시키지 않을 수 있냐고 장난스레 말했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영화는 세상과 불화하는 버나뎃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다만 도망치는 버나뎃을 전면에 세우다 보니 영화의 구심력이 약해진다. 버나뎃은 갈 곳이 없어서 그나마 알아보고 있던 남극으로 향했을 뿐이다. 영화 인트로에서 남극에 간다는 사실을 이미 밝히고 시작했기에 관객이 목적지를 궁금해할 필요도 없다. 남극을 향하는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탓에 버나뎃의 이동 과정을 지켜보아야 할 이유도 뚜렷하지 않다.



그런데 남극이라는 장소보다 중요한 건 예술가로서의 사명을 깨우치는 여정이다. 버나뎃은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건축가였고, 늘 아이디어가 넘치고 실행력이 뛰어났던 사람이다. 창조를 그만둔다고 해서 그 에너지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남아도는 에너지는 지난 몇 년 간 아픈 딸을 보살피는 데 쓰였고, 비가 건강하게 자라난 지금 또 한 번 갈 길을 잃은 에너지가 버나뎃을 압도하고 있었다.


버나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디로'가 아닌 '무엇으로부터' 떠나는 건지 물어야 한다. 버나뎃은 같이 창작 활동을 했던 폴 젤리니크(로렌스 피쉬번)와 오랜만에 만나서 시애틀의 삶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쉼 없이 떠든다. 폴은 버나뎃의 심정을 헤아리고 그녀에게 꼭 필요한 말을 해준다. "너 같은 사람은 창작을 해야 해. 넌 그런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왔어. 창작하지 않으면 넌 사회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거야."


버나뎃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사소한 것들에 크게 감동하곤 한다고 비에게 말한다. 타고난 기민함 때문에 같은 일을 겪어도 흡수하는 충격이나 영향이 보통 사람보다 몇 배는 크다. 하지만 감당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이기에 별나게 굴면서까지 낯선 환경에 최소한으로 노출되려고 애쓴다. 그러다 임계점을 넘어서면 버나뎃은 자기도 모르게 사회에 위협이 되어 버린다. 무책임해 보이는 황급한 도피는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한 그녀의 마지막 몸부림이다.


시애틀에서 버나뎃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웃들은 사람이 버거울 뿐인 버나뎃에 대해 험담하기 바쁘고, 남편 엘진은 한동안 회사 일에만 몰두했다. 비조차도 엄마가 아닌 창작자로서의 버나뎃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있다. 사람은 보통 자신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에 비추어 타인의 속내를 추측한다. 비슷한 작동 기제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많은 노력을 들여야 오해를 피할 수 있다. 버나뎃은 흔하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빈번히 오해받을 수밖에 없었다.


휘청이는 배에서 멀미에 시달리며 남극에 도착한 버나뎃은 우연히 남극점 기지를 재건축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극은 매우 춥고, 물자가 풍부하지 않은 곳이다. 악조건에서 오히려 창의력이 샘솟는 버나뎃은 두 눈을 반짝이며 새로운 남극점 기지를 머릿속에서 구상하기 시작한다. 막무가내였지만 남극점 기지에 직접 들어갈 기회도 얻어 낸다. 이 기쁜 순간에 버나뎃을 찾으러 남극에 온 엘진과 비를 만난다. 그녀가 얼마나 창조력 넘치는 예술가였는지 뒤늦게 깨달은 엘진은 버나뎃의 다음 행보를 지지한다.



엔딩크레디트 말미에 "나의 버나뎃, 다이앤 링클레이터(1937-2017)를 기억하며"라는 메시지가 나온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어머니 다이앤은 이혼 후 세 아이를 홀로 키우면서 언어병리학 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교수로 재직했고, 자신의 전문성을 살린 봉사 활동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종종 집을 떠났다.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하는 줄은 알지만 종종 그녀의 부재를 견뎌야 하는 당황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감독은 원작소설을 읽고 어머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영화 속 버나뎃과 비의 끈끈한 연대는 감독 자신이 가족 안에서 목격한 모녀지간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그간 버나뎃의 보살핌을 받았던 비는 버나뎃이 자신의 소명을 찾아 나서는 길을 가장 응원한다. 버나뎃은 위험하다고 비에게 사다리를 타지 말라고 하는 엄마지만, 비는 버나뎃을 곧장 따라 올라오는 아이다. 모험을 반기고 실행을 주저하지 않는 비는 버나뎃을 많이 닮았다. <어디갔어, 버나뎃>은 닮은 꼴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적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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