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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에 깃든 가장 큰 자유

영화 <봉쇄수도원 카르투시오>

by 다정

고독과 가난 속에 기꺼이 뛰어들어 오로지 신을 섬기는 일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 있다. 천 년 전 성 브루노는 알프스산 깊숙한 곳에 엄격한 침묵 속에서 신과 교류하는 카르투시오 수도원을 만들었다. 그 정신을 이어받아 전 세계 열다섯 곳에 카르투시오 수도원이 생겼고,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경상북도 상주에 위치해 있다.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수도원에 여러 국적의 봉쇄수사와 평수사 11명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지내고 있다. 그곳에는 오로지 신께 올리는 기도를 위한 삶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한 고독과 가난 속에서 정해진 시간 외에는 절대적 침묵을 지키며 생활한다.


이 특별한 공간에 관심을 가져온 김동일 감독은 긴 설득 끝에 카르투시오 수도원에 들어가 8개월 간 그들의 생활을 함께하며 그곳의 풍경을 투명하게 담아냈다. <봉쇄수도원 카르투시오>는 TV로 먼저 방영한 세 편의 다큐멘터리를 압축하고 일부 영상을 덧붙여 완성한 영화다.


카르투시오 수도원에서의 삶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누군가는 자유를 박탈당한 삶이라 여길 수 있지만, 그곳에 머무는 수사들은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듯하다. 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분량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면, 그들은 허락된 자유를 온통 신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다다르고자 투신하는 데에 쏟아낸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자유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유로 나뉜다고 한다면, 그들은 몸의 자유를 제약함으로써 추상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 발견하는 보이지 않는 자유를 극대화하는 사람들이다. 극도로 단순한 생활은 정신적 자유를 위한 한없는 여백을 마련한다. 절대적 침묵이란 말을 안 해도 되는 것이고, 하루 한 끼 주어지는 쌀밥은 먹을 것에 대한 고민을 덜어준다. 어쩌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고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동안 정신적으로는 가난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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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한 수사는 아주 긴 시간 고통스럽게 고민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고백한다. 신을 향한 기도에 매진하는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도움을 주는 삶을 포기함이기도 하다. 주어진 몸, 주어진 삶은 오직 하나인 까닭이다.


또 다른 수사는 무료 병원을 운영하는 수녀회에 소속된 누나를 두었다. 그녀는 병원에서 일하다가 신과 더 가까운 곳을 향해 정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면 동생을 생각한다고 말한다. 내가 동경하는 삶을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위안을 얻는 듯하다. 수사와 수녀의 대화를 통해 봉쇄수도원에서 살아가는 수사들의 존재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몸을 써서 도움을 준다면 쓸모가 눈에 보인다. 반면 평생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의 가치는 인정은커녕 이해받기도 어렵다. 마음속에 나 아닌 다른 사람을 품고 오래도록 머물러 본다면 수사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를 위한 기도는 다름 아닌 기도하는 이에게 충만한 아름다움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수사들의 얼굴에서 엿보이는 정돈된 편안함이 이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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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들은 숭고한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인간이기도 하다. 그들은 알프스 산에 있는 카르투시오 수도원을 담은 영화 <위대한 침묵>(2005)이 수사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그린다고 불만을 드러낸다. 그래서 김동일 감독에게 자신들이 "평범한 사람들,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담아 달라 당부했다고 한다. 촬영 당시 정식 신자가 아니었던 김동일 감독을 받아들인 것도 객관적인 시선을 견지해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영화에는 TV에 방영되지 않은 특별 에필로그가 있다. 외국인 수사 두 명이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 한국 모기에 대해 고찰한다. 평온하고 말간 얼굴로 한국 모기는 특별하다고 말하는 서툰 한국어에 웃음이 나온다. 그들 역시 모기에 물리면 간지럽다. 카르투시오 수사들은 타고나기를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선택과 헌신으로 숭고한 삶을 쌓아 올리고 있는 인간이다. 그런 까닭에 그들이 어떤 역사를 거쳐 지금 모습에 이르렀을지 가늠하며 영화를 본다면 감동이 한층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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